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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로 접종을 거부한 채 남의 백신접종을 구경하는 국가지도자 |
2021. 3. 13.
도조 히데키와 아스트라제네카
2021. 1. 3.
고루한 비관론자를 위한 해는 없다(No year for old bears)
2020. 12. 23.
황제 네로의 시, 그리고 문준용의 예술
2020. 11. 29.
위에 민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리고 비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정치지도자는 누구일까. 그 물음에 우리는 아마 콧수염을 기른 독일(오스트리아)인이나 러시아(그루지아)인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마오쩌둥이다.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흔히 그의 치세 아래서 약 3천만에서 최대 1억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그리고 천안문사태까지. 여느 아시아 나라들의 근대화가 대개 그러했듯 중국의 근현대사도 피와 총탄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광기의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말수가 적다. 와전된 말 한마디, 혹은 동료들 사이의 작은 오해가 온 마을을 도살장으로 둔갑시키곤 하던 시대였으니까. 말을 아끼고 생각을 숨기고 감정을 감추는 것, 그것이 가장 기초적인 생존법이었던 시대를 목도한 이 작가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그 시대상을 그려냈다.
작가가 밝혔듯이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자화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그림 안에서 위에 민쥔은 필사적으로 웃는다.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온 몸을 고통으로 배배 꼬면서도,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죽음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웃는다. 웃음이 광기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 그런 것일까.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는다는데 설마 총알을 박아 넣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과 절규가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저 심연과도 같이 어두운 입을 가리고 다시 그림을 보라.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 아닐까.
"위에 민쥔의 작품은 특유의 표정과 풍자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리시엔팅
그의 작품이 런던이나 뉴욕의 경매에 올라온 지도 벌써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다. 나는 너는, 그리고 세계는 그의 불편한 함박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외면한다. 그 저변의 시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거부한다. 이제 그의 웃음은 너무나 흔해 마치 하나의 패션이나 캐릭터상품으로 전락했고 가장 슬픈 웃음을 띤 작품은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바로 전 세기만 해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최고의 가치라고 외치던 자유진영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일당독재국가를 경제파트너로 받아들였고 전체주의와 타협했다. 자본과 물자는 끊임없이 중국의 국경을 넘나들지만 자유와 이념은 그렇지 못하다. 죽의 장막은 아직도 실존하며 새로운 도약을 이끈 구글과 아마존조차도 그를 걷어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장막의 뒤켠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비극은 서서히 잊혀지면서도, 다른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위에 민준은 그 불편한 현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웃는 동물이라고. 그리고 인간이 짐승으로 돌변하는 시대에 그는 더더욱 웃어야 했다. 우리는 기술과 다양성이 지배하는 21세기가 이전의 시대와는 아주 다르다고 믿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슬프게도 이번 세기에도 위에 민쥔의 발작 같은 웃음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김창열, the path
언뜻 단색화의 열풍에서 살짝 비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창열을 빼놓고 한국의 현대미술사를 논하긴 어려우리라. 회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아 그 물방울' 하고 알아차릴 정도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이미지는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이 화가는 한때 자신의 문패에 이름 대신 물방울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물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가벼이 대답했지만 젠체하는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아내곤 한다. 아마 각각의 해석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어떤 대조를 읽어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수천 년을 이어온 상형문자와 순간적으로 사라질 물방울 사이에서, 어떤 이는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또 누군가는 철저한 관념의 세계인 서예와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미지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읽었을 것이다. 마치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파리에 정착한, 조부에게 서예를 사사받고 현대화가로 살아온 그의 삶과도 같이.
최근 갤러리현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1929년 생인 이 노화가의 나이와 올해 작품활동이 뜸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쩌면 올해가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1972년 파리에서 한 무명의 화가가 세수를 하다 그만 캔버스에 물을 튀기고 만다. 어지럽고 좁은 아틀리에에 세면장이 따로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는 다급하게 캔버스의 물을 닦으려다 순간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본다. 김창열의 물방울이 태어난 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마치 작품에 그려진 문자처럼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2021년 1월 5일 김창열 화백이 작고하셨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니기를 바랬건만. 그저 부디 편히 쉬시기를]
2020. 11. 12.
대신증권의 전략적 실수 두가지
먼저 나는 대신증권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내부자 정보따위와는 거리가 멀며 심지어 가까운 지인도 없다. 따라서 아래 분석은 오로지 공개된 정보에 의거한 것이고 실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이 보기인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그저 순전히 제 3자의 시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 * *
한남대교를 지나 도심으로 향하다 왼편을 돌아보면 나인원한남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도심속 타운하우스 열풍에 힘입어 자산가들의 큰 관심을 받은 이 단지는 흥미롭게도 건설사가 아닌 증권사인 대신증권이 주도하여 지은 것이다. 부동산이 반등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장기전망에 의문을 가졌던 2016년, 대신증권이 과감하게 자회사를 통해 시행사로 나서며 한남외인부지를 낙찰받아 지은 고급주거단지, 나인원 한남.
나는 이 선택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건설에서 금융사들의 역할은 PF에 그쳤지만 대신증권은 과감하게 시행사로 나서며 신사업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금융업계 최초로. 우리나라의 증권사들이 50개가 넘는다는 사실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지주회사, 혹은 외국계자본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증권업 내에서 대신증권의 비교우위가 명확하지 않지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야하는 건설업 특성상 직접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증권사의 이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는 시점에서 그것도 대형평수/고급 타운하우스라니, 업종과 트렌드 두 박자를 모두 맞추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총 사업비는 1.6조원. 모회사 대신증권의 자기자본금 규모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회사는 시행사로의 변신에 미래를 건 것이나 다름없다. 잘 풀렸다면 아마 케이스 스터디에 실렸을 만큼 과감하면서도 훌륭한 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들이 두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실수로 이 프로젝트 전체의 수익이 날아갔고 두번째 실수로 그들의 전략적 변신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번째 실수가 더욱 뼈아픈 것은 그것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순간에서 기업들이 실기하는 사례들은 너무나 흔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묘수가 악수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워 내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첫번째 실수-후분양 옵션
문재인정부 출범 후 주택시장의 안정이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르자 집값을 잡기 위해 HUG는 각 서울시의 분양가를 통제했고 나인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느 재건축 단지들처럼 HUG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 최고급 타운하우스의 분양가를 기타 지역의 일반 아파트 수준으로 깎으라고 주문했다.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영수증을 받고 고심하던 시행사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는 대신 4년간 임대를 주고, 희망하는 세대에 한해서 분양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후분양 옵션이라고 부른다. 입주자는 4년간 임차인으로 거주한 뒤 만기에 시세에 따라 분양을 받을수도, 혹은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전형적인 옵션이다. 햄릿의 연극과도 같은 나인원의 비극은 시행사가 이 옵션을 너무나 싼 값에 팔면서 시작된다. 옵션의 행사가격이 시장가격보다 아래인 옵션을 내가격옵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구조는 보통 비싸게 팔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당장의 조달비용을 아끼려고 이를 너무 싼 값에 팔아치운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고 미래를 베팅한 회사가, 집값이 올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콜옵션을 전량 매도하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처럼 이로 인해 시행사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룹의 전망이 정확하게 맞아 집값은 당시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뛰었지만 시행사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반면 비용은 폭증한다. 7.10부동산 대책으로 법인의 종부세가 6%의 단일세율이 적용되면서 4년간 보유세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대신증권의 2분기 재무제표를 보면 나인원한남 관련 일시적 비용이 약 938억원이 발생해 적자로 전환했는데 새 종부세법으로 인한 비용이 내년에 부과되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2분기의 일시적 비용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대강 계산해보면 이제까지 누적된 나인원한남의 이익을 상쇄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실수-신뢰의 상실
이 모든 사태는 HUG가 시행사가 신청한 분양가를 몇번이고 반려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업이란게 늘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것 아닌가. 우리의 여느 삶이 다 그렇듯이. 그리고 승자와 패자는 그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법인의 종부세가 폭등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고, 후분양 옵션을 너무 싸게 판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시행사는 여기에서 두번째 실수를 저지른다. 첫번째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를.
바로 2021년 부과될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조기인도를 통보한 것. 임차인들은 나인원한남의 명의가 2023년 11월에 양도될 것이라고 믿고 그에 맞게 자금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이를 앞당겨 2021년 3월에 양도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되면 2021년 부터 23년까지 3개 년도의 종부세가 시행사가 아닌 입주자들에게 부과된다. DS한남 측은 계약서 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또 3년치 종부세에 준하는 금액을 부담하겠다고 하지만 종부세 계산은 다주택 누진세인데 비해 시행사가 부담하겠다는 종부세는 1주택자 기준이라 커다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링크) 애초에 40억이 넘는 집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에 보유한 집이 없을리 없지 않은가.
법리상 시비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지만 비즈니스적 측면에선 이는 최악의 선택이다. 대신증권은 이 사업에 단순한 LP(일종의 전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회사를 설립해서 뛰어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 해보는 대형사업인 만큼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예상외 비용은 수업료라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사실상 손실을 자신을 믿고 계약한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기로 결정했다. 옳건 그르건 사업가가 손님과 멱살 잡고 법정에 가는 것은 앞으로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대신이 나인원의 경험을 발판으로 진출하려는 사업이 고가주택분양이라는 것이다. KB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금융자산이 100억이 넘는 부자의 수는 2만 4천 명, 10억이 넘는 사람은 약 35만 4천 명이다. 세다리 건너면 모두가 안다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대신증권의 미래 사업의 소비자들은 나인원한남의 수분양자 당사자, 친인척들, 지인들과 상당부분 겹칠 것이다. 설령 겹치지 않더라도 회사의 이렇게 대응한다면 자산가들이 어떻게 그들을 믿고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인가.
또 고객들에게도 저렇게 대응하는데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실무진들을 잘 대우해줄 지 의문이다. 얼마전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수첩으로 알려진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는데, 그 중 실패한 연구진들을 격려하고 되려 축하하는 방안에 대한 메모가 있었다. 대신 F&I와 DS한남의 실무진들은 전체 금융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행까지 도맡아 본 경험자들이자 최악의 상황까지 겪어본 베테랑이 되었다. 정말 이 분야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겠다면 이 경험자들을 우대해야 한다. 매번 하던 사업도 실패하기 마련인데, 처음 해본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들을 홀대한다면 영민하고 눈치가 빠른 직원들이 먼저 이직할 것이고 남은 임원진들은 위험이 상존하는 새로운 사업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증권사 수수료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규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금융업에서 탈피해 대신증권이 시행사로 변모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몇몇 실수로 꽃놀이패는 똥패로 전락했다. 하지만 신산업에 진출한 회사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회사의 재무구조는 그 실패를 거뜬히 감내할 정도로 탄탄하다. 대신증권의 이 변신이 성공한다면 현재의 시행착오는 사소한 비용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착오와 손실에 매몰되어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미래를 잃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큰 대 믿을 신. 지금이야말로 사명의 음절이 아닌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아야할 순간이 아닐까 싶다.
2020. 11. 9.
부동산과 주식은 버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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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코스닥시총 / 원화 M2통화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