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겐 이성과 감성이 있고 이는 신이 주신 선물처럼 소중한 능력이다. 하지만 각자가 역할을 발휘할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이를 혼동하면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대개 감성이 나서야할 때 이성이 나서기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욱 흔하다. 왜냐하면 이성이란 진화의 단계에서 후반부에 생겨난 것인데 비해 감성, 즉 감정이란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존재하는 극히 말초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애기하는 지능은 대부분 이 이성을 측정하는것 아닌가. 따라서 머리가 나쁜 사람일 수록 이성 대신 감성을 쓰기 마련이다.
투표는 이성을 사용할 문제인가, 감성을 사용할 문제인가. 당연히 전자이다. 역사를 보면 대중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감성을 발휘해서 내린 정치적 결단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너무나 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다. 당장 눈물 줄줄 흘리는 아줌마들 몇몇이 통과시킨 민식이법이 얼마나 끔찍한 악법인지 보라. 정치는 전적으로 이성이 작용해야할 문제이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의 정치적 성향은 서로 다르겠지만 투표의 중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투표는 최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거르는 것이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을 합리적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 투표에 앞서 감성이 아닌 이성을 선택하길 바란다. 내가 가진 자산은 주식도, 연봉도, 부동산도 혹은 다른 무형자산도 아닌 바로 내 국적이며 한국의 국제적 값어치가 하락할 수록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 역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이 잘 되길 바라며 또 같은 국가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길 바란다. 특히 2030대 후배들이여. 투표하라. 소비하지 않는 고객들을 챙길 기업은 존재하지 않듯, 투표하지 않는 계층을 배려할 정당은 없다. 4050대를 위한 고용정책과 복지는 끝없이 늘어나는데 비해 2030대를 위한 정책은 지리멸렬한 이유는 바로 투표율에 있다. 부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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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자주 들리던 동네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다 예전에 종종 갔던 맛집을 찾아갔다. 맛집이라고 하지만 TV에 나올 정도는 아니고, 또 상권이 발달한 부잣동네도 아닌 뭐 그저그런 서민동네의 평범한 식당. 추리닝 입은 대학생, 등산복 입은 아저씨들과 같은 장삼이사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모여앉는 그런 곳. 홀로앉아 김치를 짝짝 찢으며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벙거지 모자를 쓰고 등이 무척이나 굽은 한 노인이 들어와 나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다른 손님들에게 하던 것과는 달리 식당주인은 그에게 음식값을 선불로 받았고 그 노인 역시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 국밥값을 먼저 치르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내 기억에도 그리고 그날에도 밥값을 선불로 낸 손님은 그 하나 뿐이었다.
어림잡아 80세는 되어보이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은 한 노인. 6.25를 비롯하여 날짜로 이름지어진 수없는 사건들, 3.15, 4.3, 4.19, 5.17, 5.18, 12.12와 같이 굴곡진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끝에 그의 허리는 휘었고 손톱은 누렇게 부르텄다. 그 고난의 시간을 함께 보낸 벗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이 고단한 노인은 홀로 밥숟가락을 든다. 하지만 그의 등에 업혀 태어난 우리사회는 그에게 국밥 한그릇조차 먼저 내어주지 않았다.
그런 소소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감성이 아닌 이성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더더욱 합리적으로 투표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