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2.
소로스의 실패한 중국 숏 베팅
2016. 3. 5.
영화 Big Short - 실패한 파티의 DJ들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버블의 공범이었다. 여러 금융상품들이 개발되자, 금융기관과 자본은 리스크를 더 분산할 수 있어(혹은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며)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대중들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집을 가진 이들은 더 큰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소득도 없는데 여러채의 집을 사들이는 한편, 집이 없던 이들은 상환능력을 상회하는 대출로 집을 구매한 뒤 집주인의 닥달과 월세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파티는 뉴욕의 월가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파티는 금융의 중심지와 떨어진 신시내티, 밀워키, 오스틴 그리고 수많은 미국의 중소 마을까지도 번졌다. 미국 전역에서 상류층들은 초현실주의나 야수파 화가들의 그림을 사는데 수억불을 지출했고, 중산층들은 새 메르세데스와 BMW를 뽑아 거리를 질주했으며 하류층들은 이전의 중산층들이 살던 삶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금융은 단지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도록, 그들이 요구한대로 시스템과 시장을 구축해줬을 뿐이다.
물론 월가의 잘못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들 파티에서 누리던 만큼 취해 있었을 뿐이며, 그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베어스턴스, 리만, 와코비아를 비롯한 수도 없이 많은 금융회사들의 주식가치는 휴지가 되었고, 살아남은 은행들도 그 과도한 파티의 비용을 톡톡히 지불했다.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정부 소유가 되었던 Citi그룹의 주가는 10년전 400-500불 수준에서 현재 45불로 1/10토막이 났고 투자은행의 대표주자 Goldman Sachs의 현재 주가도 10년전과 같은 수준이다.(반면 S&P지수는 10년 전에 비해 50% 상승했다.) 어떤 사람들은 수백 수천만 달러의 성과급을 받은 뱅커들은 그 보너스를 챙겨 여전히 부자로 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 돈을 지급한 것은 대중들이 아니라 대형은행 주주들이다. 그 부자 주주들이 뱅커들에게 얼마를 지급하던 그것은 그들이 결정할 문제고, 그 결과 그들은 현재 혹독한 손실을 입었다.(사실 그 부자 주주들 명단에는 고점에서 Merrill Lynch의 주식을 대거 매입한 KIC가 있으니 한국인들은 메릴린치 뱅커들의 보너스를 제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부동산 하락에 베팅한 두 청년들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자 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만약 너희들의 베팅이 맞는다면 미국인들은 연금과 자산을 날리고 직장과 집까지 잃게 된다. 너희들이 지금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의 몰상식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빅롱'베팅을 해서 버블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름다운 일 인가. 그 시기 숏베팅을 한 이들 덕분에 버블은 그나마 덜 커질 수 있었고, 그들의 숏 포지션 덕에 시장이 무너질 때의 충격이 완화될 수 있던 것이다. 시장이 무너질 때 마이클 버리가 미리 구축해 둔 포지션이 없어 살 사람이 아예 없었다면 시장이 얼마나 더 폭락했을지 상상해보라. 우리는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고 숏 포지션을 잡은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런 베팅을 하는 사람이 적어 버블을 키웠다는 사실에 분노해야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내 파티가 끝난것 남 탓이다" 라고 주장하곤 한다. 영화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진실은 시와 같다. 사람들은 그를 혐오한다."
달콤한 칵테일에 취해있었던 것은 뱅커들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파티를 즐기며 거나하게 취하자 한두명이 과음으로 휘청거리고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누군가 응접실에 구토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몇명이 따라 오바이트를 하고, 더러는 넘어지며 집기를 부수고 누군가는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다. 그렇게 21세기의 첫 파티는 엉망으로 끝나고야 말았다. 즐거운 파티가 한순간에 난장판으로 변하자 분노한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아 두리번거렸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대 위에 서있던 DJ였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더 신나는 음악을 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은 이제 DJ에게 왜 사람들을 과도하게 흥분시켜 모두를 만취하게 만들었냐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하기사, 60년 전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날에도 미국인들은 원폭 투하를 결정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에게 침을 뱉지 않았는가. 그 정치인들을 누가 뽑았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 영화는 그런 대중들을 위한 영화다.
2016. 2. 29.
최훈. 삼국전투기.
웹툰의 역사는 사실상 스포츠 신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이전에는 유명 연예인들의 가쉽이나 여자 스타들의 관능적인 사진 등을 접하려면 독자들은 스포츠 신문을 사야 했지만, 인터넷이 등장하자 우리는 손쉽게 컴퓨터에 앉아 검색해보는 것 만으로 원하는 소식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신문잡지들 중에서도 특히나 자극성, 흥미성 소재를 주로 전달하던 스포츠 신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결국 그들은 발행 부수를 대폭 줄이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광고 수입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 때 타사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컨텐츠로 만화를 주목했다. 스포츠 투데이, 일간스포츠와 같은 스포츠신문들의 홈페이지는 웹툰이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요람과도 같았다. 양영순(데뷔작은 누들누들이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웹툰 아색기가이다), 곽백수(트라우마), 비타민(멜랑꼴리), 이상신-국중록(츄리닝)등, 현재 웹툰계의 1세대 중 다수가 이때 스포츠 신문들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 웹툰의 첫 세대 중 한명이 최훈이고 그의 대표작은 단연코 삼국전투기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이래로 천년간 동아시아의 수많은 작가들이 소재로 다룬 삼국지를 만화로 그리는 일은 처음부터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이미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삼국지를 60권짜리 만화로 옮겼고, 한국에서도 고우영 화백이 "고우영 삼국지"를 내놓은 적이 있다. 게다가 다른 그 어떤 역사분야보다도 일반 독자들의 이해도가 깊은 소재이다 보니 기존에 알려진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그리는 것 만으로는 결코 인정 받을 수 없던 작업이었다. 하지만 최훈 작가는 세가지 강점으로 삼국지를 다룬 가장 훌륭한 작가중 하나가 되었다. 첫번째는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서 실제 삼국지 역사에 가까운 스토리를 완성한 것이요, 두번째는 다른 삼국지가 등한시 한 제갈량 사후의 이야기까지 충실한 점, 세번째는 수백명이나 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기존 만화 드라마 영화들의 캐릭터에서 따온 패러디로 채운 것이다.
이 만화는 2006년 1월 11일 일간스포츠에 첫 연재를 시작한 뒤 이후 네이버 웹툰으로 자리를 옮겼다. 초기에는 네이버 웹툰 중 대표 인기작으로 손꼽혔지만, 수도 없이 많은 지각 연재와 휴재를 거치며 그 인기와 평가는 추락했다. 그의 팬 중 새항아리라는 블로거가 있었는데, 그는 최훈이 패러디한 캐릭터들을 자신에 블로그에 친절히 설명해주곤 했다. 그러나 최훈이 의욕을 잃고 연재를 중단한 중에 그는 지병인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삼국전투기가 완결되기를 바란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최훈은 그를 추모하며 반드시 이 작품을 완결시키겠다고 다짐했고 그가 다시 연재를 재개한 이후로는 단 한번의 지각연재 없이 완결까지 삼국 전투기의 스토리를 완성시켰다. 그런 삼국 전투기가 지난주 수요일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종결했다.
많은 사람들은 웹툰의 역사 따위에 그리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의 역사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기엔 누군가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훈은 삼국지라는 역사를 그리며 스스로 웹툰의 역사가 되었고, 거기엔 10년간 그를 함께 지켜보아온 수많은 독자들의 역사도 함께 담겨있다. 댓글 창에는 중학교때 이 작품을 처음 보기 시작했다 어느덧 전역한 예비군이 되었다는 독자와, 대학생 때부터 팬이었던 한 남자가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소회를 남긴 글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아니 우리들에게는 이 작품은 단순한 만화가 아닌 내 젋은날을 함께 해 준 소중한 기억이기에 삼국전투기의 완결을 보며 감명과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추억이 되고, 모인 추억들은 이윽고 역사가 된다.
2016. 2. 23.
아베노믹스는 실패하는가?
일반 대중들은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무제한 돈풀기로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설명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는 동안, 일본의 경상수지는 단 한해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으며 되려 막대한 흑자를 기록해왔다. 게다가 일본이 수출하는 제품들은 주로 가격의 영향을 적게 받는 상품들이기 때문에 통화와 기업실적의 상관관계가 낮아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니케이와 엔화의 상관관계는 주요 수출국 중 가장 높다. 무엇보다도 수출이 전체 GDP의 1/6도 안되는데다 고부가가치 상품이 주력인 일본산업이 단순히 환율로 인한 가격경쟁력 하나 때문에 20년째 불황이라는 1차원적인 설명에 설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진짜 문제는 환율로 인한 가격경쟁력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디플레이션에 있다.(환율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일본 중앙은행이 경제를 죽일 만큼 통화량을 억눌렀기 때문에 발생했다. 따라서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통화량을 늘려 소비와 투자를 끌어올리는데에 있다. 여기서 환율의 움직임은 인플레이션 기대치에 따라 변하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달러엔이 폭등할때 니케이가 같이 오르는 이유는, 싼 엔화로 인해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것을 예상해서가 아니라 통화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공격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통화량이 좀처럼 늘고 있지 않다.
2016. 2. 13.
1998년 두 연구원의 대결, 그리고 18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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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9.
북한은 왜 핵을 개발하는가.
중국은 망하는가? -비관론에 대한 반박
그들이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은 과잉투자이다.8 과거 세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때에는 중국의 막대한 생산설비는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현재 성장세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자, 지나치게 확충한 공장들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과잉투자(공급)은 다른 말로 수요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의 생산공장이다. 따라서 중국이 과도하게 생산설비를 확충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세계의 수요가 모자르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세계의 수요가 모자른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연준을 제외한 나머지 중앙은행들의 잘못된 통화정책에 있다.(링크) 즉 각국의 지나치게 경색적인 통화정책이 세계 수요의 위축을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의 경제가 과잉투자가 되어버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ECB와 BOJ를 필두로 나머지 중앙은행들은 과거 연준이 하던 완화적 통화정책을 따라가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수요부족은 몇년 안에 회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 세계 경제 성장률은 지난 20년 평균을 상회하고 있으며 2010-12년에 시행된 금리인상이 아니었다면 세계 경제는 진작에 소프트 패치를 극복하고 성장 궤도에 진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들은 잘못된 믿음으로 위안화와 상해 주식에 대한 매도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자산에 대해 매도포지션을 취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위안화: 최근 헷지펀드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포지션은 바로 USDCNH(or NDF USDCNY)숏이다. 소로스도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이미 무너지고 있으며 위 포지션을 가지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그는 두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3조 달러 이상으로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달러를 보유한 국가이다.(최근 여러 하우스에서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지만, 논리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이 외환보유고가 모자라 파산에 이를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전에 모든 EM이 달러 부족에 시달려야 한다. 중국은 21세기 들어 가장 큰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누적해왔을 뿐 아니라, 자본수지에서도 큰 폭의 흑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중국의 위안화가 절하된다면, 이는 중국 정부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전철을 밟을 리는 없다. 게다가 리만위기 이전에 경제학자들이 주목하던 글로벌 경제의 문제점은 바로 global imbalance(아시아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미국은 적자를 기록하는 현상)였다. 그 필연적인 결과로 아시아 국가들은 지나치게 큰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무역에서 환율을 통해 상품가격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매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만들었다. 따라서 최근 자본유출에 따른 중국의 외환보유고 감소는 이와같은 문제점을 경감시키는 셈이다.
상하이 주식: 예전에 밝힌 글에서 말했듯이, 지난 20년 평균에 비하면 현재 중국 주식의 PE는 결코 비싸지 않다. 많은 투자자들은 리만 전 6000을 기록한 상해지수가 현재도 3000선에 그치는 것을 보며 중국에 대한 비관론을 유지하지만, 그들은 상하이의 시가총액이 리만 전 수준을 회복했음을 간과하고 있다. 상해 지수가 낮은 이유는 신규기업들이 대거 편입된 영향 때문이지, 중국의 경제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하이얼 샤오미 알리바바 등 불과 5년 전만 해도 세계 무역시장에서 변방을 차지하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많은 중국 기업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쌓은 것을 보면 중국경제를 단순히 상해지수의 절대값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중국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가장 큰 이유는 세계가 평균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인간의 믿음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난 50년간 세계 경제에서 위상이 계속해서 낮아지던 영국의 칼럼니스트들이 더욱 그렇다.(구글에서 2005 China bubble로 검색하면 해당년도에 중국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영국 경제지들의 기사를 찾아 볼 수 있다.) 겨울이 오고 나면 따듯해지는 봄이 오고, 해가 지고 나면 다시 날이 밝아지는 주기를 수십만년간 겪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이 평균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세계GDP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낮아진 서구는 다시 부흥할 것이며 떠오르던 중국과 아시아는 도로 몰락할 것이라고 믿기 쉽다. 하지만 과잉 투자와 두 자리수의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을 매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1940년도에 미국 주식을 숏쳐야 한다고 주장해야 옳다. 그리고 우리는 1940년 이후 미국의 주식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상승한 사실을 알고 있다. 이성이 아닌 본능을 따르는 투자자는 파산할 수 밖에 없다.
*이 외에도 중국의 그림자 금융과 높아진 중국의 인건비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림자금융과 같이 투명하지 못한 금융시장의 문제점은 모든 EM가진 공통적인 문제들이다.(그렇기에 EM주식들이 싼 것이다) 또한 중국의 인건비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개선되고 내수시장이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