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9.

위에 민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리고 비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정치지도자는 누구일까. 그 물음에 우리는 아마 콧수염을 기른 독일(오스트리아)인이나 러시아(그루지아)인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마오쩌둥이다.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흔히 그의 치세 아래서 약 3천만에서 최대 1억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그리고 천안문사태까지. 여느 아시아 나라들의 근대화가 대개 그러했듯 중국의 근현대사도 피와 총탄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광기의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말수가 적다. 와전된 말 한마디, 혹은 동료들 사이의 작은 오해가 온 마을을 도살장으로 둔갑시키곤 하던 시대였으니까. 말을 아끼고 생각을 숨기고 감정을 감추는 것, 그것이 가장 기초적인 생존법이었던 시대를 목도한 이 작가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그 시대상을 그려냈다. 

작가가 밝혔듯이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자화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그림 안에서 위에 민쥔은 필사적으로 웃는다.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온 몸을 고통으로 배배 꼬면서도,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죽음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웃는다. 웃음이 광기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 그런 것일까.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는다는데 설마 총알을 박아 넣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과 절규가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저 심연과도 같이 어두운 입을 가리고 다시 그림을 보라.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 아닐까.


"위에 민쥔의 작품은 특유의 표정과 풍자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리시엔팅


그의 작품이 런던이나 뉴욕의 경매에 올라온 지도 벌써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다. 나는 너는, 그리고 세계는 그의 불편한 함박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외면한다. 그 저변의 시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거부한다. 이제 그의 웃음은 너무나 흔해 마치 하나의 패션이나 캐릭터상품으로 전락했고 가장 슬픈 웃음을 띤 작품은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바로 전 세기만 해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최고의 가치라고 외치던 자유진영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일당독재국가를 경제파트너로 받아들였고 전체주의와 타협했다. 자본과 물자는 끊임없이 중국의 국경을 넘나들지만 자유와 이념은 그렇지 못하다. 죽의 장막은 아직도 실존하며 새로운 도약을 이끈 구글과 아마존조차도 그를 걷어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장막의 뒤켠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비극은 서서히 잊혀지면서도, 다른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위에 민준은 그 불편한 현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웃는 동물이라고. 그리고 인간이 짐승으로 돌변하는 시대에 그는 더더욱 웃어야 했다. 우리는 기술과 다양성이 지배하는 21세기가 이전의 시대와는 아주 다르다고 믿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슬프게도 이번 세기에도 위에 민쥔의 발작 같은 웃음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김창열, the path

 

언뜻 단색화의 열풍에서 살짝 비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창열을 빼놓고 한국의 현대미술사를 논하긴 어려우리라. 회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아 그 물방울' 하고 알아차릴 정도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이미지는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이 화가는 한때 자신의 문패에 이름 대신 물방울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물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가벼이 대답했지만 젠체하는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아내곤 한다. 아마 각각의 해석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어떤 대조를 읽어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수천 년을 이어온 상형문자와 순간적으로 사라질 물방울 사이에서, 어떤 이는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또 누군가는 철저한 관념의 세계인 서예와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미지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읽었을 것이다. 마치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파리에 정착한, 조부에게 서예를 사사받고 현대화가로 살아온 그의 삶과도 같이.

최근 갤러리현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1929년 생인 이 노화가의 나이와 올해 작품활동이 뜸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쩌면 올해가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1972년 파리에서 한 무명의 화가가 세수를 하다 그만 캔버스에 물을 튀기고 만다. 어지럽고 좁은 아틀리에에 세면장이 따로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는 다급하게 캔버스의 물을 닦으려다 순간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본다. 김창열의 물방울이 태어난 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마치 작품에 그려진 문자처럼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2021년 1월 5일 김창열 화백이 작고하셨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니기를 바랬건만. 그저 부디 편히 쉬시기를]

2020. 11. 12.

대신증권의 전략적 실수 두가지

먼저 나는 대신증권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내부자 정보따위와는 거리가 멀며 심지어 가까운 지인도 없다. 따라서 아래 분석은 오로지 공개된 정보에 의거한 것이고 실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이 보기인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그저 순전히 제 3자의 시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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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교를 지나 도심으로 향하다 왼편을 돌아보면 나인원한남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도심속 타운하우스 열풍에 힘입어 자산가들의 큰 관심을 받은 이 단지는 흥미롭게도 건설사가 아닌 증권사인 대신증권이 주도하여 지은 것이다. 부동산이 반등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장기전망에 의문을 가졌던 2016년, 대신증권이 과감하게 자회사를 통해 시행사로 나서며 한남외인부지를 낙찰받아 지은 고급주거단지, 나인원 한남. 

나는 이 선택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건설에서 금융사들의 역할은 PF에 그쳤지만 대신증권은 과감하게 시행사로 나서며 신사업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금융업계 최초로. 우리나라의 증권사들이 50개가 넘는다는 사실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지주회사, 혹은 외국계자본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증권업 내에서 대신증권의 비교우위가 명확하지 않지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야하는 건설업 특성상 직접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증권사의 이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는 시점에서 그것도 대형평수/고급 타운하우스라니, 업종과 트렌드 두 박자를 모두 맞추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총 사업비는 1.6조원. 모회사 대신증권의 자기자본금 규모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회사는 시행사로의 변신에 미래를 건 것이나 다름없다. 잘 풀렸다면 아마 케이스 스터디에 실렸을 만큼 과감하면서도 훌륭한 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들이 두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실수로 이 프로젝트 전체의 수익이 날아갔고 두번째 실수로 그들의 전략적 변신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번째 실수가 더욱 뼈아픈 것은 그것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순간에서 기업들이 실기하는 사례들은 너무나 흔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묘수가 악수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워 내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첫번째 실수-후분양 옵션

문재인정부 출범 후 주택시장의 안정이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르자 집값을 잡기 위해 HUG는 각 서울시의 분양가를 통제했고 나인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느 재건축 단지들처럼 HUG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 최고급 타운하우스의 분양가를 기타 지역의 일반 아파트 수준으로 깎으라고 주문했다.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영수증을 받고 고심하던 시행사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는 대신 4년간 임대를 주고, 희망하는 세대에 한해서 분양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후분양 옵션이라고 부른다. 입주자는 4년간 임차인으로 거주한 뒤 만기에 시세에 따라 분양을 받을수도, 혹은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전형적인 옵션이다. 햄릿의 연극과도 같은 나인원의 비극은 시행사가 이 옵션을 너무나 싼 값에 팔면서 시작된다. 옵션의 행사가격이 시장가격보다 아래인 옵션을 내가격옵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구조는 보통 비싸게 팔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당장의 조달비용을 아끼려고 이를 너무 싼 값에 팔아치운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고 미래를 베팅한 회사가, 집값이 올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콜옵션을 전량 매도하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처럼 이로 인해 시행사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룹의 전망이 정확하게 맞아 집값은 당시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뛰었지만 시행사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반면 비용은 폭증한다. 7.10부동산 대책으로 법인의 종부세가 6%의 단일세율이 적용되면서 4년간 보유세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대신증권의 2분기 재무제표를 보면 나인원한남 관련 일시적 비용이 약 938억원이 발생해 적자로 전환했는데 새 종부세법으로 인한 비용이 내년에 부과되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2분기의 일시적 비용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대강 계산해보면 이제까지 누적된 나인원한남의 이익을 상쇄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실수-신뢰의 상실  

이 모든 사태는 HUG가 시행사가 신청한 분양가를 몇번이고 반려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업이란게 늘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것 아닌가. 우리의 여느 삶이 다 그렇듯이. 그리고 승자와 패자는 그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법인의 종부세가 폭등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고, 후분양 옵션을 너무 싸게 판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시행사는 여기에서 두번째 실수를 저지른다. 첫번째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를.

바로 2021년 부과될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조기인도를 통보한 것. 임차인들은 나인원한남의 명의가 2023년 11월에 양도될 것이라고 믿고 그에 맞게 자금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이를 앞당겨 2021년 3월에 양도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되면 2021년 부터 23년까지 3개 년도의 종부세가 시행사가 아닌 입주자들에게 부과된다. DS한남 측은 계약서 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또 3년치 종부세에 준하는 금액을 부담하겠다고 하지만 종부세 계산은 다주택 누진세인데 비해 시행사가 부담하겠다는 종부세는 1주택자 기준이라 커다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링크) 애초에 40억이 넘는 집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에 보유한 집이 없을리 없지 않은가.

법리상 시비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지만 비즈니스적 측면에선 이는 최악의 선택이다. 대신증권은 이 사업에 단순한 LP(일종의 전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회사를 설립해서 뛰어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 해보는 대형사업인 만큼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예상외 비용은 수업료라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사실상 손실을 자신을 믿고 계약한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기로 결정했다. 옳건 그르건 사업가가 손님과 멱살 잡고 법정에 가는 것은 앞으로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대신이 나인원의 경험을 발판으로 진출하려는 사업이 고가주택분양이라는 것이다. KB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금융자산이 100억이 넘는 부자의 수는 2만 4천 명, 10억이 넘는 사람은 약 35만 4천 명이다. 세다리 건너면 모두가 안다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대신증권의 미래 사업의 소비자들은 나인원한남의 수분양자 당사자, 친인척들, 지인들과 상당부분 겹칠 것이다. 설령 겹치지 않더라도 회사의 이렇게 대응한다면 자산가들이 어떻게 그들을 믿고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인가.

또 고객들에게도 저렇게 대응하는데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실무진들을 잘 대우해줄 지 의문이다. 얼마전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수첩으로 알려진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는데, 그 중 실패한 연구진들을 격려하고 되려 축하하는 방안에 대한 메모가 있었다. 대신 F&I와 DS한남의 실무진들은 전체 금융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행까지 도맡아 본 경험자들이자 최악의 상황까지 겪어본 베테랑이 되었다. 정말 이 분야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겠다면 이 경험자들을 우대해야 한다. 매번 하던 사업도 실패하기 마련인데, 처음 해본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들을 홀대한다면 영민하고 눈치가 빠른 직원들이 먼저 이직할 것이고 남은 임원진들은 위험이 상존하는 새로운 사업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증권사 수수료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규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금융업에서 탈피해 대신증권이 시행사로 변모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몇몇 실수로 꽃놀이패는 똥패로 전락했다. 하지만 신산업에 진출한 회사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회사의 재무구조는 그 실패를 거뜬히 감내할 정도로 탄탄하다. 대신증권의 이 변신이 성공한다면 현재의 시행착오는 사소한 비용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착오와 손실에 매몰되어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미래를 잃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큰 대 믿을 신. 지금이야말로 사명의 음절이 아닌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아야할 순간이 아닐까 싶다.



2020. 11. 9.

부동산과 주식은 버블인가

이전에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훌륭한 트레이더들이 막상 개인적 투자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주된 이유는 트레이딩과 투자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시장은 마치 노련한 바람둥이처럼 당신을 위해 매일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며, 아무리 훈련된 트레이더라도 그 앞에선 연애경험이 없는 여자처럼 쉬이 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종 펀드와 금융기관의 트레이더들이 매달 수백, 수천만 원을 들여 정보인프라를 구축해놓고 예기치 못한 시장의 사건에 대응하는 마당에, 증권사들의 공짜플랫폼에 의지하는 개인투자자들이 그들을 앞서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트레이더들의 개인계좌도 마찬가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는 속보가 뜨는데 회사포지션을 보호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개인계좌를 먼저 챙기는 트레이더를 짜르지 않을 회사는 없으니까.

따라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단기적으로 끝나고 잊혀질 이벤트를 과감하게 넘기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사건들에 집중해서 투자해야 한다. 아마 그것이 트레이딩과 투자의 가장 큰 차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트레이더지만 이 블로그에서만큼은 철저히 투자의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지난 1월 말부터 3월까지 경제와 시장에 대한 글을 집중적으로 올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때가 트레이딩은 물론이고 투자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4월 5일 비관론자들을 비웃을 차례라는 글(링크)을* 올린 이래 시장에 대해 업로드하지 않은 것은 그때로부터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 코로나는 다시 이전 고점을 넘어섰고, 미국 대선과 지난한 브렉시트 이벤트가 있었으며 한국과 중국의 경제 지표가 크게 개선되었지만 시간의 문제지 언젠간 다 겪을 것 아니었나.

부동산 시장은 더욱 그렇다. 그동안 임대차 3법, 6.17부동산 대책, 임대주택 논란 등 수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청와대가 김수현(링크)을 다시 기용한 이래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 않나. 이제 시장과 대중 뿐 아니라 정부도 공급부족을 사실상 자인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분석할 것도 전망을 바꿀 일도 없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수치는 단기간에 급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을 분석하는 일은 반기에 한번도 많다. 쓸데없이 데이터들을 자주 다운받고 정리하는건 무의미한 시간낭비일 뿐이다. 

주식도 부동산도 내 전망은 달라질 것이 없다. 전제조건들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가지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데, 바로 가격이다. 가격은 모든 거시/미시환경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아무리 전도유망한 기업도 가격이 비싸면 고꾸라질 것이고, 당장 망할 회사도 과도하게 싸면 오르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실물경제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이 계속 상승하니 비관론자들의 버블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하지만 봄의 뒤에는 여름이 오는 법이지 다시 겨울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두개의 차트를 보자.
서울시 주택가격 / 가처분 소득
서울시의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오독하기 쉽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이촌향도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서울의 위성도시는 계속해서 주변지 인구를 흡수하고 있고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주택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서울시 생활권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서울시의 주택가격을 전국의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이 잠재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지표로 보면 현재의 주택가격은 소득기준대비 아직도 저렴하다. 단지 과거 몇년동안 너무 낮았던 터라 지금이 비싸보이는 것 뿐이다. 
이는 서울시가 역사상 최악의 공급난을 겪었던 80년대 중후반의 수치를 제외하고 보아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혹자는 참여정부 말기의 부동산 고점기와 비교하여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 과도하다고 평가하지만 여러 지표로 볼 때 아직 부동산시장은 버블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들의 가처분소득이 크게 감소하거나 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주택가격지수가 20-30% 더 상승해야 2008년의 고점에 도달하게 된다. 문제는 고유가와 싸우느라 전세계가 고금리를 유지하던 과거에 비해 디플레와 싸우는 오늘날, 부동산 가격이 고작 2008년의 고점에서 멈출 수 있을까? 
S&P500+NASDAQ시총 / USD M2통화량
주식도 마찬가지다. 위 차트는 미국의 주식시장 시총을 전체 USD통화량으로 나눈 것인데 2000년대 초반의 주식버블에 비하면 아직 한참 아래에 있다. 물론 지난 5년 평균치(노란색 선)보다 높긴 하지만 미국의 통화량 공급이 20% 넘게 풀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의이 버블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긴 어렵다.  
코스피+코스닥시총 / 원화 M2통화량
한국의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아니 되려 더 저평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따라 한국의 주식시장도 버블에 취해있었던 1980년대에 비하면 현재의 주식시장의 시총은 통화량 대비 현저하게 싸다.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기간을 빼고 최근 20년간의 수치로만 봐도 버블을 논하기엔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난 부동산도 주식시장도 버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가격만 놓고 비교한다면 롤렉스와 샤넬 백의 가격이야말로 버블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든 자산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정해 보면 10년 중 자산을 팔아야 할 해는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자산을 사지 말아야 할 기간은 2할도 되지 않으며 나머지 기간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싼 자산을 사고 비싼 자산을 파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대개 금융위기나 전쟁과 같은 혹독한 겨울을 보낸 직후에는 대다수의 자산이 저평가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시기에도 비싼 주식이 어디 없겠냐만은. 그리고 유명 헷지펀드 매너지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요새 들어 입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과거의 위너가 다음 시대의 루저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한국 주식시장에 더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도 20세기 이래 주식시장시장에서 완벽한 V자 반등은 없었고 항상 W자를 그렸으니 두번째 딥이 있을것이라 믿었다가 계획보다 높은 지점에서 진입했다. 마크 트웨인의 두가지 명언을 떠올리자,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 "10월은 주식투자하기 가장 위험한 달 가운데 하나다.나머지 위험한 달들은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2월이다.


2020. 11. 7.

바이든의 승리, 그리고 여론조사기관의 패배

글 

현재까지의 대선 결과(Google.com)

글을 쓰는 이 시간까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미국 대선은 바이든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면 2016년과는 달리 이변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내막을 들춰 보면 그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의 예측과는 달리 바이든은 플로리다, 조지아, 펜실바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콘신, 미시건과 같은 격전지에서 패배했거나(FL, NC) 1%미만의 격차밖에 내지 못했다(WI, PA, GA, AZ).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은 9:1의 확률로 바이든이 거뜬히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으니 답은 맞췄지만 그 풀이가 엉망진창으로 틀린 셈이다.

개표 전 여론조사기관의 전망 (fivethirtyeight.com)

여론조사기관들이 또다시 표심을 잘못 헤아렸다는 사실은 상하원 선거 결과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민주당이 상원까지 가져갈 것으로 전망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공화당이 상원의 과반을 지키는데 성공했고 심지어 하원에서 약 5석의 의석을 더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10만 명을 돌파하고 선거 전까지 백신도, 재정합의안도 나오지 않았던, 트럼프와 공화당에게 최악이었던 시나리오를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개표 전 상원의석수 전망 (fivethirtyeight.com)


현재까지 개표결과 (google.com)

정치의 세계에서는 99% 득표로 당선되든 51%로 되든 승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론조사는 그렇게 간단한 2진법의 문제가 아니다. 오차율만 보면 미국의 pollster들은 2016년에 이어 이번에도 크게 틀렸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통계조사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왜 자꾸 이런 이변이 발생할까.

나는 그 저변에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글(링크)에서 지적했던 것 처럼 민주당과 리버럴들은 아직도 못배운 백인들이나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2016년과는 달리 최종학력의 가중치를 보정해 저학력층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수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또다시 대중의 속마음을 읽는데 실패한 그들은 입가에 불편한 미소를 띄우곤 통계모델과 샘플을 뒤적거리며 "상당수의 우편투표가 도착하지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비율이 낮다", 와 같은 변명을 늘어놓지만 과연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일까.

답은 간단하다. 샤이 트럼프가 다 못배운 백인은 아니라는 것. 일례로 이번 선거에서 텍사스의 히스패닉들과 플로리다의 남미계 커뮤니티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비율이 높았다. 또 지난 선거에서 미시건이나 위스콘신의 고학력/중산층/백인이 주류인 카운티에서도 트럼프의 득표율이 예상보다 높지 않았나. 이처럼 샤이 트럼프들은 이민자들의 범죄에 겁먹은 젊은 백인 여성, 비 시민권자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고학력 아시안, 가톨릭 전통을 존중해 낙태를 거부하는 남미계 이민자들 사이에도 흔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솔직할 수 없다. 주류언론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멍청한 백인이라는 낙인을 찍었으니까. 애초에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shy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그 편향성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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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거결과의 윤곽이 드러나자 주식은 무섭게 반등하기 시작했다. 미국 S&P지수는 금요일 오후까지 약 4.2% 상승했고 특히 나스닥은 8.5%나 올라 뜨겁게 화답했다. 예상과는 달리 공화당이 상원을 차지하게 되어 강력한 재정지출의 가능성이 줄어들었지만, 나는 이것이 장기적으로 주식에 가장 긍정적인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결코 시장친화적이지 않다. 각종 규제강화와 세금인상이 어느 정부에서 이루어졌나 보라. 나 개인적으로는 불평등의 완화라는 정치적 아젠다에 동의하지만 영혼이 없는 내 포트폴리오와 자산은 그런 정치따윈 알지 못한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하지만 그만큼 규제와 세금을 싫어하기 마련인지라, 예측 가능한 바이든과 규제와 증세를 막아낼 상원의 조합은 향후 몇년간 증시에 가장 좋은 조합이 아닐까 한다.

2. 정치의 변화는 시장의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집권정당이 바뀌는 해엔 더더욱. 1993년 클린턴은 경제정책 앞에 동맹을 두던 기존의 미국의 국제전략을 전면 수정했고, 2009년 오바마의 시대는 각종 금융규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새 시대의 루저는 구 시대의 위너들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주식시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바로 성장성이 낮게 평가된 주식을 사고 과도하게 평가된 주식을 파는 것. 

3.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했지만 여전히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카운트다운(링크)은 진행되고 있다. 누가 의회를 잡느냐, 신임 재무부장관의 재정건전성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민주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코로나로 경제가 모두 멈춰서고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미국인들의 소득은 정부보조금 덕에 오히려 늘었다. 따라서 단순한 불황이나 심지어 리만같은 금융공황사태가 닥쳐도 미국인들은, 그리고 한국인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은 소득의 감소나 실업 구조조정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큰 정부는 경제의 효율성과 동력을 앗아가지만 그 페해를 기억하는 유권자는 드물고 이해하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 부채 사이클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인데, 그들이야 말로 가장 큰 빚쟁이들이기에 이 사이클은 지속될 것이다. 최대한 현금에 대해 숏포지션을 내는 것, 그것이 현 시대의 생존법이라 생각한다.

미국 개인소득 전년대비 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