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26.

제로유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

  • 작년 여름의 한 글(링크)에서 언급했듯 모든 기술적 지지선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0이다. 다양한 파생상품을 접해온 사람이라면 유럽의 장기금리가 마이너스를 찍은 마당에 WTI 유가가 마이너스를 가지 말란 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겠지만, 아니 이해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어떻게 유가가 마이너스를 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쉽게 풀어보기로 한다.
  • 모든 재화는 저마다의 활용가치를 지니겠지만 마찬가지로 비용을 발생시킨다. 당장 당신 집앞의 주유소에서 휘발류를 공짜로 나누어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집안의 온갖 드럼통과 용기들을 모두 가지고 주유소 앞에 줄을 설 것이다, 당장 쓰지 않을 기름을 모으기 위해서. 하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주유소는 기름을 공짜로 뿌리는데 당신의 집안에는 휘발류냄새가 진동을 한다, 흉측한 드럼통때문에 거실에는 당신이 오갈 공간조차 부족하다, 그지경이 되면 얼마간 버텨보던 당신은 기름을 버리러 통을 돌돌 굴려가며 가지고 나간다. 하지만 쓰레기 하역장엔 당신같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주유소 앞에 줄 서있던 사람들은 이제 분리수거장 앞에 다시 줄을 선다. 이제는 휘발류를 처리하는데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그때의 휘발류 가격은 당연 마이너스겠지.
  • 상품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당신이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쓸만한 의자와 TV를 버리기 위해선 구청에 과태료를 내야 하며 가끔 신문에선 농민들이 배춧값이 폭락해 밭에 불을 지르고 돼지를 땅에 묻는 것을 보곤 한다. LA에서 오래 산 내 친구는 캘리포니아에선 오렌지가 굴러가도 거지도 집어먹지 않는다는 농담을 던진다. 단지 이번에는 텍사스 유가가 오렌지가 되었을뿐이다.
  •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하는 대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마라. 수많은 증권사, 헷지펀드 심지어 레이 달리오조차 그랬으니까.(그는 사실상 자신이 통화속도의 풋옵션을 팔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수를 두번 저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정말 유가에 대해 반등의 확신이 있다면 차라리 정유사 주식을 사는 것이 낫다.
  • 지금 이 말은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이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한다. 수많은 전쟁에서 영웅들은 자신들이 가장 경시하던 위험 때문에 무너지곤 했다. 적어도 금융시장은 그랬다. 선진금융시스템과 시장원리를 과신하던 월가는 바로 그 이유로 파산할 뻔했고,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던 리만직후의 세계는 디플레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고 현재 우리 모두는 인플레이션을 마치 지난 세기에 멸종된 생명체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다음 10년은 인플레이션이 한밤중의 도둑처럼 닥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닥쳤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을 것이고 그 결과 역대 가장 큰 버블사이클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 그 이유는 다음 셋과 같다. 하나-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아예 잊은 각 정부는 우한코로나사태 이후 수요가 회복하기 시작할 때 출구전략을 제때 시행하지 않을 것이고,  둘-2014년에 시작된 상품시장의 베어사이클로 인해 CPI는 실제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며 셋-코로나사태로 엄청나게 재정적자를 늘린 각 정부는 실질부채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허용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유효했던 투자전략이 다음 10년간 통용된 적은 많지 않으며 아마 포스트코로나의 시대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적 생물학

1. 아마 기원전 1만년 전 쯤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했다면(그리고 그들이 우리와 아주 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면) 털도 없고 강한 근력이나 이빨 혹은 날개도 없는 호모 사피엔스가 조만간 이 행성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압도적 성공이 우리의 뛰어난 지능과 이성에 있다고 주장했고, 인류학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화석들이 대량으로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들은 현생인류보다도 더 늦게 출현했으며 놀랍게도 우리보다 더 강한 근력과 더 큰 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250cc나 더 큰 두뇌를. 이 차이는 우리보다 약 140만년 앞서 탄생한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인류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은* 보다 힘세고 영리한 네안데르탈인들을 멸종시키고 호모 종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승리자로 남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답은 집단의 규모에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고작 20-30명의 무리로만 구성된 반면 호모 사피엔스들은 100명 이상의 집단을 구성할 때도 있었고 때때로 다른 무리와 연합하여 그 이상의 규모를 이루기도 했다. (현대 가장 큰 집단인 중국의 인구는 15억 이상이다.) 그러니 아무리 개개인이 뛰어난 네안데르탈인조차도 호모 사피엔스들의 집단 공격을 이겨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증거는 우리의 행동양식에도 깊이 남아있다. 침팬치와 같은 타 유인원들은 아무리 가까운 친족에게도 결코 자신의 새끼를 맡기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과 유전자가 전혀 섞이지 않은 이웃에게도 아이를 맡긴다. 이렇듯 우리의 생존 비결은 바로 집단화, 사회학적인 단어로 사회화에 있었다. 태초부터 사회주의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생존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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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단화를 곧장 사회주의로 연결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 둘은 필연적으로 이어져있다. 대규모의 집단을 이루려면 분업이 필요한데 구성원들끼리 생산물을 공유한다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집단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식량을 찾을 수 있을지 알수 없다면 누군가는 가젤을 잡으러 가고, 누구는 낚시에 나서며, 어떤 이는 과일을 따러 갈 것이다. 해질녘에 돌아온 그들이 모였을 때 실패한 이들에게도 자신의 수확물을 나누어줘야 내가 실패했을때 저들도 나에게 식량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첫 발생부터 큰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면 이런 평등은 후천적 학습이 아닌 우리의 본능에 기인해야 한다.

이는 한 심리학실험으로 입증된 바 있다.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카타리나 하만 박사는 3살짜리 아이들을 둘씩 짝지어 줄을 동시에 잡아당기면 장난감 구슬들을 얻지만 한 쪽에겐 3개, 나머지 한 명에겐 1개씩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실험에 참여한 75%의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구슬 하나를 상대에게 나누어주며 공평하게 2개씩 가졌는데, 이는 교육을 받기 전에도 인간이 협업한 상대에게 생산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참고로 침팬지들을 같은 실험에서 동료와 획득물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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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같은 방식으로 진화적 종의 경쟁에서 정점에 오른 생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개미. 당신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 아니더라도 개미와 인간에겐 많은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개미와 우리는 기후를 가리지 않고 전 대륙에 퍼져 살고, 둘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그렇다. 개미도 농사를 짓는다), 거대분업으로 생산한 먹이를 나누고, 또 빈번하게 전쟁을 벌이며 영역을 확장해 왔다. 그렇게 인간은 땅 위를 평정했으며 개미는 땅 아래를 정복했으니 이 두 종은 지구를 공평하게 반반씩 나눠가진 셈이다.

한낮 개체로서의 개미 역시 너무나 초라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위풍당당한 하늘소나 사나워보이는 사마귀에 비해 땅바닥에 떨어뜨린 잉크방울 같은 저 조그만한 개미를 보노라면 우리는 종종 그들이 땅 속을 지배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개미는 인간보다도 먼저 농업과 목축을 시작했으며 훨씬 더 철저한 분업과 계급에 의해 효율적으로 사회를 운영한다. 전쟁이 발생하면 몇몇 인간 전사가 그러하듯, 개미 역시 오로지 자살이 목적인 특공대까지 운용하곤 한다. 인간이 소뇌의 언어처리능력을 발전시켜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이끌어냈다면 개미는 독특한 유전자변형(개미는 수정시 정자에서 받은 유전자의 절반이 없어져 형제끼리는 유전자의 75%를 공유한다. 반면 대부분의 양성생식 동물은 형제끼리 50%만 공유한다.)을 통해 사회주의를 이룩했다. 진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생명의 나무에서 인간과 개미가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불구하고 동등한 진화적 성공을 이룩한 것을 보면 두 종이 채택한 사회주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진화의 계보를 그린 생명의 나무: 개미와 인간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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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에서는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혼용해서 썼지만 엄밀히 저 둘은 다르다. 아니 사실 대체로 같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표방한 독일과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이 맞붙은 2차세계대전의 기억 때문에 그 둘이 매우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만 이들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일 수 밖에 없다. 개미와 인간에게 성공을 가져온 것을 무엇이라고 명명하든 이는 결코 민주적이지도, 또 자본주의스럽지도 않다. 이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실패가 인간 본성에 반하는 정치시스템 때문이라고 배워온 우리 자유진영 사람들에겐 불쾌하리만큼 낯선 결론을 안겨준다.

어쩌면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비록 사회주의가 현대의 체제경젱에서 우월하지는 않더라도, 인간 본성에 맞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레닌이 연단에 올라서기도 전부터, 또 스탈린이 시베리아에 굴라크를 세우기도 전 부터 수도 없는 사회주의적 실험이 존재했고 또 하나같이 실패했지만, 인류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마치 달콤한 사탕처럼 계속해서 집어먹는다. 인간의 몸이 단짠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은 좀처럼 사회주의를 밀어내지 못한다. 넘어져서 코가 깨지기 전 까지는.

우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문재인의 사회주의는 이미 엇나가고 있고 때가 되면 대중은 그 부작용을 깨닫고 이명박같은 지도자를 찾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는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200석 이상 가져가며 개헌선을 넘겨 34년만에 헌법이 개정되는 것이었는데, 일단 그 선은 지켰으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앞으로 정치는 게속해서 시끄러울 것이고 또 대중이 현실을 깨닫기까지 더 많은 사건들이 터지겠지만 이들이 대한민국의 장래에 불가역적인 상흔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에 명시된 한은.*** 그래도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좌절에 빠진 이들을 위해  미국의 20세기 소득세율 표를 공유하고자 한다. 미국 뿐 아니라 모든 선진사회는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위치에 도달했다. 다행스럽게도 현 정부의 노선이 너무나 멍청하기 때문에, 그의 사회주의는 아래 수준에 이르기 전에 좌초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다들 너무 낙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의 최고세율 구간: 1916년 이전과 1925-31년을 제외한다면 1986년 이전 미국의 소득세 최고구간은 상당히 높음  

* 사하라 이남의 인류를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3-5%정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우리는 그 두 종의 혼혈 후손인 셈이다.
** 개미 외에도 벌이나 흰개미도 있다. 참고로 흰개미는 개미가 아닌 바퀴벌레의 아종.
***하지만 만약 개헌이 된다면 나는 곧장 영주권을 취득할 것이다

2020. 4. 12.

그놈의 갬성정치

사랑하는 사람과 입을 맞추는 그 두근거리는 순간에 "지금 이순간 내 시상하부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고 있어, 이건 우리가 종족번식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할 때마다 도파민을 분비시키도록 진화한 덕분이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부를까? 미친놈? 또라이? 병신? 쉘든? 사이코패스?

인간에겐 이성과 감성이 있고 이는 신이 주신 선물처럼 소중한 능력이다. 하지만 각자가 역할을 발휘할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이를 혼동하면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대개 감성이 나서야할 때 이성이 나서기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욱 흔하다. 왜냐하면 이성이란 진화의 단계에서 후반부에 생겨난 것인데 비해 감성, 즉 감정이란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존재하는 극히 말초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애기하는 지능은 대부분 이 이성을 측정하는것 아닌가. 따라서 머리가 나쁜 사람일 수록 이성 대신 감성을 쓰기 마련이다.

투표는 이성을 사용할 문제인가, 감성을 사용할 문제인가. 당연히 전자이다. 역사를 보면 대중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감성을 발휘해서 내린 정치적 결단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너무나 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다. 당장 눈물 줄줄 흘리는 아줌마들 몇몇이 통과시킨 민식이법이 얼마나 끔찍한 악법인지 보라. 정치는 전적으로 이성이 작용해야할 문제이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의 정치적 성향은 서로 다르겠지만 투표의 중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투표는 최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거르는 것이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을 합리적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 투표에 앞서 감성이 아닌 이성을 선택하길 바란다. 내가 가진 자산은 주식도, 연봉도, 부동산도 혹은 다른 무형자산도 아닌 바로 내 국적이며 한국의 국제적 값어치가 하락할 수록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 역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이 잘 되길 바라며 또 같은 국가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길 바란다. 특히 2030대 후배들이여. 투표하라. 소비하지 않는 고객들을 챙길 기업은 존재하지 않듯, 투표하지 않는 계층을 배려할 정당은 없다. 4050대를 위한 고용정책과 복지는 끝없이 늘어나는데 비해 2030대를 위한 정책은 지리멸렬한 이유는 바로 투표율에 있다. 부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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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자주 들리던 동네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다 예전에 종종 갔던 맛집을 찾아갔다. 맛집이라고 하지만 TV에 나올 정도는 아니고, 또 상권이 발달한 부잣동네도 아닌 뭐 그저그런 서민동네의 평범한 식당. 추리닝 입은 대학생, 등산복 입은 아저씨들과 같은 장삼이사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모여앉는 그런 곳. 홀로앉아 김치를 짝짝 찢으며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벙거지 모자를 쓰고 등이 무척이나 굽은 한 노인이 들어와 나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다른 손님들에게 하던 것과는 달리 식당주인은 그에게 음식값을 선불로 받았고 그 노인 역시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 국밥값을 먼저 치르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내 기억에도 그리고 그날에도 밥값을 선불로 낸 손님은 그 하나 뿐이었다.

어림잡아 80세는 되어보이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은 한 노인.  6.25를 비롯하여 날짜로 이름지어진 수없는 사건들, 3.15, 4.3, 4.19, 5.17, 5.18, 12.12와 같이 굴곡진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끝에 그의 허리는 휘었고 손톱은 누렇게 부르텄다. 그 고난의 시간을 함께 보낸 벗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이 고단한 노인은 홀로 밥숟가락을 든다. 하지만 그의 등에 업혀 태어난 우리사회는 그에게 국밥 한그릇조차 먼저 내어주지 않았다.

그런 소소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감성이 아닌 이성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더더욱 합리적으로 투표해야만 하는 것이다.

2020. 4. 9.

경제수장이 된 타짜들

영화 타짜에서 아귀는 구라치다 걸리면 손목이 날아간다는 가르침을 설파하다 잘못걸려 자기 손목을 날렸다. 그런 아귀를 잡은 고니조차도 벌벌 떨며 손목을 옷섶으로 숨기게 만드는 진짜 타짜들이 있다, 기재부와 한국은행에.

홍남기 부총리는 어제 2차 추경을 하지만 그 재원은 기존 세출을 아껴 마련한다고 했으며 2월 말까지도 코로나 그거 별거 아니라며 큰소리를 땅땅 치던 우리 팔불출 이주열은  6월 말까지 무제한 RP매입을 한다고 외쳤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타짜 아니겠는가.

경제가 어려워 총수요가 위축될 때 정부는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출을 늘린다. 그러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 바로 추가경정예산, 줄여서 추경이라고 한다. 즉 이 재정정책의 핵심은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인데,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하지만 적자내긴 무서우니 다른 지출을 줄인다는 소리는 그냥 추경을 안하겠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밑장빼기와 무어가 다른가. 주식시장은 그의 발언과 함께 반락했으니 과연 시장의 귀는 타짜들의 눈보다 빠르다.

은행시스템에서 신용이 위축되기 시작해 총통화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늘리는 것이 통화정책의 핵심이고, 또 중앙은행이 금리를 0%로 내리고 나서도 통화승수가 늘지 않아 자산을 직접매입하는 것을 양적완화라고 한다. 양적완화의 효과가 직접적이고 얼마나 강력한지는 연준이 여러번 증명한 바 있다. 한국은행 부총재도 "이 조치가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하긴 어렵다"고 밝히며 한국은행의 강력한 통화정책을 강조했지만 과연 이게 양적완화라고 할 수 있을까. 널 너무나 사랑해, 올해 여름까지는. 이라는 고백에 설렐 사람이 없는것 처럼, 코흘리개의 첫사랑보다도 짧은 3개월짜리 양적완화는 QE가 아니다. 그냥 남대문의 흔한 일수업자일 뿐이지.

추경이 아닌 것을 추경이라 하고 양적완화가 아닌 것을 양적완화라고 포장하는 저들의 손기술은 캬. 참으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경제가 무너지는데도 밑장이나 빼고 탄이나 돌리는 홍남기&이주열 콤비의 대담함을 보라. 홍경장과 남대문 작두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으리. 하지만 문제는 그 판에 앉은 호구가 당신이라는 것이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펼치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무역파트너들에게 스왑라인을 열어준 덕택에 시장은 빠르게 안정되었다. 하지만 타짜들의 손장난에 놀아나는 한국의 금융시장은 또다시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보나마나 홍경장께서는 3차추경을 발표하며 적자국채를 찍을 것이고, 남대문 작두 이주열은 무제한 RP를 6월 말에서 더 연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모가지가 날아가겠지. 여러분들이 진정 자신의 손모가지를 아낀다면 저 타짜들의 모가지를 쳐낼 것을 권한다.

2020. 4. 5.

Time to laugh at bears

아직도 비금융권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고급정보를 좀 털어놓으라며 술을 연거푸 먹이곤 한다. KOSPI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모르는 드라마/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 만들어 낸 환상 덕에 대중들은 우리 금융계 사람들의 휴대폰엔 비밀 정보통이나 어둠의 작전세력의 연락처가 숨겨져 있으며 그들과 작당해서 개미들을 털어먹고 사는 줄 안다. 하지만 사실 개미들이 털리는 것은 늘 개떡같은 주식을 고르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주변에서 가장 개떡같은 주식들, 진짜 상장되어있는게 더 신기한 거지같은 주식들을 발굴해서 몰빵했다 n토막난 뒤 머리를 쥐어 뜯는 것은 어김없이 금융쪽 사람들이다. 여러분도 명심하길, 금융계 사람들이 추천하는 주식은 절대 사지 마라. 이 한마디를 따르는 것 만으로도 여러분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수억을 더 벌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이렇게 대중이 가진 금융인의 환상을 깨는게 취미지만(게다가 사실이니까) 이따금 대중들이 못보는 것을 우리가 본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회사 내에서도 누군가는 시장의 최전선에 서있고 누군가는 후방, 지원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금융인들 사이에서도 정보의 비대칭성은 존재한다. 따라서 이에 공감하는 것은 아주 소수겠지만, 우리는 가장 끔찍한 불황의 문턱까지 갔다 유턴해서 이자리에 와 있다.

우리나라는 미네르바 같은 무명의 블로거도 잡아 쳐넣은 전력이 있으며 현정부는 그 누구보다도 반민주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힌트도 남기지 않으련다. 하지만 정말 몸서리치는 경제적 비극이 도둑처럼 다가왔다 동틀무렵 물러나는 어둠같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며 누군가의 회사는, 어떤 업종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파멸의 절벽에 세손가락으로 매달려있다 간신히 기어올라왔다. 머언 옛날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한 만화의 주인공이 악당에게 던지는 대사처럼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죽어있다, 도로 살아난 셈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그들의 재무팀도 모르는 동안에.

향후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신만이 알겠지만 이제 최악의 시간은 지나갔다. 경제와 이익전망, 그리고 시장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확인하는 작업만이 남았을 뿐 이제 어떤 일이 터져도 3월 중반의 공포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금융시장에선. 그 폭풍의 한가운데서 간신히 엉금엉금 기어나온 우리의 눈엔 각종 인터넷 게시판과 유튜브에 횡행하는 비관론은 그저 귀여울 뿐이다. 예수가 살려낸 나사로가 지가 죽었다 깨어난 줄도 모르고 침상에서 일어나다 발을 접지르고 "아파 죽는줄 알았네"라고 엄살을 부리는 것을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건 진짜 아픈게 아니고, 또 죽을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난 3월에 겪은게 그런것이지.

따라서 이제 모든 비관론을 비웃을 차례다. 비관론자들은 똑똑해 보이지만 돈을 벌지 못한다. 어느 상황에서도 투자를 하면 안될 백만가지 이유는 언제나 존재하니까. 하지만 아무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하지 않나. 코스피가 2000이고 S&P가 3300일 때엔 뭐 하다 이제와서 비관론을 설파할까. 그들의 비관론이 장기적으로 들어맞으려면 코로나의 치사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 몇번 강조했던 것 처럼 우리는 모두가 비관적일때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1900년생 미국인 Jim의 삶을 떠올려보자. 그가 첫 월급을 받을 무렵 대공황이 터져 주가지수가 80% 폭락하며 다우존스지수는 그가 태어나던 무렵으로 돌아갔고 십여년이 지나 좀 살만하니까 2차세계대전이 터져 국제무역은 붕괴되고 금융중심지 런던에 나치의 폭격이 이어졌으며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핵심기지 진주만을 박살냈다. 세계는 가까스로 이 전쟁을 마무리했지만 곧장 냉전에 돌입해 사람들은 핵무기의 공포에 빠져들었다. 당신이 J씨라면 평생 주식을 한번이라도 사 볼수 있었을까. 당시 어떤 미국인은 주식에 투자했고 어떤 미국인은 월가 근처에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들의 인생을 둘로 나누었다.
인류 최악의 비극이 몰아 터진 1930-50년대의 다우존스지수
우한코로나가 치명적이긴 하지만 5천만 명이나 죽인 2차 세계대전만큼은 아니며 세계 경제가 셧다운 되긴 했지만 7년간 대서양을 누비던 유보트보다 더 큰 장애도 아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주식투자하기 어려웠을 그 시절에 벤자민 그레이엄, 존 템플턴 그리고 워렌 버핏과 같은 영웅들이 왜 혜성처럼 몰려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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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보니 개인투자자 독자들이 많던데 혹시나 성급한 매매를 부추기는 글로 읽힐까봐 첨언하면, 암흑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 수도 있으며 그 누구도 타이밍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또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서 반자이 돌격을 외치는 멍청한 대통령과 무능한 한은총재가 경제를 지휘하는 한국의 시장을 분석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자. 다들 부디 성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