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4.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웃는 자화상



화가의 인생을 알지 못하면 그가 그린 그림들의 의미를 모두 파악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들의 인생 이야기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게르스틀의 자화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얼핏 보면 광기어린 모습 같고, 때론 아하하하 웃는 바보 같기도 하며 어쩌면 웃는 모습이 아닌 우는 모습 같아 보이는 이 자화상에는 그보다 더 깊은 감정이 담겨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타고난 미술적 재능으로 베엔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여느 천재들이 그러하였듯이 자만에 가득해 교수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홀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지독하게도 싫어했던 그였지만 음악가들과는 즐겨 다니곤 했다. 그리고 그는 존경하던 현대음악의 거장, 아놀트 쇤베르크를 만나게 되었다. 쇤베르크의 가족들과 종종 어울리던 게르스틀은 이내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다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는 마틸다에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작곡가 남편에게 지친 마틸다는 결국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 열정에 불타는 25살의 젋은 게르스틀을 선택한다.

그러나 쇤베르크는 결코 마틸다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외도를 그만 두고 자신과 두 아이에게 돌아와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기도 했고 때론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결국 마틸드는 두 달만에 젊은 애인을 버리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 만다.

존경하던 자신의 스승과, 그 스승을 버릴 정도로 사랑한 여인, 둘 모두를 잃은 게르스틀은 처절한 상실의 고통에 짓눌렸다. 결국 삶에 대한 열정과 목적을 잃은 그 갸날픈 영혼은 죽기로 결심한다. 게르스틀은 마지막으로 자화상을 한점 남긴 뒤 자신의 다른 작품들을 불태우고 목을 매달았으며, 확실히 죽기 위해 자신을 칼로 찔렀다.

고통으로 가득찬 생애의 끝자락에서 그려진 초상화 속의 게르스틀은 초점 잃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이젠 다 끝이야'라고 중얼거리듯이.
 
paint by Richard Gerstl
"웃는 자화상"

2015. 5. 23.

매소

처음 사에 입사해서 그저 열심히 술을 마셔야 했던 시절, 술자리는 나에게 그리 편하고 즐거운 곳은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속칭, 룸싸롱 혹은 단란주점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술을 들이 마시곤 했고,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그런 곳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 주점들은 참으로 이상한 방식으로 술을 마시는 곳이다. 남자들 끼리 와서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뜯어고친 여자들을 하나씩 데리고 앉아 엉망진창으로 술을 마신다. 게다가 내가 산 술을 나눠마시는데 그녀들에게 돈을 받는게 아니라 오히려 줘야하는 곳이다.(난 아직까지도 이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에게도 신기한 재주가 하나 쯤은 있다. 그녀들은 아주 심각하게 재미없는 농담에도 소리내어 배꼽을 잡고 웃는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들은 내가 전공서적을 읽어도 깔깔대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입사한지 한 6달이 지났을까. 그날도 또 그저그런 술자리가 이어지게 되었고 으레 그렇듯이 막내인 내가 가장 먼저 여자를 골라야 했다. 매번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얼굴을 찡그리는 일도 힘들지만, 다 똑같이 생겨서 구분하기도 힘든 여자들이 일렬로 서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고르는 일도 참 골치아픈 일이었다. 난 대충 그 중에서 가장 성형한 티가 덜 나고 적당히 나이도 들어보이는 한 친구를 선택했다.

대개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속칭 아가씨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막내인 나한테 영업을 해 봤자 별 도움도 안될 뿐더러, 내가 그들을 좋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대량생산된 인조인간 같은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일도 불편했고, 무엇보다 좋지도 않으면서 좋은 척 하는 그 가식적인 웃음에 넌덜머리가 났다. 그럼 그 "아가씨"들은 재빠르게 내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다음에 내가 찾지 않으리란 계산에 대충 앉아있다 나간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게 편했다. 어쨌거나 난 이곳에 여자들과 놀러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날 선택한 친구는 달랐다. 그녀는 내게 "혹시 술 잘 못해요?" 라고 묻고 나서는 내가 앞에 있던 술을 몰래 숨기거나, 혹은 그러지 못할 상황이 되면 대신 마셔주었다. 그 외에도 아직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조용히 술자리에서 어떻게 처신하면 되는지, 폭탄주의 배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해주기도 했다. 옆에 앉은 아가씨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던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평소보다 내가 파트너와 친근하게 있는 것을 보고 윗분들은 둘이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밖에서 따로 만나보라고 부추겼다. 술자리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막내가 모처럼 긴장을 푸는 것을 보며, 내가 파트너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술자리의 흥을 깨기 싫어,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어쨌거나 그녀 덕분에 평소보다 가벼운 몸과 머리로 술자리를 마칠 수 있지 않았는가.

그 이후로도 난 회식이 있거나 아니면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그 친구에게 미리 연락해서 알리곤 했고, 그럼 그 친구는 내 파트너가 되어 대신 술을 마셔주곤 했다. 윗분들이 나를 배려 해주신 덕분에, 늘 내 파트너에게는 몇배의 팁을 주고 다른 방을 돌지 않도록 했다.(그쪽 세계에서는 이것을 "묶는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동료가 되었다. 술이 약한 나는 대신 잔을 비워주는 그녀가 필요했고, 그녀는 두둑한 팁을 주면서도 짖궃은 일도 시키지 않는 나를 필요로 했다. 그녀는 몸이 아픈 날에도 내가 술을 마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와주었고, 나는 이젠 다른 여자도 골라보라는 다른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늘 그녀를 선택했다.

휴일에 일이 없던 날, 그 친구와 밥을 먹은 적이 몇번 있었다. 내가 주말에 일을 하듯이, 그 친구도 주말에는 손님을 만난다. 그녀는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그런 술집에서 일한 경력도 몇년 되었다. 그녀는 그런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삶이 어떤지를 이야기 해주곤 했다. 부잣집 딸인데도 남자와 술이 좋아서 일하러 나오는 여자. 양아치같은 남자에게 홀려 힘들게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자살한 여자. 귀신과 섹스를 해야 다음날 팁을 많이 받는다고 말하던 여자. 미모가 뛰어나 어느 부자의 첩으로 들어앉은 여자, 그리고 그녀를 부러워하는 수많은 여자들. 자기 역시도 술집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이거저거 사는데 돈을 쓰다 보니 목돈이 잘 모이지 않는다, 정신차리고 목돈을 모으면 꽃집이라도 하나 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을 가진 인간들이라면 그 배경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자기의 재능 중에서 가장 비싼것을 팔고 있었고, 나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의 재능을 팔고 있었다. 낯선 곳에 들어선 나는 친구가 필요했고, 그녀 역시 이야기를 들어줄 또래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우린 손님과 종업원이었지만, 동시에 난장판으로 번지기 마련인 술자리에서 서로를 보호해 주던 친구였다. 우린 윗분들 몰래 '너네 마담은 성질 더럽게 생겼다.' '너네 상사가 더 그렇다'고 수근대며 둘이 킥킥거리기도 했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정상 자기 마담을 따라 옮기게 되어 이제는 그 가게에 출근하지 않게 되었고, 그리고 이 사실을 내가 알아야 할 것 같아 말해 주려고 전화했다고. 나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대답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나는 두번 다시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예전처럼 그렇게 무턱대고 술을 마실 일도 없고, 가끔 술자리에 가도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인지라, 이제 단란주점에 가도 그닥 어색하거나 불편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아가씨들의 얼굴에는 도무지 정을 붙일 수가 없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짓 미소를 볼 때, 때때로 나는 그녀를 생각한다. 가슴이 크고 웃음을 파는 기계들로 가득찬 화류계에서 내가 만난 유일한 인간이었던 그녀를.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시절, 아무리 친구가 생겼다고 해도 그런 곳에서 술을 마시는 일들이 즐겁지는 않았다. 아마 일을 해야했던 그 친구는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술을 대신 마셔주던 친구로 인해 술자리가 덜 괴로웠던 만큼, 그녀 역시 나로 인해 그 곳에서 일하던 시간들이 조금은 덜 괴로웠기를 바란다.

2015. 5. 22.

커피. 정상. 성공적

1. 에리히 프롬은 정신적으로 정상적, 혹은 건강하다는 말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사회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무리없이 완수할 때 '그는 정상적 인간이다'라고 정의한다. 둘째로 개인적인 입장에서 한 사람의 심리상태가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을때도 우리는 그가 정신적으로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사회의 구조가 개인의 행복을 최대화 하는데 맞춰져 있다면 "정상"에 대한 두 정의는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회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어느정도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 과 '개인의 충분한 발전'이라는 두 목표 간에는 어긋남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정신적 건강에 관한 두 개의 개념 사이에서 날카로운 분열을 조장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건강하지 못할수 있다. 주변의 많은 사례들을 보면 프롬의 주장을 부정하기 어렵다. 성공한 의사들이 결벽증을 지닌 경우가 있으며, 신문엔 강박증에 시달리는 스포츠 스타들과 영화배우들의 이야기가 보도된다. 마찬가지로 노벨상 수상자들중에서도 이혼한 사람들이 많다. 역대 수상자 중 가장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노벨상 상금 전액을 전부인에게 위자료로 지급했고, '힉스입자'를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피터 힉스도 과거 연구부담으로 이혼했다고 고백했으며,  9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교수 역시 상금 절반을 전 부인 리타에게 위자료로 줘야 했다. 이렇듯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인 노벨상 수상자들 중 이혼자가 하도 많다 보니, 학자들 사이에서 '노벨상 수상의 필수경력은 바로 이혼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너무나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행복이 동일한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직장인들은 연봉이 올라가거나 승진하게 되면 삶이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기대는 종종 배신당하기 마련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이제 좋은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경쟁하며, 승진한 직장인들은 다음 승진을 바라보고 다시 뛰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의 행복과 정신적 건강은 종종 무시되곤 한다.



2. LA Times는 영화 위플래쉬가 유독 한국에서 크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밤늦게까지 혼자 연습할 정도로 드럼을 좋아하던 주인공 앤드류는 마초적이고 히스테리적인 플레처 교수를 만나 점차 변모하게 된다. 교수에게 시달리던 그는 좋아하던 드럼을 주먹으로 내리쳐 찢고 손가락에 피가 나는데도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연습을 반복하며,  결국 더욱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 좋아하던 여자까지 차버리고 만다. 이 과정은 에리히 프롬이 지적한 "날카로운 분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LA Times 기사가 언급했듯이 우리가 위플래쉬에 열광하는 이유는,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란 한국인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앤드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개인적 측면에서 정신적 건강을 잃은 사람은 좀처럼 스스로 회복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드럼을 포기했던 앤드류가 마지막에 다시 교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매달리듯, 경쟁에서 한번이라도 승리한 사람은 그 마약같은 쾌감을 잊지 못하고 끝도 없는 싸움에 다시 뛰어든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방식을 긍정하기 마련이므로, 스스로를 치유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상태가 고착화되고 나면 (플래쳐 교수처럼) 자신이 가진 개인적 비정상을, 사회적 정상으로 포장하여 남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들 개인적으로 비정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정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3. 작년에는 전혀 마시지도 않던 커피를 요샌 하루에 4,5잔씩 마시곤 한다. 줄여보려고도 했지만 퇴근하기 전 데스크 앞을 보면 실패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이는 강박과 자기파괴적 행위에 가깝다. 이를 인정하는 대신, 적당히 포장하는 것이 더 고상하고 멋있어 보이겠지만, 그와 같은 자만과 기만이말로 우리를 "날카로운 분열"로 밀어넣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P.S: 2017년 6월, 내 몸은 그 날카로운 분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중이다.

2015. 5. 20.

무식하면 용감하다.

노골적 엔저 정책에 눈감은 미국…한국엔 "환율 개입 말라" 경고
“한국은 원·달러 환율보다는 원·엔 환율 때문에 기업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고민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되레 “한국이 그래서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있느냐”는 타박만 들었다고 한다. 노골적인 엔저() 정책에도 미국으로부터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고 있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한·미 동맹 관계는 빛 샐 틈도 없는 역대 최상”이라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평가와도 거리가 멀다.
물론 외교 탓만으로 돌리긴 어렵다. 지속적인 경상흑자 등 원화가치를 높인 요인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외교 전략에 대한 경제계의 시각은 곱지 않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환율은 결국 외교력의 산물 아니냐”며 “지난 정권의 환율관리에 대해선 별 말이 없던 미국의 태도가 이렇게 변한 건 그쪽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외교 실책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외교 실패'에 발목 잡힌 경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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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국경제 1면 기사는 위와 같았다. 한 기자가 왜 한국경제가 어려운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국 환율때문이고, 이는 결국 외교력의 부재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 경제를 통화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억지에는 나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위에 굵은 글씨로 처리한 대목을 읽을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경제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왜곡된 현실인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기자가 왜 잘못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 분석해보자.

지난 3년간 엔화가 빠른 속도로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환율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통화정책"의 결과이다. 즉 일본 중앙은행이 디플레에 빠진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엔화의 공급을 늘리자, 달러와 엔화의 교환비율인 환율 역시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미국의 통화인 달러에 대해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자국의 통화정책만을 건드렸을 뿐이다.*

한국은 "통화정책"상 고금리를 유지해 디플레를 유발하면서 "환율정책"으로 외환시장에서 달러 매수개입을 한다. 자유 시장에 갑자기 정부라는 개체가 나타나 비균형 가격에 달러를 매수한 뒤, 깔고 앉는다. 이 과정에서 시중에 돌아야 할 달러가 한국은행 계좌 안에 머물게 되니 달러의 유통속도는 떨어진다.** 

연준 입장에서는 BOJ를 비난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BOJ는 어디까지나 자국통화에 한정한 통화정책을 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다르다. 미국이 기껏 공급해 놓은 달러를 가져가 한국은행이 깔고 앉고 있으니 연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준다. 게다가 환율을 균형 가격에서 어긋나게 관리하는 것은 교역국 양측 모두에게 효율적이지 않다. 결국 연준은 BOJ에 대해서는 '너희 나라 통화정책이니 너네가 알아서 해라' 라는 태도를 보일수 있지만 한국은행에 대해서는 '왜 너넨 남의나라 통화를 사들이냐'고 항의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전혀 다른 케이스인 일본을 물고 늘어지며 꼬투리 잡는 셈이다. 그것도 환시개입을 가장 지독하게 하는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이 그러니,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마치 강원랜드로 출근하는 도박중독자가, 여의도 주식 트레이더를 가르키며 '저 사람도 확률에 베팅하는데 왜 나는 전문투자자로 인정 안해주냐'라고 항의하는 셈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환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금리를 낮춰 원화의 공급을 늘리면 된다. 그러면 시장이 알아서 평형을 맞춰줄 것이다. 금리는 낮추기 싫고, 환율은 높이고 싶다면 시장 자유화를 포기 해야한다. 이를 트릴레마라고 부르는데, 이는 한경 경제용어사전에도 나오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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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3년전 일본은행이 달러매수개입을 단행하긴 했지만, 이는 BOJ가 시행한 양적완화에 비한다면 극히 일부일 뿐이다.
**한국은행은 계좌의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고 결국 이 돈은 미국 민간분야로 돌겠지만, 수익률에 무관심하고 운용이 더딘 중앙은행이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이를 민간이 가지고 있을때에 비해 통화속도는 느려질 것이다  



2015. 5. 18.

투자와 생떼

2013년, 볼리비아 정부는 취득 자격 미비를 이유로 한국자원공사가 매입한 우유니 지역의 니켈금광을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한국자원공사가 10년전 당시 약 10억불(1조 2천억원)에 사들인 이 금광은 10년간 시장가치가 6배 올라, 타 해외투자자에게 60억불(6조 6천억원)에 되팔 계약을 체결하였으나, 볼리비아 정부가 한국자원공사의 취득 자격을 문제삼고 매입과정에서 현지법을 위반한 정황이 있다는 이유로 매각 승인을 해주지 않아 해당 딜은 무산되었다. 이후 볼리비아 법원은 6달 안에 자원공사의 지분을 매각하라고 명령했고, 결국 자원공사는 한 볼리비아 기업에게 이 금광을 40억불이 안되는 헐값에 매각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볼리비아 정부는 정당한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는가? 이 글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위 예시는 지어낸 것이지만,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은 아니다. 위에서 볼리비아 정부를 한국 정부로, 한국자원공사 대신 론스타로 바꿔 읽으면 우리가 잘 아는 외환은행 매각 사건의 개요가 된다.

위 예시를 읽으며 우리가 부당하다고 느낀 것처럼, 론스타도 자신들이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으며 그들은 한국 정부를 고소했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지난 15일 세계은행 ICSID 회의실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심리를 벌였다고 한다. 이 사건을 접하는 많은 국민들은 분개하며 국부를 뺏어가려는 론스타를 욕하고, 이에 맞서는 정부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는 두가지 관점에서 보다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 정부의 결정이 국제 사회에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둘째, 과연 이와 같은 행적이 우리나라 국익에 도움이 되었는가.

결론적으로, 이는 후진국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치졸한 생떼에 가깝고 우리나라 국익을 심각하게 해친 사건이다. 이제부터 한국 정부가 왜 생떼를 부린 것으로 비춰지는지, 그리고 우리의 이익이 어떻게 손상되었는지 살펴보자.


1. 한국정부의 생떼

이 사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기로 하자. 론스타가 이번 소송에서 문제 삼은 첫번째 쟁점은 "한국정부가 외국 자본을 차별해 매각을 지연시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약 1조 4천억에 인수했던 론스타는 4년이 지난 2007년, HSBC에게 모든 지분을 약 6조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HSBC의 인수건을 승인해주지 않았고, 그 핑계는 주가조작 의혹과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적격성 여부였다. 그러나 주가조작 의혹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공표한 직후(2006년 1월)에 시작된 감사(2006년 3월)에서 불거져 나왔다. 즉 3년간 별말 없이 있던 한국 정부가 갑자기 론스타의 위법사례를 찾기 시작한 것으로, 결국 이는 외환은행의 정상적 매각을 막기 위한 것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또한 HSBC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 중 하나로, 론스타에 비해 자격이 부족하다고 지적할 부분도 없다. 결국 외환은행 매각건은 불발되었고 이 때부터 론스타의 기나긴 고난이 시작된다.

론스타는 여러 차례 투자자를 물색했지만 한국 정부가 온갖 트집으로 매각을 막는 상황에서 외환은행에 관심을 보일 투자자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금융당국은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도 박탈하여 지분을 강제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국내은행인 하나은행에 매각했는데, 이때 매각금액이 HSBC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가격(4조 2천억)보다도 낮아(4조) 큰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론스타 입장에서는 처음 살 때는 장부가치와 BIS비율까지 낮춰주며 적극적으로 떠넘기더니, 막상 투자가 성공하고 나자 온갖 핑계를 들어 매각을 불발시키고 검찰수사까지 동원해 결국 다른 한국 은행에게 싼 값에 넘기게 만든 셈이다.


2.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우리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팔게 만들어 (우리가 아니라 하나은행이)약 2조원의 이득을 보게 되었다. 그 대신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신뢰와 공정의 원칙을 잃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해외투자자에 대한 차별 없이 원칙대로 진행했을뿐" 이라고 변명하지만, 당장 네이버에서 론스타를 입력해보면 "먹튀"가 연관검색어로 뜬다. 먹고 튀는 투자, 즉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어 나가는게 문제라면 해외 투자자는 우리나라에서 무조건 돈을 잃어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 정부와 언론이 론스타를 "악덕자본"으로 둔갑시킨 이유는 론스타가 주가조작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주가 조작은 재벌들이 밥먹듯이 한다.) 바로 한국에서 돈을 벌어 나가는게 아니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외 자본에 대한 적대적 정서는 결국 우리에게 독이 된다. HSBC는 결국 한국에서의 소매금융사업을 포기한 뒤 11개 지점을 매각했고,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은 한국에서 철수했다.  ING생명은 국민은행과의 전략적 제휴관계를 청산했고 아비바그룹은 우리아비바생명 지분 47%를 우리금융지주에 넘겼으며, 2008년 국내에 진출한 독일의 에르고는 한국 진출 4년 만에 에르고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을 프랑스계 악사다이렉트에 넘기고 한국을 벗어났다. 국민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차트: 외환은행의 주당 순이익
주제와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혹자는 기업을 인수해 비싼 값에 되파려는 기업사냥꾼들의 특성 상, 악덕 자본의 성격을 가질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업 인수 후 매각을 주 업으로 하는 PE들은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실 기업을 우량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외환은행 역시 론스타가 선임한 경영진 아래서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아래 표에서 보다 시피 외환은행은 론스타에 인수된 이후 지속적 흑자를 기록했고, 게다가 이는 한국인 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서 달성한 성장이다.(외환은행의 남자 직원 연봉은 국내 최고이며, 여성 조기퇴직과 같은 성차별도 크게 없애 여성의 근속연수가 동종업계에서 두번째로 길다.)

지난달 나는 브라질과 미국에 투자한 해외펀드를 해약했다. 둘을 합해 3년간 들고있으면서 꽤 쏠쏠한 수익을 본 셈이니, 우리나라 금융 당국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소위 "먹튀"를 한 셈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과 기관들이 해외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약 400조원의 해외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은 70조 수준의 해외 부동산/채권/주식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우리 모두의 목표는 "먹튀"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먹튀는 해당 국가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국경을 넘어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게 도우며 그 수익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룰과 합리적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 이 문제를 좀 더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론스타의 주가 조작은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한국의 법규를 준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정한 게임의 룰이다. 그리고 그 룰은 평등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집행되어야 한다. 내가 돈을 버는 것은 올바른 투자고 남이 돈을 버는 것을 먹튀라고 부른다면 우리에게 투자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우리의 투자를 받아줄 사람도 없다. 물론 사람의 심리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지라, 외국투자자가 몇년만에 그런 큰 수익을 내는 투자를 한 것을 보고 샘이 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편법을 써 가면서 까지 사모펀드에게 외환은행을 맡긴 것은 금융 당국 자신들이다. 우리나라는 협정을 무시하고 자기들 맘대로 공단을 폐쇄하는 북한과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과연 론스타에게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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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어떤 이들은 PE가 단기적 실적에 집착하느라 기업의 장기적 성장성을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PE의 목표는 기업을 더 높은 값에 되파는 것이며, 돈많은 바보가 있지 않는 이상 장기적 성장성이 훼손된 기업을 비싸게 살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PE는 기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만 PE가 해당 분야에서 경험이 부족한 경우, 기업 정상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도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들이다.

2015. 5. 5.

집, 당장 사라.-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믿는 이들의 오류

금융시장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나는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소수의견으로) 나는 작년부터 향후 주택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으며 현재도 그렇게 믿는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는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항상 오른다.(유일한 예외는 일본이었는데 이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시장이 가장 크게 움직일 때는 사람들이 잘못된 논리를 바탕으로 잘못된 베팅을 하고 있을때 벌어진다. 따라서 핵심은 1) 왜 우리나라의 부동산이 지난 5년간 부진했는가, 그리고 2) 부동산이 오르지 못할것으로 보는 사람들의 논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 두가지 질문에 맞춰져 있다.


왜 우리나라 부동산은 부진했나? (그리고 지금 무엇이 변하고 있는가)

그 답은 통화량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인플레이션인데, 주식시장을 비롯한 자산이 장기적으로 늘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여서, 통화량은 주택가격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이다. 따라서 통화량을 살펴보면 전세계의 부동산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데도 불구하고1) 한국 시장 혼자 부진한 원인을 알 수 있다.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려면 통화의 공급이 적정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통화량 증가율은 약 6-10%수준이고 개발 도상국의 증가율은 8-20%수준에서 유지된다. 그러나 아래 차트를 보면, 한국의 통화량(M2)증가율은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1년엔 무려 3%까지 떨어진 뒤, 이후 3년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낮은 통화량 증가율이 유지되면 경제는 자연적으로 디플레이션에 빠진다. 디플레에 20년간 빠져있던 일본의 통화증가율은 2-5% 수준이었고 디플레에 빠져 양적 완화를 시작한 유로존의 통화량 증가율이 바로 이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경제도 마찬가지로 지난 3년간 디플레에 빠졌던 것이다.(이를 부정하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수행 능력은 거의 재앙수준으로, 이웃나라 일본이 그 불행을 맛본 바 있다. 링크

차트 1: 한국의 M2 통화량 증가율

그럼 지금 무엇이 변했는지 보자. M2증가율은 2013년 중반을 기점으로 크게 반등하기 시작해 현재 8%에 이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금융 당국의 정책적 스탠스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통화량은 본원통화와 통화승수의 곱으로 이루어진다. 금융 당국은 한국은행의 팔을 비틀어 본원통화의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무능한 한은은 아직도 매파적인 스탠스를 버리지 못했다)2) 가계대출의 제한을 완화함으로서 통화승수의 반등을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부동산 대출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정부가 계속해서 한국은행을 압박하는 이상 통화량 증가율은 안정 수준인 6% 이상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차트2: 한국 주택가격 지표(주황색)
이제 통화량 증가율이 6%위에 안착했을때 집값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자. 위 차트에서 초록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바로 통화량이 6%위로 올라왔을던 시기다. 이 때마다 집값(주황색)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시기가 시작됐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주택가격은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비관론자들은 무엇을 잘못 보고 있는가?

이제 두번째 논의로 넘어가자. 부동산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근거를 든다.

1. 국민소득이 늘지 않아 집을 살 수 없다.
2. 인구가 늘지 않아 집을 살 사람이 없다.
3. 주택보급률이 100%에 달해 집값이 오르기 힘들다.

그리고 이 셋은 모두 틀렸다. 먼저 1번은 아예 사실관계가 틀린 주장이다. 국민소득대비 주택 가격은 통계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수준으로 하락했다. 아래 차트는 한국의 주택 가격을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으로, 역사상 저점까지 하락한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금리는 사상 최저로 낮고, 대출시스템도 그 어느때보다 유리하다.3) 따라서 한국인들이 소득이 적어 집을 살 수 없다면, 우리는 역사상 단 한번도 집을 살 정도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된다.

차트3: 주택가격 / 가처분소득
이에 대해 부동산 비관론자들은 미국이나 영국, 호주에 비하면 한국인들의 소득대비 집값이 높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재화의 가격은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4) 그들이 언급하는 나라는 인구밀도가 낮기 때문에 소득대비 주택가격도 낮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높은 싱가폴과 홍콩의 집값/소득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으며 이 비율은 좀처럼 역전되지 않는다.(인구밀도가 역전되지 않기 때문에.) 참고로 서울의 인구밀도는 싱가폴보다 2.4배, 홍콩보다 2.7배가 높다. 소득과 인구밀도를 모두 고려하면 한국의 집값은 저평가되어 있다. 

낮은 인구증가율도 주택가격 부진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영국, 대만,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과 같은 나라는 인구증가율이 매우 낮지만 주택가격이 모두 크게 올랐다.(심지어 독일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집값은 크게 상승했다) 그 이유는 주택가격은 소득보다 통화량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다, 1인가구의 증가로 인구가 줄어도 가구수는 줄지 않고, 소득이 올라갈수록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주택을 여러채 쓰는 트렌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90년대 중반 1가구 1차량이 보편화되면서 자동차 판매 대수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소득수준이 올라오자 한 가구가 차를 여러대 보유하며 자동차 판매 대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 주택 가격이 오르지 못할것이라는 주장도 다른 나라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 주택보급률은 현존하는 모든 주택의 수를 합산하여 계산한다. 여기에는 노후화로 버려진 주택이나, 경제둔화로 버려진 지역의 주택들, 혹은 1가구 2주택과 같은 요소를 모두 포함한 숫자이다. 따라서 선진국들의 케이스를 보면,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이후에도 주택난이 빈번하게 나타났고 주택가격도 계속 상승했다. 싱가폴의 경우 주택보급률이 90년대 중반에 100%를 넘었지만, 이후 가격은 3배가 뛰었다.

결론적으로, 소득둔화, 주택보급률 100%, 인구증가 둔화와 같은 현상은 모든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지만 이들 나라에서 집 값이 떨어지기는 커녕, 되려 더 크게 올랐다. 즉 부동산 비관론자들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적 없는 현상이 갑자기 한국에서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같은 조건아래서는 같은 현상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 조건은 같은데,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믿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비관론자들이 암울한 전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웃나라 일본의 선례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우리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과 완전히 다르다. 많은 이들은 일본의 집값이 20년간 부진했던 이유로 낮은 인구증가율과 90년대 이전 극심한 버블을 꼽는다. 하지만 이는 모두 틀린 분석이다. 인구증가율은 독일이나 네덜란드가 더 낮으며, 80년대 일본 부동산은 확연한 버블이었지만 그 정도 버블은 대다수 경제대국들이 다 한번씩은 겪었다. 그러나 유독 일본만 장기디플레를 겪었으니, 앞서 말한 인구감소와 버블이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트 5 미국(흰색) 일본(주황색) 영국(초록색)의 통화량 증가율

실제 이유는 일본 중앙은행이 90년대 이래 쭉 지나치게 낮은 통화량 증가율을 유지시켰기 때문이며(주황색) 그 근본적 원인은 사택문화가 발달한 일본은 국민들이 집을 소유하지 않고 자산의 대부분이 예금/채권이어서 디플레가 유권자들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즉, 일본 유권자는 자산가격의 하락과 디플레게 경제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디플레를 유지시켜주는 정권을 지지했고, 이에 따라 20년간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 반면 한국은 10가구 중 6가구가 집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가, 나머지 4 가구 중에서 1-2가구는 차후 부동산을 상속받게 된다. 게다가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의 비중이 압도적이라(약 60%) 한국 유권자들이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는 디플레정책을 지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이 일본과 매우 다르다는 증거는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위의 차트이다. OECD국가중에서 일본과 한국만 평균대비 낮은 집값수준을 보이고 있다.(맨 왼쪽 파란색 차트) 그러나 일본은 월세수익률도 함께 내려가며 집값이 하락한, 전형적 디플레 현상을 나타낸 반면, 한국에서는 월세 수익률이 되려 상승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순수하게 집값 하락에 베팅하느라 집을 안사지만, 월세는 꾸준히 지급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월세수익이 유지된다면 저금리 상황 아래서 주택가격은 더 큰폭으로 상승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부동산은 되려 폭등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를 들어 한국의 집값이 오를수 없다는 주장을 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 바로 통화량과 정책영향을 무시하고 있다. 시장은 바보가 아니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을 줄일 것이며, 공급이 많아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늘어난다. 주택시장의 장기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그와같은 단기 수요공급이 아니라 바로 통화정책과 인구밀도, 그리고 소득이며 이와 같은 지표들은 주택 가격이 크게 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언컨대, 앞으로 1,2년간 집을 사지 않은 사람들은 그 이후 10년간 사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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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이 글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영국 독일, 싱가포르 홍콩 등 대다수 선진국의 부동산은 이미 리만사태 이전의 고점을 넘었고, 서브프라임의 본거지인 미국 부동산도 2012년 저점대비 30% 상승했다. 
2) 폴 크루그먼은 디플레 시대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독이 될수 있다" 라고 했다. 조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디플레로 몰아넣은 한국은행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3) 한국의 평균 주택가격 대신 서울이나 강남의 평균 가격을 대입해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
4) 소득과 재화의 가격을 단순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돼지고기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의 돼지고기 1등급 1kg은 약 5800원에 거래된다.(도매가 기준) 미국에서는 비슷한 등급의 돼지고기는 약 2800원에 거래된다. 부동산 비관론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미국의 일인당 GDP가 한국의 약 2배이기 때문에 한국 돼지고기는 미국에 비해 약 3.93배나 고평가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의 돼지고기는 1/4토막이 날 것으로 예측해야 한다. 수출수입이 가능한 돼지고기에서도 국가간 비교가 무의미하다면 무역이 불가능한 주택가격에서는 더욱 무의미하다. 

2015. 5. 4.

한국은행은 왜 실패하는가? -아마추어들의 통화정책 연습기

한국은행은 비하하는 사람들은 이 조직을 '재경부 남대문 출장소'라고 부른다. 금리정책에 있어 독립성을 지니지 못하고 종종 재경부의 입김에 흔들리는 모습을 비꼰 말이다. 이런 탓에 한국은행은 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국은행 스스로가 신뢰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4년째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 전망을 내놓은 뒤 연중 허둥지둥 수정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디플레와 싸우며, 한국 물가가 34개월 연속으로 목표치를 하회하는 가운데 현 총재는 엉뚱하게도 인플레 위험을 강조하며 금리 인하의 타이밍을 번번히 놓쳤다. 한국은행의 형편없는 성적은 아래 차트를 보면 더욱 명확하다.

차트1: 한국은행 기준금리 밴드와 소비자 물가 상승률


초록색으로 표시된 구간은 한국은행의 물가 타겟인 3% +/-0.5%구간이고 차트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지수이다.1)보다시피 지난 15년간 실제 물가가 한국은행은 허용 밴드 안에 들어온 기간은 매우 짧다.2) 

한국은행은 이와같은 잘못된 전망과 저조한 성적을 낸 이유로 '외부요인'과 '경기 불확실성'때문이라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세상에 외부요인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는 없고 경기는 확실했던 적이 없다. 따라서 저 변명은 사실상 스스로 통화정책을 수행할 능력과 역량이 없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그럼 왜 한국은행이 타 중앙은행들보다 무능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차트2: 한국의 명목경제성장률(주황색)과 기준금리(흰색)


차트3: 미국의 명목경제성장률(흰색)과 기준금리(주황색)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연준과 한국은행의 정책을 비교해 보자. 첫번째 차트는 한국의 명목성장률과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그린 것이고 두번째는 미국의 성장률과 FED의 금리를 나타낸 차트이다. 확연하게 드러나다시피, 한국은행은 경제성장 등락에 비해 금리조정 폭이 훨씬 좁다. 즉 경제가 나쁠때 금리를 충분히 내리지 않고 좋을때 찔끔 올린다는 것을 알수있다. 일례로 2010년부터 현재까지의 사이클을 보면, 명목성장률이 10.4%에서 3.4%까지, 무려 6%가 하락하는동안 한국은행은 금리를 0.25%만 인하했다.3) 변화하는 경제에 대해 사실상 한국은행은 손을 놓고 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금리정책을 변화시킨 타이밍도 틀렸다. (한국은행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결정이후 그 영향이 실물시장에 나타나기까지 약 12에서 18개월정도의 시차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통화정책은 그 기간만큼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올리는 시점을 보면, 실물경제가 이미 한참 전에 움직이고 나서야 뒤늦게 따라가곤 했다. 선행적이어야 할 경제정책이 되려 후행적이니 그 성과가 좋을 리가 없다.

정리하면 한국은행의 성적이 저조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소극적이고, 둘째 후행적인 금리결정 때문. 그리고 그 배경에는 아마추어 금융통화위원들이 있다.

우리나라 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다수결로 결정하며, 이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하면 5명의 이력은 통화정책과 큰 연관이 없다. 하성근 위원과 문우식 위원은 경제학부 교수였지만 통화정책을 운용해보는 것은 처음이고4) 기재부 추천을 받은 정해방 위원은 금통위원이 되기 전에는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함순호 위원은 경제가 아닌 경영을 전공한 분이며 정순원 위원은 현대 계열사의 사장이었던 분으로 통화정책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분야에 계셨다. 이토록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모든 인사는 통화정책의 폭과 강도에 대해 처음 고민해 보는 사람들로, 사실상 중앙은행계의 인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인턴들에게 가장 높은 권한을 줬으니 적합한 결정이 나올 리가 없다. 금리를 얼마나 움직여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극적이 되며, 언제 금리를 움직여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뒷북을 치곤 한다. 이런 마당에 통화정책이.정상적으로 운용이 된다면 그게 더 신기할 일이다.5)

그러다 보니 통화정책은 종종 산으로 간다. 신입 금통위원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출근해서 토론에 참가하지만, 곧 금리결정이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금리를 내리자니 곧 물가가 반등해서 비난을 들을것만 같고 동결하자니 아무것도 안한다는 비난을 들을 것만 같다. 마치 초짜 주식투자자처럼 사면 빠질것 같고 팔면 오를것 같아 허둥지둥대기 시작한다.(이런 상황에 빠진 예전 총재중 한분은 "금리를 올릴수도 내릴수도 동결할 수도 있다"라고 하여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셨다) 이래저래 욕먹을 걱정만 하다 보니 문득 부아가 치민다, "미래가 어찌될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라고 항변하지만 본인도 알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경기에 대응하라고 국민이 이 조직에 세금을 퍼주고 있다는 것을. 결국 어려운 결정은 죄다 총재한테 밀어놓고 위원들은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총재는 한국은행 직원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독립성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총재가 독립성을 과시하는 방법은 상황을 불문하고 매파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 뿐이다. (그렇게 정부가 올해 3월 총재의 팔을 비틀기까지 한국은행은 세계서 가장 매파적인 중앙은행이 되었다.) 총재의 팔이 비틀리는 것을 보자 금통위원들은 그제서야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능력 부족인 그들은 뭘 할지 모르니 아무것도 못한다. 금통위 의사록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한다는 변명들만 가득하다.(그러다 뚱딴지같이 금리변동폭을 0.25%에서 0.20%로 바꾸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 위원은 언론으로부터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금통위의 결론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고, 초보 투자자들처럼 아무것도 안하면서 상황이 저절로 나아지기만을 기도한다.

이와같은 한국은행의 거듭된 실패가 수십년간 이어져 왔다는 것은, 문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한국은행의 존폐 여부를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통화정책을 결정할 중앙은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그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밀턴 프리드먼은 극단적으로 중앙은행에게 재량권을 전혀 주지 말고, 엄격하게 통화량을 매년 k% 이상 증가시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실제로 아주 예전 한국은행의 정책목표는 금리가 아니라 통화량의 증가량이었다) 이 경우 우리는 한국은행 대신 조폐공사만 있으면 된다. 이는 너무 극단적인데다 현실에 맞지 않으니 대안으로 기준금리를 주식, 유가, 명목경제성장 등에 연동시켜 결정하는 모델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한은의 결정은 후행적인데 이 방법으로 최소한 경기와 동행으로, 아니 주식과 유가 등 시장가격을 포함한다면 약간은 선행적으로 바꿀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행을 폐지하는 말은 금통위원들의 주장과도 합치한다. 작년 하반기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는 이유로 가계부채를 들었다. 금리를 인하해 가계부채가 커지면, 훗날 금리를 인상할때 부담이 되기 때문이고, 이는 한국은행이 가계부채때문에 통화정책을 쓸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조직을 폐지한 뒤 소공동 부지와 해외 사무소를 매각해 가계부채를 탕감시켜주는 것은 어떨까? 자기희생적 주장을 해주신 금통위원분들에게 존경을 바친다.

얼핏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는 아이디어로 보이겠지만 한은 폐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는 총재 부총재, 그리고 5명의 재취업자들에게 중앙은행 놀이를 할 기회와 약 2200명의 한은 직원들에게 각 평균 1억원의 연봉을 제공하면서 엉망진창인 통화정책을 받아보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선택을 내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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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이전에 한국은행이 금리 밴드 폭을 1%에서 2%로 늘린 적이 있지만, 이는 사실상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지자 스스로 목표를 바꾼 것이기 때문에 분석에서 무시했다. 중앙은행이 단기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장기목표치를 바꾸는 일은 신뢰도에 타격을 준다.

2)한국은행은 정책목표는 3개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 밴드 내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 평가를 위해 전 기간을 타겟밴드와 비교하였다. 그 이유는 전체 평균 뿐 아니라 3년간의 경로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년동안 연만 물가 상승률이 각각 -5% +5% +9%일 때와 +2.5% +3.0% +3.5%일 때 평균은 모두 3%로 같지만 물가안정 성과는 다르다.

3)한국은행은 명목경제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하던 2010년 7월에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여 꼭 2년만인 2012년 7월부터 금리를 다시 인하한 뒤, 2015년 3월에 금리를 이전 저점인 2% 아래로 인하했다. 금리를 인상할 타이밍도 늦고 인하한 타이밍도 늦었다.

4)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는 것과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동차 설계가 전문인 엔지니어에게 레이싱 선수를 시킬 수 없는 것처럼 이론을 연구하는 것과 실제 데이터에 맞춰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5)반면 Fed는 최소 10년, 대개는 20년 이상의 통화정책 경력을 지닌 멤버들로 구성되어있다. 옐렌이 처음 연준에 합류한 것은 1994년이며 리차드 피셔 위원은 2005년에 합류했다. 윌리암스는 커리어를 연준에서 시작해, 2002년부터 지역연준(샌프란시스코)에서 경험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