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리히 프롬은 정신적으로 정상적, 혹은 건강하다는 말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사회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무리없이 완수할 때 '그는 정상적 인간이다'라고 정의한다. 둘째로 개인적인 입장에서 한 사람의 심리상태가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을때도 우리는 그가 정신적으로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사회의 구조가 개인의 행복을 최대화 하는데 맞춰져 있다면 "정상"에 대한 두 정의는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회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어느정도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 과 '개인의 충분한 발전'이라는 두 목표 간에는 어긋남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정신적 건강에 관한 두 개의 개념 사이에서 날카로운 분열을 조장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건강하지 못할수 있다. 주변의 많은 사례들을 보면 프롬의 주장을 부정하기 어렵다. 성공한 의사들이 결벽증을 지닌 경우가 있으며, 신문엔 강박증에 시달리는 스포츠 스타들과 영화배우들의 이야기가 보도된다. 마찬가지로 노벨상 수상자들중에서도 이혼한 사람들이 많다. 역대 수상자 중 가장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노벨상 상금 전액을 전부인에게 위자료로 지급했고, '힉스입자'를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피터 힉스도 과거 연구부담으로 이혼했다고 고백했으며, 9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교수 역시 상금 절반을 전 부인 리타에게 위자료로 줘야 했다. 이렇듯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인 노벨상 수상자들 중 이혼자가 하도 많다 보니, 학자들 사이에서 '노벨상 수상의 필수경력은 바로 이혼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너무나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행복이 동일한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직장인들은 연봉이 올라가거나 승진하게 되면 삶이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기대는 종종 배신당하기 마련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이제 좋은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경쟁하며, 승진한 직장인들은 다음 승진을 바라보고 다시 뛰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의 행복과 정신적 건강은 종종 무시되곤 한다.
2. LA Times는 영화 위플래쉬가 유독 한국에서 크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밤늦게까지 혼자 연습할 정도로 드럼을 좋아하던 주인공 앤드류는 마초적이고 히스테리적인 플레처 교수를 만나 점차 변모하게 된다. 교수에게 시달리던 그는 좋아하던 드럼을 주먹으로 내리쳐 찢고 손가락에 피가 나는데도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연습을 반복하며, 결국 더욱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 좋아하던 여자까지 차버리고 만다. 이 과정은 에리히 프롬이 지적한 "날카로운 분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LA Times 기사가 언급했듯이 우리가 위플래쉬에 열광하는 이유는,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란 한국인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앤드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개인적 측면에서 정신적 건강을 잃은 사람은 좀처럼 스스로 회복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드럼을 포기했던 앤드류가 마지막에 다시 교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매달리듯, 경쟁에서 한번이라도 승리한 사람은 그 마약같은 쾌감을 잊지 못하고 끝도 없는 싸움에 다시 뛰어든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방식을 긍정하기 마련이므로, 스스로를 치유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상태가 고착화되고 나면 (플래쳐 교수처럼) 자신이 가진 개인적 비정상을, 사회적 정상으로 포장하여 남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들 개인적으로 비정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정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3. 작년에는 전혀 마시지도 않던 커피를 요샌 하루에 4,5잔씩 마시곤 한다. 줄여보려고도 했지만 퇴근하기 전 데스크 앞을 보면 실패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이는 강박과 자기파괴적 행위에 가깝다. 이를 인정하는 대신, 적당히 포장하는 것이 더 고상하고 멋있어 보이겠지만, 그와 같은 자만과 기만이말로 우리를 "날카로운 분열"로 밀어넣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P.S: 2017년 6월, 내 몸은 그 날카로운 분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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