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believe me just watch
본인은 현재 언급되는 금융사들의 재정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으며 아래 글은 모두 현재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나 해당 회사가 발표한 재무자료, 혹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금융시장의 데이터에 의존한 자료에 개인의 견해를 얹은 것임을 밝힙니다.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누구도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낙관론을 펼치는 사람들이나, 확신에 찬 비관론을 펼치는 사람들이나 모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진앙은 1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투자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로부터 출발한다.
낙관론을 펼치는 몇몇 은행 애널리스트들은 이 회사의 대차대조표는 탄탄하며 충분한 유동자산을 보유했기 때문에 과도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재 크레디트 스위스의 PBR은 불과 0.13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주요 투자은행들은 물론이고 이름이 알려진 금융사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비율이다. 어쩌면 이는 투자자들이 그들의 대차대조표를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또 이 숫자를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신용부도스왑에 대입하면 CS의 파산 확률을 추산 할 수 있고 그 수치는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이에 대응하여 스위스 중앙은행과 스위스 금융 규제 기관, 그리고 스위스의 다른 대형은행인 UBS는 발 빠르게 CS를 인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한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세계적 은행 하나가 또 금융시장의 도마 위에 올라온 것이다. SVB의 실패는 테크와 스타트업에 집중한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엉망으로 하는 바람에 터진, 해당 은행 고유의 문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금리 아래서 버티기 어려운 산업은 테크 하나가 아닐뿐더러 자신이 어떤 리스크를 짊어졌는지 모르는 기관과 투자자가 비단 SVB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
절대 오해하지 마라. 나는 인버스에 몰빵하는 것을 권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가진 금융주를 모두 매도하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현재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던 멍청이들이 그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뿐이다. 각 나라의 중앙은행들과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대응에 나서고 있으니 이번에는 파산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 수도 있다. 혹은 인플레이션 압력 때문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이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시나리오를 빠르게 오갈 수도 있다. 심지어 2008년 리만 위기에서도 먼저 파산한 베어스턴스 은행이 인수되고 나서 시장은 두 달간 약 15% 랠리 하기도 하지 않았나. 여하튼 지금은 호가 창을 가득 채울 만큼 부푼 에고와 과도한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시장과 싸울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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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언급했듯 금리를 올리면 무엇인가가 무너진다. 그리고 가장 무모하고 멍청한 놈이 먼저 무너지곤 한다. 그러니 잠시 그 멍청이들의 명단을 읊어보자. 금융 시스템의 기초나 화폐금융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권도형은 자신이 통화 시스템을 대체할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허풍을 떨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열역학 법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듯 대단한 알고리즘과 뛰어난 블록체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통화이론의 기본 원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평생 경제나 금융을 공부해 본 적이 없던 너드 프로그래머들과 제도권 밖의 사기꾼들, 그리고 과도하게 대범했던 투자자들은 기존의 금융을 비웃으며 자신만의 금융 시스템을 창조했다. 하지만 권도형이 주장했던 루나 생태계와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업신여기던 중앙은행의 지원에 기반했던 사업이었고,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규제와 시스템을 준수하던 기존의 체계를 미개하게 여기던 오만한 투자자들은 울부짖으며 방향을 180도 바꾸어 자신들이 멸시하던 중앙정부와 은행에 보호와 사후 처리를 애걸하고 있다. 2022년 5월의 루나 사태는 첫 번째 멍청이들의 몰락을 의미했다.
두 번째 몰락은 샘 뱅크먼 프리드의 FTX였다. 앞서 상장된 종목 하나가 파산한 것이었다면 이는 거래소가 통째로 몰락한 사건이었다. FTX는 거래소를 자청하면서도 동시에 자사의 코인을 발행해 유통한 참가자였고 또 동시에 코인 펀드를 운용한 이해 당사자이기도 했다. 창시자 SBF는 이렇게 통정매매와 내부자거래, 시세조종을 거듭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데 기 금융시스템이 엄격한 권한/직무분리에 집착하는 것을 두고 제도권의 투자자들과 펀드들을 크게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거듭한 결과 해당 거래소의 담보 자산은 거의 대부분 자기 자신이 발행한 코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신뢰성이 손상되자 빠르게 뱅크런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거래소가 통째로 파산하는 바람에 FTX가 발행한 코인에 투자한 투자자는 물론 해당 코인을 사지도 않았지만 FTX에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까지 자신의 돈을 모두 날려야 했다. 앞서 루나 사태가 특정 증권의 파산이었다면 FTX의 파산은 크립토 세계의 은행의 파산이나 다름없었다.
세 번째 몰락은 드디어 제도권 금융기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실리콘 밸리 은행은 본디 세상을 바꿀 천재 창업가들을 주로 상대하던 은행이었다.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프로세스, 양자컴퓨터 등에 비하면 안전자산이라는 채권이라는 상품은 얼마나 재미없고 따분하고 쉬운가. 그래서 그들은 1% 중반 밖에 안되는 금리에 채권을 사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만기가 아주 긴 채권을 아주 많이. 채권이라는 것은 안전한 자산이기 마련인데 관리할 리스크 따위가 있을까. 하지만 작년은 바로 그 채권금리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기업의 주가도, 최첨단 테크 기술을 보유한 전도유망한 회사의 주가도 폭락을 거듭했다. 은행의 CFO들은 자신이 무엇에 투자하는지, 어떤 리스크를 짊어졌는지 안다고 착각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결국 그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첫 번째로 파산한 은행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리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많은 투자자들은 코로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중앙은행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들의 어리석음은 권도형이나 샘 뱅크먼, 혹은 실리콘밸리 은행의 CFO들에 비견될 만큼 막대하고 무모하다. 지난 2020년에는 하나, 이미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는 사이클에 있었고, 둘, 세계경제가 기나긴 시간 동안 디플레 압력 아래 있었고, 셋, 충격이 경제적 원인이 아니라 공중보건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중앙은행과 정부는 대담한 부양책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2020년 이전과 정확하게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급격하게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에 나서는 기준은 시장이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대규모 부양책과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반대는 훨씬 더 강하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테크 회사들이나 쓰레기 같은 알트 코인들이 금리 인상을 선 반영하며 랠리를 이어가는데 정작 루나, FTX, SVB와 가장 흡사한 자산은 바로 그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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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오만한 멍청이들은 현 정부 안에도 있다. 경상수지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는데도 외화보유고를 지속적으로 풀어 자신들이 원하는 환율 수준을 맞출 수 있다고 믿는 멍청이와, 검사였던 자신이 나서면 모든 금융기관을 살려줄 수 있고 또 그것이 옳다고 믿는 멍청이, 그리고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이 말 몇 마디 했다고 더 부실하고 빈약한 자본을 가진 참가자들을 허용하겠다는 멍청이. 그 멍청이들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며 그 해악은 우리나라 경제와 시장에 커다란 상흔을 남길 것이다.
이들은 오만하게도 자신들의 배경이 좋기 때문에 자신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영역에 적극 개입해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맞춰 이렇게 이렇게 조언하겠다. 권도형은 스탠퍼드를 졸업했고 샘 뱅크먼은 공학의 꽃인 MIT를 졸업했으며 현재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크레디트 스위스에는 서울대보다 훨씬 더 이름 높은 명문대의 졸업생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도 실패하지 않았나. 그러니 당신들도 잘 모르는 분야에 오만하게 나서지 말고 할 줄 아는 것이나 잘 해라. 능력에 걸맞지 않은 야망은 늘 무언가를 망치는 법이다.
몇몇 분들이 왜 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비판하지 않냐고 묻는데 내 생각에 현 정부의 외교 전략과 현실 인식에는 별문제가 없다. 물론 정치/외교 경험이 부족한 대통령의 몇몇 실수가 두드러지긴 했지만 이 사건들이 국익이나 우방국들과의 관계에 주는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이다. 기념일에 여자친구를 순대국밥집에 데려가는 것이 결코 세련된 일은 아니지만, 전 여친과 술을 마시거나 혹은 바람을 피우다 걸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 아닌가. 다만 일의 경중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그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인과와 사실관계를 이미지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면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된다. 지금은 그깟 해프닝보다 훨씬 시급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으니까. 특히 금융분야에 있어 그렇다.
현 금융 규제 당국자들의 인식은 매우 잘못되어있다.* 작년 가을,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많은 논평들과 정치인들이 강원도의 결정을 비난했지만 그들은 사건의 일부만 바라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할 때에는 늘 무엇인가가 무너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근 100여 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긴축이 일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레고랜드 사태 없이도 신용경색은 반드시 일어났을 것이다. 강원도의 어리석은 결정은 신용경색의 불씨를 당겼지만 이미 불쏘시개는 사방에 널려 있었으며 인근에는 담배꽁초를 던지는 부주의한 사람들로 가득했으니까. 게다가 레고랜드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해외시장에서도 신용스프레드가 급등하지 않았나.
그러나 일말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많은 정치인들과 당국자들은 모든 책임을 그 작은 테마파크에 몰아넣은 뒤 반성하기는 커녕 심판자, 혹은 구원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 파렴치한 모습은 여야를 가리지 않지만 정치인들이야 유권자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아바타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대중은 종종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는가. 그러니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들과 대중들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루어두기로 하자. 지금은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는, 전문성이 없는데도 전문가를 자처하는 돌팔이들부터 비난할 때이다.
대표적으로 이복현 금감원장을 들 수 있다. 그는 지난 7월 취임 직후부터 부동산 PF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며 대대적 감사를 예고했는데(링크) 현실적으로 금융당국의 이와 같은 겁박은 자금시장을 경색시키기 마련이고, 대개 이런 사태는 우량과 비우량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다. 작년 말 계속된 금리 인상과 겹쳐 자금시장은 급격하게 얼어붙었고 자금조달의 통로를 잃어버린 재무담당자들은 2020년보다도 더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ABCP를 필두로 회사채, 더 나아가 일부 은행들까지도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자 금감원장은 단기금융시장과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언제는 부동산 관련 대출을 엄격하게 보겠다더니, 이제는 금융사들의 팔을 비틀어 부동산 대출 익스포져를 가진 회사와 기관들에게 돈을 대주라고 겁박하는 꼴이란.
원론적으로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레버리지를 꺼트리는 것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신용경색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내놓을 조치가 아니다. 이는 마치 뇌혈관이 터져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에게 운동 부족이 근본적 원인이라며 집까지 뛰어서 돌아가면 살이 빠지며 나을 것이라는 처방만큼이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또 그는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른다, 무분별한 PF들의 레버리지를 꺼트리기 위한 것이지 건실한 회사들까지 자금경색을 겪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모든 금융시장은 연결되어 있다. 자본이 잠식된 리만 브라더스가 망하자 나머지 우량 금융사들도 자본조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 이런 현실을 몰랐던 초짜의 좌충우돌 체험 삶의 현장 금감원장 편은 안 그래도 고통받던 자금시장에 염산을 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레버리지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던 그의 정책은 몇 개월 후 금융기관의 레버리지를 적극 밀어붙이겠다는 자신의 말로 반박된 셈이니, 금감원장으로 취임한 후 약 반년간 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나선 정신분열적인 행태를 거듭한 셈이다.
이런 금융시장에 대한 몰이해와 아마추어리즘은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링크) 투자자들은 암묵적으로 흥국생명이 이 달러 채무를 갚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신뢰를 배반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자금시장이 경직된 상황에서 그와 같은 결정의 여파가 어떨지 여느 금융기관에 갓 출근한 신입사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던 일인데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링크)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설레발을 쳤다. 하지만 결과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여느 돌팔이들의 처방들이 그러했듯이. 결국 흥국생명은 1주일도 안되어 해당 결정을 번복해야 했다. 이 외에도 공개하기 어려운 여러 사안들에 대해 금융 당국이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더 있었고 그 서사는 위의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후진적 행태는 이복현이나 금감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정부에서 금융/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상당수의 당국자들은 전기세나 교통비와 같은 공공요금부터 통신비, 대출이자, 배당, 환율과 같이 거시 상황과 시장경제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가격까지 통제하려고 들고 있다. 그 모습은 집값을 제멋대로 정하려고 덤비던 지난 정부의 철학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김현미와 김수현의 철학이 해롭고 어리석었던 것처럼 현재 규제 기관들의 상황인식과 대응은 미개하고 또 무척이나 해롭다. 따라서 나는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반대했던 바로 그 이유로 현 정부의 규제당국을 비난한다.**
이복현은 본디 검사 출신으로 금융 관련 수사에 특화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금융사건들이 사회적 이슈로 번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부 조폭들이 회사를 설립해 상장사를 인수하거나, 주가조작 정황을 보고도 당국자들이 수사에 나서지 않거나, 혹은 일부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직간접 증거들이 있다. 그중엔 심지어 금감원의 일부 전현직 인사가 연루된 일들도 있었다. 한 금감원 검사역이 라임 조사 계획을 룸살롱에서 청와대 행정관에게 넘겨주고(링크) 해당 문서는 바로 라임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에게 전달되었다. 또 수천억에 달하는 고객들의 투자금을 털어먹은 옵티머스의 한 고문은 "(전관 고문단과 고교 동창 인맥 덕에) 금감원이 VIP 대접을 해준다"라고 말하는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정치권과 금감원, 금융인들이 유착된 범죄를 두고 우리가 검사 출신의 금감원장에게 기대했던 것은 그 범법자들을 잡아 금융시장 질서와 신뢰를 회복해달라는 것이었지 금융기관들이 누구에게 대출을 해줄지 무엇에 투자할지 컨설팅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당신은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지 않은가.
금융은 반드시 규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때때로 시장은 실패한다. 따라서 규제는 시장경제가 적절하게 작동하기 위해 효율과 자유로운 경쟁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규제 당국자들은 오로지 관(官)은 치(治)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미개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관은 우수한 인재를 독점하지도 못하고 있고 전체 GDP 중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할 수없이 거대하게 커진 데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글로벌 금융시장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그런 현대 한국에서 관료들이 민간과 시장을 지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척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평생 주석궁에 살면서 손에 쥐어본 것이라곤 쿠바산 시가와 반쯤 빈 로얄 살루트 뿐인 김정은이 생전 처음 보는 방직공장에 현장지도랍시고 나서서 이것저것 훈수를 두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누가 그랬던가. 바보가 소신을 가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고. 우리는 그 고집 센 바보들이 시장은 선도하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있다. 하지만 금융의 세계에서는 시장이 곧 검사이자 판사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겸허한 마음으로 판결을 기다리는 일개 피의자에 불과하다. 시장은 늘 잘못된 판단을 내린 트레이더나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 혹은 비효율적인 정부를 심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피고인 이복현과 당국자들은 시장이 과거 김현미와 김수현에게 어떠한 판결을 내렸는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인들이 종종 사용하는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속담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모반을 일으켜 혼노지에 머물던 오다 노부가나를 참살한 사건에서 유래된 것으로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늘도 철딱서니 없는 규제 당국자들은 비난할 대상과 적을 찾아 사방을 들쑤시고 있다. 이게 다 공매도 세력 때문이다, 욕심 많은 금융기관이, 혹은 투기세력 때문이다, 그리고 레고랜드 때문이다,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금융시장의 왜곡을 야기하는 적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혼노지에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바로 아마추어들의 오만함이다.
(기사가 첨부되지 않은 위의 내용과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비판의 대상은 각 금융 규제당국의 수장과 후진적 관료조직에 국한된다. 각 규제 기관에서 일하는 많은 실무자들은 우수한 인재들이며 때때로 존경스러울 만큼 강력한 사명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글은 그런 우수한 인력들을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는 수뇌부와 조직구조를 비난하는 것이지 전체 모든 구성원을 싸잡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경제/통화정책의 두 수장은 나름 훌륭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정부 관료들이 하는 일이 그렇듯 일을 잘할수록 주목받기 어렵고 못하는 사람들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들의 성과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전 방송인 유시민(63세)은 김어준이 TBS에서 하차한 배경을 두고 "현 정부는 자기 자유만 자유라고 하면서 반대 진영 사람들의 자유는 없앤다"라고 비판했다. 뒤이어 그는 이제 기존의 언론은 이해집단의 일부가 되어 공론장이 아닌 자기 이해를 관철하는 정보 유통기업이 되었고 따라서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정보를 해설해 주는 방송이 필요하다며 김어준의 유튜브 채널에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람 설정을 부탁한다고 했다.
언론인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공영방송에서 쫓아내는 것은 분명히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다. 하지만 김어준이 어디 그런 언론인인가. 그가 진행한 뉴스공장은 지난 보궐선거를 앞두고 오세훈이 (땅투기의 목적으로) 내곡동의 생태탕 집을 방문했다고 주장했고, 대선에 앞서 당시 야당 후보의 배우자를 유흥주점에서 봤다는 주장을 검증 없이 내보냈다가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명백한 허위사실이었고 또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던 사건들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태원 사고에 대해서도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지 않았나. 거기에 저널리즘이나 언론인의 사명, 혹은 윤리의식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은 이 일이 자유를 억압한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렇다면 그가 옹호하는 자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대중에게 거짓말을 할 자유, 정치적 중립성을 왜곡할 자유, 범죄가 들통나 자살한 성범죄자를 옹호할 자유, 야당후보의 배우자를 술집 접대부라고 모욕할 자유, 뇌물을 받을 자유, 남의 자식은 못 가게 막으면서 내 자녀들만 특목고에 보낼 자유, 그리고 이 모든 행위가 들통나도 사과하지 않을 자유. 그가 외치는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그 길고 긴 리스트 중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타인을 고문할 자유 아닐까.
1984년 가을, 시위를 주도하던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네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붙잡아 학생회관에 감금하여 폭행을 시작했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옷을 벗겨 속옷만 입힌 채 폭행을 가해 온몸에 멍이 들었으며 순번을 정해 교대로 폭행에 나서는 등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피해자들을 여자화장실로 데려가 세면대에 물을 가득 채우고 얼굴을 물속에 처넣기도 했는데 한 피해자는 이때 이가 심각하게 부러져 한동안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또 한 피해자는 지나치게 심한 폭행으로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자 응급실로 실려갔으며 이후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피해자 중 하나였던 전기동 씨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은 프락치가 아니고 법대 교수님을 뵙기 위해 캠퍼스에 방문했던 지라 가해자들에게 이 사실을 교수님께 직접 확인해 보라고 했지만 그들은 전 씨의 증언이 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도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 씨는 오히려 자신이 프락치가 아니면 그들의 고문행위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폭행과 협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당시 핵심 수뇌부 중 하나였던 유시민은 스스로 "감금에 찬동했으며 폭행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직접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대하는 유시민의 태도는 놀랄 만큼 전두환과 닮아 있다. 그는 78학번으로 당시 고학번인데다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을 거쳐 복학생 협의회의 대표를 맡아 운동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자신은 직접 폭행을 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마치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전두환의 비겁한 모습처럼. 또 무고한 시민들을 감금하고 끔찍하게 고문을 가한 배경을 두고 독재에 항거하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는데, 바로 그 독재야말로 북한과의 군사적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핑계로부터 탄생한 것 아닌가. 물론 몇 명의 시민을 물고문한 것과 수백 명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은 결코 같지 않다. 하지만 수백만을 죽인 북한과 맞섰다고 수백 명을 죽인 죄가 없던 일이 될 수 없듯, 신군부에게 저항한다는 핑계로 무고한 시민을 고문해 인생을 망가뜨린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한국 현대사의 끔찍한 과거 중 일부인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자신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일했던 애국자라고 주장했다. 그가 고문했던 피해자들 중에는 진짜 간첩이나 반국가단체 소속의 인물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전두환의 독재에 반대했던 사람들, 혹은 아예 무고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범죄자로 기억하지 애국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1984년 관악산 캠퍼스의 학생회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피해자 중 정부의 프락치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은 가해자들과 똑같은 일반 시민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곧 정의라고 믿던 학생들은 이근안이 남영동에서 가하던 것과 똑같은 고문을, 또 훗날 동지 박종철 군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과 똑같은 고문을 스스럼없이 가했다. 그로부터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날의 가해자들 중에서 가장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만이 남아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를 오가는 동안 피해자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하여 빈곤한 생계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실형을 살았던 유시민은 젠체하는 태도로 우리들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치려고 들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래디컬 자유주의자라고 칭했다. 그러나 수많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그렇듯 대개 래디컬리스트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마치 믿음 소망 사랑을 외치던 예수의 이름 아래 이교도의 목을 자르고 몸통을 말뚝에 박아 죽이던 십자군이 그랬듯이. 마찬가지로 노무현이라는 신을 믿는 한 비뚤어진 근본주의자 노친네가 주장하는 자유는 분명 우리가 이해하는, 또 대한민국 헌법에 기록된 자유와 매우 다르다. 앞서 언급한 민간인 고문 사건 이후 실형을 선고받은 유시민은 항소이유서를 작성했는데 그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법과 양심을 모두 지킬 수 없다. 이 경우 양심을 따라야 하기에 나는 반독재운동을 지켜가기 위해 언제라도 기꺼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연행 및 감금 조사를 하겠다" 그리고 유시민은 여전히 현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서슴지 않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모략하고, 스스로 궤변임을 알면서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래도 그의 양심은 찔리지 않는다. 1984년의 학생회관에서 고문당하던 피해자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던 마치 그때처럼. 그러니까 지금 이 육십 넘은 노인이 주장하는 자유란, 내뜻대로 타인을 고문할 자유를 뜻하는 것이다.
*그가 폭행에 직접 가담했거나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피해자 전기동 씨는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 중 가장 연장자로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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