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분들이 왜 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비판하지 않냐고 묻는데 내 생각에 현 정부의 외교 전략과 현실 인식에는 별문제가 없다. 물론 정치/외교 경험이 부족한 대통령의 몇몇 실수가 두드러지긴 했지만 이 사건들이 국익이나 우방국들과의 관계에 주는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이다. 기념일에 여자친구를 순대국밥집에 데려가는 것이 결코 세련된 일은 아니지만, 전 여친과 술을 마시거나 혹은 바람을 피우다 걸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 아닌가. 다만 일의 경중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그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인과와 사실관계를 이미지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면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된다. 지금은 그깟 해프닝보다 훨씬 시급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으니까. 특히 금융분야에 있어 그렇다.
현 금융 규제 당국자들의 인식은 매우 잘못되어있다.* 작년 가을,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많은 논평들과 정치인들이 강원도의 결정을 비난했지만 그들은 사건의 일부만 바라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할 때에는 늘 무엇인가가 무너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근 100여 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긴축이 일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레고랜드 사태 없이도 신용경색은 반드시 일어났을 것이다. 강원도의 어리석은 결정은 신용경색의 불씨를 당겼지만 이미 불쏘시개는 사방에 널려 있었으며 인근에는 담배꽁초를 던지는 부주의한 사람들로 가득했으니까. 게다가 레고랜드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해외시장에서도 신용스프레드가 급등하지 않았나.
그러나 일말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많은 정치인들과 당국자들은 모든 책임을 그 작은 테마파크에 몰아넣은 뒤 반성하기는 커녕 심판자, 혹은 구원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 파렴치한 모습은 여야를 가리지 않지만 정치인들이야 유권자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아바타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대중은 종종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는가. 그러니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들과 대중들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루어두기로 하자. 지금은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는, 전문성이 없는데도 전문가를 자처하는 돌팔이들부터 비난할 때이다.
대표적으로 이복현 금감원장을 들 수 있다. 그는 지난 7월 취임 직후부터 부동산 PF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며 대대적 감사를 예고했는데(링크) 현실적으로 금융당국의 이와 같은 겁박은 자금시장을 경색시키기 마련이고, 대개 이런 사태는 우량과 비우량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다. 작년 말 계속된 금리 인상과 겹쳐 자금시장은 급격하게 얼어붙었고 자금조달의 통로를 잃어버린 재무담당자들은 2020년보다도 더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ABCP를 필두로 회사채, 더 나아가 일부 은행들까지도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자 금감원장은 단기금융시장과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언제는 부동산 관련 대출을 엄격하게 보겠다더니, 이제는 금융사들의 팔을 비틀어 부동산 대출 익스포져를 가진 회사와 기관들에게 돈을 대주라고 겁박하는 꼴이란.
원론적으로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레버리지를 꺼트리는 것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신용경색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내놓을 조치가 아니다. 이는 마치 뇌혈관이 터져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에게 운동 부족이 근본적 원인이라며 집까지 뛰어서 돌아가면 살이 빠지며 나을 것이라는 처방만큼이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또 그는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른다, 무분별한 PF들의 레버리지를 꺼트리기 위한 것이지 건실한 회사들까지 자금경색을 겪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모든 금융시장은 연결되어 있다. 자본이 잠식된 리만 브라더스가 망하자 나머지 우량 금융사들도 자본조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 이런 현실을 몰랐던 초짜의 좌충우돌 체험 삶의 현장 금감원장 편은 안 그래도 고통받던 자금시장에 염산을 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레버리지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던 그의 정책은 몇 개월 후 금융기관의 레버리지를 적극 밀어붙이겠다는 자신의 말로 반박된 셈이니, 금감원장으로 취임한 후 약 반년간 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나선 정신분열적인 행태를 거듭한 셈이다.
이런 금융시장에 대한 몰이해와 아마추어리즘은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링크) 투자자들은 암묵적으로 흥국생명이 이 달러 채무를 갚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신뢰를 배반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자금시장이 경직된 상황에서 그와 같은 결정의 여파가 어떨지 여느 금융기관에 갓 출근한 신입사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던 일인데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링크)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설레발을 쳤다. 하지만 결과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여느 돌팔이들의 처방들이 그러했듯이. 결국 흥국생명은 1주일도 안되어 해당 결정을 번복해야 했다. 이 외에도 공개하기 어려운 여러 사안들에 대해 금융 당국이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더 있었고 그 서사는 위의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후진적 행태는 이복현이나 금감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정부에서 금융/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상당수의 당국자들은 전기세나 교통비와 같은 공공요금부터 통신비, 대출이자, 배당, 환율과 같이 거시 상황과 시장경제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가격까지 통제하려고 들고 있다. 그 모습은 집값을 제멋대로 정하려고 덤비던 지난 정부의 철학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김현미와 김수현의 철학이 해롭고 어리석었던 것처럼 현재 규제 기관들의 상황인식과 대응은 미개하고 또 무척이나 해롭다. 따라서 나는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반대했던 바로 그 이유로 현 정부의 규제당국을 비난한다.**
이복현은 본디 검사 출신으로 금융 관련 수사에 특화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금융사건들이 사회적 이슈로 번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부 조폭들이 회사를 설립해 상장사를 인수하거나, 주가조작 정황을 보고도 당국자들이 수사에 나서지 않거나, 혹은 일부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직간접 증거들이 있다. 그중엔 심지어 금감원의 일부 전현직 인사가 연루된 일들도 있었다. 한 금감원 검사역이 라임 조사 계획을 룸살롱에서 청와대 행정관에게 넘겨주고(링크) 해당 문서는 바로 라임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에게 전달되었다. 또 수천억에 달하는 고객들의 투자금을 털어먹은 옵티머스의 한 고문은 "(전관 고문단과 고교 동창 인맥 덕에) 금감원이 VIP 대접을 해준다"라고 말하는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정치권과 금감원, 금융인들이 유착된 범죄를 두고 우리가 검사 출신의 금감원장에게 기대했던 것은 그 범법자들을 잡아 금융시장 질서와 신뢰를 회복해달라는 것이었지 금융기관들이 누구에게 대출을 해줄지 무엇에 투자할지 컨설팅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당신은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지 않은가.
금융은 반드시 규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때때로 시장은 실패한다. 따라서 규제는 시장경제가 적절하게 작동하기 위해 효율과 자유로운 경쟁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규제 당국자들은 오로지 관(官)은 치(治)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미개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관은 우수한 인재를 독점하지도 못하고 있고 전체 GDP 중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할 수없이 거대하게 커진 데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글로벌 금융시장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그런 현대 한국에서 관료들이 민간과 시장을 지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척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평생 주석궁에 살면서 손에 쥐어본 것이라곤 쿠바산 시가와 반쯤 빈 로얄 살루트 뿐인 김정은이 생전 처음 보는 방직공장에 현장지도랍시고 나서서 이것저것 훈수를 두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누가 그랬던가. 바보가 소신을 가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고. 우리는 그 고집 센 바보들이 시장은 선도하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있다. 하지만 금융의 세계에서는 시장이 곧 검사이자 판사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겸허한 마음으로 판결을 기다리는 일개 피의자에 불과하다. 시장은 늘 잘못된 판단을 내린 트레이더나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 혹은 비효율적인 정부를 심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피고인 이복현과 당국자들은 시장이 과거 김현미와 김수현에게 어떠한 판결을 내렸는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인들이 종종 사용하는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속담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모반을 일으켜 혼노지에 머물던 오다 노부가나를 참살한 사건에서 유래된 것으로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늘도 철딱서니 없는 규제 당국자들은 비난할 대상과 적을 찾아 사방을 들쑤시고 있다. 이게 다 공매도 세력 때문이다, 욕심 많은 금융기관이, 혹은 투기세력 때문이다, 그리고 레고랜드 때문이다,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금융시장의 왜곡을 야기하는 적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혼노지에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바로 아마추어들의 오만함이다.
(기사가 첨부되지 않은 위의 내용과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비판의 대상은 각 금융 규제당국의 수장과 후진적 관료조직에 국한된다. 각 규제 기관에서 일하는 많은 실무자들은 우수한 인재들이며 때때로 존경스러울 만큼 강력한 사명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글은 그런 우수한 인력들을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는 수뇌부와 조직구조를 비난하는 것이지 전체 모든 구성원을 싸잡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경제/통화정책의 두 수장은 나름 훌륭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정부 관료들이 하는 일이 그렇듯 일을 잘할수록 주목받기 어렵고 못하는 사람들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들의 성과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