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터넷 커뮤니티나 페북을 잘 하지 않는다. 읽을 가치가 없는 글들에 너무 많이 노출되는 것도 싫고 또 멍청한 소리에 발끈해서 반박하느라 정작 훌륭한 글을 읽고 사색할 시간을 빼앗기는게 아까워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읽었다가 분노한 적이 딱 두번 있었는데, 한번은 아빠찬스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왕세자 문준용님의 글이었고 나머지 한번은 박근혜와 밥먹고 지니어스 출연한게 인생의 최대 업적이신 이준석 최고위원님의 어제자 포스팅이다. 이 글을 단톡방에 두번이나 올려 억지로 읽게 만든 A야, 반드시 복수할테다.
민주주의에서 타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단순히 경제적, 혹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사악한지 궁금하다면 8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나치가 자국의 소수파 시민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떠올리길. 그리고 최근 정치색 강한 이들의 단톡방을 뜨겁게 달구는 21대 총선 재검표 논란 역시 그 대표적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논란은 대개 진영논리의 연장선상에 있기 마련이다. 민주당 지지자는 200석도 넘었어야 할 결과가 불과 180석 밖에 안 나왔는데 무슨 조작이냐 할 것이고, 또 보수 지지자들은 작년 여름의 광화문 집회와 커다란 규모의 반조국 시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진영의 논리도 아니며 상식/비상식의 문제도 아니다. 심지어 실제 조작이 있었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선거인과 후보자의 권리 문제일 뿐이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 222조(링크)와 223조(링크)는 선거인과 정당, 그리고 후보자가 선거의 효력이나 당선에 관하여 이의가 있는 경우, 당해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과 절차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선거소송이냐 당선소송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해당 조문들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의 권리를 명확하게 보장하고 있고 나머지 조문들을 읽어보아도 그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법이 당신에게 보장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려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설득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선거가 조작되었다기보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던 선관위의 한심함이 드러난 것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생각을 재검표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강요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그런 권한 따윈 대한민국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이준석은 반대파를 설득하기는 커녕 윽박지르고 있다.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려면 정치생명을 걸고, 유튜브를 걸고, 또 뭐 페북 아이디를 걸라고 하는데 그는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이지 갬블러가 아니다. 게다가 무리하게 판돈을 올려 블러핑으로 상대를 죽이려는 것이야말로 허풍센 멍청이들이 자멸하는 흔한 클리셰 아닌가. 게다가 그는 경찰수사관이나 검사나 판사가 아니라 이번 21대 총선에서 (또) 떨어진 한 후보에 불과한데 자신이 투개표 절차의 적합성 여부를 뭘 어떻게 입증한단 것인가. 정작 본인은 선거법도 똑바로 몰라서 공개토론회에서 망신당한 주제에. 당장 포털에 특정 제과회사 이름이 들어간 단어를 검색하면 빵 사진보다 선관위 사진이 더 많은데, 그럼 이준석은 선거과정중 위법적인 행위나 규정위반이 아예 없었다는데에 자신의 삼족을 멸하는 멸문지화를 걸 수 있겠나. (대신 나는 내 남은 정치생명과 파리바게트 포인트 카드를 걸겠다.)
그는 아마 미통당이 무너진 후 자신이 새로운 구심점이 될거란 희망에 가슴이 벌렁벌렁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보수가 무너진 것은 우병우와 김기춘 같은 꼰대들이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닫고 국민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며 계도하려고 들었기 때문인데 이준석이 보이는 태도는 그들과 똑닮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혹시 박근혜 키즈였던 이준석이 명맥이 끊어진 진박의 계보를 잇기 위해 불통 타이틀을 승계하려는 것은 아닐까.
NBA에서 Rookie는 데뷔한 해에 훌륭한 성적을 낸 신인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만년 중고 신인신세를 못 벗어나는데다, 경험도 없고 실적은 더더욱 없으며, 정치철학도 없는데다 유권자들과 맨날 쌈박질까지 벌인다면 그 루키의 미래는 대단히 어둡다. 심지어 이렇게 조언해 줄 측근조차 없다는 것이 그의 암담한 미래를 암시한다. 데뷔에 실패한 많은 루키들이 종종 스포츠 해설자로 전향하던데 혹시 이준석의 재능도 차라리 그쪽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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