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9.

파리와 이스탄불, 그리고 한국인들의 이중성.





파리와 브뤼셀에서 테러가 일어났을땐 sns에 온갖 추모글과 사진을 올려대던 사람들이 터키에서 테러가 일어나자 이에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결국 터키 테러에 대한 추모는 연관검색어에도 올라오지 않는다. 유럽의 백인들이 십수명 죽은건 가슴 찢어지는 비극인데,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혹은 다마스커스에서 아랍인들이 죽어가는 것은 그저 지구촌 소식 칸에 주기적으로 업뎃되는 남의 이야기 일 뿐이다. 그들에게 파리와 이스탄불은 수성과 토성 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다른 세상이다. 여기에 어찌 저열한 인종주의가 없다고 할 수 있겟는가. 인간이 다른 이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추도하는것은 좋은 일이나, 그것이 선별적으로 이루어 진다면 그것은 나찌나 다름없다. 나찌는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 사이코패스들이 아니다. 다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의 고통에는 공감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나는 머저리들이 인지하지도 못하고 저지르는 범죄와, 그들이 내보이는 가식 그리고 싸구려 논리에 역겨움을 느낀다. 이에 침을 뱉으리.

2016. 6. 27.

철딱서니 없는 금융 당국자들

경제주체들, 상황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 없다. -한국은행 총재
투자자들은 과도하게 불안해하거나 성급하게 행동할 필요 없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침착한 대응 필요. -금융위원장

브렉시트가 터진 후, 주말 내내 고심한 정책당국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국제 금융시장도, 대형 펀드 매니저들도, 다른 중앙은행들도 향후 시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자국경제상황도 똑바로 파악 못하는 아시아 변방의 당국자들이 상황판단을 이미 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들고 나온 돈은 고작 3조원 뿐.

경제고위관료들이 현 경제상황에 대해 저토록 편한 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올바른 경제정책을 시행할 인센티브 전혀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손해를 보지만, 중앙은행 총재는 4년째 인플레 타겟를 하회하고 경제전망을 수정해도 국회에 나가 몇마디 욕 먹는것으로 끝난다. 국회의원들은 경제가 나빠지면 당선에 실패하지만 남대문 공무원들의 연금은 꼬박꼬박 지급된다.

역대 가장 매파적이면서 가장 오랫동안 금리를 내린 현 한은총재는 외부기관들이 금리정책에 대해 이리저리 훈수를 두자 '통화정책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생각해달라'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세계모두가 불안해하며 중앙은행과 정부의 대응을 기다리는 동안 알맹이 없는 립서비스로 시장을 진정시킬거라고 믿는 저 두사람을 보며, 공무원들은 통화정책에 대해 가장 고민 안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철부지들을 정녕 어찌할꼬. 

2016. 6. 26.

엿같은 테러와의 전쟁

자신과 가장 가까운 지역의 정부들을 무너뜨려놓고 어찌 난민이 없길 바라는가. 그들은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기 위해서였다고 항변하나, 그렇다면 왜 그리도 많은 민중들이 IS에 가입하는가. 남의 나라 정부가 정의롭지 못하다며 그를 갈아치우기 위해 수많은 폭탄과 탄약을 퍼부은 이들이 난데없이 타국의 간섭을 거부하기위해 EU에서 탈퇴한다는 쇼를 벌인다.

테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전쟁을 일으킨 국민들이 테러를 비호하는 것에 조소와 경멸을 보낼 뿐이다. 남의 집에 벙커 버스터를 터뜨려 가족들을 몰살시킨 이가, 그 친척들이 자신의 도시에 폭탄을 터뜨렸다고 비난한다. 민간인을 타겟으로 하는 테러는 더럽다고 욕하지만, 어디 전쟁의 포탄이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는가. 당장 youtube에서 검색해봐도 테러보다 수십배 더 많은 민간인 살상 현장들을 지켜볼 수 있다. 그렇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군인보다 몇배 더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나는 너희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 싸이코패스 같은 이기심이 너무나 역겹고 적과 내 가족을 증오와 죽음으로 몰아가는 너의 무식이 너무도 혐오스럽다.

살인자들이 살인자를 욕하는 그 광기에 침을 뱉으리.

2016. 6. 25.

Brexit

으레 그렇듯이, 시장에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은(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지곤 한다. 바로 오늘의 브렉시트가 그랬다. 평화롭게 시작했던 아시아의 아침은 곧 패닉으로 뒤덮혔고 화면의 모든 차트와 상품가격들은 발작하듯 요동쳤다. 계좌의 손익보다도 더 큰 마음의 충격을 받았을 트레이더들은 멍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으리라. 불면의 밤을 보낸 런던/뉴욕의 친구들에게는 몇시간이 더 지나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    많은 사람들은 브렉시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니 시장이 금새 회복할 것이라고 말한다.(나 역시 진심으로 그러길 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브렉시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지 않은 미국의 2년 금리는 20bps나 하락했는데, 나는 적어도 지난 3년간 이런 충격을 본 적이 없다. 만약 모두가 대비하고 있었다면 왜 이런 쇼크가 오는가? 미국 이자율 시장은 또한번의 리세션을 예고하고 있었고, 이와같은 충격은 간신히 반등하던 레버리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주말동안 준비해 둔 시장 안정책을 내놓을텐데, 만약 조치들이 시장의 패닉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폭락은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    여로모로 지금의 사건은 2011년 여름과 닮아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영국의 EU탈퇴 모두 제도적으로 대비할 틈이 없던 상황에서 그 여파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터졌으며, 마침 경제는 매우 취약한 지점에 있었다. 하지만 리만사태처럼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리만은 근 10년간의 낙관론이 무너진 사고였고 은행시스템이 붕괴했다. 브렉시트는 그정도로 걱정할 사건은 아니다.

*    브렉시트가 더 충격적인 점은 조현증 환자마냥 분열된 영국의 맨얼굴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불과 2년전 스코틀랜드인들에게 UK에 남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잉글랜드인들은 EU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잔류를 원하던 스코틀랜드인들은 UK에 속한 죄로 EU에서 같이 방출되었다. 북아일랜드인들과 뉴햄프셔인, 런던에 거주하는 삼십대의 화이트칼라는 교외 농장에서 일하는 오십살의 블루칼라와 너무도 달랐다.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에 분노하고있고, 그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총리는 사임했다. 이제 스코틀랜드의 이탈을 어찌 막을 것인가. 그리고 불과 30년 전까지 소총과 사제폭탄으로 독립을 외치던 아일랜드인들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United" Kingdom의 시대는 끝났다.

*     흥미롭게도 영국의 통합과 분열의 역사는 그들의 흥망성쇠와 수명을 같이했다. 약 300여년 전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한 뒤, 그들은 전 세계를 제패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뤄냈다. 그리곤 제국을 유지할 힘을 잃게되자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시도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와 같은 현상은 영국 뿐 아니라 전 유럽의 문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분열했던 지역인 유럽(한때 독일은 약 1500여개 공국으로 쪼개져 있었다.)에서 크고작은 나라들이 이리저리 뭉쳐 (상대적으로) 소수의 근대국가들로 다시 태어나자 그들은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현재 21세기에 그들은 미국과 아시아의 부상에 밀려 점차 세계무대의 주연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분열이 시작됐다. 그렉시트와 브렉시트 외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신조어들이 생겨날까? 우리는 아마 EU에서 국가들이 이탈하는 것 뿐 아니라 국가에서 지방이 이탈하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그 선두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그 뒤를 카탈루냐, 바스크, 롬바르드 등이 따르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21세기는 분열의 시대가 될 것이며 잉글랜드인들은 오늘 그 첫 총성을 쏘아울렸다.

2016. 6. 6.

디케의 저울에 올려진 화투장

아침에 집을 나서며 어머니와 조영남의 작업방식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 현관에 서서 30분간 아야기하다 나왔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미술평론가 반이정씨의 논평이 있으니 이를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링크)

*     *     *

6월 4일, 검찰의 간단한 입장 발표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검찰은 "조 씨가 대작 화가인 송모(61) 씨에게 똑같은 그림을 배경만 조금씩 바꿔서 여러 점을 그리게 한 뒤 이를 고가에 판매한 것은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작 화가가 그린 그림을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판매한 것은 불특정 다수의 구매자를 속인 행위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중략) 조 씨는 검찰 조사에서 '팝아티스트로서 통용되는 일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으나, 이 사건이 불거지기 이전에는 조 씨가 자신을 팝아티스트라고 표현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이 인터뷰에서 검찰은 "화가의 그림"의 범주를 제멋대로 규정하고 있고 더 나아가 팝 아티스트 범위를 스스로 정의하고 있으며(스스로 팝 아티스트라고 한 적이 없으니 조씨는 팝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에 따른 법 집행을 예고했다.  

예술인들은 아테네와 법복입은 사람들 앞에 조영남을 방치했다. 다수의 신문 사설은 조영남을 비난하는 화가들의 인터뷰를 실었고 몇몇 미술인들은 '그는 예술가들의 고뇌를 욕보였다'고 성토했다. 그들은 조영남이 미웠을 것이다. 아마도 조영남같이 쉽게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아트테이너들 모두가 미울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사람들의 편견, 그리고 자기 내면의 감정들과 싸워가며 예고, 미대를 졸업하여 십수년간 작품활동을 이어와도 미술계 한켠에 자기 자리를 만들기 쉽지 않은 현실이 더욱 그들을 그렇게 몰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영남이 미워, 그의 화투장을 변호해주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무엇이 그림인가"를 논할 주도권을 (미술에 대해)가장 무식한 검찰과 대중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미술인들은 (조영남이 아닌)그의 작품들을 대신해 법원에 서서, "변기 하나 사다가 제목 하나 붙이고 출품한 마르셀 뒤상보단 더 작품제작에 관여했다"고 해주지 않았고, "라파엘로도 자기 작품에 조수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니, 그도 사기죄에 해당하는가."라고 반문하지 않았으며 "표현기법 뿐 아니라 소재선정과 아이디어같은 컨텐츠도 현대미술의 핵심인데, 왜 자기 손으로 직접 윤전기를 돌리고 표지디자인을 하지 않는 소설작가들의 책은 대작이 아닌가"라는 의문들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엇이 미술인지 (아무리 관대히 봐줘도)대충 5분에서 10분쯤 고민해 보았을 법조인들이 국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심지어 그런 고민을 해봤는지도 매우 의심스러운 대중이 여론몰이를 통해 미술과 화가를 통제하게 만들었다. 이제 모든 미술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그림이 합당한 미술인지 아닌지 법원과 SNS의 판결을 기다려야할 지도 모른다.(아마 일부 국회의원은 그림 뒷편에 조수의 작품 기여도를 명시하고 이를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에서 검증받는 '조영남법'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치가 집권하던 1937년, 독일 뮌헨의 호프가르텐 회랑에서 '퇴폐예술전시회'가 열렸고, 32개의 독일 미술관에서 압수한 650점의 미술작품이 전시되었다. 당시 나치는 올바른 미술을 정의한 뒤, 이에 어긋나는 모든 기타 현대 미술, 그리고 유대인 화가들의 작품을 '퇴폐예술'이라고 규정지은 뒤 이를 억압했다. 이 전시회에는 에드바르트 뭉크나 파블로 피카소같이 대중들에게 유명한 이들 뿐 아니라 막스 베크만, 막스 에른스트,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파울 클레, 케테 콜비츠처럼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38년 5월 31일에는 '퇴폐예술품 압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이 새 법률에 따라 베를린 중앙 소방서 마당에서 1004점의 회화와 3825점의 그래픽이 소각되었고 그 외에 규모를 알수 없는 상당수의 작품들이 은닉되거나 해외로 유실되었다.


예술계 인사들은 미술에 대한 평가를 제복입은 이들에게 위임했을때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해야할 것이다.


2016. 6. 4.

동물애호가들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

(나는 지난 30여년동안 여러 애완동물들을 길러왔으며 지금도 10년 넘게 강아지를 기르고 있다. 내가 지금부터 비판하려는 것은 극단적인 동물 애호가들이다)

낭만적인 꿈은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낭만은 때때로 크나큰 비극과 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진화한 인류인 '초인'들의 세상을 건설하려는 나치가 그러했고, 모두가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던 소련이 그 전철을 밟았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낭만적인 주장들을 현실적으로 검토해야하는 이유이다.

극단적인 동물애호가들이 바로 그 21세기의 히틀러와 스탈린들이다. 이들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내세우며 가장 빈곤한 인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으며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들이면서 자신들을 선하다고 믿는다.(역사적으로 학살을 저지르던 집단들은 대개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었다.) 이제부터 그들의 기막힌 무식과 신묘한 위선을 밝혀보자.

극단적 동물애호가들(동물 애호가들 중 일부겠지만)은 떠돌이 개나 고양이의 안락사는 인간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강하게 반대한다. 또한 닭, 돼지나 젖소등의 가축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육장의 환경을 개선해야하고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채식주의자로 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간과하는 것은,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이 지구 위에는 70억명의 인구가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개와 고양이의 안락사를 막고 그들을 모두 먹여 살리려면 빈곤층에 대한 생계지원과 의료복지 예산을 줄여야하고 소득세를 올려야 한다. 또한 지구상에는 약 250억마리의 닭과 총 약 30억마리의 돼지, 소와 양이 존재한다. 70억명의 인간이 총 300억마리가 넘는 가축들을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대량으로 죽어 자신의 터전을 가축들에게 내어주거나, 혹은 가축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 물론 가축의 수가 줄어들면 단백질원을 잃은 제3세계의 빈곤층이 몰살될테니, 인간이 죽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렇다면 육식을 끊고 채식을 하여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 또한 세가지 이유로 불가하다. 첫번째, 채식이 몸에 좋다는 통설과는 달리, 인간의 몸은 수백만년동안 동물성 단백질도 섭취하도록 진화해왔다. 채식은 식단 관점에서 일종의 편식이며, 영양 불균형을 가져온다.(대형 포유류가 없어 동물성 단백질원이 없던 오세아니아의 섬이나 남미에서 식인문화가 발달한 그 함의를 생각해보라.) 두번째, 채식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동물들을 죽여야 한다. 일례로 크리스틴 마인더스마라는 작가는 한마리의 돼지가 도축되고 나서 각 부위들이 어떻게 가공되는지를 추적했는데, 햄과 베이컨 뿐 아니라 샴푸, 립스틱, 치약, 의료약품 등 총 185개의 상품들의 원료가 되었다. 우리는 동물들을 먹는것 뿐 아니라, 쓰기 위해서도 계속 죽일수 밖에 없다. 세번째,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식물도 동물과 똑같은 생명체이다. 돼지 한마리를 살리기 위해 100그루의 밀을 먹자는 주장은 어떻게 나오는가. 포유류 성애자도 아니고.

결국 현재의 70억 인류가 굶어죽거나 동물성 단백질 부족으로 심각한 면역력 저하에 처하지 않으려면 300억마리가 넘는 가축들을 키워야 하며, 이 많은 가축들을 그림 같은 풍경에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둬 도축 가능한 나이가 되면 기계적으로 도축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동물을 먹는 인간의 수를 줄여야하니,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자살하지 않은 동물애호가들은 전부 다 무식한 위선자들이다.

여담이지만 영화제작장에서 동물들의 촬영시간 제한, 동물학대 처벌 등 유럽에서 가장 선진화 된 동물보호법을 도입한 것은 바로 나치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들은 유대인들을 절멸시킬 게획도 함께 입안했다. 나치는 결코 따듯하기만 하거나, 혹은 차갑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무서운 것은 내 옆의 동물을 나와 다른 인간들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는데에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정의롭다고 생각했으니, 힘을 얻었을 때 자신의 극단적 가치관을 망설임없이 관철시켰고 그 결과과 어떠했는지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에 남겨진 흔적들이 증언한다. 이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 중의 나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