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8.

대한민국 외교, 처참한 실패

*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3일부터 3박 4일간 중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다. 현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두 약점-외교와 안보에 대해 중국이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만큼 , 청와대는 아마 해를 넘기기 전에 성과를 내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중국은 한국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고, 마치 산타처럼 연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려던 문재인 대통령은 서류쪼가리와 사진 몇장만 들고 귀국해야 했다. 여러 논란을 빚은 이번 방중을 두고, 청와대는 120점짜리였다며 자평했지만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문재인의 지지율은 2.2%가 하락하며 다시 70%선 아래로 주저앉았는데, 이는 북한 도발이 멎은 이래 가장 큰 하락세이다.

* 외교는 의전에서 시작해서 의전으로 끝난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상복에 관한 의전을 두고 자신의 목숨과 가문의 미래를 걸고 싸운 것 처럼, 외교의 승패는 의전으로 나타난다. 바로 그 의전에서 우리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대통령의 방중 행사는 항상 국가주석과 총리와 각각 한 번씩, 그리고 지방 지도부와 한번씩 만찬을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경우에 따라 지방 지도부와의 만찬이 생략되는 경우는 있어도, 총리와의 만남이 빠지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 방중에서는 처음으로 빠졌다. 중국에게 가장 구구절절한 러브콜을 보낸 문재인 대통령은 한중 수교 25년만에 가장 낮은 대우를 받고 돌아왔다.

* 그렇게 홀대받았는데 협상의 결과가 좋을 리도 없다. 사드 압박에 관한 부분은 지난 10.31 한중 합의에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고 공동 선언문 채택도 불발되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중국의 대북억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없었다.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항하여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고난이도의 다자외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결국 문재인은 또 한번 중국이 발행한 공수표 몇 장만 들고 귀국했고 청와대는 방중 성과 브리핑에서 화려한 수식어와 형용사로 숫자들의 빈 자리를 메워야 했다.

* 애초에 이는 대등한 협상이 아니었다. 중국의 사드제제라는 카드는 애초에 없던 걸 만들어낸 것이고, 한국은 거기에 주권국가의 자위권을 걸었다. 이제 중국이 만약 관광을 넘 서비스업 전체, 혹은 제조업을 걸고 한국의 모든 순항미사일을 폐기하라던가, 아니면 F35 전투기의 도입을 막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중국은 새로운 카드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남한은 나라의 주권이란 카드를 내미는 소모적 게임을 시작해야한다. 그 불리한 테이블에 자진해서 앉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그것도 울고불고 애걸복걸해서.

* 청와대와 여당 지지자는 "중국이 삐쳤으니 달래러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정신착란에 가까운 현실 인식이다. "달랜다"는 표현은 강자가 약자를 대할 때 쓰는 말이다. 아니면 적어도 관계가 동등하든가. 중국은 강자고 우리나라는 약자다. 약자가 화가 난 강자의 집앞에 찾아가는건 "달래"는 것이 아니라 "빌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치면 인조도 땅바닥에 아홉번 머리를 찧은 뒤 "내 시끄러워서 오랑캐놈들 자존심 한번 살려줬다" 하고 허세를 떨 것이다. 애초에 자위권이라는 삥을 뜯기고도  상대의 집에 찾아가 홀대를 당하는 마당에 외교와 협상, 그리고 성과를 논하는 것이 웃기는 일이다.

* 수행 기자들이 구타당한 사건에 두고 여당 지지자들은 기레기라 맞았다, 맞을 짓을 했다며 이 사건의 외교적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물론 중국에서 기자들 폭행은 가끔 있는 일이며 일부 기자들의 잘못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어쨋거나 그들은 대통령을 수행하는 기자단이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평소 행실과 무관하게 중국인들이 개패듯이 팬 사람은 청와대의 봉황과 무궁화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어찌 외교적 의미가 없다고 믿는가.

* 왕족의 권력 다툼을 다루는 한 인기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왕이 자기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해야한다면 그는 왕이 아닌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스로 홀대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홀대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내실없는 회담에 별 관심도 없는 중국에게 매달려서 억지로 방중 스케줄을 잡은 외교 실무진의 잘못이다. 더욱이 노영민 주중대사의 이력을 보면 95년 환경운동으로 경력을 시작 한 뒤 단 한번도 외교에서, 그와 비슷한 분야에서도 경력을 쌓은 적이 없다. 이런 사람에게 맡길 정도로 어디 외교가 쉬운 일인가. 안보와 외교가 현 정부의 지지율을 갉아먹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얼른 다 잘라라.

2017. 12. 7.

네티즌보다 멍청한 경제기자들.

이전에도 여러번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경제지는 공짜로 뿌리는 광고찌라시 수준이고 경제기자들의 소양과 지식은 거의 쓰레기다. 경제기자를 하는데 필요한 스킬셋은 나이트 삐끼와 비슷한 것 같다. 둘다 창의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늘 같은 말을 반복하고(경제가 위기다/형님 웨이터 박찬호입니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원화강세로 국가경쟁력 악화/오늘 물 정말 좋아요!) 무식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데다가(가계부채 시한폭탄/제가 쌈박한 애들로 ㅋ 아시져?) 돈만 무지하게 밝힌다.(최고의 중소기업 ㅇㅇ, 알고보니 전면광고/아 형님 섭섭하게 왜이러실까)

이들이 어찌나 무식한지 이제는 네티즌들에게 댓글로도 까인다. 고금리와 고원화로 더블딥이 온다는 이 병신같다못해 참신하기까지 한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라. 무슨 네이버 지식인도 아니고 댓글이 글쓴이를 가르쳐주고 있다니. 정치부 기자는 민주주의에 이바지하는 바라도 있지, 경제기자들은 도대체 기여하는 바가 뭔가. 심지어 스포츠 기자도 나름대로 머리를 써 가며 분석을 하는데 경제 기자는 그마저도 안한다. 하루바삐 AI로 대체되고 이 잉여인력은 건설경기 회복을 위해 노동판에 투입되길 바란다.


2017. 12. 1.

6년 5개월만의 금리 인상

* 오늘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하며 역대 최저금리의 시대를 마감했다. 금리 인상은 2011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중앙은행이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싸워 온 디플레이션의 시대가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

* 그러면서도 금리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는 중앙은행의 언어는 매우 부드러웠다. 현재 총재의 임기는 3월에 끝나는데 그 전까지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을 시사했고, 신임 총재가 취임 첫 달에 금리를 움직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두 번째 인상은 아무리 빨라도 5월에나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런데 6월에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금리를 올리기엔 정치적 부담이 있으니 미뤄질 가능성도 크다. 6월에는 금통위가 없으니 어쩌면 다음 인상은 7월에나 가능할 지 모른다. 결국 기준금리는 앞으로 반년간 제자리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 나는 블로그에 단기 전망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회사에서 할 일인데다, 트레이딩과 다른 투자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굳이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선진국의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플레는 낮게 유지되어왔다. 그리고 이는 (기술의 발전과) EM국가, 특히 아시아의 과잉투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플레 압력을 흡수시켜주던 아시아 국가 중에서 금리를 올리는 나라가 나왔다는 것은(혹은 올릴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물가상승을 막던 범퍼가 얇아지고 있으며 내년의 인플레 압력은 어제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 다수의 외국계 은행 리서치는 내년에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데 비해, 인플레는 여전히 낮게 유지되어 미국채 2-10년 수익률이 리세션 수준인 0에 이르를 것으로 전망한다.(JP 등) 나는 이들의 뷰가 빗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처럼 경기가 과열이 아닌데(혹은 GDP갭이 크게 플러스가 아닌데) 커브가 역전된다는 것은 Fed가 지나치가 금리를 올리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난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가장 정확하게 경제를 전망한 조직이 바로 연준 아닌가. 지난 2011년 멍청이들이 디플레를 눈 앞에 두고 하이퍼인플레 타령을 할 때,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양적완화를 이어간 조직이 바로 연준이다. 당시 한국은행을 비롯한 주요 EM의 중앙은행 뿐 아니라 심지어 ECB도 금리 인상을 했는데 과연 누가 옳았는가? 또 몇년 뒤, 예전의 그 멍청이들이 이번엔 디플레로 지구종말이 올거라고 꽥꽥댈 때 과감하게 자산을 축소하고 금리를 올린 것도 연준이다. 과연 누가 옳았는가? 실수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10년간 연준은 항상 옳았다. 다른 중앙은행과 민간은행들을 모두 제치고. 이렇듯 가장 우수한 경제전망 모델을 가진 연준이 내년에는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고 주장한 다수의 셀사이드 리서치는 그 꽥꽥대던 멍청이 무리에 속해 있었다. 낙제생들이 모여서 전교1등이 이번엔 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 낙제생 무리들이 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비단 나 하나는 아닌듯 싶다. (링크)

2017. 11. 29.

자애로운 노무현과 파렴치한 강남

몇년 전 재벌 2세 경영자가 한 노동자를 야구배트로 폭행하며 "한 대에 백만원 씩 준다."고 했던 충격적 사건이 있었다. 금권과 야만이 결합된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속물적 농담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 너라면 얼마 주면 맞을래?"

폭력앞에 희생되는 인간의 존엄을 돈으로 환산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만약 빠따 맛을 보는 대신 욕 한마디 듣는 것이라면 당신은 얼마를 부를 것인가? 만약 그 대가로 5억 10억을 준다면 자존감이 병적으로 넘치는 사람이나 재벌이 아니고서야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욕죄의 처벌이 꼴랑 벌금 2백만원 뿐인데.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2000년대 초반 참여정부는 강남을 "부패한 기득권자"라고 비난하며 지지율을 끌어모은 뒤, 그 지지를 강남 집값을 올리는데 모두 써버렸다. 노무현 행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전무후무하게 폭등시켰고 그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코 강남이었다. 그때는 경제가 활황이었네, 강남 뿐 아니라 다 올랐네 하며 아는척 하지 마시라. 인간은 자기 취향에 따라 기억을 조작하고 안대를 끼고 아웅 할 지 몰라도 숫자와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IMF이후 강남의 집값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앞선 적은 단 한번 뿐이었는데 그때가 바로 참여정부때였다. 또 그 시절에 강남 부동산은 전무후무한 독주를 이어갔다. 불패를 넘어 거의 폭주 수준이었다. 못 믿겠다면 데이터를 확인해 보라.

감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고 참여정부의 다음 세 가지 정책 때문이었다. 첫 번째, 낙인효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남일대의 주민들을 기득권 층이라고 비난하며 부자라고 낙인을 찍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뉴욕이나 LA, 도쿄의 잘사는 동네를 보면 부촌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주민과 지자체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랜드마크 건물을 세우며 집안을 최고급 인테리어로 도배하는데에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하지만 강남은 대통령이 친히 나서서 부자동네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곳이다. 그것도 공짜로. 내 집을 내 돈을 들여 새로 짓겠다고 해도 재산을 기부채납해야 하는 시대인데, 사랑받는 대통령이 나서서 온국민에게 강남은 부자들만이 살 수 있는 동네라며 무료로 광고해준 덕에 수도권과 지방 그리고 강북의 부자들은 좌고우면 하지 않고 강남 복덕방으로 직행했다.

두 번째, 지방에 막대한 땅 부자를 양산한 것. 우리가 흔히 이명박 정권을 두고 토목정권이라고 하지만 이는 참여정부 인사들이 섭섭해 할 소리다. 노무현 정부때 풀린 토지보상금이 약 100조로, 이전 정부들과 비교해서 약 2배 증가했다. 그 이후로 보상금이 그만큼 급증했던 적은 없었다. 이후 정부들은 예산증가폭이나 물가상승률에 맞추어 토지보상금을 올렸다. 이 막대한 보상금은 대부분 비강남 지역에 풀렸는데, 그럼 땅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어디에 집을 사고 싶어하겠나.

세 번째, 강남 공급 억제책. 그러면서도 그들은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재건축의 바를 높이고 개발을 멈췄다.  강남의 저층지역을 개발해 공급을 늘리는 일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와 같이 눈에 보이는 규제 뿐 아니라 은행의 창구지도나 허가요건을 높이는 등 비 가시적인 수단에 의해 막혔고 일부 정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즉, 국가 최고 지도자가 나서서 강남3구를 부자동네라고 찍어주고 ,부자를 만들어 준 다음에, 공급 물량을 막은 셈인데 이는 주식시장에서 작전세력이 시세를 폭등시킬때 쓰는 방법과 정확하게 같다.

노무현 행정부는 이렇게 강남 주민들의 재산을 불려줬다. 압구정 48평 아파트는 노무현 취임 첫 날 부터 마지막 날 까지 5년간 10억이 올라 2배가 되었으니 강남 주민들은 토지 기부해서라도 공덕비를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파렴치한 강남 주민들은 되려 그를 욕하고 미워한다. 자신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쌓은 나쁜 부자 취급해서 화가 났다고 하지만 강남이 참여정부 아래 누린 이득을 보라. 이것이야 말로 욕 한마디 듣고 수억을 받는 일 아닌가.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임기 말에 폭락했는데, 여론과 기자들은 그 시절 정부의 최대 실책은 다름 아닌 부동산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니 고 노무현 대통령은 강남을 때리며 얻은 지지율을 강남 부동산 올리는데 탕진했다고 할 수 있다. 몇몇 강남 사람들은 종부세로 세금이 크게 늘어났다고 항변 하지만, 집값 10억 올려주는데 그깟 푼돈이 대수인가. 은행에 10억을 맡기면 이자를 수천만원 주는데 참여정부는 수천만원을 줬더니 10억을 돌려줬다. 아아 그는 얼마나 자애로운 사람이었는가.  

오늘날에도 파렴치하고 은혜를 모르는 강남3구 주민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뿐 아니라 그 후계자인 문재인 대통령까지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수석을 등용하여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정책을 더욱 강하게 펴고 있다. 아 이 아름다운 사람. 그 덕에 문재인 취임 이후 이 지역의 집값 상승률은 타 지역을 압도하고 있다. 부디 어리석은 강남/송파/서초의 주민들이 하루바삐 두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성금을 모아 기념관이라도 세우길 바란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압구정 아파트는 문재인의 취임식 이후 10개월 간 22%가 올랐는데 이대로 가면 어쩌면 노무현의 사랑보다 그의 사랑이 더 커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2017. 11. 25.

집을 당장 사라고 외친지 어언 3년

멍청이들의 정모: 2년 전, 공급부담으로 집값이 빠질거라는 전망을 한 기자와 거기에 달린 베스트 댓글들.


3년 전, 내가 집값이 5년 안에 2배로 오를거라고 예측했을땐 모두가 나를 비웃었다. 하지만 시장은 민주적이지 않고 또 다수결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2014년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취임과 함께 디플레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고 집값은 상승세로 돌아섰다. 내가 구매한 주택은 3년간 정확히 55% 상승했고 난 아직 상승세가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부지런하지만 멍청한 김수현 수석과 컴플렉스에 사무친 김현미 장관의 거듭된 띨띨이 정책 덕에 서울시의 주택공급은 30년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통화정책은 디플레를 넘어 인플레를 향해 가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상승세는 지난 10년 중 가장 견고하다. 해외 여행객 수는 2009년부터 단 한해도 빠지지 않고 증가하여 8년간 2.35배 증가했는데, 안해도 되는 여행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집에 돈을 덜 쓸까. 집값은 내 이전 전망보다도 더 크게 오를 것이다.

이 전망을 바탕으로 나는 집을 하나 더 샀다. 집값이 이정도 올랐으니 빠질 것이라고 우기는 인터넷 철부지들의 댓글과 기자들, 그리고 짝퉁 전문가들의 말을 듣지 마라. 전망은 맞을 수도, 때론 틀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자기가 왜 틀렸는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은 들을 가치가 없다. 본디 패배자들의 더 목소리가 큰 법인지라 인터넷과 신문에선 그들의 주장이 더 크게 들리지만 기억하라. 시장은 민주적이지 않다. 다수결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라면 마세라티가 티코보다 싸게 팔렸을 것이다. 가격은 대중의 요구가 아닌 욕구에 의해 정해진다. 루저들이 입으로 뭐라고 머라고 떠들어대든, 그들에게 해외여행을 다닐 돈이 있고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면 비싼 월세를 낼 세입자는 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집, 당장 사라.

2017. 11. 16.

대한민국 외교, 또 낙제

* 미국대통령이 25년만에 한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 트럼프는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아무런 메시지를 주지 않고도 감언이설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을 뿐,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약속해 주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고 문재인은 트럼프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이를 두고 WSJ은 한국은 못 믿을 파트너라고 평했다.

* WSJ의 판단은 정확했다. 트럼프는 유사시 전략적으로 중국을 봉쇄하는 포위망에 한국이 참여해 줄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이 메시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이라는 문구에 함축되어 있었다. 촌뜨기들이 외교를 담당하는 통에 우리 정부는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이 문구를 공동 선언문에 포함해 발표했다가 후에 얼버무리는 촌극을 벌였다.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혼자 박수치는 추태를 부려 시선을 끈 한국 외교계의 개그담당 김현철 경제수석은 "공동 선언문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주어가 미국이므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라며 2차 개그를 시도했다. 결혼식에서 주례는 신랑신부는 서로를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라고 물었고 신랑은 큰 소리로 네! 라고 대답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신부 김현철은 기자회견을 열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신랑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답한 셈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는데 이 빌어먹을 해프닝은 우리에게서 너무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 의전은 개판과 굴욕의 연속이었다. 한국 대통령은 트럼프를 공항이나 청와대에서 맞이하는 대신 평택 미군기지에서 예방하는 파괴적 의전을 선보였다. 미군 기지는 국제법상 대사관 처럼 상대국의 관할지역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다. 아무 이유없이 아관파천식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니 이는 파격 보다는 파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또 한번 의전 굴욕을 당해야 했다. 사전 조율에서 트럼프의 dmz를 방문을 관찰시키지 못한 문재인은 정상회담 첫날, 떼를 써서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일정을 잡았지만 트럼프는 기상상태를 핑계로 출발한 지 10분만에 돌아왔고 문재인은 꼭두 새벽부터 1시간이나 먼저 가서 기다리다 바람맞았다. 청와대는 국가 수반이 자국 영토에서 바람맞은 이 초유의 사건을 애써 축소하려고 들지만 이게 가려질 일인가. 유치원 선생님들도 소풍가기 전 날에 일기예보를 확인하는데 정말 실무자들이 안개때문에 대통령을 바람맞게 했다면 모가지를 날릴 일이다. 또 국회연설 일정이 촉박했다면 더 이른 시간에 미리 출발 했으면 될 것 아닌가. 바보 아니고서는 다 아는 일이다. 이는 결국 미국의 의중과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한국 측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미국은 중지를 펼쳐 화답한 셈이다.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또 최소한의 성의와 함께.

* 유일한 성과라면 한국이 개발할 수 있는 미시일의 탄두 중량의 제한을 해제해 준 것과 미국의 전략무기를 판매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둘 모두 의미있는 선물이지만 25년만의 국빈 방문이라는 외교적 이벤트에 비해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마저 한국은 답례로 뭘 주지도 않았다. 강대국들도 돈주고도 못 구하는 미 전략무기를 판다는데 우리가 "사 주는" 것인가. 미국이 "팔아 주는" 것이지. 통상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가 기초 상식인 국제 외교계에서 파격을 거듭하는 천둥 벌거숭이 행보는 실제 선물에서도 들어난다. 국빈만찬 후 한국은 트럼프를 포함한 참석자들에게 돌솥과 놋수저 세트를 선물했다. 반대로 미국의 국빈만찬에서 트럼프가 리바이스 청바지를 줬다면 어땠을까. 한 네티즌은 "금수저에게 돌과 놋은 신기할지도"라고 평했지만 우리나라 흙수저들도 집들이 선물로 돌솥과 놋수저 한짝을 받으면 얼굴을 붉힌다. 이번 정권을 마치 종교처럼 여기는 일부 20대 여성들은 이런 똥센스를 적극 옹호하는데 부디 그들이 결혼할 때엔 혼수로 혼과 얼이 가득 담긴 돌솥세트 하나 덜렁 받길 바란다. 참고로 지난 러시아 순방때는 18세기 조선 보검을 돌려준 푸틴에게 답례로 종로에서 산 대나무 낚싯대를 줬다. 이를 기획한 것이 탁현민이라는데 그는 이런 선물 고르는 센스로 어떻게 여중생을 꼬셔서 섹스를 했을까?

* 언론은 트럼프의 방일과 방한을 비교하며 우리가 대일 외교전에서 앞섰다는 정신승리에 눈물겨운 노력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정 반대다. 한국이 찬밥 신세라면 일본은 햅쌀밥이다. 지금 백악관의 실질적 퍼스트 레이디는 이방카지 멜라니아가 아니다. 이방카는 아버지 만큼이나 사회적 영향력과 인맥 자금력을 갖춘 유력 인사고 멜라니아는 영어도 잘 못한다고 놀림받는 트로피 와이프 아닌가. 이방카를 일본에서 2박 3일 일정을 소화한 반면, 한국에는 1박 2일 일정조차도 오지 않았다 . 그 시간에 그녀는 집에갔다가 나중에 인도로 향했다. 미일 관계는 가츠라-테프트 조약을 맺은 이래로 가장 가까운 데 비해, 미국에게 한국은 인도랑 묶어서 도매금으로 처리해야 하는 못믿을 파트너 일 뿐이다. 잘 웃지 않던 멜라니아가 자신을 환영하는 한국 여고생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고 한국 언론은 "급식외교의 쾌거"라는 손발 오그라드는 타이틀을 붙였는데, 기자들이야말로 급식이나 좀 더 처먹어라. 미국에선 입만 열면 발음 괴상한 모델이라고 조롱받고 일본에선 친딸도 아닌 이방카가 퍼스트 레이디 행세를 하는데 웃을 일이 뭐 있었겠나. 멜라니아가 웃다 입꼬리가 찢어지든 배꼽이 빠지든 이방카가 빠진 자리에 퍼스트레이디 외교를 펼칠 기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 한일간 가장 다른 점은 회담 이후의 결과다. 미국의 이번 아시아 순방 아젠다는 두가지, 무역 적자 해소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이었는데 트럼프의 정치적 목표는 아시아 국가들의 약속 보따리들을 모아 워싱턴에 풀어놓으며 지지율 반전을 노리는 것 이었다. 외교가 뭔지 모르는 급식들, 아니 이유식들은 정상회담 결과가 대통령끼리 만나 몇시간 쑥덕쑥덕 회의해서 나오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두 정상이 만나기 전에 이미 구체적 합의가 끝나고 정상들은 발표만 하는 얼굴마담 역할만 하는 것이다. 일본은 트럼프의 두 의제에 대해 완벽하고 가장 적극적인 답을 내놓았다. 두 나라의 정치 외교 군사 기술 산업 등 각 분야의 관료 실무진들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면 한국은 무기분야 외에는 아무런 합의를 내지 못했다. 결국 국방부 외에는 미국과 제대로 소통하는 부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트럼프 국빈방문에 있어 대한민국의 외교는 또 한번 낙제점을 기록했고 그 책임은 강경화 장관과 외교부에 있다. 강 장관은 만찬메뉴 선정에서부터 인도-태평양 구상 해명 기자회견까지, 외교부의 손을 벗어나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고 투덜대지만 그건 애초에 본인이 비서 이상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모질이 촌뜨기 들에게 외교 상식을 가르치고 고삐를 죄는 게 그들의 일이다. 그 일을 못하니 무능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2017. 11. 13.

왜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은 줄어들지 않는가?

청년 실업은 경제성장이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패를 세계적 문제로 승화하는 이들에게 차가운 물 한잔을 권한다. 경제성장은 인당 GNI가 1만불이 넘으면 주저앉기 마련이고 3만불이 넘으면 대체적으로 3%에 수렴한다. 전 세계가 다 그런데 뭔놈의 저성장 고실업. 게다가 외환 위기 이래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대로 안정적이었고 지난 5년간 취업자 수는 155만 명이 늘어나지 않았나. 남유럽 국가나 타 신흥시장과는 달리 한국에서 고실업은 일어난 적 없다. 일자리 수만 두고 보면 우리나라 전체의 고용시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 실업은 오로지 청년들만의 문제고 전반적 경제 상황과는 무관하다.

물론 청년실업 데이터를 보면 그 전망은 장미빛 보다는 똥색에 가깝다. 장미에서 추출한 향수 원액을 짙게 농축하면 똥냄새에 가깝다지만 이 숫자는 그냥 똥이다. 정부 발표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10-30대 근로자는 고작 2만여 명이 증가했는데, 50세 이상의 노동자는 무려 151만 명 증가하여 사실상 지난 5년 간의 취업시장을 50-60대가 독차지한 것이다. 2 대 151. 이런 스코어는 20대가 60대 할배들과 농구시합을 해도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쪽이라니. 이럴수가. 이렇게 대한민국의 고용시장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고 그 결과는 아버지의 승리로 귀결되는 모습이다. 기업들이 노쇠한 아버지를 선호하며 젊고 패기 넘치는 청년들을 외면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벌건 대낮의 태양 만큼이나 자명하다. 바로 청년 노동자들이 밥값을 못한다는 것.

92년생 지영씨를 고용하면 기업이 매 달 250만원의 생산성을 낸다고 치자. 그런데 그녀의 월급이 200만원이라면 기업은 지영씨를 열 명 스무 명 뽑는다. 노동시장에서 평균연봉이 올라가든 추가 노동자의 생산성이 낮아지든, 그 둘이 같아질 때 까지 뽑는다. 왜? 돈이 되니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란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현실에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을 고용해서 투입해봤자 월급을 뽑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물론 반대로 생산성 만큼의 월급을 준다고 하면 92년생 지영씨는 기분 나빠하며 면접장을 박차고 나갈테지만.

그러나 거시적으로 이런 실업은 장기간에 걸쳐 유지될 수가 없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물건이 안 팔리면 가격이 내려가고, 그러면 수요가 증가해 수급이 맞게 된다. 고용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실업이 높아질 경우 임금이 내려가면서 기업의 고용 수요가 늘고 따라서 실업도 해소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균형점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경기가 불황일땐 단기적으로 실업률이 높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청년 실업은 장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경제는 불황과 거리가 아주 멀다. 청년들이 구직난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을 겪고 있으니 청년들은 직업을 못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 구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의 핵심 질문은 왜 젊은 저숙련 신입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아들이지 않는지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매몰비용. 현재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세대는 약 70%는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용의 85%를 담당하는 중소기업 일자리의 상당수는 굳이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하위권 대학의 졸업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인기가 없는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자신의 4년 이라는 시간과 5천만 원이라는 등록금 투자가 취업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용만 보면 1류 대학이나 하위권 대학이나 동등하지 않은가. 본전 생각이 자꾸 떠올라 취업 눈을 낮추지 못하는 것이 아 아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투자에서 고작 수백만원의 손실에 손절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인데 하물며 20대의 전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 졸업장을 손절하겠는가.

두번째, 캥거루 족의 증가. 굶어죽는 대신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를 받아들여야 할 청년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고학력 실업난이 심했던 조선후기에 허생의 마누라는 고학력자 남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나가서 상것들 처럼 밭이라도 갈라며 집밖으로 쫒아냈다. 허모씨(28세, 후암동, 고시생)에게 생활비를 대주는 부모가 있었더라면 그는 계속해서 실직자로 남았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처럼 자녀가 늦은 나이까지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며 손벌리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의 청년 실업률은 EU 내에서 가장 높다.

세번째, 높아진 눈높이.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단군 이래 가장 잘 먹고 잘 자란 세대다. 1990년대 강남의 초등학교 교실엔 영어를 할 줄 아는 학생이 하나 있을까 말까 였는데 이젠 시골 초등학교에도 원어민 선생님이 들어온다. 그들은 70-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놀면서도 대학만 졸업하면 꿀빨면서 취직하지 않았냐며 부러워하지만 그 시절엔 바나나는 부잣집 애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고 고등학생들은 교련복을 입고 전직 군인 교사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군사교육을 받는 부조리를 겪었다. 그렇게 자라 대학에 가면 학자금 대출 이런 혜택조차 없어서 부모가 소와 땅을 팔아 학비를 대야 했고 그 대학을 졸업해 취직하면 헝가리나 멕시코 노동자들과 엇비슷한 임금을 받았다. 그게 부럽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구로공단이나 동남아로 가시라.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이 가장 호화스러운 삶을 살 수 있던 것은 본인들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고숙련 고임금 노동자인 부모들이 그 모든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회사로 치면 이제 그들은 부장의 월급으로 놀고먹다 신입사원의 연봉을 벌기위해 취직을 해야한다. 평생 강남에서 자란 20대는 강북으로 쫒겨나는게 당연한 일이고 아부지 카드로 해외여행 다니던 아들은 이제 부산으로 피서 가는 일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곱게 자란 이 캥거루들은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세상이 부조리해서 그런거라며 투덜거리기를 택한다.

따라서 50, 60대들이 취업시장에서 20대들을 누르고 완승을 기록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상대적으로 아들딸 보다 학력 수준이 낮은 아버지 어머니들은 취업시장에서 눈높이를 높일 일이 없다. 게다가 뒤를 봐주는 부모가 있는 청년과, 부양해야할 가족이 주렁주렁 달린 부모 중 누가 더 절박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가난한 개발 도상국에서 태어난 5060대는 남유럽 선진국 수준으로 자란 2030대가 꺼리는 직업을 기꺼이 택한다. 물론 아들과 아버지가 똑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지는 않지만 위와 같은 과정을 거처 하청업체는 신입사원을 뽑는 대신 거래처 부장을 더 싼 연봉에 모셔오거나 아줌마 영업사원을 뽑는 것이다. 155만개 일자리 중 151만개를 휩쓴 실버 세대의 신화는 이렇게 씌여졌다.

나는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청년들이 그걸 못 견디는게 나쁘다는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쓸모없이 상사 눈치를 보며 야근하는 비효율적 문화는 하루바삐 없어지는게 좋고 대졸 청년들이 졸업장을 찢어버리고 고졸자와 외노자와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것이 옳다는 소리도 아니다. 나는 선악에 대해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석해 볼 뿐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기대와 현실의 불균형에 있다. 모두들 세계 일류 국가들과 경쟁하는 삼성 현대 LG SK를 바라보며 대학 학비를 대고 미래에 투자하지만 그들이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미미하다. 대부분의 고용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대기업과는 달리 이들 중소기업은 동남아 후진국과 경쟁하고 있고 자영업의 노동생산성은 OCED 최하위를 두고 박터지게 싸우고 있다. 여기서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는 정치와 여론이 결정할 문제이다. 노동 집약적 산업과 동남아 스타일에서 탈피히여 중소기업들의 생산성을 강화하든 5060대가 늙어 죽을때까지 기다리든, 미래에 어떤 길을 택할지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오늘날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실상부터 알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인정하기 싫을 만큼 불편하고 시선을 맞추기 어려울 만큼 어글리 할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