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위의 예시는 집값이 무한히 오를경우의 이야기고 빠질때 어쩔거냐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집은 땅 위에 짓는다. 그리고 공급이 한정된 생산요소인 땅 위에 짓는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은 인류 문명 자체가 하락한다는 소리와 같다. 혹은 인류는 잘 사는데 한국만 망하든가. 그게 걱정이라면 당신이 빚을 내 집을 사든 말든 별 차이가 없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문제니까. 좀 더 아는척 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도 디플레에 빠질거라고 한다. 예전 글에서 밝혔듯이 일본은 정책적으로 디플레를 일으킨 것이며 우리의 상황은 일본과 매우 다르다. 단지 가까이 붙어있단 이유만으로 우리도 디플레를 겪을거라고 믿는 다면 되려 대한민국이 공산국가로 변할거라고 전망해야하지 않나. 우리랑 가까운 나라들 중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더 많으니까.
2017. 9. 21.
부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혹자는 위의 예시는 집값이 무한히 오를경우의 이야기고 빠질때 어쩔거냐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집은 땅 위에 짓는다. 그리고 공급이 한정된 생산요소인 땅 위에 짓는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은 인류 문명 자체가 하락한다는 소리와 같다. 혹은 인류는 잘 사는데 한국만 망하든가. 그게 걱정이라면 당신이 빚을 내 집을 사든 말든 별 차이가 없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문제니까. 좀 더 아는척 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도 디플레에 빠질거라고 한다. 예전 글에서 밝혔듯이 일본은 정책적으로 디플레를 일으킨 것이며 우리의 상황은 일본과 매우 다르다. 단지 가까이 붙어있단 이유만으로 우리도 디플레를 겪을거라고 믿는 다면 되려 대한민국이 공산국가로 변할거라고 전망해야하지 않나. 우리랑 가까운 나라들 중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더 많으니까.
2017. 9. 15.
합리적 성주/강서구 주민과 이기적인 대중들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성주 지역민들과 장애학교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한 비난이 거세다. 인터넷 기사를 클릭하면 다 하나같이 "지역이기주의의 추악한 단면" 이라는 투로 비난하는 아무 생각이 없는 기자들의 글 아래, 그 지역 주민들을 혹독하게 비난하는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만약 저들이 댓글을 저장할 서버 저장장치를 만드느라 땀흘려 고생하신 엔지니어들과 기계의 감가상각을 떠올렸다면 댓글달기 전에 과연 내가 정당한 주장을 하는 건지 생각이라도 했을텐데.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사드는 안보에 관계된 자산으로 그 혜택은 온국민이 동등하게 누리고 장애우를 부양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니 당연히 사회 전체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인들은 모두가 누리는 혜택의 비용을 소수인 특정 지역 주민에게 청구하고 있다. 그건 다수가 우르르 몰려가 소수를 삥뜯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깡패나 다름없는 짓을 저지르면서 거리낌이 없는 저 무리의 행태를 보면 사이코패스와 매우 유사하다.
또 엄밀히 따져보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트리고 가련한 장애우 부모들을 무릎꿇린건 자기동네에 사드와 특수학교 설치를 반대하는 저 주민들이 아니라, 저 둘을 내심 혐오시설로 취급하는 온 국민의 인식이다. 자칭 안보 1번지라구 뻐기고 다니는 강남구민들이 성주로 우르르 내려가 "여기가 국가안보의 성지로군요!"라며 땅과 집을 사들인다면, 그리고 온 국민이 장애학교를 훌륭한 주민편의시설로 여긴다면 당장이라도 해당 집값이 뛸 테니 지역주민들은 "유치를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사비를 털어 축제라도 열 것이다. 당신네들이 사드와 장애학교를 꺼림칙하게 여기는데 저 주민들이 왜 이 시설들을 반기겠나? 사회의 인식이 그모양인게 과연 주민들의 잘못인가? 댓가없이 집값 땅값이 수천만원 떨어지는 걸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지 않았다고 인간 말종으로 매도하는 것은 정당한가?
일부 사람들은 사드는 해롭지 않고 장애학교는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며 주민들을 바보취급하지만 그러는 사람들이야말로 두개골 안에 뇌 대신 핑크색 브로콜리를 담고 다니는 진짜 바보다. 그렇게 무해하면 자기 동네에 설치하잔 소리는 왜 안하나? 게다가 유해하고 말고를 떠나 설치하는건 내 자유다. Not in my backyard because it is MY backyard, 공공시설을 지으면서 지자체의 의견을 무시하는 건 합당한가? 아무리 해가 없더라도, 그게 아리수 수돗물이든 미국산 쇠고기든 수십개를 먹어야 영향이 있다는 살충제 계란이든 뭐든, 내가 싫으니 싫다는 건데 왜 제3자들이 괜찮다며 내 턱밑에 억지로 들이대는가. 자기나 실컷 즐길 것이지. 특히 조희연 교육감은 장애인 교육은 양보할 수 없는 문제라며, 독박 쓰기를 거부한 주민들을 쓰레기로 몰아간다. 저새끼는 왜 남의 동네에서 지랄하는가? 그게 그리 급했으면 자기네 집에 지으면 되지 않나.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이면 아무 동네나 쳐들어가서 지멋대로 해도 되는건가? 대개 정의라는 탈을 쓴 괴물들이 가장 많은 폭력을 저지른다.
우리는 자신의 니즈는 정의로, 타인의 욕구는 더러운 탐욕으로 매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게다가 자기들은 철저히 이기적이면서 남보고 이타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정신병 걸린 레밍들의 무리 한 가운데에 있다. 만약 성주/강서구 주민들을 비난하는 댓글들 통계를 내서 가장 많이 서명한 동네에 저 시설을 배치하기로 한다면 댓글란은 하루아침에 깨끗해질 것이다. 그제서야 저 주민들이 사탄의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보통 사람들이고 우리도 저들 만큼이나 이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고. 성숙한 시민 시회라는건 남이 사는 동네에, 나조차 기피하는 시설을 지어놓고 그냥 참고 살라고 윽박지르며 여론몰이로 조리돌림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무식한 미개인들의 방식이다. 공공의 이익을 핑계로 소수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마우 부당하다. 그런 공리주의적인 관점이야말로 생산성이 낮은 약자들을 억압하고 학살해 온 가장 사악한 사고방식 아닌가. 부득이하게 국가의 이익을 위해 지자체가 원하지 않는 시설을 배치해야하는 경우라면 마땅히 그에 대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 옳다.
어쩜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 기자와 정치인들이 단 한마리도 없을까.
2017. 9. 11.
전세가 없어지지 않는 진짜 이유-미개한 정부와 현명한 시장
많은 사람들이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이고 사회발달과 함께 없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평균 전세액은 사상최고가를 경신하며 여전히 월세보다 두배는 더 많은 계약방식으로 없어지기는 커녕 더 흔해지고 있다. 전세가 없어질거라고 부르짖었던 사람들은 머쓱해하며 집값 상승이 재개되어 그런거라고 변명하지만 어디 그런가. 집주인이 집값 상승을 바라보고 전세계약을 한다면 세입자는 집값 하락을 바라보고 전세를 계약한다. 아니고서야 세입자는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을테니까. 상승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가 하락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를 만나 거래를 하는데, 집값이 올라갈거라 믿는 사람이 많아 전세가 늘어난다는 말은 이 계약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주장이다. 그리고 그 특성을 이해하면 우리 사회에서 전세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저 크로마뇽인 같은 정부가 현대인으로 진화하기 전 까지는.
전세란 한마디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지 않는 대신 집을 담보로 잡고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거래다. 따라서 전세금을 결정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월세, 시장금리 그리고 담보가치인 집값.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월세율과 시장금리이고 집값은 전세가가 주택가격의 70-80%을 넘지 않는 이상 이 거래에 별 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월세가 동일할 경우 한국은행이 시장금리를 내리면 전세 가격은 올라간다. 같은 원금으로는 월세를 보충할만한 이자를 못 받기 때문에 원금을 더 받아서 맞춰야 하니까. 따라서 전세금의 트렌드와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비교해보면 거의 동행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집주인와 전세입자는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고 맡기는 대신 이런 복잡한 계약을 할까? 집주인이 전세를 놓는 대신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고 월세를 받는다면 더 큰 돈을 벌수 있다.(전월세 전환률 4%-은행 대출이자 3%) 물론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가 나쁠 것이 없다. 목돈을 은행에 맡겨봤자 2%의 푼돈만 받는데 비해, 4% 월세를 내야하니 얼마나 손해인가. 따라서 전세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럼 애초에 집주인은 왜 은행으로 가지 않는가?
왜냐하면 애초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시스템이 미개했던 시절, 은행의 대출은 일부 특권층에게만 열려있었고 이 시스템에 접근하기 위해선 연줄이 필요하기도 했다. 선진화 된 금융시스템이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대출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현대의 언어로 말하자면 전세는 주택담보 p2p 대출인 것이다.
물론 이 시스템은 중앙화 된 효율적 금융 시스템이 있다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접근 가능하며 공정한 금융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 정부가 환율을 묶어둔 많은 개도국에서 달러 암시장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처럼, 정부가 시세를 무시하고 시장에 입김을 가하면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공정한 시장을 창출해 낸다. 전세가 없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미 사람들은 서로서로 집의 담보가치를 70-80%까지도 인정해주는 데 비해, 정부는 은행이 주택담보가치를 40%까지만 인정해주라고 지시했다. 참고로 파산하기 직전의 그리스 채권의 잔존가치가 이보다 더 높았다. 그럼 어떤 집주인이 자기 집을 망해가는 나라 국채수준으로 취급하는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겠는가? 게다가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대출문턱을 조이고 있다. 다주택자들은 부자고 그들이야말로 부도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을 올리는 비효율적 시장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생하는 전세시장을 집어 삼키겠는가. 이는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는 일 보다 더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정부 자체도 전세가 없어지길 원하지 않는다. 나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므로 국가부채가 늘어난다는 것은 국가자산이 동시에 늘어난다는 것인데 금융원시인들은 대개 부채라는 차변만 보고 대변은 읽지 않는다. 그런 미개인들의 집합인 정부는 무턱대고 부채가 안 늘면 손뼉치고 좋아한다.(그들이 지향하는 세계는 부채가 없던 고조선 혹은 지금도 없는 보츠와나 같은 사회인가보다) 그런데 모든 전세를 금융시스템으로 편입하면 집주인들의 부채가 하루아침에 500조가 늘어나므로(동시에 세입자들의 자산도 500조 늘어나지만, 우리는 대차대조표의 왼쪽을 볼 줄 모르는 반푼이들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나라가 망한다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조차 전세가 없어지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전세는 멍청한 정부가 만들어 낸 공공시스템이 제 할일을 하지 못해 사람들끼리 스스로 만들어 낸 효율적 시스템이다. 범죄가 끊이지 않는 도시에서 경찰이 나서지 않으면 시민들이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하는 것 처럼 전세는 주택시장의 금융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났다. 전세 시장은 금리와 월세 주택 가격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영하며 세입자 집주인 모두에게 이익을 줄 뿐 아니라 멍청한 정부까지도 지속되길 원하는 시장이다. 효율을 무시하는 시장은 언제나 도태되는 법이다. 전세 시장은 정부를 비웃으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 참고로 집값상승에 대한 기대는 금리에 반영되지만 복잡하니 넘어가자
**이 외에 2차효과도 있으나 역시나 복잡하니 넘어가자
2017. 9. 10.
살인자의 기억법: 감독의 머리가 설현의 몸매보다 좋았어야
2017. 9. 7.
대한민국 외교점수: 낙제
* 문재인의 베를린 선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흉내낸 것이지만 그 결과는 명확하게 달랐다. 김 전 대통령의 선언은 북한의 우호적인 반응과 교류를 이끌어 낸 반면 이번 선언은 당사자 북한 뿐 아니라 우방국들에게까지 비웃음을 삿다. 선배가 여자친구에게 고백했을때 먹힌 세레나데를 그대로 흉내내어 불렀지만, 잘못된 시점에 잘못된 대상에게 잘못된 노래를 불렀다. 외교 담당자들이 통채로 잘못된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 유엔 봉사기구에서 잡일하다 외교부 장관이 된 강경화 장관은 외국 정상들과 전화통화와 방문일정을 잡는 비서역할만 할 뿐, 실질적 외교 채널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은 점점 북한의 핵에 덜 공격적인 멘트를 내놓는데 비해, 우리의 우방인 미국은 노골적으로 한국의 대화기조를 조롱하고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이다. 21세기 신 냉전시대에 한국은 가장 위험하면서 취약한 고리로 전락했다. 외교전의 처참한 패배다.
* 안보 측면을 보자. 국군의 90%가 육군인데 이 조작을 통괄하는 국방장관은 해군출신, 합참의장은 공군출신이다. 게다가 안보가 긴급 사안이라면서 청와대는 아직 8개 군단장 자리 중 3개를 공석으로 비워두고 있다. 더욱이 국정원은 이미 대남 기관으로 전락한지 오래여서 북한 핵실험을 탐지하기는 커녕 북한이 중러에게 핵실험 계획을 사전 통보했는지 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 안보에는 구멍이 있다
* 그들의 한심한 현실감각을 보여주는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지난 7월, 베를린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청와대는, "사드문제에 대해 차갑던 시진핑을 문재인 대통령이 '끈질기게 설득'하여 '전향적인 태도'를 이끌어 냈다"고 자평했다. 그 때, 김현철 보좌관이 손뼉을 쳐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이에 대해 김 보좌관은 “회담이 끝날 때 중국과의 관계가 풀려가는 것을 보고 경제문제도 풀리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고 해명했다.(링크) 그 이후 두달간 북한은 ICBM을 두번 발사하고 수소폭탄을 실험하는 등, 그 어느때보다도 숨가쁜 시간을 보냈고 북중관계는 더욱 가까워졌으니 시진핑이 한중 회담에서 어떤 자세를 보였는지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문제는 시큰둥한 시진핑을 붙잡고 앉아서 자기 주장만 반복하는걸 '끈질긴 설득'으로 보는 청와대의 외교전략 수준과 단호히 친북으로 돌아선 시진핑의 태도를 '전향적'이었다고 해석하는 그들의 아마추어적 현실인식 수준이다. 이 무의미한 회담은 기본적 외교 에티켓도 모르는 촌뜨기가 환각에 빠져 상대 정상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으로 개그의 대미를 장식했다
* 현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절단을 대동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을 만나 대북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북한 핵에 대해 중국보다 더 우호적인 러시아를 만나면서 성과를 기대하는 현실감각도 문제지만, 당근도 채찍도 없으면서 만나서 조르면 뭐라도 줄거란 어리석은 믿음이 더 큰 문제다. 그런 멍청한 태도로 정상회담에 임하니, 모든 우방국들이 북한에 가할 경제제제의 강도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남한 혼자 뜬금없이 북러 경제특구 개발에 2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이나 검토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는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는 이기적으로 굴면서 다른나라보고 도덕교과서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미국은 인도주의적으로 우리를 도와야만 하고, 중국은 더 강한데도 남한을 존중하며 알아서 기어야하고 일본은 남한이 기분나쁠때 마다 계속 자존심 굽혀가며 사과해야 한다고 한다. 타인의 이익과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지능의 문제일까 극단적 편협함의 문제일까.
* 보수도 반성해야한다. 사실 문재인은 엉망으로 망한 대북문제를 계승해서 더 이상 망칠 것도 없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해 될것도 없다. 대북문제를 말아먹은 것은 보수다. 남한이 뭐라 하던 북중미 모두 콧방귀도 안뀌는 코리아 패싱은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시작됐다. 김정은 체제로 넘어가던 북한은 남한의 전쟁의지를 태핑해보기 위해 천안함을 격침시켰지만 남한은 북한의 소행이 확실하지 않다며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은 대놓고 남한 영토를 포격해 민간인 사상자까지 나왔지만 남한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남한이 아무리 얻어맞아도 반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북한은 남한을 졔끼고 대미전략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시점에서 국군 통수권자에게 전략적 조언을 해주어야 할 국정원장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은 서울시 체육회 부회장 출신의 원세훈이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자리에 안보 비전문가를 앉힌게 바로 이명박이다. 참고로 이명박은 국군 최신 전차 흑표의 엔진의 수주를 기술력도 없는 국내기업에게 주라고 지시해서 우리나라 기갑전력의 공백과 국방예산 낭비를 초래했다. 아직도 안보는 보수에게 맡기란 소리가 나오는가.
* 햇볕정책이 의미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시기는 이미 지나갔고 새로운 냉전의 시대가 도래했다. 박근혜의 개인적 목표가 그저 청와대로 돌아가 행복했던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것에 불과했듯 문재인 정부는 모든 것을 참여정부 때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듯 하다. 이런 노무현 오마주 정치는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만족감을 줄 지 몰라도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북한도 미국도 그리고 중국도 그 때로 돌아가기엔 너무나 먼 길을 왔으며 남한에겐 주변국을 강제할 힘도 없다. 아마추어들이 삼삼오오 앉아 자화자찬하며 셀카를 sns에 올리고 있는 동안, 일본은 멀어지고 미국은 안보 영수증을 청구했으며 북한은 우리의 코앞에 중지를 내밀었고 중국은 남한 기업의 팔을 비틀었다. 그 앞에서 대통령과 아마추어 외교라인은 왜 참여정부때 처럼 되지 않는가 자문하며 멍청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자연스레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정의당도 외교라인을 물갈이 하라고 주문하지 않는가. 예전에 유행했던 드라마 미생에서 주연을 맡은 고현정이 이런 대사를 했다. "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래선 안됩니다" 외교라인도 마찬가지다, 얼른 다 잘라라.
2017. 8. 20.
김수현 수석 저, 부동산은 끝났다. 서평: 멍부의 변명
어디서부터 비판을 시작해야할까. 인과관계는 엉망이고 시장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전무하며 (멍청한 사람들의 전매특허인) 자신의 소망과 전망를 뒤섞은 주장까지 모든게 엉터리라 비난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다만 부지런하게 국내외 데이터를 조사하고 참여정부 시절 정책의 흐름을 간결하게 정리한 것은 눈여겨볼 만 하다. 전형적인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의 일처리 답다.
전반적으로 그는 일관되게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며 온갖 통계를 들어 변명한다. 집값이 오른 것은 정책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글로벌 유동성 과잉 때문이라며 되려 한국의 집값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집값은 더 내려야하며(싸지만 더 내려야 한다?) 안정적이지만 버블이 꺼질때의 파장이 클 것이라고 경고한다.(버블이 아니다. 하지만 없던 버블이 꺼질 수 있다!) 이런 논리적 자가당착은 책 후반부로 갈 수록 더 극심해진다. 공급을 늘려야 가격이 잡힌다는 시장론자들의 접근은 잘못되었다면서도 서울에 집은 모자른데 공급을 늘릴 곳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모습은 블랙유머인지 멍청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 모두가 현 상황이 어떤지 데이터가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는데, 그를 무시한 과거의 실책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촌극이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자신의 실패를 가리기 위해 후임자들의 정책은 잘못되었다고 싸잡아 비난한다. 오세훈의 뉴타운 정책은 곳곳에서 소송과 반발에 직면하지 않았느나, 그리고 쫒겨난 철거민들을 어쩔 것이냐며 거세게 비판한다. 하지만 책이 출간된 지 6년이 지난 오늘, 부동산시장의 훈풍과 더불어 각종 뉴타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저자의 비판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굳이 신길 뉴타운의 소형 아파트가 520:1이라는 경이적인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거론하지 않아도 은평, 용산, 옥수, 미아에 직접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천명이 살던 열악한 판자촌 대신 만명이 살 수 있는 깨끗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을 두고 "서울시에 저렴한 거주지가 사라져서 문제다"는 요지의 주장을 펴는 대목에서는 모골이 송연해 질 지경이다. 이런 인간이 70년대부터 주택문제를 진두지휘했다면 청계천서부터 용산역까지 창녀촌과 판자촌이 가득했을것이다.
더욱이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지침이라며 하는 말은 더욱 가관이다. 부동산 신화를 믿지 말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집은 생활 수단이지 돈벌이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1+1=2를 이해할 논리적 사고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주장과 후술된 근거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외에도 "집은 과시적 소비재가 아니다", "집은 오래 썻다고 고치는 물건이 아니다", "집은 이웃과 동네의 일부이다.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자"는 지침에 이르면 과연 이사람이 정책입안자인지 종교지도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정부는, 특히 민주주의 정부라면 국민의 수요와 욕망에 맞춰 그를 만족시키는 정책을 수행해야한다. 국민의 욕망과 가치관을 개조하려는 시도는 신정일치국가나 파시즘 독재국가에서나 이뤄질 일이다. 마을만들기 운운하는 대목에서 군사정권의 새마을운동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비약이 아니다. 본인이나 판자촌에 살며 과시도 안하고 집도 고치지 말고 동네사람들과 "잘살아 보세" 노래나 부르며 살 것이지.
2차대전 초반 무패를 자랑하던 독일군의 기초를 마련한 상급대장 한스 폰 젝트는 이런말을 남겼다. "세상에는 네가지 유형이 있다. 그 중 멍청하고 부지런한 인간은 부하들과 작전을 위험으로 몰아넣으므로 당장 총살해야한다" 김수현 수석은 자료조사와 정책수립은 성실하게 수행하는 부지런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실패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줄 모르고 고집을 부리는 멍청한 사람이다. 그의 아둔한 머리가 그와 그 지지자들의 소망과 목표를 좌초시킬 것이다. 실제로 10년전 그의 멍청한 조언을 따랏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됐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사람들이 같은 베팅을 하고있다. 판돈만 두배로 올려서. 하지만 판돈을 올린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 아마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다. 멍청한 이들만 그것을 모를 뿐. 올바른 투자는 바보들과 같은 자리에 서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나의 결론도 그렇다. 집을 사라.
21세기의 시작을 부른 버블
많은 이들이 지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을 지목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 버블로 지목받은 자산은 그 거품이 꺼진 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이전의 고점을 회복했다. 1929년의 대공황 이후 미 증시가 같은 수준으로 돌아오는데에 29년이 걸렸고 2001 IT버블은 급격한 기술력과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15년이나 걸렀다. 일본 증시는 거의 30년이 지나도록 2/3수준으로도 반등하지 못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GDP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의 증시도 십수년이 걸려야 이전의 고점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18세기 툴립구근처럼 영영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버블자산들도 많다. 하지만 미국 부동산은 단 10년만에 모든 손실을 회복하고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이로 보아 2007년의 미국 부동산이 고평가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금융위기를 불러올 버블이었냐는 질문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 과연 무엇이 버블이었는가? 아마도 시장에 팽배했던 서구 금융시스템에 대한 이성적 믿음이 아닐까 싶다. 완전히 이성적인 시장에서는 가격이 아주 높거나 낮다면 항상 팔거나 사고싶어하는 사람이 존재해야하니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패닉장에서는 대개 유동성이 사라지는 liquidity cruch가 종종 일어난다. 신흥시장의 자산을 거래하는 투자자는 이 위험을 늘 감안하기 마련인데, 현대문명을 발달시킨 서구의 금융시장과 자산을 거래하는 투자자들은 이런 패닉의 가능성에 눈을 감아버렸던 것이다. 누구도 입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높은 교육수준과 합리적 시스템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돌아가는 서구의 시장에서 미개한 신흥국에서나 벌어질만한 일이 터지리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흔한 베어마켓이 패닉을 동반한 폭락으로 번졌던 것이다. 물론 거기엔 자신의 금융모델을 과신했던 서구의 오만함이 있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고.
위기가 번지기 시작한 그 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크게 변화했다. 죽어가던 월가는 재무부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자금에도 의존해야 했고 리만의 인수를 검토하고 메릴린치 지분을 늘린 한국의 자금도 시장안정에 일부 기여했다. 이제 금융 시장은 더이상 유럽과 미국의 헤드라인 뿐 아니라 중국의 시장동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으며 월가에서도 이제 아시아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인간승리의 아이콘 대신 마땅히 있어야 할 구성원들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시장 너머에서도 감지된다. 새로 늘어나는 GDP의 60%는 아시아 지역에서 나오고 있으며 2015년에 개봉한 쥐라기공원 4를 보면 공원의 오너와 개발팀장도, 그리고 수많은 관객들도 아시아 유색인종들이다. 20여년 전에 개봉한 1편에 비하면 얼마나 큰 변화인가.
흔히 역사학자들은 100년을 아우르는 가장 커다란 변화를 야기한 사건을 그 세기의 시작으로 정의한다. 현재의 사람들은 21세기는 911테러로 시작됐다고 하지만 , 이번 세기에 벌어진 가장 인상깊은 일이 기독교의 몰락이나 테러의 보편화가 아니라 서구의 헤게모니가 세계를 독점하는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라면 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번 세기의 시작을 2008년 리만의 파산으로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