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0.

살인자의 기억법: 감독의 머리가 설현의 몸매보다 좋았어야

스릴러 영화는 잘 맞는 퍼즐이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스릴러의 반전이란, 마치 반쯤 맞추다 뒤집어 다르게 맞춰도 맞물리는 퍼즐 같아야 한다. 즉 이제까지 영화가 a를 범인으로 몰아가다 갑자기 b가 범인이라며 관객을 놀라게 하려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풀어봐도 아귀가 맞아들어야 관객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 위화감과 어색함을 뭉텅이로 던져놓고 끝난다. 대개 머리가 나쁜 감독이 스릴러를 만들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가장 큰 설정의 구멍은 주인공 설경구에게 있다. 설경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자인 동시에 딸을 너무나 사랑하는 인간적인 아빠로 묘사되는데 이런 사이코패스이면서 동시에 휴머니즘이 가득한 캐릭터는 마치 영국식 중절모에 힙합바지를 입은 패션 만큼이나 난해하다.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정서장애로 남들 울 때 깔깔대고 웃는 주인공이 갑자기 딸 때문에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겠나.

또 설경구는 나쁜 놈만 죽인다는 자신의 철칙을 가진 연쇄살인마인데 왜 지난 17년동안 살인을 멈추다 재개했는지, 재개한 뒤 왜 희생자들을 젊은 여자로 바꿨는지에 대한 납득할만 한 설명 없이 갑자기 모든 살인을 설경구가 했을수도 있다고 몰아간다. 게다가 본인은 그걸 믿고 자살까지 시도한다.(뭥미) 이 외에도 담배가게 아가씨에 대한 설정이 증발한 것이나 딴 모순들이 가득하지만 뭐 그런건 다른 영화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수준의 오류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기억상실로 인한 영화적 연출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가 보여줬고 영화적 장치로 착한 살인자가 나쁜 살인자를 죽이는 설정으로는 미드 덱스터가 있다. 그 둘을 적절히 섞은 소재부터 출발하는 이 영화는 마치 싸구려 중국산 퍼즐세트 같다. 어떤 조각은 서로 맞지 않고 쓰이지도 않으면서 유난히 큰 조각도 있었다. 설득력 있는 반전을 보여주기엔 퍼즐조각이 충분하지 않아 뻔한 스토리로 흘러가고 만 영화이다. 액션 영화나 로맨스 영화였다면 차라리 나앗겠지만 스릴러 영화의 묘미는 관객이 등장인물들과 별개의 입장에서 같은 단서들을 가지고 같이 추리해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엉망인 설정 오류가 더욱 더 크게 느껴진다. 주인공의 딸 역할로 나온 설현의 몸매를 순간순간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을 보며, 만약 감독의 머리가 설현의 몸매보다 나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링크)

*   *    *

원작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 김병수씨의 입을 빌려 영화에 대한 감상을 추가한다.

어떤 감독이 나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겠다며 찾아왔다. 그의 말을 듣다 화가 났다. 이 작자는 보기에도 멍청하지만 실제로는 더 멍청하다. 그 쓸모없는 머리를 내리칠 둔기를 찾으러 가는 동안 나는 또다시 기억을 잃었다. 가장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다니. 내 알츠하이머가 그를 살려준 덕에, 그 감독은 덤으로 사는 인생 첫날에 하나의 문학을 학살했다. 재능은 좆도 없으면서 겉멋만 가득 든 영화감독들이 너무 많다. 그들 손에 희생당한 훌륭한 원작들은 더욱 많다. 하지만 나와 은희가 그 희생자 리스트 맨 위에 올라갈 줄이야. 그때 감독의 머리를 부숴 대나무 숲에 묻었어야 했다. 내가 못했다면 박주태라도 나섰어야 했다.

반드시 그랬어야 했다.

*   *   *

늦은 밤 아직도 화가 가시지 않아 한줄 더 적는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아이돌 가수가 롹을 한다고 할땐 죽일듯이 달려들어 욕하면서 스턴트맨/무술감독 출신의 멍청이가 스릴러 영화를 만드는 건 내버려둔다. 이 훌륭한 작품을 유치뽕짝으로 타락시키다니. 중3 학생이 팬픽을 써도 이보단 나을 것이다. 원작 소설은 깡촌의 수의학자 김병수씨의 입을 통해서 풀어내는 것이 위화감이 들 정도로 독자와 철학적 질문을 주고받는데, 그걸 한마디도 못 알아들은 이 무식한 아저씨는 결국 지 장기대로 이 소설을 주먹이나 주고받는 삼류 깡패스토리로 전락시켰다. 박찬욱 감독대신 이 저능아가 메가폰을 잡았다면 올드보이는 제목이 "친누나와 교실에서"정도 되는 포르노가 되었을 것이며 반전스릴러, 식스센스는 "꼬마유령 캐스퍼"로 개작되었을 것이다. 현실에서 입이 걸은지라, 글에는 욕을 삼가는 편인데 못참겠다. 씨발.

댓글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