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6.

엿같은 테러와의 전쟁

자신과 가장 가까운 지역의 정부들을 무너뜨려놓고 어찌 난민이 없길 바라는가. 그들은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기 위해서였다고 항변하나, 그렇다면 왜 그리도 많은 민중들이 IS에 가입하는가. 남의 나라 정부가 정의롭지 못하다며 그를 갈아치우기 위해 수많은 폭탄과 탄약을 퍼부은 이들이 난데없이 타국의 간섭을 거부하기위해 EU에서 탈퇴한다는 쇼를 벌인다.

테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전쟁을 일으킨 국민들이 테러를 비호하는 것에 조소와 경멸을 보낼 뿐이다. 남의 집에 벙커 버스터를 터뜨려 가족들을 몰살시킨 이가, 그 친척들이 자신의 도시에 폭탄을 터뜨렸다고 비난한다. 민간인을 타겟으로 하는 테러는 더럽다고 욕하지만, 어디 전쟁의 포탄이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는가. 당장 youtube에서 검색해봐도 테러보다 수십배 더 많은 민간인 살상 현장들을 지켜볼 수 있다. 그렇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군인보다 몇배 더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나는 너희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 싸이코패스 같은 이기심이 너무나 역겹고 적과 내 가족을 증오와 죽음으로 몰아가는 너의 무식이 너무도 혐오스럽다.

살인자들이 살인자를 욕하는 그 광기에 침을 뱉으리.

2016. 6. 25.

Brexit

으레 그렇듯이, 시장에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은(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지곤 한다. 바로 오늘의 브렉시트가 그랬다. 평화롭게 시작했던 아시아의 아침은 곧 패닉으로 뒤덮혔고 화면의 모든 차트와 상품가격들은 발작하듯 요동쳤다. 계좌의 손익보다도 더 큰 마음의 충격을 받았을 트레이더들은 멍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으리라. 불면의 밤을 보낸 런던/뉴욕의 친구들에게는 몇시간이 더 지나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    많은 사람들은 브렉시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니 시장이 금새 회복할 것이라고 말한다.(나 역시 진심으로 그러길 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브렉시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지 않은 미국의 2년 금리는 20bps나 하락했는데, 나는 적어도 지난 3년간 이런 충격을 본 적이 없다. 만약 모두가 대비하고 있었다면 왜 이런 쇼크가 오는가? 미국 이자율 시장은 또한번의 리세션을 예고하고 있었고, 이와같은 충격은 간신히 반등하던 레버리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주말동안 준비해 둔 시장 안정책을 내놓을텐데, 만약 조치들이 시장의 패닉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폭락은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    여로모로 지금의 사건은 2011년 여름과 닮아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영국의 EU탈퇴 모두 제도적으로 대비할 틈이 없던 상황에서 그 여파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터졌으며, 마침 경제는 매우 취약한 지점에 있었다. 하지만 리만사태처럼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리만은 근 10년간의 낙관론이 무너진 사고였고 은행시스템이 붕괴했다. 브렉시트는 그정도로 걱정할 사건은 아니다.

*    브렉시트가 더 충격적인 점은 조현증 환자마냥 분열된 영국의 맨얼굴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불과 2년전 스코틀랜드인들에게 UK에 남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잉글랜드인들은 EU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잔류를 원하던 스코틀랜드인들은 UK에 속한 죄로 EU에서 같이 방출되었다. 북아일랜드인들과 뉴햄프셔인, 런던에 거주하는 삼십대의 화이트칼라는 교외 농장에서 일하는 오십살의 블루칼라와 너무도 달랐다.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에 분노하고있고, 그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총리는 사임했다. 이제 스코틀랜드의 이탈을 어찌 막을 것인가. 그리고 불과 30년 전까지 소총과 사제폭탄으로 독립을 외치던 아일랜드인들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United" Kingdom의 시대는 끝났다.

*     흥미롭게도 영국의 통합과 분열의 역사는 그들의 흥망성쇠와 수명을 같이했다. 약 300여년 전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한 뒤, 그들은 전 세계를 제패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뤄냈다. 그리곤 제국을 유지할 힘을 잃게되자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시도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와 같은 현상은 영국 뿐 아니라 전 유럽의 문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분열했던 지역인 유럽(한때 독일은 약 1500여개 공국으로 쪼개져 있었다.)에서 크고작은 나라들이 이리저리 뭉쳐 (상대적으로) 소수의 근대국가들로 다시 태어나자 그들은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현재 21세기에 그들은 미국과 아시아의 부상에 밀려 점차 세계무대의 주연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분열이 시작됐다. 그렉시트와 브렉시트 외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신조어들이 생겨날까? 우리는 아마 EU에서 국가들이 이탈하는 것 뿐 아니라 국가에서 지방이 이탈하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그 선두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그 뒤를 카탈루냐, 바스크, 롬바르드 등이 따르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21세기는 분열의 시대가 될 것이며 잉글랜드인들은 오늘 그 첫 총성을 쏘아울렸다.

2016. 6. 6.

디케의 저울에 올려진 화투장

아침에 집을 나서며 어머니와 조영남의 작업방식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 현관에 서서 30분간 아야기하다 나왔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미술평론가 반이정씨의 논평이 있으니 이를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링크)

*     *     *

6월 4일, 검찰의 간단한 입장 발표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검찰은 "조 씨가 대작 화가인 송모(61) 씨에게 똑같은 그림을 배경만 조금씩 바꿔서 여러 점을 그리게 한 뒤 이를 고가에 판매한 것은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작 화가가 그린 그림을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판매한 것은 불특정 다수의 구매자를 속인 행위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중략) 조 씨는 검찰 조사에서 '팝아티스트로서 통용되는 일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으나, 이 사건이 불거지기 이전에는 조 씨가 자신을 팝아티스트라고 표현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이 인터뷰에서 검찰은 "화가의 그림"의 범주를 제멋대로 규정하고 있고 더 나아가 팝 아티스트 범위를 스스로 정의하고 있으며(스스로 팝 아티스트라고 한 적이 없으니 조씨는 팝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에 따른 법 집행을 예고했다.  

예술인들은 아테네와 법복입은 사람들 앞에 조영남을 방치했다. 다수의 신문 사설은 조영남을 비난하는 화가들의 인터뷰를 실었고 몇몇 미술인들은 '그는 예술가들의 고뇌를 욕보였다'고 성토했다. 그들은 조영남이 미웠을 것이다. 아마도 조영남같이 쉽게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아트테이너들 모두가 미울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사람들의 편견, 그리고 자기 내면의 감정들과 싸워가며 예고, 미대를 졸업하여 십수년간 작품활동을 이어와도 미술계 한켠에 자기 자리를 만들기 쉽지 않은 현실이 더욱 그들을 그렇게 몰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영남이 미워, 그의 화투장을 변호해주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무엇이 그림인가"를 논할 주도권을 (미술에 대해)가장 무식한 검찰과 대중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미술인들은 (조영남이 아닌)그의 작품들을 대신해 법원에 서서, "변기 하나 사다가 제목 하나 붙이고 출품한 마르셀 뒤상보단 더 작품제작에 관여했다"고 해주지 않았고, "라파엘로도 자기 작품에 조수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니, 그도 사기죄에 해당하는가."라고 반문하지 않았으며 "표현기법 뿐 아니라 소재선정과 아이디어같은 컨텐츠도 현대미술의 핵심인데, 왜 자기 손으로 직접 윤전기를 돌리고 표지디자인을 하지 않는 소설작가들의 책은 대작이 아닌가"라는 의문들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엇이 미술인지 (아무리 관대히 봐줘도)대충 5분에서 10분쯤 고민해 보았을 법조인들이 국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심지어 그런 고민을 해봤는지도 매우 의심스러운 대중이 여론몰이를 통해 미술과 화가를 통제하게 만들었다. 이제 모든 미술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그림이 합당한 미술인지 아닌지 법원과 SNS의 판결을 기다려야할 지도 모른다.(아마 일부 국회의원은 그림 뒷편에 조수의 작품 기여도를 명시하고 이를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에서 검증받는 '조영남법'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치가 집권하던 1937년, 독일 뮌헨의 호프가르텐 회랑에서 '퇴폐예술전시회'가 열렸고, 32개의 독일 미술관에서 압수한 650점의 미술작품이 전시되었다. 당시 나치는 올바른 미술을 정의한 뒤, 이에 어긋나는 모든 기타 현대 미술, 그리고 유대인 화가들의 작품을 '퇴폐예술'이라고 규정지은 뒤 이를 억압했다. 이 전시회에는 에드바르트 뭉크나 파블로 피카소같이 대중들에게 유명한 이들 뿐 아니라 막스 베크만, 막스 에른스트,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파울 클레, 케테 콜비츠처럼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38년 5월 31일에는 '퇴폐예술품 압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이 새 법률에 따라 베를린 중앙 소방서 마당에서 1004점의 회화와 3825점의 그래픽이 소각되었고 그 외에 규모를 알수 없는 상당수의 작품들이 은닉되거나 해외로 유실되었다.


예술계 인사들은 미술에 대한 평가를 제복입은 이들에게 위임했을때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해야할 것이다.


2016. 6. 4.

동물애호가들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

(나는 지난 30여년동안 여러 애완동물들을 길러왔으며 지금도 10년 넘게 강아지를 기르고 있다. 내가 지금부터 비판하려는 것은 극단적인 동물 애호가들이다)

낭만적인 꿈은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낭만은 때때로 크나큰 비극과 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진화한 인류인 '초인'들의 세상을 건설하려는 나치가 그러했고, 모두가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던 소련이 그 전철을 밟았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낭만적인 주장들을 현실적으로 검토해야하는 이유이다.

극단적인 동물애호가들이 바로 그 21세기의 히틀러와 스탈린들이다. 이들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내세우며 가장 빈곤한 인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으며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들이면서 자신들을 선하다고 믿는다.(역사적으로 학살을 저지르던 집단들은 대개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었다.) 이제부터 그들의 기막힌 무식과 신묘한 위선을 밝혀보자.

극단적 동물애호가들(동물 애호가들 중 일부겠지만)은 떠돌이 개나 고양이의 안락사는 인간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강하게 반대한다. 또한 닭, 돼지나 젖소등의 가축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육장의 환경을 개선해야하고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채식주의자로 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간과하는 것은,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이 지구 위에는 70억명의 인구가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개와 고양이의 안락사를 막고 그들을 모두 먹여 살리려면 빈곤층에 대한 생계지원과 의료복지 예산을 줄여야하고 소득세를 올려야 한다. 또한 지구상에는 약 250억마리의 닭과 총 약 30억마리의 돼지, 소와 양이 존재한다. 70억명의 인간이 총 300억마리가 넘는 가축들을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대량으로 죽어 자신의 터전을 가축들에게 내어주거나, 혹은 가축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 물론 가축의 수가 줄어들면 단백질원을 잃은 제3세계의 빈곤층이 몰살될테니, 인간이 죽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렇다면 육식을 끊고 채식을 하여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 또한 세가지 이유로 불가하다. 첫번째, 채식이 몸에 좋다는 통설과는 달리, 인간의 몸은 수백만년동안 동물성 단백질도 섭취하도록 진화해왔다. 채식은 식단 관점에서 일종의 편식이며, 영양 불균형을 가져온다.(대형 포유류가 없어 동물성 단백질원이 없던 오세아니아의 섬이나 남미에서 식인문화가 발달한 그 함의를 생각해보라.) 두번째, 채식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동물들을 죽여야 한다. 일례로 크리스틴 마인더스마라는 작가는 한마리의 돼지가 도축되고 나서 각 부위들이 어떻게 가공되는지를 추적했는데, 햄과 베이컨 뿐 아니라 샴푸, 립스틱, 치약, 의료약품 등 총 185개의 상품들의 원료가 되었다. 우리는 동물들을 먹는것 뿐 아니라, 쓰기 위해서도 계속 죽일수 밖에 없다. 세번째,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식물도 동물과 똑같은 생명체이다. 돼지 한마리를 살리기 위해 100그루의 밀을 먹자는 주장은 어떻게 나오는가. 포유류 성애자도 아니고.

결국 현재의 70억 인류가 굶어죽거나 동물성 단백질 부족으로 심각한 면역력 저하에 처하지 않으려면 300억마리가 넘는 가축들을 키워야 하며, 이 많은 가축들을 그림 같은 풍경에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둬 도축 가능한 나이가 되면 기계적으로 도축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동물을 먹는 인간의 수를 줄여야하니,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자살하지 않은 동물애호가들은 전부 다 무식한 위선자들이다.

여담이지만 영화제작장에서 동물들의 촬영시간 제한, 동물학대 처벌 등 유럽에서 가장 선진화 된 동물보호법을 도입한 것은 바로 나치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들은 유대인들을 절멸시킬 게획도 함께 입안했다. 나치는 결코 따듯하기만 하거나, 혹은 차갑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무서운 것은 내 옆의 동물을 나와 다른 인간들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는데에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정의롭다고 생각했으니, 힘을 얻었을 때 자신의 극단적 가치관을 망설임없이 관철시켰고 그 결과과 어떠했는지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에 남겨진 흔적들이 증언한다. 이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 중의 나치는 누구인가.

2016. 5. 29.

남성과 여성에 관한 사회적 진실

*     사람들은 흔히 남성이 강하고 여성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0세부터 100세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빈곤, 질병, 기아, 전쟁, 공포, 비만과 같은 모든 상황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생존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임신과 출산을 해야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종의 번식에 더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여성의 노화나 자연면역력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     남자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 어느 한쪽이 열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다. 남성은 수리적인 능력이, 여성은 언어적인 능력이 발달했다. 우리의 유전자는 임신과 출산을 못하는 남자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고, 귀한 자원인 여성은 보수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했다. 또한 남자는 길을 잘 찾고, 여자는 물체를 잘 찾는다. 일례로 길을 못찾는 여자를 보고 답답해하는 남성과, 바로 눈앞에 리모컨을 두고도 못찾는 남자를 보고 답답해하는 여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지능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여자와 남자는 다른 지능을 발달시킨 존재이다.(보통 지능이 낮은 사람이 IQ로 측정되는 단일지표를 신뢰하더라.) 따라서 "여자들은 머리가 나쁜가봐" 혹은 "남자들은 다 애같아"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     결혼은 각자의 조건을 보고 이뤄지는 일종의 M&A이다. 단지 우리가 그 과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환상을 가지도록 진화했을 뿐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왜 현재 대한민국에서 결혼시 남성의 경제적 부담이 여성에 비해 2배이상 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의 남초 현상은 아주 심각해서 90년대생의 경우 여자 100명당 남자 117명이 결혼시장에 뛰어든다. 여성의 가치가 남성에 비해 더 희소하니, 결합과정에서 남성이(혹은 남성의 부모가) 더 많은 돈을 부담함으로 가격차이를 메꿔주는 것이다.(따라서 남자들이 이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부당하다. 수요공급이 그렇게 된건 현재 결혼하는 여자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백번 양보하여 각자의 결혼은 사랑일지 모르나 통계적으로 남성이 더 많은 결혼비용을 대는 것은 전적으로 사회적 현상이다. 게다가 두 성간의 수요공급이 맞지 않을 경우, 돈으로 그 가치를 맞춰주는 현상은 흔하게 존재했다. Wedding의 wed는 원래 신부가 신랑에게 가져가는 지참금을 의미했다. 위생과 영양상태가 불결했던 유럽에서는 남성이 더 많이 죽어, 여자의 공급이 많아 여자가 돈을 부담했다. 반면 중세 유럽에 비해 위생과 영양상태가 훨씬 양호했던데다 전쟁도 거의 없었던 조선에서는 남자가 죽지 않아 초과공급이 되었고(자연상태에서는 남자가 더 많이 태어난다), 데릴사위-남자가 본가가 아닌 처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의 결혼문화가 발달했다.

*     이토록 한국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비가 어긋나는 가장 큰 이유는 80-90년대에 대거 이뤄진 낙태 때문이다. 군사정권은 경제발전을 위해 산아제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이것이 유교 전통의 남아선호사상과 맞물려 여아를 대거 낙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7년에는 출산 1건당 낙태 2.77건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국 80-90년대 학살에서 살아남은 (여자)생존자들이 수요공급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해 보상받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더 가야할 길이 멀지만)우리나라에서는 남녀평등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 가장 큰 두가지 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낙태로 인한 성비 불균형과 한국의 잘못된 자본주의 시스템 덕이다. 생물학적인 차이로 남자는 변동성이 큰 주식에 주로 투자했고 여자는 안정적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집에 주로 투자했다. 우리나라는 주주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가 아니기에(참조글: 주식의 적은 누구인가-오너가 죽으면 주식이 오른다) 주택가격이 주식가격을 크게 상회했다. 따라서 각 집안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강해졌고 부인이 남편에게 용돈을 받아다 쓰는 구조에서 여자가 월급통장을 관리하는 구조로 변화했다. 아마 주변에서 아버지가 주식투자해서 크게 돈을 날렸지만, 어머니가 이러저러한 투자로(혹은 주식투자를 말린 것 만으로도) 집안의 부를 회복한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았을 것이다. 만약 주식이 일반 물가상승률을 크게 상회했다면, 주식으로 큰 돈을 번 아버지들이 집안에서 큰소리 치고 어머니는 복종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참고로 우리보다 위의 두 사건을 더 심하게 겪은 중국의 경우,  남편이 요리와 청소를 한다.)

*     우리 사회에서 지겹게 반복되는 논쟁중 하나는 아마 출산-군대이슈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논란거리가 되지 못한다. 사회적 의무인 군입대와 생물학적 기능인 출산은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 없다. 만약 이를 인정한다면 여자들은 남자보다 평균적으로 7년을 더 오래사니 더 많은 의료보험료를 내거나, 노령연금을 더 많이 납부해야하는가. 더 근본적으로, 남녀평등의 목적 자체는 생물학적인 차이가 사회적인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데에 있다. 평균적으로 남성의 근력이 더 강한 것은 맞지만,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데 어떤 여성의 근력이 제약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그 여성보다 남성들에게 가산점을 주어서는 안된다. 출산과 군대를 비교하는 논리는 사회가 생물학적 차이를 차별로 만들 여지를 준다. 예를 들어 의사협회가 "진료행위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심한 일이니, 남자 의사만 뽑겠다." 라고 하거나, 기업체에서 "생리와 출산을 겪어야 하는 여자보다 남자 지원자를 선호한다."라고 주장하면 우리는 뭐라고 반박해야 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남녀평등의 목적은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     한국의 (일부)남녀는 서로의 가치관을 혐오한다. '한국여자들 된장녀야' 혹은 '한국 남자들 다 꼰대더라'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공범이다. 그 남자들을 그렇게 교육시킨 것은 그 어머니들이며, 그 여자들을 그렇게 가르친 것은 그녀들의 아버지들이다. 그들 양쪽 모두 "남자는 이래야한다/여자는 이래야한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성에 따라 한쪽을 택해서 표현할 뿐이다. 꼰대같이 구는 이유는 "남자"라서가 아니라 "한국인"이라서 그럴 것인데, "한국"여자가 그 꼰대 가치관을 지니지 않는다고 할수 있을까. 그 여자는 자기 아들이 커서 여자 가방을 들고다니며 데이트비용을 다 내는 것을 보면 길길이 화를 내고 날뛸 것이다. 이제 자기가 남성의 편에 서게 됐으므로.(반대도 마찬가지)

*     우리는 일처일부제를 절대적 선으로 여기지만, 이는 자연법칙에 어긋난다. 250만년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일처일부제가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기간은 지난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다수의 섹스파트너를 두도록 설계되어있다.(정자의 약 50%정도는 수정 능력이 없는 기형정자들이다. 이들은 수정은 못하지만 자궁 안에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정자들이 난자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기형 정자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인간이 여러 섹스파트너를 두고 임신경쟁을 펼쳤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일부일처제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제도이다. 하기사,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사회적 관습들-편두, 발치, 문신, 전족, 코르셋, 하이힐-을 강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     일부 여성들은 남자들의 "허세"를 싫어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여자들은(또한 남자들은) 상대의 허세에 쉽게 매료된다. 발음하다 혀가 꼬일 것 같은 이름의 시계와 뇌 용량보다 큰 배기량을 가진 차, 그리고 무게당 가격이 금보다 훨씬 비싼 명품들. 이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은 이 상품들로 부를 과시하는 허세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허세는 보편적으로 동물계에서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데 흔히 쓰는 전략이다.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는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지만, 암컷들을 유인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사자와 말의 갈기, 사슴의 뿔 역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수컷이 발달시킨,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관들이다.(즉 허세다.) 더 크게 우는 개구리와 귀뚜라미가 더 많은 번식의 기회를 가지는 것을 보면,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수컷의 허세는 매우 성공적인 유혹 기술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수억년동안 허세를 부린 수컷들이 번식했고 허세에 끌리는 암컷들이 자손을 낳았으며 인간도(그리고 우리도) 그 후손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타 호모사피엔스나 포유류들과는 다르게) 허세를 싫어하는 돌연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99.9%일 것이다.(아마도 0.1% 정도의 돌연변이가 존재하리라.)


*     *     *

(사족)
강남역에서 한 여자가 무차별 살인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녀의 죽음에 아파하고 애도하는 사람들과,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문득 예전의 가슴아픈 사건이 떠올랐다. 몇년 전, 부유한 지역 살던 친구의 누나가 납치된 뒤 살해된 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에 그녀가 희생된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추모행사를 벌여주지는 않았다. 되려 인터넷 댓글의 관심사는 그 납치된 여자가 얼마나 부자냐, 혹은 그당시 명품 가방 xxx를 들고 있어 당했다더라 정도 뿐이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또한 훨씬 잔인하고 명박하게 여성혐오 범죄를 일으킨 유영철 사건때도 그와 같은 일은 없었다.

위의 두 사건의 피해자는 부잣집 딸이었거나 매춘여성들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감과 추모를 얻지 못했다. 또한 사건이 강원도 양구에서 일어낫다면 추모행렬도 없었을 것이다. 강남역을 지나는 사람이 많기에, 또 피해자가 일반인이었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저리 많은 것이리라. 사람은 이토록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다. 여자들은 아랍세계에서 백만명의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파리에서 몇명의 희생자가 생긴 것에 더 공감하고, 남성들은 희생자가 자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여자들의 추모를 이해하지 못한다.(만약 살인범이 일본 극우주의자였다고 가정해보자. 남성들은 "여자가 살해당했다"라고 생각하는 대신 "한국인이 살해당했다"라고 받아들이며 추모에 동참해 일장기를 불사르고 있었을 것이다.)

추모에 참여하는 여성들도,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대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남성들도 모두 자기 자신이 선하고 옳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에게서 나는 '나와 다른 집단'에게 얼마나 무관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본다. 우리는 교감능력이 극단적으로 결여된 사람들을 보고 사이코패스라고 부르지만, 그와 같은 본성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

2016. 5. 25.

총재님 정신차리세요

한국은행 총재는 오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GDP집계에는 한계가 있으며 최근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으므로 이 지표가 0.1-0.2% 바뀌는게 과연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총재가 이와 같은 말을 꺼낸 이유는 아마 KDI의 훈수 때문일 것이다. KDI는 어제 GDP성장 전망을 대폭 하향조정하며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재는 기자들앞에서 위와 같은 말을 던졌지만 그 창 끝은 KDI를 향해 있다. 'GDP가 믿을만한 지표도 아닌데 그게 뭐 찔끔 변한다고 정책을 바꿔야하냐,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참견마라'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여러 글에서 말했듯이, 한국은행은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는 무의미한 조직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GDP를 신뢰할수 없다면 신롸할 만한 새로운 지표를 내놓지 못하는 한국은행이 더욱 못 믿을 조직이란 뜻이며, GDP성장률 0.1-0.2%가 의미없다면 총재는 왜 금리를 고작 0.25% 내리자는데 곤조를 부리는가?

저 조직이 정신차리긴 그른듯 하니, 아예 없애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농이 아니라 진지하게 꺼내놓는 말이다.

노조나 재벌이나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24일자 신문 1면을 통해,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를 독려하는 김종인을 강력 비판했다. 재벌들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문들이니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요새 회사를 망친 오너가들의 작태를 보면 과연 재벌이 노조보다 회사를 더 잘 경영할 능력이 있는가 재고해 볼 필요는 있다.

동양그룹이 망하기 직전 현재현 회장의 부인 이혜경씨는 그룹내 금융사의 자기계좌에서 거액을 인출했으며 한진해운의 자율협약이 발표되기 직전 한진의 오너가는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경제지(라고 쓰고 찌라시라고 읽는다)들은 재벌들이 대주주들 보다도 더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을 한다고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회사 지분을 5%도 가지지 않은 재벌이 어떻게 나머지 95%보다 더 책임감을 가지겠는가. 책임감 측면에서는 재벌보다 노조가 더 낫다. 그들은 회사가 망하면 몰래 주식을 매각하고 도망가지만 노조는 회사와 운명을 함께한다. 지난 5년간 경영위기에 처한 대기업이 대부분 재벌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차라리 노조가 경영을 맡는게 낫지 않은가.

주주자본주의와 주주회사를 표방하면서도 오너가 경영을 독점하는 정치모델이 한반도에 존재한다. 바로 북한이다. 이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은 민주주의 따르는 척 하지만 사실 오너가인 김씨 일가가 나라를 지배한다. 오너가의 경영을 옹호하는 저 경제지들은 사실상 북한의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내눈에는 그들은 빨갱이들이다. 왜 국정원은 저 빨갱이들을 가만 놔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