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3.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12만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을 추모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한 11만명의 민간인들을 추모한다.

시리아 내전에서 희생된 7만여명의 민간인 사망자들을 추모하며

2015년 앙카라 테러에서 스러진 100여명의 사망자들을 추모한다.


그리고 벨기에에서 희생된 30여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  *  *

지난 10년간 32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갈땐 하하호호 하며 신나게 먹고 노는 사진들을 올려대던 인간들이 왜 하루아침에 휴머니스트로 돌변하여 30여명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지 알수는 없지만, 나의 추모는 더 극적인 상황에서 더 고통받으며 더 많이 죽어간 이들에게 먼저 돌아가리라.

2016. 3. 20.

알파고와 등신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신문 방송은 인공지능의 미래가 어쩌고 하며 호들갑을 이어간다. 기자들과 비 전문가들이 쓰레기 글 더미를 쏟아내는 속도와 양은 충격과 짜증을 동반한다. 심지어 문학평론가에게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묻고 이를 1면기사에 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발생했다. 그가 인류사와 인간의뇌, 그리고 알고리즘에 대해 내 조카보다 아는게 뭐가 더 있단 말인가. (이쯤 되면 무식이 거의 광기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저런 멍청이들과 사느니 차라리 알파고와 대화하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어서 오는게 나을듯 싶기도 하다.

저런 멍청이들은 이 현상이 7천년 전 부터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기원전 5천년 쯤, 메소포타미아의 한 지방에서는 암기력 대결이 펼쳐졌을지 모른다. 기억력이 비상하게 좋은 한 현자와 바닥에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다시 그걸 보는 것 만으로도 과거의 모든 것들을 떠올려 낼 수 있는 마술사. 5판 3승제의 승부는 그 마술사에게 돌아갔고 사람들은 모두 그 마술사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며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대신 그는 모두에게 이 마술을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 마술의 이름은 문자고, 현재 알파고에 대해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쏟아내는 이들의 모습은 선사시대 이전 원시인들의 모습과 똑같다. 그리고 그 이후 돋보기 축음기 계산기 데이터베이스 등, 인간의 뇌를 보완해주는 장치들이 나올 때마다 저 원시인들은 어김없이 등장해 호들갑을 떨어왔다.

자칫하면 멍청이들이 주최하는 호들갑의 축제에 휘말리기 쉽다. 인간의 진수는 창의력과 고난이도의 사고력에 있고 알파고의 승리는 그 영역이 인공으로 복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들은 인간의 뇌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뇌도 하나의 인공지능과 정확하게 같다. 때가 되면 분열하고 영양소를 보면 분열하라 라는 명령어를 따르는 아메바부터 출발하여 수십억년의 진화과정 속에서 명령어를 점차 추가하고, 그 결과 우리 뇌에는 수억 수십억개의 논리회로들이 결합되어 있다. 창조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행위들도 사실상 이 명령어들의 다양한 조합 덕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창조성이나 사고력 또한 언젠가는 인공적으로 복제될 것이다.

인간 뇌의 우수성은 창조력이 아니라 그 효율에 있다. 알파고는 수천억원을 들여 개발한 뒤 수백억을 투입해 이세돌의 바둑에 특화했고, 전력소비 서버유지 관리 네트워크 유지 등에 수백억을 쓰지만, 인간의 뇌는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그라고 몇몇 무기물을 제공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태양광 전지와 식물의 광홥성 과정을 비교하면 그 효율의 극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공 기술로 만들어진 기관과 분자수준에서 재조합된 생명체의 에너지효율은 차원이 다르다. 인공지능이 인간 뇌의 효율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뇌의 한계로 여겨진 망각 감정과 같은 기능들도 사실 한정된 뇌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장치들이다. 망각은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을 의식영역 내에서 지워 우리 뇌가 중요한 정보들에 집중하도록 돕고, 감정은 상황에 따라 뇌가 쓸모없는 기능을 억제하고 필요한 기능을 강화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들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아주아주 발전하게 되면 그는 인간의 뇌와 별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수억년의 진화 역사 가운데서 인간의 뇌가 가장 효율적임이 증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고서는 곧 회사는 인간의 뇌를 대체하는데 수퍼컴퓨터를 사고 전기료를 내는 것보다 인간을 쓰는게 더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코올이 뇌에 충격을 주도록 술을 마시는 것이 사회생활이고 취재원 확보라고 믿는 머저리 기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당신들은 알파고가 너네 직업을 대체할거라며 불안해하겠지만 걱정하지 말라. 돈을 들여 워크스테이션을 장만한 뒤 인공지능을 설치하고 그를 관리할 전문인력을 뽑는 것 보다는 푼돈을 주고 당신같은 저급두뇌를 쓰는게 더 경제적이다. 기자들의 월급이 낮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2016. 3. 12.

소로스의 실패한 중국 숏 베팅

영란은행을 무너뜨린 남자. 다소 과장된 별칭을 지닌 조지 소로스가 이번엔 중국을 겨냥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버블붕괴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미 이를 목도하고 있다."라는 공격적인 멘트와 함께 그는 중국 통화에 대한 숏 포지션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와 그 추종자들의 실적은 참담하다. 역외 위안화는 고점대비 약 3% 절상되었고 여기에 캐리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조만간 그의 손실률은 영란은행을 무너뜨러 얻은 수익률의 절반에 이를 것이다. 많은 헷지펀드 매니저들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어리석은 중국! 너희는 통화를 절하시켜야 해!"라고 외치겠지만 무심한 시장이 비웃고 있는 것은 중국 중앙은행이 아닌 그들의 손실 가득한 실적표이다. 중국 경제에 대한 그들의 분석은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어있다.
 
아무도 그들의 경기전망을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중국의 경제는 당분간 7% 성장하기도 힘들 것으로 보이고 그림자 금융과 같은 이슈들은 중국 경제에 짐으로 남을 것이다. 결국 중국이 금융 자유화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한다면 금리는 더 낮추고 위안화는 계속해서 절하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중국 인민은행(PBOC)의 선택에 달렸다. 그리고 헷지펀드들의 실수는 중앙은행의 상황 통제력을 간과했다는데에 있다.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약 3.2조달러로 최대치였던 4조달러보다는 내려왔지만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보다 50%나 더 많다. 게다가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줄어드는 것은 외국인이 중국의 자산을 빼가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국인들이 자본을 해외로 빼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후자의 경우 내국인들 대상으로 한 몇몇 제제,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도 이 유출은 다소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중국이 개방화 된 이래 지속적으로 쌍둥이 흑자(자본/경상)를 누적시켜왔단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십수년 간 누적된 세계 최대규모의 쌍둥이 흑자가 불과 2년만에 동이 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달러를 가진 정부이며, 2-5위의 외환보유고를 합친 것 보다도 더 많은 액수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다면 세계 어떤나라도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보유하지 못한 셈이 되며, 만약 그렇다고 믿는 경우 지금은 중국 통화에 대한 숏 포지션을 취할 것이 아니라 세계 금융시스템이 다시한번 위협받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비유하면 중국은 치통을 앓는 환자와 같다. 치과에 가서 썩은 이를 빼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가 오늘 치과를 갈거라고 예측하는 것은 아주 다른 논의가 된다. 중국은 통화를 절하시켜야 하지만 만약 본인이 안하겠다고 버틴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무역수지 흑자국이 비용만 지불한다면 필요한 완화정책을 무시한 채 20년도 버틸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웃한 일본 중앙은행이 증명했다. 그러나 일부 헷지펀드들은 또 한번 극단적인 주장을 내세웠고, 중국중앙정부는 이를 서구 금융자본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PBOC 중앙은행장은 일회성 평가절하는 없을 것임을 천명했고, 공산당 기관지의 사설은 소로스를 대놓고 비웃었다.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만 않았다면 위안화는 별 탈 없이 절하됐을터인데, 헷지펀드들은 베팅을 해놓고 명성까지 얻으려다 돈과 명성을 모두 날리게 된 셈이다.
 
조지 소로스는 일반 시장 격언에 반대되는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시장이 합리적이라고 믿지 않으며 종종 틀리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그 잘못된 부분에 베팅한다. 그러나 결국 소로스 역시 시장의 일부이지 않은가. 단지 이번에는 그 "틀린 시장"이 '중앙은행과 싸우지 말라'라는 격언을 무시한 본인이었을 뿐이다. 사실 그가 베팅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로스의 펀드는 98년이래 두차례나 홍콩달러에 대한 베팅에서 큰 손실을 낸 전적이 있다. 하필이면 이번 그의 상대는 또 중국 당국이다.
 
 
*현재 주 외화유출 이유 중 하나는 중국 기업들이 보유한 해외채무를 상환하려는 압박때문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들의 총 해외채무는 약 3조달러로 얼핏 듣기엔 외환보유고와 거의 엇비슷해 불안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중국 기업들의 3조 달러의 채권을 발행했다는 것은 그들이 3조달러의 자산을 보유했단 말과 같다.(일부 국내로 환전되더라도 중국의 통화특성상 그들은 중국인들에게 달러를 팔았을테니까)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 달러를 사서 해외채무를 갚는 것은 달러부채는 없애고 달러자산만 보유하는 일종의 롱 베팅일 뿐 유동성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차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나, 만약 달러 자산을 담보로 달러를 펀딩할 수 없다면 그건 달러머니마켓의 문제이지 중국의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집을 산 뒤 담보대출을 받아왔는데, 갑자기 대출이 안된다면 이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문제지, 중국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여러 외은에서는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다는 여러 리폿을 내놓고 있지만 이들에겐 오류가 있다. 앞서 밝혔듯이 중국이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다면 세계 어떤나라도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보유하지 못한 셈이 되며, 그 말은 모든 나라들이 달러를 더 과잉으로 보유하는, 국제 불균형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 때문이다.

2016. 3. 5.

영화 Big Short - 실패한 파티의 DJ들

금융위기가 터지자 은행과 금융인들은 모두 실제적, 잠재적 범죄인이 되었다. 대중들의 인식에 따르면, 탐욕스러운 뱅커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고 베팅을 벌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실업과 빈곤의 고통속으로 몰아 넣었다. 이 영화는 그들에게 두가지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하나는 '역시 은행원들은 양심없는 쓰레기야'라고 외치며 침을 뱉는 것이고, 두번째는 몇명의 괴짜들이 그 악당들에게 패배(혹은 손실)를 안겨주는 과정을 중계하면서 느끼는 대리만족일 것이다. 마치 자신들은 탐욕적이지 않고 버블 붕괴와 무관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버블의 공범이었다. 여러 금융상품들이 개발되자, 금융기관과 자본은 리스크를 더 분산할 수 있어(혹은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며)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대중들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집을 가진 이들은 더 큰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소득도 없는데 여러채의 집을 사들이는 한편, 집이 없던 이들은 상환능력을 상회하는 대출로 집을 구매한 뒤 집주인의 닥달과 월세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파티는 뉴욕의 월가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파티는 금융의 중심지와 떨어진 신시내티, 밀워키, 오스틴 그리고 수많은 미국의 중소 마을까지도 번졌다. 미국 전역에서 상류층들은 초현실주의나 야수파 화가들의 그림을 사는데 수억불을 지출했고, 중산층들은 새 메르세데스와 BMW를 뽑아 거리를 질주했으며 하류층들은 이전의 중산층들이 살던 삶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금융은 단지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도록, 그들이 요구한대로 시스템과 시장을 구축해줬을 뿐이다.

물론 월가의 잘못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들 파티에서 누리던 만큼 취해 있었을 뿐이며, 그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베어스턴스, 리만, 와코비아를 비롯한 수도 없이 많은 금융회사들의 주식가치는 휴지가 되었고, 살아남은 은행들도 그 과도한 파티의 비용을 톡톡히 지불했다.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정부 소유가 되었던 Citi그룹의 주가는 10년전 400-500불 수준에서 현재 45불로 1/10토막이 났고 투자은행의 대표주자 Goldman Sachs의 현재 주가도 10년전과 같은 수준이다.(반면 S&P지수는 10년 전에 비해 50% 상승했다.) 어떤 사람들은 수백 수천만 달러의 성과급을 받은 뱅커들은 그 보너스를 챙겨 여전히 부자로 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 돈을 지급한 것은 대중들이 아니라 대형은행 주주들이다. 그 부자 주주들이 뱅커들에게 얼마를 지급하던 그것은 그들이 결정할 문제고, 그 결과 그들은 현재 혹독한 손실을 입었다.(사실 그 부자 주주들 명단에는 고점에서 Merrill Lynch의 주식을 대거 매입한 KIC가 있으니 한국인들은 메릴린치 뱅커들의 보너스를 제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부동산 하락에 베팅한 두 청년들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자 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만약 너희들의 베팅이 맞는다면 미국인들은 연금과 자산을 날리고 직장과 집까지 잃게 된다. 너희들이 지금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의 몰상식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빅롱'베팅을 해서 버블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름다운 일 인가. 그 시기 숏베팅을 한 이들 덕분에 버블은 그나마 덜 커질 수 있었고, 그들의 숏 포지션 덕에 시장이 무너질 때의 충격이 완화될 수 있던 것이다. 시장이 무너질 때 마이클 버리가 미리 구축해 둔 포지션이 없어 살 사람이 아예 없었다면 시장이 얼마나 더 폭락했을지 상상해보라. 우리는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고 숏 포지션을 잡은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런 베팅을 하는 사람이 적어 버블을 키웠다는 사실에 분노해야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내 파티가 끝난것 남 탓이다" 라고 주장하곤 한다. 영화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진실은 시와 같다. 사람들은 그를 혐오한다."

달콤한 칵테일에 취해있었던 것은 뱅커들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파티를 즐기며 거나하게 취하자 한두명이 과음으로 휘청거리고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누군가 응접실에 구토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몇명이 따라 오바이트를 하고, 더러는 넘어지며 집기를 부수고 누군가는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다. 그렇게 21세기의 첫 파티는 엉망으로 끝나고야 말았다. 즐거운 파티가 한순간에 난장판으로 변하자 분노한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아 두리번거렸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대 위에 서있던 DJ였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더 신나는 음악을 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은 이제 DJ에게 왜 사람들을 과도하게 흥분시켜 모두를 만취하게 만들었냐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하기사, 60년 전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날에도 미국인들은 원폭 투하를 결정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에게 침을 뱉지 않았는가. 그 정치인들을 누가 뽑았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 영화는 그런 대중들을 위한 영화다.

2016. 2. 29.

최훈. 삼국전투기.

웹툰의 역사는 사실상 스포츠 신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이전에는 유명 연예인들의 가쉽이나 여자 스타들의 관능적인 사진 등을 접하려면 독자들은 스포츠 신문을 사야 했지만, 인터넷이 등장하자 우리는 손쉽게 컴퓨터에 앉아 검색해보는 것 만으로 원하는 소식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신문잡지들 중에서도 특히나 자극성, 흥미성 소재를 주로 전달하던 스포츠 신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결국 그들은 발행 부수를 대폭 줄이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광고 수입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 때 타사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컨텐츠로 만화를 주목했다. 스포츠 투데이, 일간스포츠와 같은 스포츠신문들의 홈페이지는 웹툰이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요람과도 같았다. 양영순(데뷔작은 누들누들이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웹툰 아색기가이다), 곽백수(트라우마), 비타민(멜랑꼴리), 이상신-국중록(츄리닝)등, 현재 웹툰계의 1세대 중 다수가 이때 스포츠 신문들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 웹툰의 첫 세대 중 한명이 최훈이고 그의 대표작은 단연코 삼국전투기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이래로 천년간 동아시아의 수많은 작가들이 소재로 다룬 삼국지를 만화로 그리는 일은 처음부터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이미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삼국지를 60권짜리 만화로 옮겼고, 한국에서도 고우영 화백이 "고우영 삼국지"를 내놓은 적이 있다. 게다가 다른 그 어떤 역사분야보다도 일반 독자들의 이해도가 깊은 소재이다 보니 기존에 알려진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그리는 것 만으로는 결코 인정 받을 수 없던 작업이었다. 하지만 최훈 작가는 세가지 강점으로 삼국지를 다룬 가장 훌륭한 작가중 하나가 되었다. 첫번째는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서 실제 삼국지 역사에 가까운 스토리를 완성한 것이요, 두번째는 다른 삼국지가 등한시 한 제갈량 사후의 이야기까지 충실한 점, 세번째는 수백명이나 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기존 만화 드라마 영화들의 캐릭터에서 따온 패러디로 채운 것이다.

이 만화는 2006년 1월 11일 일간스포츠에 첫 연재를 시작한 뒤 이후 네이버 웹툰으로 자리를 옮겼다. 초기에는 네이버 웹툰 중 대표 인기작으로 손꼽혔지만, 수도 없이 많은 지각 연재와 휴재를 거치며 그 인기와 평가는 추락했다. 그의 팬 중 새항아리라는 블로거가 있었는데, 그는 최훈이 패러디한 캐릭터들을 자신에 블로그에 친절히 설명해주곤 했다. 그러나 최훈이 의욕을 잃고 연재를 중단한 중에 그는 지병인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삼국전투기가 완결되기를 바란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최훈은 그를 추모하며 반드시 이 작품을 완결시키겠다고 다짐했고 그가 다시 연재를 재개한 이후로는 단 한번의 지각연재 없이 완결까지 삼국 전투기의 스토리를 완성시켰다. 그런 삼국 전투기가 지난주 수요일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종결했다.

많은 사람들은 웹툰의 역사 따위에 그리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의 역사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기엔 누군가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훈은 삼국지라는 역사를 그리며 스스로 웹툰의 역사가 되었고, 거기엔 10년간 그를 함께 지켜보아온 수많은 독자들의 역사도 함께 담겨있다. 댓글 창에는 중학교때 이 작품을 처음 보기 시작했다 어느덧 전역한 예비군이 되었다는 독자와, 대학생 때부터 팬이었던 한 남자가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소회를 남긴 글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아니 우리들에게는 이 작품은 단순한 만화가 아닌 내 젋은날을 함께 해 준 소중한 기억이기에 삼국전투기의 완결을 보며 감명과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추억이 되고, 모인 추억들은 이고 역사가 된다.

2016. 2. 23.

아베노믹스는 실패하는가?

모두가 야심차게 달러 강세를 외치며 올해를 시작했지만, 정작 가장 강해진 통화는 달러가 아니라 바로 엔화다. 연초부터 시작된 일본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 엔화는 달러대비 약 7%가까이 치솟았고, 동시에 니케이는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그 원인으로 여러 이코노미스트들은 금융시장의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언급하기도 하고 시기적으로 일본 엔화가 강해지는 시즌이라는 설명을 꺼내지만 그 어떤것도 실제 원인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문제의 원인은 아베노믹스 자체가 실패했다는 것에 있다.

일반 대중들은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무제한 돈풀기로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설명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는 동안, 일본의 경상수지는 단 한해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으며 되려 막대한 흑자를 기록해왔다. 게다가 일본이 수출하는 제품들은 주로 가격의 영향을 적게 받는 상품들이기 때문에 통화와 기업실적의 상관관계가 낮아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니케이와 엔화의 상관관계는 주요 수출국 중 가장 높다. 무엇보다도 수출이 전체 GDP의 1/6도 안되는데다 고부가가치 상품이 주력인 일본산업이 단순히 환율로 인한 가격경쟁력 하나 때문에 20년째 불황이라는 1차원적인 설명에 설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진짜 문제는 환율로 인한 가격경쟁력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디플레이션에 있다.(환율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일본 중앙은행이 경제를 죽일 만큼 통화량을 억눌렀기 때문에 발생했다. 따라서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통화량을 늘려 소비와 투자를 끌어올리는데에 있다. 여기서 환율의 움직임은 인플레이션 기대치에 따라 변하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달러엔이 폭등할때 니케이가 같이 오르는 이유는, 싼 엔화로 인해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것을 예상해서가 아니라 통화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공격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통화량이 좀처럼 늘고 있지 않다.

 
위는 지난 30년간 일본의 M2 증가율 추이를 나타낸 차트이다. 보다시피 아베노믹스가 시작된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의 통화량은 유의미한 수준으로 반등하고 있지 못하다. 95-05년에도 통화량이 현재 수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디플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중앙은행의 조치가 아직 미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단기간에 신용경색을 성공적으로 막은 미국의 통화 증가율은 아래와 같다.
 
 
FED는 유래없는 강력한 조치로 폭락하던 M2 증가율을 다시 10% 수준까지 끌어올렸고 이후 디플레이션의 위협이 감소하자 통화량을 안정시켜 현재 6-7%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단순히 차트상으로도 일본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왜 일본은행이 본원통화를 공격적으로 늘리는데도 불구하고 통화량이 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베노믹스의 성패는 바로 여기에 달렸다. BOJ의 양적 완화가 FED보다 더 공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GDP대비 기준) 미국인들과는 달리 일본인들이 돈을 유통하지 않는 이유는 지난 20년간 그들의 삶이 이미 디플레에 맞게 변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 국민들은 집이나 주식같은 자산을 버리고 현금을 생명줄처럼 움켜쥐고 있다.(아래 표 참조, 빨간색이 일본) 따라서 디플레이션은 대부분의 일본 유권자에게 아주 나쁜 현상만은 아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집을 팔고 월세를 내는 세입자들은 월세가 내려가니 기분좋은 일이고 더불어 엔화 강세로 해외여행 비용과 수입품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저렴해지니까. 월급이 오르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일본 유권자의 60%는 55세 이상으로 미래에 받을 월급보다 현재 보유한 연금과 예금의 가치가 훨씬 크다. 아베와 BOJ가 아무리 떠들어도 60살의 노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고 주식을  살 리 없다. 오히려 낮아지는 은행 금리는 기대수명이 20년이나 더 남은 노인을 불안하게 만들어 저축의 역설을 가중시킬수도 있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오면 그들은 매년 더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하며 더 작은 집으로 쫒겨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디플레를 더더욱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통화량이 증가하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일본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이와 같은 구조에 진입했다. 아베 이전의 총리들이 바보라서 디플레를 퇴치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인플레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지를 잃을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아베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다. 그가 성공하기 위해선, 그를 가장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아마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국수주의적인 언행과 정책을 펼처 국민들로 하여금 경제적인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리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반등하지 않는 통화량은 국민들이 그 고통으로부터 주의를 떼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일본 정치인들이 자국민에게 놀랄 만큼 잔인했다는 것, 그리고 국민들은 놀랄 만큼 그 고통을 감내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맞는 말이지만 현재의 일본은 파시스트 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베노믹스는 실패할 것이다.
 
 
 
*디플레에 빠진 다른 여러 케이스를 조사한 결과, 선진국의 경우 적정 통화량은 평균 6-8%수준이며 장기간 이 수준을 하회할 경우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것으로 보인다.

2016. 2. 13.

1998년 두 연구원의 대결, 그리고 18년 뒤.

 
 
위 기사는 오늘로부터 정확하게 18년전에 경향신문에 실린 1998년 2월 14일자 기사이다. 이미 알다시피, 98년부터 향후 10년간 주요 거주지역의 집값은 3배, 일부 인기 지역은 그 이상으로 폭등했다. 인구밀도가 다른 나라들을 두고 집값대비 GDP, 시가총액, 소득 등을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멍청한 분석인지는 예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저 기사에서 언급한 두 연구원의 이후 다른 삶이다.
 
향후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주장한 감정평가연구소의 이성영 연구원은 자신의 전망과 다르게 집값이 큰 폭으로 상승하자,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주장을 "집값은 떨어져야 한다"로 바꿨다. 검색해 보니, 현재 그는 연구소를 나와, 토지정의시민연대, 토지 자유 연규소와 같이 '한국의 집값은 버블이다'라는 주장을 굳건한 신념으로 삼은 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20년동안 꺼지지 않는 다면 그것이 버블이 아니다. 그러나 이성영 전 연구원은 "나의 전망이 틀렸다"라고 인정하기 보다 잘못된 주장을 정의로 승화하는 일에 남은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듯 하다. 사실 지식인일 수록 '내가 틀렸소'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어려운 법이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반면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부동산 비관론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폈던(헤드라인부터 시작해서 기사본문의의 90%를 집값폭락으로 몰아간 해당 신문의 논조를 볼 때, 그는 낙관론에 가까운 견해를 피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규황 부사장은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를 거쳐 한국다국적의약산업 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현재 한국마사회의 사장이 되었다. 물론 대기업 산하의 경제연구소에 있던 그가 부동산 비관론을 주장하긴 어려웠겠지만, 어쨋거나 그는 전망이 맞는 쪽에 서 있었고, 그 결과 국가 산하기관의 수장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만약 이성영 연구원의 주장대로 집값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왔다면 저 둘의 삶은 서로 달라졌을 것이다. 디플레이션 아래서 삼성은 결코 현재의 위치에 이를 수 없을 것이고(14년전만 해도 삼성의 위치는 현격하게 낮았다. 2002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삼성 임원이 5년 안에 소니를 넘어서겠다고 말하자 전세계가 그를 비웃었다.) 이규황 부사장은 거듭되는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된 채 통닭집을 운영 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디플레이션이 왔다면 이성영 연구원의 삶은 매우 순탄 했을것이다. 안정적 직장을 가진 그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올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일본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디플레이션 아래에서는 정부로부터 고정급여를 죽을때까지 받는 공무원들이 최고의 승자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한국은행 공무원들이 나라를 디플레로 몰아넣고 싶어 안달이 난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