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0보다 더 강력한 지지선은 없다. 그리고 지난 48시간의 금융시장은 영의 위대함을 깨부수는 충격에 시달렸다. 미국채 금리의 3m vs 30yr 스프레드는 0을 깨고 마이너스로 돌입했으며 유로 스왑금리는 전 테너가 0 아래를 찍었다. 그 여파로 미국 주식시장은 3% 폭락했으며 한국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동안 세계 금융시장은 광기와 복통에 절어야 했다.
- 인도에서 발명된 이 0은 단순히 zero를 의미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십진법의 자리수를 구분하여 금융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복식부기와 회계학, 재무제표는 모두 영의 부산물일 뿐이다. 와닿지 않는다면 USD 40,101+USD 170,010을 각기 로마숫자, 한자, 한글로 기입해서 계산해보라.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금융시장의 발전은 0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었다.
- 이성의 화신인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에게도 0은 특별한 숫자이다. 수 체계의 첫번째 구분은 자연수로부터 시작되며, 용어 그대로 0은 수의 세계에서 natural과 unnatural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중학교 수학에도 등장하는 피타고라스의 학파는 우주의 모든 사물은 자연수의 특성에 기인하고 있으며 1부터 10까지의 각 수는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은 학문을 넘어 종교의 영역에까지 도달했고, 피타고라스의 후예들은 자연수의 영역을 벗어난 무리수 √2를 최초로 발견한 동료 히파수스를 강물에 던져 죽이고야 말았다.
- 굳이 피타고라스 학파가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수학적으로도 0은 신비의 영역이다. 수학적으로 무한의 정의는 1/n에서 n을 극한으로 0에 가깝게 만들때의 값을 의미한다. 즉 0은 가장 작은 숫자임과 동시에 가장 커다란 수의 어머니가 된다. 성경의 "나는 곧 알파요 오메가이니"라는 구절처럼 0은 곧 ∞요, infinite은 곧 zero다.
- 이렇듯 모든 숫자 중에서 깊이와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은 오로지 0 뿐이지만 애달프게도 이는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정보는 지식이 아니며 지식은 지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금융인들은 정보와 지식을 지혜라고 생각한다. 아니, 자본이 곧 지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가난이 선을 의미하지 않듯 부자는 현자가 아니며 우리는 그저 무한대의 데이터 속에서 황금을 캐내려하는 일개 연금술사에 불과하다. 가진 재주라고는 그저 0으로부터 달아나는 것 밖에 없는.
2019. 8. 17.
ZER0
2019. 8. 11.
빼앗긴 구직시장에도 봄은 오는가
하지만 대충 살아도 잘 풀리던 시대는 박진영의 비닐바지나 HOT의 캔디 춤과 함께 사라졌고 지금의 20대는 취업이 입시만큼이나 힘들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데이터에 드러나는 청년의 실업난은 마치 백악기 말 대멸종 만큼이나 끔찍하다. 정부 발표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10-30대 근로자는 고작 2만여 명이 증가했는데, 50세 이상의 노동자는 무려 151만명 증가하여 사실상 그 5년간의 취업시장을 50-60대가 독차지한 것이다. 2 대 151. 이런 스코어는 20대가 60대 할배들과 농구시합을 해도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쪽이라니. 저성장 하나 만으로는 이 난수표같은 데이터를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이 20대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벨제붑과 바알이 대한민국의 고용을 지옥으로 이끈 무기는 바로 최저임금이다. 청년실업은 정확하게 이 최저임금때문에 발생했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병신오인방을 다섯손가락으로 치면 중지쯤 되는 장하성 실장의 혁혁한 공로 덕에 최저임금이 왜 고용시장을 악화시키는지 설명할 노력을 아낄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최저임금이 만원이라는 말은, 생산성이 만원이 안되는 노동자들은 일하지 말라는 말이다. 학창시절에 경제원론도 똑바로 안 들은 멍청이들의 구호와는 다르게 값어치가 시간당 8천원 밖에 안되는 직원에게 시급 만원을 주고 고용할 회사는 없다. 어차피 만원을 줘야 한다면 진짜 만원어치 일을 하는 직원을 쓰거나 기계를 돌리지, 호구가 되고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적정한 최저임금은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하지만 현재의 최저임금이 오르는 속도는 이미 한참 전에 적정선을 벗어났다. 아래의 차트를 보자.
위의 난잡한 그래프를 보기 전 하나 퀴즈, 지난 30년동안 강남 부동산보다 더 많이 오른 것은? 답은 최저임금이다. 위에서 다른 선은 모두 잊어버리고 녹색 막대그래프만 보자. 노동운동이 결실을 맺은 이래 최저임금 상승률은 소비자물가보다 더 많이 올랐는데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면 노무현-박근혜 정부는(이상한 조합이지만) 최저임금을 3-4배 더 올렸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방점을 쾅 하고 찍었다.
언론에서는 최저임금이 고용 전반에 악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고용시장 내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시장에서는. 이 정책의 첫번째 호구는 단연코 구직자들이다.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경력직의 연봉을 줄 수는 없으니, 그냥 검증된 경력직을 쓴다. 반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 모든 경력직들이 이득을 본다. 기업이 신입을 뽑을 수 없다면 경력직들을 계속해서 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한 코메디언이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모두들 경력직만 찾으면 나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뭐 어쩌겠나. 나라에서 경력직만 쓰라는데. 최저임금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대강 정리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출처: 뇌피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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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실업률은 최저임금을 따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부터 최저임금이 물가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상승했고 그 결과 전체 실업률은 대단히 안정적인데 비해 청년실업률(파란색)은 고점을 깨고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같은 기간 전체실업률(빨간색)은 매우 안정적인데 저기서 20대 실업률을 뺀다면 빨간색 선은 되려 더 낮아졌을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실업 데이터를 들여다 보는 것은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청년들의 젊음을 무의미하게, 또 끝없이 소모시키는 동안 중장년의 장성들이 뒷짐지고 성과를 논하고 있으니. 안타깝게도 당신의 실업은 내일이면 잊혀질 숫자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를 계급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나 역시 그 시각에 동의한다. 그리고 전쟁에서는 올바른 전선을 택하는 것이 승패를 결정짓는다. 누군가는 그 선을 남/녀에 그을 것이고, 누군가는 남/북으로 또는 빈자와 부자로, 혹은 화개장터 어드매로 그을 것이다. 과거 20대들은 모든 대선투표에서 노동계와 연대해서 싸워왔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역대 최다 격차로 여당 후보를 꺾었을때도 20대는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남아있었다. 나 역시 내 20대 그 어느 해에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고 그에 따라 표를 던졌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20대가 나눠준 열정과 땀을 삼켜 힘을 얻은 4050대 노조들은 일자리를 독점했고 순진했던 젊은 세대는 직업을 잃고 또 비전을 잃었다.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는 결국 일자리였는데 그들은, 그리고 한때의 나는 전선을 잘못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자리를 얻고 내 후배들이 얻지 못한 것은 순전히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예전에 썼던 한 글에서 나는 20대들은 과거엔 취업이 쉬웠다고 불평하면서도 그시절 구직자들이 얼마나 낮은 생활수준과 나쁜 근로여건을 받아들였는지 간과한다고 비난했지만, 나 역시 그 나이때는 알지 못했다. 전적으로 그들을 탓할수만은 없다.
최근 20대들 사이에서 보수적 여론이 높아지는 이유는 군사정권때 교육받은 쌍팔육(486/586)들 주장처럼 못 배워서가 아니라 좌파꼰대들과 자신들 사이에서 뭔가 날카로운 간극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저임금의 두번째 피해자는 20대의 반대편 극단의 6070대들, 노령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황혼세대라는 것이다. 4050대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연대하는 것을 아버지 세대가 혀를 끌끌차며 조롱하는 것이 오늘의 정치다. 문재인의 당선 이후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을 6배가 넘었을때, 노조들은 강원랜드에서 잭팟을 터뜨린 양 축배를 들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강남 재건축 아파트보다도 빨리 오르는데. 그 승리를 멀찍이서 박수쳐주다 돌아선 20대들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취소된 공채 일정과 서류탈락 통보문자 뿐이었다. 그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라도 해주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6070대들은 하나 둘 씩 스러져 줄어들 것이고 전 연령층 중 가장 투표 안하는 20대들은 미래에도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이 청년들은 당차게 사회로 한 발을 내딛으며 누구에게 힘을 빌려줄 지 고민했겠지만 정작 자신들이 도움을 필요로할 때 누구도 손내밀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정치적 패배는 계속될 것이고 좌파꼰대층의 최저임금을 통한 일자리의 독점 역시 계속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내 한표와 이 레퀴엠같은 글 하나 뿐이다.
(아멘)
2019. 8. 7.
한국의 금융시장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가
FX movement in 2019 |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명목환율의 장기적 추세는 인플레이션을 따라간다. 공식 CPI가 40%를 넘어서고 비공식적으로는 100-200%를 오가는 아르헨티나의 페소는 약 17%하락했으니 아르헨 페소의 실질환율은 되려 올라간 셈이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1% 이하인 원화는 8.2%나 하락했으니 만약 실질환율로 이 차트를 그린다면 원화의 성적은 (밑에서)7등이 아니라 더 높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도대체 인플레이션이 세자리 수에 이르는 통화들과 EM 중에서도 가장 DM에 가까운 원화가 비슷한 성적을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식과는 달리 환율이 강해진다는 것이 꼭 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들면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의 통화는 보통 강세를 띄지만 우리는 그 나라의 경제가 좋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통화가 약세로 간다고 해서 꼭 나쁜 시그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환율의 변화는 주로 전년도 대비 국제수지의 변화를 의미하므로 우리나라가 당장 저 EM미만 수준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외환시장은 작년 대비 올해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변화가 아주 크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내 생각엔 전세계 대비 언더퍼폼한 주식시장보다도 외환시장이 현재의 경제상황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에서는 KOSPI 보다도 더 폭락한 다른 나라들도 존재하긴 한다. 물론 뭐 파키스탄, 코스타리카, 레바논, 케냐, 오만 뭐 이런 나라의 주식시장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지만, 외환을 보면 저 나라들을 모두 포함해서도 KRW는 꼴지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도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충격이 더 크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겪는 변화는 이 국제수지를 보아야 더 명백하다.
나는 한국의 경상수지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진 않는다. 예전 GDP의 약 3% 수준이었던 경상수지 흑자가 2015년에 GDP의 7.2%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디플레이션에 따른 결과이고, 디플레이션이 해소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과 소비의 증가는 수입의 증가로 이어져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인다. 실제로 코스피가 고점을 경신하던 2017년 수입이 연 9% 증가하며 경상수지가 GDP대비 약 4.5%로 하락한 적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소비시장과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삼성전자의 최고가는 이재용의 부재일 때 였던 것 처럼, 대한민국의 최 전성기는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 실제 문제는 경상수지가 아니라 자본수지에 있다.
앞서 글에서 대한민국에서 두가지 파업이 일어난다고 했는데(링크) 현재의 환율변화는 이 두가지 파업 중 자본의 파업* 연관되어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의 강제파업과 자본의 도피적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자본은 늘 수익을 좆는 천성을 가진지라, 노동자와는 달리 국내에서 파업을 한다고 그저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게 해외투자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부동산 외에는 투자할 분야가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한 세금과 고거보다 강화된 규제는 한국투자의 "세후"수익률을 낮추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정부의 개입은 불확실성을 높여 "위험가중" 수익률을 더욱 낮췄다. 7월 2일 이후 한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가가 강세를 보인 것은 두 회사가 대규모 투자를 연기하거나 중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장래가 있는 기업이 투자를 한다고 하면 주가가 오른다. 미래가 글러먹은 회사가 투자를 늘린다고 하면 주가가 빠진다. 한국 경제의 두 쌍두마차가 투자를 중단한다고 했을때 주가가 오른 것은 대한민국이 쪽바리들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들의 투자엔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본파업은 환율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율이 약 5% 움직이고 나면 환헷지 전략과 투자 전략을 재조정한다.(주식에 비하면 이 5%가 별것 아닌 듯 하지만 환율이 그정도 움직이고 나면 일간지 1면에 FX 트레이더들의 뒷통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국인의 해외투자는 다르다. 2015년 이후 중국과 같이 자본유출을 통제하려던 많은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고작 5%의 움직임으로는 달러 수요를 막지 못한다, 되려 더 강해진다. 그래서 지난 5년간 1200원 위는 무조건 팔면 돈 버는 구간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내국인들은 여전히 이 수준에서도 달러를 사서 해외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경상수지 흑자국은 자본수지 적자를 유지해야하니 자본의 해외유출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 이상으로 자본수지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자본파업이 있다. 자본파업은 마치 케인즈 이전의 경제학과 같아서 경제주체들이 서로가 네거티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더 나빠진다는데에 있다. 특히 한국의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재 고작 6조 남짓한 추경으로는 이 고리를 끊을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 GDP의 1-1.5%에 달하는 대규모 추경이나 감세, 혹은 경제부총리가 마약을 했나 싶을 정도의 막대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는 커녕, 우리는 참새 코딱지만한 추경을 통과시키는 데도 100일이 넘게 걸렸고 같은 기간 동안 주식은 1900을 깨고 환율은 3년 반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으며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의 간접적 피해자 처지로는 감질났던건지, 우리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새로이 시작했다. 이데올로기로 펴는 경제정책은 백종원의 요리를 미적분학으로 풀이하는 것 보다도 더 어색하고 괴상한데 대중은 거기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고3 이래로 공부를 해본 적도, 일해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이 명분만 좆는 사대부새끼들이 외교와 경제를 장악했으며 그들이 내놓는 대책과 비전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다만 장르가 호러일 뿐. 놀라기도 지친 자본들이 한국을 이탈하고 있고 그게 현 환율 상승의 배경이다. 과거의 환율상승기는 잊어버려라. 우리는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니.
그리고 앞서 링크한 글에서 나는 4개 분기 평균 기준으로 한국의 투자가 현재보다 나빳던 적은 단 네번 뿐이라고 했는데 아마 다음 GDP가 발표되면 IT버블때의 기록을 앞질러 사상 세번째 최악의 시기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본파업은 그저 쉽게 이해하라고 내가 멋대로 붙인 비경제용어지만 그보다 현재의 변화를 더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용어를 찾지 못했다.
2019. 8. 5.
2019. 8. 4.
도박의 본능
나는 그 기저에 수면욕, 성욕, 식욕처럼 인간에게 도박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에게 왜 그런 욕구가 생겼는지는 호모 사피엔스 종의 진화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사바나 물가에 살던 유인원 중 한 종이 직립보행을 실시한 이래 인간은 7만년에 걸쳐 모든 대륙에 퍼져살게 되었다. 빙하기가 끝나 육로가 막힌 뒤에도 인간은 북아메리카를 넘어 남아메리카 까지 진출했으며 심지어 호주처럼 육로가 존재하지 않았던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것은 단연코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이동일 것이다.
10여년 전, 72시간만에 수천만원을 날리고 담배를 뻑뻑 물어 피던 내가 다시금 생각난다.
2019. 8. 3.
어째서 한국은 병신 외교의 종주국이 되었나?
그게 우리의 민족성이나 인종적 특성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 증명해주고 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링크) 줄도 잘못서고 정치체제도 잘못 택한 북한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저력은 군사력이 아닌 외교력에 있다. 게다가 최근 대외전략과 업적만 두고 본다면 김정은은 서희 이래 한반도 최고의 외교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한국이 고집하는 병신외교는 전후 남한이 걸어온 특수한 배경에 그 적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음 세가지와 같다.
첫째, 미국의 안보우산.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한 나라는 모두 멸망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서 아무리 멍청한 선택을 해도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제2공화국의 장면 정권이 국내의 정치적 소요를 전혀 통제하지 못해도, 혹은 신군부가 국내 정치투쟁을 위해 전방의 사단을 빼돌리는 짓을 해도 한국의 국가안보는 사실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버텨주고 있었으니까. 비슷한 상황에 처했지만 미국처럼 기댈 강국이 없던 고구려 백제 신라, 후백제, 발해는 모두 외적에 의해 멸망했다. 반면 오판을 내려도 운좋게 세계 1위 국가와 군사동맹을 맺은 남한과 우리는 아무 탈 없이 살아 남았다. 그 사이 한국이 받은 대외적 위협은 북한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미국이 원조를 줄이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공갈 밖에 없었다. 주던걸 뺏는 일을 대외위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바람이 치는 동안 비닐하우스, 아니 방탄유리에 사시사철 온습도 조절기능을 갖춘 세계최강 인큐베이터 안에서 곱게 자란 온실속의 화초는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생존게임을 가볍게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병신외교의 저변에는 이래도 안 망할거라는 강한 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반면 남한처럼 소련의 원조만 바라보던 북한은 1960년대 중반에서부터 외교적으로 홀로서기를 해왔다. 소련이 원조를 줄이기 시작하자 그들은 대중 외교를 강화했고 공산주의의 두 종주국 중소가 서로 으르렁대기 시작하자 그들은 양자를 오가는 외교를 택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에게 외교란 국가의 안위를 넘어 나와 개인 가족의 생명이 달린 문제였다. 아오지 탄광과 요덕수용소를 피해 살아남도록 단련된 북한의 외교관들이 곱게 자란 남한을 깔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외무상 총 책임자가 통역하던 강경화라니. 개가 똥구멍으로 웃을 일 아닌가.
둘째, 잘못된 전통사상의 잘못된 계승.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 한국사에서 배운 국가들 중 우리는 어느시대의 철학을 가장 많이 계승하고 있을까? 답은 우리나라 공식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대한제국이다. 병신외교를 펼치는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은 딴 한글자, 帝를 民으로 바꾼 것 딱 그정도만 다르다. 우리는 일제지배로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잘못된 방식으로 치유했다. 바로 식민지 이전의 역사를 긍정하는 것이다. 성리학과 명심보감은 현대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도덕이고 명청교체기에 병신외교의 선두주자였던 김상헌은 대나무같이 올곧은 절개를 지닌 선비이며 사익을 좆느라 나라를 말아먹은 민비와 고종은 비운의 주연으로 탈바꿈한 채, 우리가 여러번의 전란 끝에 나라를 잃은 것은 외적이 사악하고 무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라졌어야 할 한의학은 현대의 제도 아래서도 살아남아 의료보험의 대상까지 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근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셋째, 안정된 한반도의 정치 상황. 제러미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지중해로 인해 통일된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어렵던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는 천년 전 부터 훨씬 안정된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중 한반도의 정치상황은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우리가 조선을 피폐했던 전란의 시기로 기억하지만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공식적으로 멸망을 고한 1910년까지 한반도는 매우 평화로운 500년을 보냈다. 두번의 왜란과 두번의 호란, 그리고 마지막의 식민지배가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전란의 기간을 모두 합쳐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구한말의 식민지배는 별다른 군사적 충돌 없이 진행되었음을 기억하자.(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이다.) 동시대 다른지역의 역사를 보자.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에도막부가 설립하기까지 거의 150여년 동안 수많은 군벌들이 수도 없는 전쟁을 치뤘다. 우리는 단순히 동시대 중국의 역사를 명청교체기로 기억하지만 명은 청의 손에 멸망하지 않았다. 누르하치를 키워준 이자성의 손에 멸망했고, 당시에는 그 말고도 수많은 군벌이 존재했다. 청나라 말기에도 여러 군벌들이 난립하며 일부는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일부는 각기 다른 외세와 협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분열사도 서구사학자들의 눈에는 안정적으로 보일 만큼 동시대 유럽의 역사는 더욱 격렬했다.
누구나 1차세계대전을 알고 있지만, 그 전쟁이 어째서 벌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주 소수이며 아직도 그 발발원인과 경과에 대해서 논쟁이 이뤄질 정도로 그 배경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전쟁을 통해 근대의 국경선이 탄생했으며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은 이러한 격량을 거쳐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들이고 그들은 사소한 판단 하나가 어떻게 국가와 민족의 흥망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를 체화한 사람들로, 그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아들딸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한국 역시 그들 중 하나로 우리의 독립은 2차세계대전 전후처리를 논의하던 카이로회담에서 확정되었다. 당시 연합국 중 하나로 인정받은 중화민국 대표 장제스는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청일전쟁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다시말해 조선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기 위해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지만 현 대한민국은 후손에게 "장제스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크게 감명받아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병자호란을 겪은 뒤 첫 다음세대의 지배자였던 효종은 현실정치를 폈다. 그는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조선의 역사가 청나라의 지배 없이 쓰여질 수 없음을 깨달은 동시에 형의 비극으로 인해 청에 대한 내부의 반발이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명목상의 북벌정책을 펴는 동시에 청에 대한 현실외교를 펼쳐 청의 파병요구까지 받아들이기도 했다. 현대적 용어로 그의 이런 투트랙 외교전략은 같잖은 민족주의적 자기위안과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가져다주었지만 김상헌과 그의 병신외교를 이어받은 사대부들에게 헤게모니를 돌려주었고 그들은 이백여년 뒤 최익현을 낳고 또 그로부터 백여년 뒤 sns의 신진사대부새끼들을 낳았다. 반면 근대 일본의 전신인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전국시대 말기 정치적 소용돌이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아들에게 내려진 자결명령을 순순히 따랐다. 현재의 동아시아 외교무대에서 두 나라를 대표하는 이는 김상현과 도쿠가와라고 할 수 있다. 병신외교와 음흉외교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 하루빨리 우리가 병신외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추가 on 2 Aug 2019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회담을 듣다 내 귀를 의심했다. 제정신인가. 한달 전 일본이 무역제제를 발표한 이래 한국대표는 일본을 네번이나 방문했지만 일본 관료/정치인 중 그 누구도 한국을 방문한 적 없다.
두 연인이 싸운지 한달이 지났다. 남자는 여자의 집앞에 네번이나 찾아가서 여자를 기다렸지만 화해하지 못했고 여자는 남자의 집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남자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일이 도대체 제정신으로 할수 있는 것인가.
우리 한국인들은 어둠속을 벌거벗은채 헤메이고 있다.
2019. 7. 18.
집값에 대한 전망 그리고 소망
2019. 6. 9.
박원순의 부도덕한 사생아, 제로페이.
그리고 제로페이는 시장(market)이 뭔지도 모르고 아직도 시장(mayor)의 역할이 뭔지도 모르는 병신같은 박원순 시장이 등신같이 필드에 드리블 하면서 등장했다 자빠져서 코가 깨지는 새로운 코미디 쇼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쇼를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쇼는 우리의 제도 자체를 산산히 부숴놓을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할 예외적 경우를 보자. 시장의 독과점이나 담합으로 자유로운 경쟁이 제한될 경우나 혹은 시장논리가 사회적 약자들을 소외할 경우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국가는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신용시장이 그런가? 국내엔 열개가 넘는 신용카드회사가 서로 무한대로 경쟁하고 있고 상위 1,2,3위 조차도 수익이 점점 악화되고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경쟁원리를 따라 매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럼 제로페이가 기존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편익을 제공하나? 제로페이의 지불은 신용이 아니라 은행 잔고다. 쉽게 말해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카드인데 지명수배자나 금치산자가 아니라면 현금계좌를 가지고 현금카드를 만들지 못할 사람은 없다. 제로페이가 사회에 제공하는 추가 효용은 전혀 없다.
따라서 제로페이는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도이며 이런 사산아를 낳은 박원순은 공직에 있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물론 그가 과분한 자리에 앉아있다는 증거는 이 말고도 많다. 3선을 거치고서도 아무런 실적을 남기지 못해 허둥지둥 아무거나 막 날리는 그의 말로는 대단히 추하고 대단히 초라할 것이라 장담한다. 그의 임기 내내 서울이 그랬듯이.
2019. 6. 7.
한국 경제 네 가지 예측
1. 불황이 온다면 한국은 2008/09년보다 더욱 심하게 타격을 받을다.
2. 불황이 오든 오지 않든 한국의 지니계수는 역대 최대로, 또 최대 속도로 벌어질 것이다
3. 환율은 연말 전 1200원 중반을 찍을 것이다.
4. 다음 경제부총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될 것이다.
1. 경제가 침체에 들어가면 정부는 두 가지 수단을 써서 대응한다. 하나는 통화정책, 또 하나는 재정정책. 통화정책은 쉽게 말해 다같이 대출을 회수해서 시중에서 돈이 귀해질 때 중앙은행이 나서서 돈을 풀어줘 유동성을 확보해주는 정책이다. (이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Ray Dalio의 동영상 강의를 추천한다. 링크) 재정정책은 다같이 지출과 투자를 줄여서 경제가 침체될 때 정부가 돈을 대신 써줘서 수요를 늘리고 대신 경제가 활황일 때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과거의 GDP를 보면 프랑스나 영국같은 선진국들도 한 해는 +15%성장했다 다음 해에는 -9% 감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앞서 언급한 두 정책수단을 통해 경제가 과냉, 혹은 과열로 흐르지 않도록 조절해준다. 그 결과 이제 규모가 있고 어느정도 경제가 성숙한 국가의 성장률이 5%이상 스윙하는 일은 드물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은 이 두 수단을 모두 쓰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먼저 통화정책을 보면, 앞서 여러번 지적했듯이(링크) 우리나라는 통화정책을 제대로 쓰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금리결정은 항상 후행적이고 늘 너무 늦게 올리고 너무 늦게 내린다. 게다가 현 청와대가 각종 경제 현안에 입김을 미치는 정도가 그 어느때 보다도 강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갑자기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칠 가능성은 더 낮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오더라도 한국은행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체면치례로 뒤는게 연준이나 타 중앙은행을 후행적으로 쫒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그나마 괜찮다. 옛날에도 그랬으니까. 진짜 문제는 재정정책에 있다. 만약 경기가 극도로 나빠진다면 빠르고 강력한 재정정책이 중요하다. 2008년에 우리가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던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재정정책이 있었다.(내가 4대강을 재평가하는 날이 올 줄이야..) 당시 아시아 국가 중 GDP대비 재정지출 비율을 보면 단연코 한국이 가장 컸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IMF 시절 경제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강만수 부총리가 있었고 국회를 장악한 여당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는 이 둘이 모두 없다. 홍남기 부총리는 예산처 출신으로 재정집행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청와대 내에서 발언권도 세지 않다. 보통 청와대 내에서 경제정책과 아젠다를 담당하는 것은 정책실장인데 현재 정책실장은 부동산 폭등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는 김수현 실장이다.(전공: 도시공학) 그러니 경제위기 상황이 와도 재정정책을 드라이브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갑자기 홍남기 부총리가 영웅처럼 나서거나 운좋게 청와대 내의 숨겨진 제갈공명같은 인재가 재정정책을 설계해 들고 나오더라도 그 전망은 암울하다. 어디까지나 내 사견이지만, 재정정책은 어디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돈을 바보같이 쓰더라도 그 돈을 번 사람들은 최대한 현명하게 쓰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재정승수는 여전히 어느정도 유지될 것이다. 케인즈는 아예 땅을 파서 돈을 묻어도 된다고 했는데 뭐 반도국가에서 세로로 운하를 파는 것 쯤이야 양반이지. 하지만 그러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국회는 그 어느때보다도 분열되어 있고 자한당 의원들은 균형재정에 집착하고 있어 문재인의 추경에 동의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장 GDP의 0.3%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세먼지 추경도 몇달째 국회에서 표류중이지 않은가. 정부지출이 경제를 떠받친 2009-10년 재정적자가 GDP의 거의 4-5%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재정정책이 적절하게 시행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뿐만 아니라 과거 금융위기 시절에는 중국의 성장률이 유지되면서 한국도 덩달아 선방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현재 만약 리세션이 온다고 한다면 그 진원지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2009년의 순풍이 이제는 악풍이 되었다. 배는 더 망가지고 선장과 선원은 더 무능한데. 그럼 같은 폭풍이 닥친다고 해도 피해는 훨씬 크겠지.
2. 불황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현재의 소득주도정책은 부자의 소득을 폭증시키고 빈자의 소득을 0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 해결할 적절한 정책은 대대적 감세를 시행해서 자본투자가 이뤄지도록 만들고 최저임금을 크게 깎아 가난한 사람들이 근로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당신은 이 둘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특히 현 정부 아래서. 문재인 정부는 계속해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난 올해 7월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8%를 상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박근혜-이명박정부 시절 상승률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럼 빈민층을 넘어 이제 중위권 노동자들 중 일부가 실직하거나 구직을 못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소득은 0이 될 것이다. 정부는 미봉책으로 그들에게 실업급여와 복지혜택을 제공하겠지만 기존 소득에 비하면 이는 턱없이 작은 금액이다. 그리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이다. 그럼 부자들은 자본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돌릴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해외에 발을 걸칠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은 더욱 가난해지고 그럴 방안이 있는 자본은 더욱 부유해질 것이다, 아 물론 저소득층에 비해서.
결국 최저임금이 빈부격차를 벌리는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데(나머지 하나는 필수재인 부동산을 폭등시키는 정책) 명목상승률을 깎을 수 없으니 인플레이션을 높여 실질 상승률을 낮추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오면 빈부격차는 더 벌어진다. 게다가 당장 다음 정권이 맞는 정책을 시행해서 고용이 다시 늘어난다고 해도, 현재 장기실업에 빠진 사람들에 앞서 갓 졸업한 대졸자들이나 단기실업자들이 먼저 직업을 고용할 것이다. 2016년에는 92년생 김지영은 25살의 실직자였지만 2021년이 되면 지영씨는 30살의 실업자가 된다. 그리고 기업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늘 30살의 실업자보다 그 해의 25세 실업자를 선호한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듯 92년생 김지영의 실직한 삶도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 몇년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부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지지 마라. 두번 다시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3. 지난 5년간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설 때의 환경을 보면 주로 외국인들의 국내자산 매도 물량이 수급을 끌어올렸던 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외국인이 채권과 주식 모두를 순매수했는데도 불구하고 원화는 약 5.5% 폭락했다. 모든 EM국가들 중 원화보다 더 폭락한 나라는 몇년 전 쿠데타가 일어났던 터키와 국가부도의 단골멤버인 아르헨티나 밖에 없다. 즉 과거와는 원화 약세의 요인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것이 내국인들의 해외자산 수요라고 생각한다. 외국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통화가 5%정도 약해지면(그것도 태국 바트같은 통화는 4% 강해질 동안) 원화자산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해 매도세가 약해지거나 매수로 돌아서는데, 환변동에 덜 민감한 국내 투자자은 애초에 해외자산을 확보하는게 목적이라 환율이 올라가면 더욱 빠르게 쫒아가서 산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수출기업에도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수출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할 때엔 원화가 필요하니 갑작스럽게 환율이 반등하면 열심히 달러를 팔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투자가 해외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달러를 팔 압력이 덜하다. 올해 환율이 1200을 돌파하고 나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4. 다음 경제부총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고 청와대는 국회에서 개헌 통과선을 확보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에 연말로 갈 수록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수장에 코드보다 능력을 갖춘 사람을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최종구 위원장은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국과 경제정책국을 거쳐 현 정부 인사중 그 누구보다도 경제부총리 자리에 맞는 적임자이며 정무적 감각도 갖춘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 그는 금융위원장의 직무를 넘어서는 사안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타다 이재웅 대표에게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지적했으며 얼마 전에는 각 은행들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평가하겠다고 발언했다. 이 둘은 모두 금융위원회의 소관이나 책임을 벗어나는 분야인데,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해온 그가 타 부서의 영역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엔 복안이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닐까. 특히 환율과 경상수지 흑자폭 축소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면 국제금융국에 오래 몸담은 그에게 힘이 실릴 가능성이 더 크다.
7년만의 경상수지 적자 속에 숨겨진 함의
먼저 외인 배당 유출 규모는 작년보다 줄어들었다고 하나, 이는 환율이 올라온 결과로 내 분석이 맞다면 지난 10년 중 재투자율이 가장 낮다. 많은 투자자가 배당으로 현금을 받으면 그 돈으로 재투자에 나서는데 외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이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국제수지 중에서 상품수지는 점점 나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고 여행수지 적자폭은 확대되고 있으며 해외 직접투자/증권투자는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경상수지 흑자폭이 GDP의 4%에 달해 IMF시절은 물론이고 2008/09년의 금융위기 상황과는 거리가 아주아주 대단히 멀고, 국제수지는 늘 평형을 이뤄야 하는데 한쪽의 흑자가 계속해서 누적되는게 꼭 좋은것 만은 아니다. 이 점을 고려해서도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인들도 외국인들도 국내자산에 투자를 줄이고 해외투자를 늘린다는 점인데, 금융/자본수지 적자 자체보다 그 배경이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가지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저소득 저생산성 노동자들의 강제파업. 정부는 시간당 생산성이 8,500원에 미달하는 노동자가 일을 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들어 그들을 강제로 파업시켰다. 세상에 오천원짜리 물건을 만원을 주고 사는 사람이 없는 것 처럼, 오천원짜리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를 만원을 주고 고용할 기업은 없다. 폐업을 하고 말지. 사실 이걸 파업으로 분류해야할지 모르겠다만, 어쨋거나 이 파업의 여파는 몇년간 급증한 실직자와 실업률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두 번째 파업은 바로 자본파업. 지금 우리나라 GDP의 주요 요소 중 가장 악화되는 것은 투자다.(I) 4분기 이동평균으로 볼 때 지난 50년동안 투자가 현재보다 나빳던 적은 딱 네번 뿐이다. 오일쇼크, IMF, IT버블 붕괴 그리고 리만사태. 경제성장률이 반토막나면서 악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민간투자가 망가지고 있어서이다. 신문은 대기업들이 몇십조를 투자하고 수만명을 고용한다고 헤드라인을 뽑지만 죄다 공염불이다. 그저 클럽에서 여자를 꼬시는 한량의 멘트처럼 진심이 결여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 뿐 아니라 자본까지 파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배경으로 여당 지지자들은 대외환경을, 야당 지지자들은 정책실패를 들며 끊임없는 입싸움을 하고 있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 경제는 지난 21세기 들어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는 MSCI rebalancing 때문에 코스피를 팔아야하는 타이밍에 배당이 이루어져서 재투자율이 낮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재투자율은 2011년 이래 꾸준히 낮아졌다.
2019. 5. 2.
How politics can destroy you
하지만 그랬던 그가 변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긴 뒤로. 그의 블로그에는 경제에 관련된 글보다도 정치에 관련된 글이 몇배 더 많이 올라오며 그는 자신의 유려하면서도 독한 비평을 경제분석이 아닌 공화당에 더 많이 할애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평소에 주장하는 경제정책을(재정지출 확대, 그리고 연준의 완화 스탠스 연장) 트럼프가 정확하게 시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크루그먼은 트럼프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의 본업이 민주당원이고 부업이 경제학자가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심지어 최근의 포스팅(링크)에서 그는 자신을 공격하던 사람들의 비유를 그대로 들기까지 했다. (You don’t have to be a gold bug or even an inflation hawk to see these demands as deeply irresponsible. Indeed, they sound a lot like the “macroeconomic populism” that has repeatedly led to economic disaster in Latin America, with Venezuela the latest example.) QE를 펼치던 연준과 그를 옹호하던 크루그먼의 비난하던 니얼 퍼거슨은 이러한 통화적 이징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고 남미의 많은 국가가 그와같은 전철을 밟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 대하 크루그먼은 니얼 퍼거슨이 경제학자가 아니면서 경제정책에 대해 논한다고 조롱했고, 미국 경제가 명확하게 회복기에 있고 실업률이 충분히 낮아졌을때도 인플레이션이 없다면 굳이 통화긴축에 나설 이유가 있냐고 주장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진영을 바꿔 니얼 퍼거슨과 비슷한 주장을 내놓으며 남미국가인 베네수엘라의 예시를 들며 트럼프의 연준에 대한 압력을 비난했다!
물론 그때와는 경제적 상황이 매우 다르고 크루그먼의 주장처럼 연준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정치평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경제평론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처럼 역사에 남을 석학들도 정치에 휘둘리면 총기를 잃는데, 나 같은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2018. 9. 26.
지금이라도 집을 사라.
이것이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다. 서울 주요지역의 집값은 저점이던 2014년 대비 거의 2배 이상 올랐는데 그때보다 대출은 더 어렵고, 세금은 늘어났으며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수억이나 되는 돈을 들이는 데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트레이딩은, 그리고 투자는 그런 당연한 감정들을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유명한 펀드 매니저나 트레이더가 "마음 내키는대로 사고 팔았더니 어느새 부자가 되어 있더라"라고 하는 것을 보았는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그냥 오랑우탄이나 침팬치같은 동물처럼 투자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분명 돈은 인간의 감정을 싫어한다.
따라서 다시 한번 경제 지표와 시장을 냉정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현재 집값은 고평가되어 있는가, 그리고 서울 시내의 주택공급은 충분한가. 아래의 데이터와 수치는 yes라고 대답하기 쉬운 그 통념을 산산히 부순다. 서울의 집값은 버블은 커녕 아직도 저평가 되어있고 공급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주택 가격 평가
위의 차트는 서울시 내의 평균 주택가격을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1인당 가처분 소득이 거의 50% 증가하는 동안 주택 가격은 고작 12%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 지표를 보면 서울의 주택난이 극심하던 1980년대나 주택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던 2000년대 중반에 비하면 서울의 주택가격은 아직도 싸다. 게다가 평균소득이 오르면 고소득자의 수는 더욱 빠르게 늘어난다. 2007년 연봉 1억이 넘는 근로소득자는 10.1만 명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무려 65.3만 명이 되었다. 고액연봉자가 살고 싶어하는 강남이나 마포, 용산, 성동구의 신축 아파트 가격이 2배 이상 뛰며 타 지역을 압도하는 데엔 이와 같은 배경이 있다. 사람들의 소득이 줄지 않는 이상 집값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다.
집값의 valuation을 비교할 또 다른 지표를 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특정 재화의 실질 가격을 평가할 때 통화량과 명목 가격을 종종 비교한다. 이는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효과를 대략적으로 보정해주기 때문이다. 통화량 대비로 보아도 한국의 주택 시가총액은 전혀 고평가 구간에 들어가 있지 못하다.
2)주택 공급 평가
서울시의 주택 공급 수급을 평가할 때엔 아래의 표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수요
서울시 가구 수 : 385만 가구
+서울시 생활권 : 55만 가구
합 : 440만 가구
*공급
서울시 주택 수 : 365만 채
그 중 아파트 수 : 165만 채
신축 아파트 수 : 65만 채
아주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서울 내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어한다. 서울시의 인구가 줄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서울을 떠난 것이 아니라, 부족한 주택 수로 인해 밀려난 것이다. 그렇게 서울시 밖에 살면서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156.3만 명, 약 55만 가구다. 이렇게 총 440만 가구가 저 65만 채의 신축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해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서울 부동산 시장의 현 상황이다.
구체적인 숫자를 따져 보면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암담하다. 흔히 사람들은 지은 지 15년이 넘으면 구축 아파트로, 40년이 넘으면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할 재건축 대상 아파트로 분류한다. 따라서 매년 9.1만 채(365만 채/40년) 집을 새로 지어 줘야 서울 내의 주택 수급사정이 악화되지 않는데, 지난 10년간 이 숫자를 맞춘 적은 단 두 해 뿐이었다. 나머지 8년 동안 수급 사정은 계속 악화되어 온 것이고, 그 결과 서울시에는 미분양 주택이 거의 사라졌다.
서울시 미분양 주택 수 |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재건축/재개발을 막은 국토부의 어리석은 정책 덕분에 더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멍청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이미 겪은 적 있지만, 정책 설계자들은 집값 안정이라는 대의적 목표가 아니라 개인적 욕망에 따라 고집을 부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링크)
이렇게 서울 내 주택 수요는 풍부한데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어떤 대책을 써도 주택가격을 잡을 수 없다. 종부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매기면 가장 가난한 주택 보유자가 조세부담을 못 견디고 전세입자로 전락하여 전세수요가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돈이 가장 많은 다주택자가 그 집을 사들여 전세를 돌리게 되니, 결국 주택 가격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소유구조만 악화될 뿐이다. 조선시대에 지대를 높이면 결국 지주가 아니라 소작농이 비싼 세금을 부담하게 되듯, 모든 사회적 비용은 가장 약자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니까.
또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을 죄는 통화정책은 부동산 외의 여러 시장에 영향을 주게 된다. 지나치게 많은 시중 유동성 때문에 부동산이 폭등했다고 하지만, 그럼 이 통화량이 왜 주식시장, 상품시장, 혹은 떡볶이시장 학원수업료 등으로 흐르지 않고 부동산 시장에만 모이겠는가. 유동성은 마치 물과 같아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주는 곳으로 모이기 마련이고, 어리석은 정부 정책 덕에 마침 그게 부동산 시장이 되었을 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유동성을 죄면 수익성이 가장 나쁜 시장에서 먼저 돈줄이 마른다. 부동산에서 돈을 퍼내도 어떻게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나간 만큼을 채울 테니까. 내 생각에는 만약 정부가 그런 정책을 쓰면, 자영업 대출시장이 그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들어 전세대출을 금지했다고 치자. 그럼 새 전세금을 맞추지 못한 세입자는 월세로 전환할 것이고, 이렇게 월세수익이 올라가면 집주인은 저축은행에서 예금을 빼서 전세를 월세로 돌릴 것이다. 자금이 빠져나간 저축은행은 안정적인 부동산 담보 대출보다 어떻게 돈을 날려먹을지 모르는 자영업자 대출과 신용대출을 먼저 줄인다. 그중에서도 저소득자의 대출을 가장 먼저 줄일 것이다. 결국 줄어든 통화량은 어느 경로를 통해서든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타격을 입히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정책의 가장 큰 비극이자 희극은 현 정부를 가장 지지하는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7. 12. 1.
6년 5개월만의 금리 인상
2017. 11. 25.
집을 당장 사라고 외친지 어언 3년
멍청이들의 정모: 2년 전, 공급부담으로 집값이 빠질거라는 전망을 한 기자와 거기에 달린 베스트 댓글들. |
2017. 11. 13.
왜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은 줄어들지 않는가?
청년 실업은 경제성장이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패를 세계적 문제로 승화하는 이들에게 차가운 물 한잔을 권한다. 경제성장은 인당 GNI가 1만불이 넘으면 주저앉기 마련이고 3만불이 넘으면 대체적으로 3%에 수렴한다. 전 세계가 다 그런데 뭔놈의 저성장 고실업. 게다가 외환 위기 이래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대로 안정적이었고 지난 5년간 취업자 수는 155만 명이 늘어나지 않았나. 남유럽 국가나 타 신흥시장과는 달리 한국에서 고실업은 일어난 적 없다. 일자리 수만 두고 보면 우리나라 전체의 고용시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 실업은 오로지 청년들만의 문제고 전반적 경제 상황과는 무관하다.
물론 청년실업 데이터를 보면 그 전망은 장미빛 보다는 똥색에 가깝다. 장미에서 추출한 향수 원액을 짙게 농축하면 똥냄새에 가깝다지만 이 숫자는 그냥 똥이다. 정부 발표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10-30대 근로자는 고작 2만여 명이 증가했는데, 50세 이상의 노동자는 무려 151만 명 증가하여 사실상 지난 5년 간의 취업시장을 50-60대가 독차지한 것이다. 2 대 151. 이런 스코어는 20대가 60대 할배들과 농구시합을 해도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쪽이라니. 이럴수가. 이렇게 대한민국의 고용시장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고 그 결과는 아버지의 승리로 귀결되는 모습이다. 기업들이 노쇠한 아버지를 선호하며 젊고 패기 넘치는 청년들을 외면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벌건 대낮의 태양 만큼이나 자명하다. 바로 청년 노동자들이 밥값을 못한다는 것.
92년생 지영씨를 고용하면 기업이 매 달 250만원의 생산성을 낸다고 치자. 그런데 그녀의 월급이 200만원이라면 기업은 지영씨를 열 명 스무 명 뽑는다. 노동시장에서 평균연봉이 올라가든 추가 노동자의 생산성이 낮아지든, 그 둘이 같아질 때 까지 뽑는다. 왜? 돈이 되니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란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현실에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을 고용해서 투입해봤자 월급을 뽑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물론 반대로 생산성 만큼의 월급을 준다고 하면 92년생 지영씨는 기분 나빠하며 면접장을 박차고 나갈테지만.
그러나 거시적으로 이런 실업은 장기간에 걸쳐 유지될 수가 없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물건이 안 팔리면 가격이 내려가고, 그러면 수요가 증가해 수급이 맞게 된다. 고용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실업이 높아질 경우 임금이 내려가면서 기업의 고용 수요가 늘고 따라서 실업도 해소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균형점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경기가 불황일땐 단기적으로 실업률이 높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청년 실업은 장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경제는 불황과 거리가 아주 멀다. 청년들이 구직난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을 겪고 있으니 청년들은 직업을 못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 구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의 핵심 질문은 왜 젊은 저숙련 신입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아들이지 않는지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매몰비용. 현재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세대는 약 70%는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용의 85%를 담당하는 중소기업 일자리의 상당수는 굳이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하위권 대학의 졸업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인기가 없는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자신의 4년 이라는 시간과 5천만 원이라는 등록금 투자가 취업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용만 보면 1류 대학이나 하위권 대학이나 동등하지 않은가. 본전 생각이 자꾸 떠올라 취업 눈을 낮추지 못하는 것이 아 아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투자에서 고작 수백만원의 손실에 손절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인데 하물며 20대의 전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 졸업장을 손절하겠는가.
두번째, 캥거루 족의 증가. 굶어죽는 대신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를 받아들여야 할 청년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고학력 실업난이 심했던 조선후기에 허생의 마누라는 고학력자 남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나가서 상것들 처럼 밭이라도 갈라며 집밖으로 쫒아냈다. 허모씨(28세, 후암동, 고시생)에게 생활비를 대주는 부모가 있었더라면 그는 계속해서 실직자로 남았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처럼 자녀가 늦은 나이까지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며 손벌리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의 청년 실업률은 EU 내에서 가장 높다.
세번째, 높아진 눈높이.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단군 이래 가장 잘 먹고 잘 자란 세대다. 1990년대 강남의 초등학교 교실엔 영어를 할 줄 아는 학생이 하나 있을까 말까 였는데 이젠 시골 초등학교에도 원어민 선생님이 들어온다. 그들은 70-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놀면서도 대학만 졸업하면 꿀빨면서 취직하지 않았냐며 부러워하지만 그 시절엔 바나나는 부잣집 애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고 고등학생들은 교련복을 입고 전직 군인 교사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군사교육을 받는 부조리를 겪었다. 그렇게 자라 대학에 가면 학자금 대출 이런 혜택조차 없어서 부모가 소와 땅을 팔아 학비를 대야 했고 그 대학을 졸업해 취직하면 헝가리나 멕시코 노동자들과 엇비슷한 임금을 받았다. 그게 부럽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구로공단이나 동남아로 가시라.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이 가장 호화스러운 삶을 살 수 있던 것은 본인들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고숙련 고임금 노동자인 부모들이 그 모든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회사로 치면 이제 그들은 부장의 월급으로 놀고먹다 신입사원의 연봉을 벌기위해 취직을 해야한다. 평생 강남에서 자란 20대는 강북으로 쫒겨나는게 당연한 일이고 아부지 카드로 해외여행 다니던 아들은 이제 부산으로 피서 가는 일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곱게 자란 이 캥거루들은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세상이 부조리해서 그런거라며 투덜거리기를 택한다.
따라서 50, 60대들이 취업시장에서 20대들을 누르고 완승을 기록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상대적으로 아들딸 보다 학력 수준이 낮은 아버지 어머니들은 취업시장에서 눈높이를 높일 일이 없다. 게다가 뒤를 봐주는 부모가 있는 청년과, 부양해야할 가족이 주렁주렁 달린 부모 중 누가 더 절박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가난한 개발 도상국에서 태어난 5060대는 남유럽 선진국 수준으로 자란 2030대가 꺼리는 직업을 기꺼이 택한다. 물론 아들과 아버지가 똑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지는 않지만 위와 같은 과정을 거처 하청업체는 신입사원을 뽑는 대신 거래처 부장을 더 싼 연봉에 모셔오거나 아줌마 영업사원을 뽑는 것이다. 155만개 일자리 중 151만개를 휩쓴 실버 세대의 신화는 이렇게 씌여졌다.
나는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청년들이 그걸 못 견디는게 나쁘다는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쓸모없이 상사 눈치를 보며 야근하는 비효율적 문화는 하루바삐 없어지는게 좋고 대졸 청년들이 졸업장을 찢어버리고 고졸자와 외노자와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것이 옳다는 소리도 아니다. 나는 선악에 대해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석해 볼 뿐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기대와 현실의 불균형에 있다. 모두들 세계 일류 국가들과 경쟁하는 삼성 현대 LG SK를 바라보며 대학 학비를 대고 미래에 투자하지만 그들이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미미하다. 대부분의 고용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대기업과는 달리 이들 중소기업은 동남아 후진국과 경쟁하고 있고 자영업의 노동생산성은 OCED 최하위를 두고 박터지게 싸우고 있다. 여기서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는 정치와 여론이 결정할 문제이다. 노동 집약적 산업과 동남아 스타일에서 탈피히여 중소기업들의 생산성을 강화하든 5060대가 늙어 죽을때까지 기다리든, 미래에 어떤 길을 택할지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오늘날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실상부터 알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인정하기 싫을 만큼 불편하고 시선을 맞추기 어려울 만큼 어글리 할 지라도.
2017. 9. 11.
전세가 없어지지 않는 진짜 이유-미개한 정부와 현명한 시장
많은 사람들이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이고 사회발달과 함께 없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평균 전세액은 사상최고가를 경신하며 여전히 월세보다 두배는 더 많은 계약방식으로 없어지기는 커녕 더 흔해지고 있다. 전세가 없어질거라고 부르짖었던 사람들은 머쓱해하며 집값 상승이 재개되어 그런거라고 변명하지만 어디 그런가. 집주인이 집값 상승을 바라보고 전세계약을 한다면 세입자는 집값 하락을 바라보고 전세를 계약한다. 아니고서야 세입자는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을테니까. 상승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가 하락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를 만나 거래를 하는데, 집값이 올라갈거라 믿는 사람이 많아 전세가 늘어난다는 말은 이 계약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주장이다. 그리고 그 특성을 이해하면 우리 사회에서 전세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저 크로마뇽인 같은 정부가 현대인으로 진화하기 전 까지는.
전세란 한마디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지 않는 대신 집을 담보로 잡고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거래다. 따라서 전세금을 결정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월세, 시장금리 그리고 담보가치인 집값.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월세율과 시장금리이고 집값은 전세가가 주택가격의 70-80%을 넘지 않는 이상 이 거래에 별 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월세가 동일할 경우 한국은행이 시장금리를 내리면 전세 가격은 올라간다. 같은 원금으로는 월세를 보충할만한 이자를 못 받기 때문에 원금을 더 받아서 맞춰야 하니까. 따라서 전세금의 트렌드와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비교해보면 거의 동행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집주인와 전세입자는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고 맡기는 대신 이런 복잡한 계약을 할까? 집주인이 전세를 놓는 대신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고 월세를 받는다면 더 큰 돈을 벌수 있다.(전월세 전환률 4%-은행 대출이자 3%) 물론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가 나쁠 것이 없다. 목돈을 은행에 맡겨봤자 2%의 푼돈만 받는데 비해, 4% 월세를 내야하니 얼마나 손해인가. 따라서 전세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럼 애초에 집주인은 왜 은행으로 가지 않는가?
왜냐하면 애초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시스템이 미개했던 시절, 은행의 대출은 일부 특권층에게만 열려있었고 이 시스템에 접근하기 위해선 연줄이 필요하기도 했다. 선진화 된 금융시스템이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대출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현대의 언어로 말하자면 전세는 주택담보 p2p 대출인 것이다.
물론 이 시스템은 중앙화 된 효율적 금융 시스템이 있다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접근 가능하며 공정한 금융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 정부가 환율을 묶어둔 많은 개도국에서 달러 암시장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처럼, 정부가 시세를 무시하고 시장에 입김을 가하면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공정한 시장을 창출해 낸다. 전세가 없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미 사람들은 서로서로 집의 담보가치를 70-80%까지도 인정해주는 데 비해, 정부는 은행이 주택담보가치를 40%까지만 인정해주라고 지시했다. 참고로 파산하기 직전의 그리스 채권의 잔존가치가 이보다 더 높았다. 그럼 어떤 집주인이 자기 집을 망해가는 나라 국채수준으로 취급하는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겠는가? 게다가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대출문턱을 조이고 있다. 다주택자들은 부자고 그들이야말로 부도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을 올리는 비효율적 시장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생하는 전세시장을 집어 삼키겠는가. 이는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는 일 보다 더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정부 자체도 전세가 없어지길 원하지 않는다. 나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므로 국가부채가 늘어난다는 것은 국가자산이 동시에 늘어난다는 것인데 금융원시인들은 대개 부채라는 차변만 보고 대변은 읽지 않는다. 그런 미개인들의 집합인 정부는 무턱대고 부채가 안 늘면 손뼉치고 좋아한다.(그들이 지향하는 세계는 부채가 없던 고조선 혹은 지금도 없는 보츠와나 같은 사회인가보다) 그런데 모든 전세를 금융시스템으로 편입하면 집주인들의 부채가 하루아침에 500조가 늘어나므로(동시에 세입자들의 자산도 500조 늘어나지만, 우리는 대차대조표의 왼쪽을 볼 줄 모르는 반푼이들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나라가 망한다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조차 전세가 없어지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전세는 멍청한 정부가 만들어 낸 공공시스템이 제 할일을 하지 못해 사람들끼리 스스로 만들어 낸 효율적 시스템이다. 범죄가 끊이지 않는 도시에서 경찰이 나서지 않으면 시민들이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하는 것 처럼 전세는 주택시장의 금융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났다. 전세 시장은 금리와 월세 주택 가격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영하며 세입자 집주인 모두에게 이익을 줄 뿐 아니라 멍청한 정부까지도 지속되길 원하는 시장이다. 효율을 무시하는 시장은 언제나 도태되는 법이다. 전세 시장은 정부를 비웃으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 참고로 집값상승에 대한 기대는 금리에 반영되지만 복잡하니 넘어가자
**이 외에 2차효과도 있으나 역시나 복잡하니 넘어가자
2017. 8. 20.
21세기의 시작을 부른 버블
많은 이들이 지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을 지목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 버블로 지목받은 자산은 그 거품이 꺼진 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이전의 고점을 회복했다. 1929년의 대공황 이후 미 증시가 같은 수준으로 돌아오는데에 29년이 걸렸고 2001 IT버블은 급격한 기술력과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15년이나 걸렀다. 일본 증시는 거의 30년이 지나도록 2/3수준으로도 반등하지 못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GDP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의 증시도 십수년이 걸려야 이전의 고점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18세기 툴립구근처럼 영영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버블자산들도 많다. 하지만 미국 부동산은 단 10년만에 모든 손실을 회복하고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이로 보아 2007년의 미국 부동산이 고평가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금융위기를 불러올 버블이었냐는 질문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 과연 무엇이 버블이었는가? 아마도 시장에 팽배했던 서구 금융시스템에 대한 이성적 믿음이 아닐까 싶다. 완전히 이성적인 시장에서는 가격이 아주 높거나 낮다면 항상 팔거나 사고싶어하는 사람이 존재해야하니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패닉장에서는 대개 유동성이 사라지는 liquidity cruch가 종종 일어난다. 신흥시장의 자산을 거래하는 투자자는 이 위험을 늘 감안하기 마련인데, 현대문명을 발달시킨 서구의 금융시장과 자산을 거래하는 투자자들은 이런 패닉의 가능성에 눈을 감아버렸던 것이다. 누구도 입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높은 교육수준과 합리적 시스템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돌아가는 서구의 시장에서 미개한 신흥국에서나 벌어질만한 일이 터지리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흔한 베어마켓이 패닉을 동반한 폭락으로 번졌던 것이다. 물론 거기엔 자신의 금융모델을 과신했던 서구의 오만함이 있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고.
위기가 번지기 시작한 그 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크게 변화했다. 죽어가던 월가는 재무부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자금에도 의존해야 했고 리만의 인수를 검토하고 메릴린치 지분을 늘린 한국의 자금도 시장안정에 일부 기여했다. 이제 금융 시장은 더이상 유럽과 미국의 헤드라인 뿐 아니라 중국의 시장동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으며 월가에서도 이제 아시아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인간승리의 아이콘 대신 마땅히 있어야 할 구성원들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시장 너머에서도 감지된다. 새로 늘어나는 GDP의 60%는 아시아 지역에서 나오고 있으며 2015년에 개봉한 쥐라기공원 4를 보면 공원의 오너와 개발팀장도, 그리고 수많은 관객들도 아시아 유색인종들이다. 20여년 전에 개봉한 1편에 비하면 얼마나 큰 변화인가.
흔히 역사학자들은 100년을 아우르는 가장 커다란 변화를 야기한 사건을 그 세기의 시작으로 정의한다. 현재의 사람들은 21세기는 911테러로 시작됐다고 하지만 , 이번 세기에 벌어진 가장 인상깊은 일이 기독교의 몰락이나 테러의 보편화가 아니라 서구의 헤게모니가 세계를 독점하는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라면 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번 세기의 시작을 2008년 리만의 파산으로 잡을 것이다.
2017. 8. 3.
8.2대책 평가: 내집마련의 꿈이여 안녕
* 이제 보통 중산층 맞벌이 부부가 목돈을 상속받지 않고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출의 문턱이 높아져 주택 가격의 40%밖에 대출을 안해주는데 누가 어떻게 집을 사겠는가? 애초에 집값의 60%나 되는 돈을 들고 있던 사람이라면 3년전에 대출을 거의 받지 않고 살수 있었을텐데, 이제와서 빚을 내고 사겠는가? 그동안 집을 당장 사라고 주장했는데,(링크) 이젠 이런 조언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못 살테니까. 현재 전세를 사는 사람은 계속해서 전세에 주저앉을 것이고 집을 이미 삿던 사람은 갭투자를 활용해 계속해서 주택 수를 늘려갈 것이다. 그리고 물론 빈부격차도 확대될 것이다.
* 정부가 세금 폭탄을 통해 다주택자들의 매도를 유도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다주택자들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뒤 실제 거주하는 집 1채 외에 나머지 집들을 임대주택으로 신고하면 그만이다. 이 경우 몇몇 요건만 충족시키면 되려 집을 1채 갖고 있는 사람보다 세금을 더 절약할 수 있다. 그들은 몇년동안 소비하는 대신 이자를 내고 마음편히 발뻗고 잘 시간에 발품을 팔아 집을 매입하고 놀고먹을 시간에 공부하고 분석하고 연구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런 제도를 몰라서 집을 투매할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 원래 집을 팔 계획이 있던 사람들은 내년 3월 31일 전에 집을 팔 것이고 이 물량이 단기적 안정을 가져올 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이 8.2대책은 집값을 더 끌어올릴 것이다. 세부 사항을 뜯어보면 재건축을 더 어렵게 하거나, 재건축 조합의 실질 부담을 늘린다. 결국 이 조치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부자가 아닌 무주택자들과 재건축을 추진하던 단지들인데, 이 둘이 바로 재건축 사업의 수요와 공급의 주체들 아닌가. 매수자와 매도자 양측에게 어퍼컷을 날렸으니 재건축 사업은 곳곳에서 지연되거나 좌초할 것이고 서울의 주택 공급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 김현미 장관을 비롯, 계획 입안자들은 서울시의 주택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통계를 기만하고 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링크) 서울시의 집 수는 총 360만 호인데 주택은 대략 375만호로 주택보급률은 96% 밖에 안된다. 이 중 실제로 완전히 노후화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나 퇴거가 이루어진 집 들을 감안하면 실제 주택보급률은 더욱 내려간다. 여기에 주택의 감가상각을 40년으로 잡으면 매년 2.5%의 집들이 살기 싫은 낡은 집으로 전락한다. 즉 매년 9만호의 집을 추가로 지어야 적어도 공급부족이 악화되지 않는다는 뜻인데, 지난 10년동안 주택건설이 9만호를 넘었던 해는 단 두 해 뿐이었다. 서울의 주택공급은 악화되고 있다.
* 세입자들에게 더 암울한 얘기를 하자면 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쁘다.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은 지난 4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사실상 80년의 한국과, 90년 그리고 2010년의 한국은 아주 다른 나라이다. 다시말해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들 수준으로 먹고 입고 즐기면서도, 저녁만 되면 지은지 15년된 하노이의 아파트나 30년 된 짐바브웨의 콘크리트 더미로 돌아가 자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구연한이 아직 한참 남은 아파트의 주민들도 재건축을 원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감가상각은 더욱 크다.
* 이게 다 최경환 때문이다? 그가 시행한 정책은 1)대출의 문턱을 낮춰주고 2)재건축을 용이하게 해줘 과열지역의 공급을 늘린뒤, 정부는 실수요자에게 대출받아 집을 살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그 때가 가계가 집을 사기에 가장 쉬운 시기였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최경환이 그당시 시행했던 정책을 지금 되돌리자 집을 사려던 실수요자들이 아예 못사게 되지 않았는가. 애초에 다주택자들은 직접 거주할 필요가 없어 갭투자를 하면 됐고, 부자들은 굳이 은행에 갈 필요가 없으니 이 정책의 수혜자들이 아니다. 최경환이 서민과 중산층들에게 집을 살 문을 열어줬는데, 그 문을 통과하는 대신 먹고 입고 노는데 돈을 써버린 사람들과 집값이 더 폭락하는데 베팅한 실수요 무주택자 투기꾼들이 이제 와서 초이노믹스를 탓한다. 그들이 인터넷 댓글에서 서로의 주장을 정당화하며 기분 좋게 정신승리를 할 지 몰라도 내집마련의 꿈을 스스로 걷어찬 것은 부지의 사실이다.
* 일부 사람들은 어쨋거나 최경환이 가계부채를 늘리고 집값을 올려놓지 않았냐고 묻는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택가격 뿐 아니라 우리나라 수출, 국민소득, 삼성전자 주가, 그리고 한국 미술품 경매가 모두가 다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게 다 최경환 한사람의 공이라면 그는 되려 구국의 영웅이 아닌가. 이는 경제의 견고한 회복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등이지 인위적 집값 띄우기도 아니고 버블은 더더욱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30년째 집값은 버블이라고 목놓아 울어대는 이들의 대류에 합류하든가.
* 주택가격 상승의 책임은 시민들 자신에게 있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더 사는 것은 마치 비트코인을 트레이딩하듯 100에 사서 150에 팔려는 것이 아니라, 집을 가지고 있으면 월세가 꼬박꼬박 들어오고 이게 은행이자보다 낫기 때문이다.(전세도 다른 루트지만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집값 상승의 원인은 그만한 월세를 내는 세입자들 때문이고, 이는 그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이뤄진 것이지 누군가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더 작은 집에서 살던가 아니면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옵션이 있었는데 굳이 투기지역에 비싼 월세를 내고 사는 길을 택했다. 예를 들어 압구정에서 사는 대신 대중교통으로 1시간 떨어진 수락산 근처의 아파트에서 살면 1/6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데, 압구정에 사는 사람은 더 비싼 월세를 내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이를 "시장에 의한 가격 결정"이라고 부른다.
* 그래서 앞으로 집값은 어떻게 될 것인가? 반년도 안돼 오를 것이다. 이 대책은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했을 뿐 이에 대한 공급계획은 전혀 없다. 사람들이 용산, 성동, 강남에 살고 싶어하는데 2시간도 더 떨어진 지방에 짓겠다는 대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국가의 정책은 국민의 수요를 만족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그를 제멋대로 틀겠다는 것은 매우 구시대적 발상이고 바로 그들이 비난하는 적폐세력과 군사정권의 방식이다. 수요를 끌어내리려면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어야하니 불가능하고, 공급은 하기 싫으니 집값은 오를 수 밖에 없고 사람들의 욕망을 거스른 정부의 정책은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마치 군사정권들이 아무리 억압하고 때려도 결국에는 무너졌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