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8.

멸망을 이끈 대한제국의 고종, 그리고 대한민국의 세종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근대 이전부터 크게 벌어졌던 조선과 일본의 잠재력을 감안한다면 조선이 성공적으로 개혁을 이루어 독립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개화의 기회가 있었더라도 조선은 실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지도자였던 고종에게는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었으니까. 여러 대중매체들이 그를 비운의 개혁군주로 묘사하는 것과는 반대로 고종은 조선이 전쟁 한 번 없이 멸망하게 된 중요한 원인들을 제공했다. 그의 여러 실정과 잘못된 조치로 국가의 재정은 더욱 빈곤해졌고, 그는 몸소 나서서 관직을 팔며 부패를 권장했으며, 국제정세에도 어두워 외교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조선이 마지막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던 마지막 기회였던 갑오개혁을 무산시키고 부패한 적폐 세력인 민씨 척족을 등용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고종 그 자신이었다. 또 근대적 의회 시스템과 헌법을 도입하자던 독립협회를 군대를 동원해 해체하고 개화파 인사들을 체포한 것도 고종이었으며 이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사람 중에는 이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고종의 밀서를 받아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 중 한 명인 이위종까지도 당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동시에 이를 야기한 고종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니 더 볼 것이 있으랴. 구한말-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이끈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입헌군주제 대신 공화정을 지지한 데에는 고종과 왕실에 대한 좌절에 가까운 실망이 큰 몫을 했다.

고종은 서구식 제복을 입고 미국에서 수입한 캐딜락을 타고 커피를 마시며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서구식 건물에 살았지만 정작 자신의 의식과 국가의 시스템을 개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근대화의 핵심은 권력을 분산하고 국가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바꾸는 데에 있었지만 반대로 권력을 강화하고 싶었던 이 아둔한 군주는 무려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온힘을 다해 전제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대한제국의 통치제도는 되려 조선 전기보다도 크게 후퇴한 1인 전제 군주정으로 돌아갔다. 다만 나라가 그를 유지할 힘이 없었을 뿐. 미개한 시스템의 정점에 있던 고종은 어떻게 보아도 개혁의 대상이었지, 결코 주체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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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정부와 거기에서 일하는 관료들은 늘 숨 가쁘게 이런저런 개혁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중 대다수는 변화하는 환경과 민간의 수요를 맞추어 따르는 대신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와 관료들이 통제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시대 고종이 그랬듯이. 거창한 구호로 시작된 개혁안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철학으로 귀결된다. 정부가 통제를 잘 해서 발전하겠다. 그리고 그 기저에 놓인 철학만큼이나 쉰내 나는 디자인의 hwp 문서의 핵심은 거창한 포부와 그럴듯한 문구로 치장된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따라서 이런저런 규제와 지도를 강화하겠다, 그래 우리 관료들이. 관료조직이 대개 요지부동이듯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구태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하다. 고작 2년 밖에 안된 이번 정부에서도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 밸류업 프로그램, 금융개혁, PF 연착륙 대책 등. 이런저런 방안들이 나왔지만 그 세부내역은 필요한 개혁이나 시장경제와 질서를 강화하는 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정부의 감독 권한과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채워져있다. 정부가 마련한 개혁안들 중 국가의 간섭을 줄이고 민간의 영역을 확대-강화하는 것이 뭐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라.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 개혁이나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는 수두룩하게 많다. 최경환이 이끌었던 초이노믹스의 증시 정책은 가장 보수적인 인사들조차도 고개를 저을 정도로 완전한 실패로 끝났고, 수십 년째 동북아 금융허브를 외쳤지만 금융도시로서의 서울의 순위는 10년 전보다 되려 내려갔으며 그사이 십여 개의 외국계 금융사들이 서울에서 철수했거나 사업 규모를 크게 축소했다. 금융계는 그 주된 원인으로 글로벌 기준 어긋난 비합리적 규제들과 관료들의 조선식 갑질을 꼽는다. 여러 차례 밀어붙였던 경제자유구역과 각종 동북아 xx 중심지 정책은 모조리 다 실패해 이제는 그저 그런 신도시들 사이에서 그 흔적만 간신히 남았으며 그 가운데 엄청난 예산과 자원, 그리고 인력이 소모되었다. 비단 이것이 경제정책이나 금융에 국한된 문제랴. 산업이나 통상, 혹은 건설이나 심지어 문화 예술이나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모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도 주택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민간의 손발을 규제로 꽁꽁 묶어두고 정부가 나서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안은 애초에 성공할 수가 없었기에 주거안정의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났다. 안타깝지만 이 외에도 21세기 들어 국가가 주도한 대형 프로젝트나 개혁안은 거의 대부분이 실패해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국가가 아니면 리드할 수 없던 소수의 토목사업이나 비영리 정책을 제외하면.

이런 실패가 거듭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체급이 이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계획으로 이끌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라의 전체 GDP 규모가 20억 불 남짓하던 시절에야 소수의 유능한 관료들이 효율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기업들을 윽박질러 국가의 발전방향을 세우는 것이 가능했지만 같은 방식으로 2조 달러를 바라보는 경제를 운용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50년 전만 해도 민간의 경쟁력이 열악했기에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정부로 모여들었으나, 이제 똑똑하고 진취적인 인재들은 더이상 행시를 보지 않는다. 오늘날의 관료조직은 두뇌를 독점하지도 못하고 민간에 비해 경쟁적이지도 않은, 뒤처진 조직이 되었다. 당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같이 일해본 관료들을 떠올려보라. 과연 그들이 민간을 이끌고 발전방향을 제시할 깊이와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인지.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통제 욕구는 더욱 강해진다. 관료조직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민간에 비해 뒤처질수록 이 기관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조선 말기에 나라를 통치할 능력을 상실한 고종이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더욱 왕권을 강화하고 개혁을 억눌렀던 것처럼. 심지어 관료들은 민간의 자유로운 발전을 허용하는 것을 일종의 위협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가상자산이 각광을 받던 시기 법무부 장관은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겁박했고 당시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어른들이 올바른 투자를 가르쳐 줄 의무가 있다며 어리석으면서도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같은 시기 미국의 하원이 "우리는 가상화폐의 내재가치에 논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가상화폐를 자유롭게 거래하는 일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논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자유주의적 관점과 완벽하게 대비된다. 이에 힘입어 얼마 전 SEC는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를 승인했는데, 이와 반대로 코인의 거래를 금지한 국가로는 이집트, 이라크, 중국, 카타르, 오만,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방글라데시 등이 있다. 우리나라 관료들의 평균적 의식은 OECD보다 저 아프리카 나라들에 더 가깝다. 그들의 이런 후진적이고 극단적인 통제 성향은 최근 직구 금지 사태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관료들은 미국과 EU와 같은 선진시장의 인증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한국의 인증을 별도로 받아야 하며 그렇지 못할 시 반입을 금지할 것이라는 규제를 내놓았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각 나라마다 배타적인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과거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에 수입 공산품의 수가 적던 산업화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은 서로의 인증을 인정해 주는 협약을 맺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관료들은 그런 노력은 게을리하면서도, KC 인증을 찍는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규제를 만들어 나간다. 그래, 우리 관료들의 권력은 바로 거기에서 나오니까.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이런 뒤떨어진 시스템과 철학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 결과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여러 장애물들을 보면 그 끝에는 꼭 관료들이 있다. 식약처, 금감원, 과기부, 정통부, 기재부, 법무부, 관세청, 국세청, 보건복지부 등 규제가 규제를 낳고 규제의 본 목적은 사라지고 이제는 규제 그 자체를 위한 규제만 남아 복지부동인 관료들이 시장과 기싸움을 벌이고 민간에 갑질하는 모습만 가득하다. 규제.규제.규제. 규제는 관료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정부는 늘 새 규제를 도입하며 해외의 사례를 들먹이지만 그 반대의 사례는 단 한차례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직구규제를 발표하는 인상적인 표정의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

대개 경제발전이 더디고 후진 나라일수록 관료들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정부와 관료들의 역할이 작다. 전자의 대표주자가 중국이고 그 반대편에는 미국이 있다. 2020년 말,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었던 마윈은 "미래의 시합은 혁신의 시합이어야지 감독 당국의 (규제) 기능 경연 시합이어서는 안된다"라며 규제당국을 거세게 비판했고 당국은 강도 높은 보복에 나섰다. 그 결과 마윈이 계획했던 사상 최대 규모의 IPO는 취소되었고 뉴욕에 상장되었던 알리바바의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국가 기관인 NASA가 주도하던 우주탐사를 민간 기관인 스페이스 X가 대체했다. 그 과정에서 스페이스 X는 NASA를 상대로 소송까지 걸기도 했지만, 미 정부의 관료들은 괘씸하다며 민간의 발전을 가로막거나 견제하기는커녕 제도를 개선하고 협조에 나섰다. 이런 철학의 차이 때문일까. 한동안 안정되었던 두 나라의 시가총액의 비율은 이후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고 달러 기준으로 보면 그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관료의 계획경제가 이끄는 나라와 시장경제가 이끄는 나라, 어느 시스템이 더 우수한지는 이미 명확하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관료들은 중국을 지향하는가, 미국의 모델을 지향하는가.

이런 논의를 할 때마다 대한민국의 관료제를 예찬하는 사람들은(대개 공무원들이다) 우리 행정부에 얼마나 우수한 고학력 능력자들이 많은데 일부의 실패 사례로 전체를 재단하냐며 항변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실패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지 일부의 문제가 아닌데다가, 관료제에서는 개개인의 능력보다 조직의 구조가 그 효율성과 아웃풋을 결정한다. 그리고 한국의 정부 조직은 공부를 잘하는 인재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에 특화된 조직이다. 그래서 독특하게도 우리나라 정부는 아래로 갈수록 효율적이고 생산적인데 반해, 직급이 올라가고 상위 조직으로 갈수록 비합리적이고 멍청하게 퇴화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당신들은 과거 산업시대 발전을 이끈 선배들보다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사명감이 더 크지도 않지 않은가. 나는 여러 번 관료들이 민도를 거론하며 관료 주도형 통제 모델을 옹호하는 것을 보았는데,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들과 우리의 민도의 차이보다 관료들의 의식수준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위직일수록. 게다가 일반 국민들의 수준과 관료들의 격차는 구한말 이래 지금이 가장 적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인데, 언제까지 시대착오적인 선민사상에 젖어 민간과 시장을 통제하려 들 것인가.

세종특별시는 그 이름에 걸맞게 대한민국 관료제가 처한 기형적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행정에 특화된 특별시를 자처하면서도 이 도시의 구조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세종시와 가장 가까운 KTX 역은 오송역인데 여기에서 택시를 타고 아주 한참을 달려야 세종시 정부청사에 도착한다. 그 뒤에도 여러 부서를 방문하려면 발이 아프도록 주차장을 가로질러 뛰어야 한다. 점심이라도 먹으려 외부로 나가려면 더욱 그렇고. 그러려면 대중교통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차로 다니기에도, 버스를 타기에도 여러모로 불편하다. 택시 숫자마저 모자르다고 한다. 게다가 이곳은 기존의 도시를 확장해서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종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공무원들이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다시 택시를 타고) 오송역 플랫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오가고 있고 아직 때묻지 않은 젊고 능력 있는 사무관들은 이 정체된 도시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다 함께 시나브로 침전하고 있다. 이건 실패한 도시다. 세상에 공항은 물론이고 기차역 하나 없이 고립된 수도가 있던가? 갈라파고스 세종. 그리고 도시가 고립된 만큼 거기에서 일하는 관료들도 세상과 고립되어 점차 도태되다 이제는 심지어 자신이 얼마나 뒤떨어졌는지조차 모르는 단계에 이르렀다. 관료를 위한, 관료에 의한, 관료의 도시가 이렇게 비효율적인 설계로 실패했다면 그들이 그리는 한국의 미래도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을까. 세종시가 그렇게 된 것은 정치권 때문이라고? 그래, 그런 이유도 있지. 하지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행정부가 있던가? 어공이든 늘공이든 그들이 국회와 국민들을 설득할 능력이 없다면, 그들의 권한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오래전 이건희는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 이제 세계에서 순위를 다투는 우리나라 기업은 감히 말하건대 1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관료와 정치의 수준은 과거보다 후퇴했으니 4류와 5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정부가 내놓는 개혁안이란 결국 5류의 눈치를 보는 4류가 1류를 선도하겠다고 나대는 꼴이다.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고종은 기나긴 재위 기간 동안 여러 개혁을 시도했지만 애초에 미개한 전제 군주정과 개화는 양립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밸류체인이 통합되고 경쟁하는 시대에 관치와 선진화는 양립할 수 없다. 중세의 제도인 과거제를 모방한 행시로 선발된 인사들로 꽉꽉 채워진 관료조직이 자신의 전근대적 권한은 강화하면서 이미 선진사회와 경쟁하는 민간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백여 년 전 고종이 죽어야 조선이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제는 세종시의 권력이 죽어야 한국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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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까운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세종시의 여러 부처에서 관료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들 중 몇 분도 경제 부처나 규제에 관련된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퇴직하셨다. 의심할 나위 없이 그들은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던 인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현실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며, 또 관료제와 조직에 대한 이런 비판들이 그들 개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오도되어 사기를 더욱 낮춘다는 점도 알고 있다. 민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수, 걸핏하면 들어오는 비난의 여론, 적체된 승진에다가 암울한 지방근무까지. 물론 관료조직을 개혁하는 일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개혁하는 일도 포함해야 한다. 

개혁의 방향은 관료들의 권한을 제한하고 처벌은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에 처우를 대폭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관료들에겐 지나치게 많은 권력과 지나치게 적은 보수가 주어지는데, 이러면 관료들이 정치인이나 이권을 제공하는 집단/단체/회사에게 회유될 가능성이 커지고 권력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들이 남는다. 이는 국민 모두에게 크게 해가 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관료제의 개혁은 그들의 연봉부터 대폭 상향하는 것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 10개:

  1. 석유얘기도 이참에 해주시면 안될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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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글에 정치병 환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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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레지안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도 국민들을 계몽과 지도의 대상으로 보고, 보호(?)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고 보호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오만하고 또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만, 사실 이는 일반 평균 국민들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암호화폐 규제라는 결과는 법무부 내지 법무장관이 말했을지 모르나, 그 근저에는 국민들의 암묵적 요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더 암울한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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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암묵적 요구를 한 국민이란게 도대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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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본인들이 국민을 대변한다고 망상하는 특정 꼰대 집단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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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이 2차대전후 길고 길었던 풍요와 평화의 시기에 종언을 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이 시대에 태어나 살았던게 참으로 행운이었던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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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관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문제가 아닐지요? 정부부처의 장차관을 비롯한 어공들은 대부분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정치인이나 다름없는 분들이고, 늘공들은 그들에게 인사권을 붙잡힌 시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도 안 되는 지시가 내려오면 설득이야 해보겠지만 막무가내로 밀어 붙인다면 그걸 공무원들이 무슨 수로 막을까요? 눈밖에 나서 한직으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결국은 말 잘 듣는 사람이 요직을 맡고 낙하산 기관장의 입맛에 최대한 맞춰서 정책을 추진하겠죠. 관료가 아니라 정치인(어공 포함)의 권력이 너무 막강한 게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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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선생님, 원래 블로그 왼쪽에 연/월 카테고리가 있어서, 월 별로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게 사라져서 옛날 글 찾아서 다시 읽는게 좀 힘들어졌네요. 실례가 안된다면 복구 시켜 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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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선생님 글 오랜만에 올라와서 너무 기분이 좋은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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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사기업이나 공무원이나, 모든 개혁은 밥통부터 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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