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5.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 시즌2 (feat. 이주열 again)

문재인 정부의 다른 어벤져스들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전까지 이 블로그에서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이는 바로 한국은행과 이주열이다. 그들은 잘못된 편향을 바탕으로 한국을 디플레이션의 구렁에 몰아넣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경제 변곡점에서 매우 잘못된 시점에 매우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그 빛나는 사례가 바로 작년인데, 코로나로 세계경제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직전인 2020년 2월 이주열 총재는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곧 회복될 것이기에 금리를 인하할 필요는 없다고 세 번이나 장담했다.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되었던가. 당시에 내가 시장에 대해 쓴 글 중 반이 그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링크1 2 3 4

이처럼 총재는, 그리고 한국은행이란 조직은 통화정책을 운용할 역량이 없는 소모적인 조직이다. 작년 3월 미국의 연준이 긴급회의를 통해 금리를 50bp 내린 뒤에도 이주열이 금리인하를 거부했을 때 나는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는 글을 올렸다. 오늘날 그 쪼다는 정확하게 똑같은 쪼다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또다시 실기하고 있으며 이 쪼다짓은 결코 한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자 이 덤앤 더머의 행적을 다시 한번 따라가보자. 고통스럽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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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재는 연내 금리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했고 내년 4월에 끝나는 자신의 임기 내에 두 번의 인상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는 급격하게 반등하며 연내 2회 이상의 금리 인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코스피는 신고점을 찍고 있고 부동산은 조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보면 총재의 시그널은 타당해 보인다. 현재 경제성장률은 매우 견실하고 물가 상승률은 1월 0.6%에서 5월 2.6%으로 반등 중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총재와 한은을 쪼다라고 부르는 데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미래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현재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2020년은 우한 폐렴의 전 지구적인 확산으로 인해 주요국 경제가 대부분 큰 슬럼프를 겪었고 이에 따라 금융시장 역시 신용경색의 발발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래 가장 강력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경제와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금융시장과 자산의 가격은 되려 금융위기 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자가격리와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난 몇몇 대중들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방금 위기를 겪었는데 자산 가격이 되려 올랐다면 잘못된 것 아닌가. 거기에 미 재무장관 옐렌과 연준의장 파웰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우리가 의도한 바라고.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리만사태 직후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예측하지 못한 이벤트로 인해 경제가 잠재성장률 아래로 주저앉으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통화정책을 사용해서 경제를 본 궤도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버냉키가 이끄는 연준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를 단행했으며 그 결과 2008년부터 미끄러진 미국의 경제는 2018년에서야 본궤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경제가 기존의 성장경로로 회복한다고 해서 그 상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고는 빠르게 일어난 반면 고용시장의 회복은 매우 더뎠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장기 실업에 직면하였고 이들은 경기가 완전히 회복한 뒤에도 적절한 직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날 2020년에 대학을 졸업한 신규 구직자들을 보자, 그들은 코로나로 인해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했고 일용직과 저숙련 임시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경제가 본 궤도로 완전히 회복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면 삼십 줄에 들어섰지만 경력이라곤 아르바이트 경험밖에 없는 2020년 졸업생들이 2025년 졸업생들과 신규 구직시장에서 경쟁이 될 리가 없다. 이들은 영영 잃어버린 세대로 남을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위기 직후의 경제 회복은 빨라야 하고, 또 과도해야 한다. 옐렌은 이를 high pressure economy라고 불렀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단기적 과열을 방치하겠다는 뜻이다. 연준은 지난 6월의 FOMC에서 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적절한 중립금리의 수준은 변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재무부와 연준은 high pressure economy를 유지하기 위해 과도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다. 

또 연준은 경제 위기 직후의 인플레와 성장이 대체로 일시적이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2019년에 100이었던 경제가 코로나 타격으로 2020년에 98로 후퇴했다가, 2021년에 회복해 다시 102가 되었다고 해서 다음 해에 106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점진적으로 100-101-102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했던 경제의 성장경로가 중간에 좀 뒤틀린 것이지. 따라서 내년에 올해만큼의 성장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이를 여러 번 강조했고 사람들과 시장에게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지난달 미국 CPI가 한국의 2배를 넘는 5.0%를 기록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기금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어떤가. 아무런 철학도 없고 기준도 없다. 이들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이유는 그저 지금 경제가 좋기 때문이고 자산 가격이 많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기저효과는 올해 안에 사라지고 내년에는 마이너스로 돌 것이다. 우리는 통화정책이 선행적이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총재와 금통위원들은 지금 경제가 좋으니 지금 금리를 올릴 것을 고려하는 것이지 그들의 머릿속에 내년 내후년에 대한 전망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장기적인 통화정책이 나올 리 없다. 연준이 첫 금리 인상이 빨라야 2022년 말이라고 미리 상세하게 언질을 준 데 비해 한국은행 총재는 3분기의 인상을 2분기의 끝자락에 던졌다.

연준과는 달리 불황의 상흔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수출과 자산 시장이 회복되어도 20대 구직자들과 한계에 직면한 자영업자들, 그리고 과도하게 높은 최저임금으로 직업을 잃은 빈곤층들은 상황은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회복의 온기가 그들에게까지 미치려면 경기가 어느 정도 과열로 흐르도록 방치해야 하지만 한국은행은 그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금리 정상화의 이유로 가계부채를 들지만 정작 급증하는 것은 국가부채 아닌가. 2020년 가계부채가 125조 증가하는 동안 국가부채는 거의 두 배인 무려 241조가 증가했다. 게다가 가계가 부채를 주택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매입에 쓴 반면 정부는 보조금이나 지원금 같은 일회성 지출에 쏟아부었다. 빚내서 탕진하는 정부가 빚내서 투자하는 가계에게 훈수를 두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대책 없는 정책인가.

그들이 게으르고 무능한 조직이라는 점은 수치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Bank of America 리서치는 자신들이 커버하는 약 100여 개 국가들의 코로나 사태 이후 통화/재정정책을 정리했는데 이 중 한국의 재정 대비 통화정책의 규모는 약 0.5%로 세계에서 가장 미약한 통화정책을 사용한 나라이다. 참고로 이 비율은 미국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경우 60-80% 선이며 프랑스 스페인 영국은 재정정책과 비등한 통화정책을 썼고 심지어 네덜란드의 경우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의 약 4배에 달한다.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의 재정정책이 너무 과도해서 통화정책이 작아보이는 것 아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선진국들의 재정정책이 GDP의 20%에 넘는데 비해 한국은 고작 15.2%에 불과하다. 그런 재정의 고작 0.5%라니, 명백히 한국은행은 세계에서 가장 게으른 중앙은행이고 경제 위기의 한가운데서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조직이다. 일반 기업이 이 정도로 무책임하게 대응했다면 배임으로 고발당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조직은 없는 것이 낫다.

정작 위기 시에는 뒷짐 지고 6주에 한번 만나 노가리나 까며 아무것도 안 하던 조직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경제의 고삐를 쥐겠다고 나섰다. 중국에 이어 코로나의 두 번째 피해자였던 나라인데도 가장 마지막에 움직였던 한국은행이 가장 먼저 금리를 정상화하겠다고 나서는 희극이 펼쳐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플레와 성장은 일시적이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주체들의 상흔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면 경제가 어느 정도 과열로 흐르도록 해야 한다던 연준과, 위기에서도 아무것도 안 했지만 지금 경제가 회복되고 있으니 금리부터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은행은 또다시 대립하고 있다. 마치 2020년 3월과도 같이-긴급 미팅을 열어 금리를 150비피 인하한 연준과 긴급 미팅을 열어 경제가 긴급하지 않으니 인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이주열 총재. 차후 누가 맞을지는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흰색-미국의 기준금리    주황색-한국의 기준금리    빨간원-둘의 통화정책이 엇갈린 기간 

연준과 한국은행이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2008년 그리고 2010-11년 모두 한국은행은 연준과는 반대로 금리를 올렸으며 모두 한은이 결국 금리를 급격하게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주열 총재는 또다시 돈키호테처럼 연준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떨까? 내 기억에 총재가 이처럼 강력하게 금리 정상화를 외친 적이 딱 세 번 있었는데 처음은 취임 직후, 두 번째는 코로나 직전,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오늘이었다. 그리고 세 번 모두 결국 금리를 크게 인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바보는 늘 바보짓을 반복하기에 이주열 총재와 한국은행은 또다시 금리를 너무 많이 올리고 결국 도로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그 뒷수습을 새로운 총재가 하게될 뿐.

나는 총재의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금리를 언제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 나 역시 알지 못한다. 다만 금융위기에서 거의 배임에 가까운 태업을 펼친 총재가 갑자기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정책을 펼치는 것을 우려할 뿐이다. 그가 연준과 반대되는 길을 간다면 더더욱. 임기의 처음과 그의 재직 중 가장 큰 위기, 그리고 마지막을 모두 쪼다 짓으로 마무리하는 우리 이주열 총재의 완벽한 일관성에 나의 찬사를 바친다.


*GDP갭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