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3.

우리가 공수처 설치를 반대해야하는 이유

어느 분야든 언제든 개혁이 필요하다. 비단 검찰 뿐이 아니라, 국회, 재경부, 금융, 교회, 대학, 축구협회 심지어는 동네 부녀회들조차 개혁을 필요로한다. 개혁을 필요로하지 않는 집단이 존재한다면 단 하나만 대보라. 인간이 모여 만든 조직이라면 늘 타성에 젖다 부패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기필코 개혁을 필요로한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조직을 동시에 개혁하겠는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죽고 다시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일진대. 따라서 개혁의 대상은 모든 집단중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많은 조직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따라서 검찰개혁을 외치는 이들은 그 일환으로 공수처를 설치하는 일이 그 상식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가 1948년 삼권분립을 기초로 한 헌법을 제정한 이래 가장 부패한 권력은 바로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이 아니었나. 이승만은 사사오입 개헌으로 종신집권을 꿈꾸다 하야했고 제 2공화국은 총리와 대통령이 권력싸움을 하다 나라가 개판이 되어 군인들에게 쫒겨났다. 박정희는 여대생과 심수봉과 치바스 리갈을 마시다 총에 맞았고, 광주에서 국민들에게 총질하던 카우보이 전두환은 뒤돌아 소갈머리를 빛내며 백담사로 사려졌다. 보통사람을 자처하던 노태우는 보통 범죄자처럼 깜방에 갔으며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은 황태자로 군림하며 돈받고 돌아다니다 그 애비가 대국민 사과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같은 일이 김대중때에도 반복되었다. 노무현과 이명박은 정치적으로 적이었지만, 그 형들은 똑같이 상왕으로 불리며 뇌물을 받아먹었고 부패할 친인척이 없던 박근혜는 친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대한민국의 헌정사의 위기는 입법부나 사법부로부터 오지 않았다. 늘 행정부의 수장인 청와대로부터 오지 않았나.

어째서 청와대는 늘 부패의 중심에 있었는가. 그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인류 역사에 그 예외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 따라서 청와대에 절대권력을 쥐어준 것이 그들이 부패하게 만든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따라서 개혁의 우선순위는 청와대의 권한을 입법부와 사법부로 분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이에 정확하게 역행한다. 공수처장은 사실상 대통령과 여당이 임명하게 되고 그들은 타 공직자에 대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는데, 수사권과 기소권 뿐 아니라 도감청까지 허용하는 이런 막강한 조직은 심지어 군사정권 시절 중정조차도 가지지 못했던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권력을 사실상 행정부에 위임하는 것은 이 나라의 부패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쉽게 예시를 들어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대국민 담화에서 만약 공수처가 있었더라면 국정농단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만약 그랬다면 박근혜 행정부의 공수처장은 우병우나 김기춘이 되었을 것이고 문재인과 조국 유시민은 대선후보는 커녕 감방에 갖혀 모범수 후보에도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제도는 아무리 더럽고 사악한 인간이 권력을 잡더라도 타락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공수처의 설치를 찬성하는 이들이여, 당신들이 싫어하는 우병우(혹은 조국이)가 공수처장에 오르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는 나쁜 제도이다.

특히 여당 지지자들이여, 당신들이야말로 공수처의 설치를 반대해야 한다. 당신들은 공수처가 통과되면 정의로운 문프♡에게 더 많은 권한이 몰리니 좋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문재인은 공수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돌이켜보면 정치사에서 독재의 기반을 닦은 사람들은 독재자가 되지 못했다. 로마의 율리우스 시저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넘고 의회를 없애며 독재자가 될 준비를 마쳤지만 정작 본인은 브루투스의 칼에 죽지 않았는가. 정작 독재자가 된 것은 그 다음 세대의 옥타비아누스였다. 프랑스 대혁명 뒤 당통과 지롱드파들을 숙청하며 독재 준비를 마친 것은 로베스피에르였지만 그는 자신들이 수많은 정적을 세웠던 단두대에 목이 잘려 죽고, 정작 황제가 된 것은 당시 포병장교에 불과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만약 역사가 그대로 반복된다면 문재인은 독선적 대통령제의 수혜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지 않은가.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모든 인간들은 악하게 태어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따라서 악인이 악인을 견제하는 것 보다 더 나은 사회시스템은 없다고 믿기에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모든 제도에 반대한다. 그리고 공수처는 삼권분립의 근간을 뒤흔드는 악법중의 악법이라고 생각한다.

댓글 12개:

  1. 공수처의 도감청 허용 여부는 어디 나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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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허용된 적 없지만 비슷한 권한을 지닌 중국 싱가포르 등의 기관 군사정권 시절의 조직은 모두 도감청을 자행했으니까요. 심지어 민주적인 헌법을 가진 미국조차도 FBI에게 권력을 쥐어주자 초대 국장 에드거 후버가 48년간 자리에 앉아 정치인들을 좌지우지했습니다. 그 힘은 불법 도감청으로 수집한 정보에서 나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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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반복되는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의 실패를 고칠 생각을 해야지, 자기들이 정적 조질 때 잘 써먹어놓고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죠. 검찰이 진짜 문제면 검찰의 권한을 줄이면 될 일이고요.

    저런 흉기는, 우리편이건 상대편이건 쥐어줘서는 안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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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00분 토론에 선생님 같은분이 한번 나와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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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위 공직자 비리를 그렇게 엄중하게 처리하고 싶었으면 조국 사태는 도대체 뭐였을까요. 참담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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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금태섭도 꾸준히 반대해 온 공수처
    핵심을 못 집는 검찰개혁
    할려면 지지율 좋은 초반에 조용히 했었어야지
    경제,외교,내치 다 망쳐놓고
    그거 가릴려고 조국임명=검찰개혁으로 지지자 결집쇼하고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자기가 노무현때 민정수석으로 강금실이랑 더 노력했어야 했을 일을
    이제와서

    조국, 윤석열 환상의 조합이 아쉽다고
    국정운영이 뭐 어벤져스 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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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깊은 사유가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공수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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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디플레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향후 디플레가 올지 안올지 자가로 서울에 집한채 가져야 하는건 마땅하신 말씀인데 대출이나 이런것들이 다 얽혀있으니 걱정도 되고 하네요 인터넷 멘토로써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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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플레의 대상이 생필품인지 자신가격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리만 이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이 둘이 반대로 움직였던거고요. 말씀하신 바는 주택, 즉 자산인듯 하니 사실 수 있다면 당장 사시고 1년 안에 안사실거라면 차라리 10년을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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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답변 너무 감사드립니다.계속 2년 단위로 거주 혹은 비거주로 갈아타면서 더 높은 자산(강남에 가까운, 설령 거주가 힘들수도 있을정도로 전세금액도 큰)으로 갈아타고 있는데 이게 과연 잘하고 있는 짓인지 그런게 궁금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잘하고 있는거겠지요? ㅋㅋㅋ) 한번 더 답변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글 잘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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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완벽하십니다. 비싸고 대형주택으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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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선생님 답변 감사드립니다 15년 처음 쓰신글부터 정독하고 있는데 통찰력이 대단하십니다. 디플레이션이나 경제에 관한 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고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이렇게 손쉽게 얼굴을 뵙지 않아도 멘토를 접할수 있으니 대단한 행운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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