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6.

서울은 왜 못생겼는가

[그 이유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못생겼기 때문이다]

서울은 못생겼다. 이 도시의 민낯은 너무나 못생겨서 과연 규모 면에서 세계 상위권 도시 중 하나가 맞나 싶다. 그런데 서울은 지형적으로 멋지지 않기가 어려운 위치에 있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파리의 센 강 등, 여느 대도시의 강보다 거의 두배는 더 넓고 그 중심부에는 남산이 솟아있어 도시의 공간감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자연은 서울에게 멋진 토대를 선사했는데 도시의 모습은 못생겼으니 그 이유는 분명 인간에게 있다.
 
 서울이 못생긴 이유는 자명하다. 다음의 두 스카이라인을 비교해보자. 확연하게 A가 낫고 B가 못났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미적 감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간은 획일적으로 통일된 스카이라인보다 들쭉날쭉해서 역동감을 주는 선을 더 선호한다. 문제는 무엇이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A가 아닌 B에 가깝게 만드냐는 것이다.

흔히 서울의 건축을 두고 "성냥갑 아파트", "하늘이 안보여 답답하다"고 한다. 그래서 공무원들과 환경단체들은 무분별한 고층 빌딩과 난개발이 도시경관을 해친다고 주장하지만 헛소리다. 혹시 맨하탄의 타임스퀘어나 홍콩의 센트럴 지역을 거닐어 본 적이 있는가. 그 공무원 나으리들과 고귀하신 환경단체 횐님들께서도 서울보다 훨씬 촘촘한 홍콩과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백만불짜리 야경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도시가 가진 미학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아주 다르다. 그런데 인구 천만의 메트로폴리탄인 서울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를 자연과 비교해서 찾는 것은 엔초비 파스타를 먹으며 얼큰한 맛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는 촌뜨기들의 불평이다. 서울의 추함은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서울의 도시계획은 너무나 강압적이고 개발을 지나치게 통제한다. 서울시 건축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파트를 놓고 보자. 대부분의 신축단지는 용적률 300%에 35층 이하의 규제를 받는다. 이 규제를 만족시키면서 사업성을 갖추려면 결국 모든 동을 똑같은 모양의 35층으로 지을 수밖에 없다. 88대로를 따라 성냥갑 아파트들을 늘어놓은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혹자는 스카이라인은 규제때문이라 쳐도 획일적인 구조와 건축양식이 못생김의 핵심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규제때문이다. 서울시 도시미관의 개선은 대부분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이뤄진다. 전쟁 직후 공구리에 대충 시멘트 부어 만든 집들을 부수고 1인당 GDP 3만불의 눈높이에 맞는 집들을 만드니까. 그런데 정부는 여기에 앞서 말한 규제 외에도 온갖 제한을 걸어 재건축을 막는다. 재건축을 하려면 먼저 서울시에 임대아파트로 새 집들을 무상으로 기부해야하고, 그 뒤에 분양되는 새 아파트는 분양가를 제한해 싸게 팔아야하며, 건설사가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조합원들에게 혜택을 주면 수주과열이라며 막는다. 은행에서 이주비를 빌려주는 것도 제한한다. 그래도 돈이 남으면 초과이익이라며 환수한다. 그래도 재건축 하겠다고 해도, 젠장,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이 모든게 실제로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재건축 조합의 이익을 빨아가놓고는 남은 돈으로 도시 미관을 개선할 멋진 집을 지으라 한다. 하지만 디자인에는 돈이 든다. 순전히 서울시의 외관을 개선하기 위해서 수지타산이 맞지도 않는 외관 디자인에 수십억을 퍼부을 사람은 없다. 당신과 나와 그리고 재건축 조합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딱 그만큼 이기적이고 또 계산적이다. 현 재개발/재건축 규제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시민들이 성냥갑 아파트만 짓도록 강제한다.

이 멍청한 규제의 꽃은 한강변 층고규제이다. 현재 서울시 도시계획에 따르면 한강 인접 아파트는 최고 층수를 15층으로 하고 있다. 이유는 한강 조망권을 더 많은 서울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하지만 한강이 보이는 세대수를 늘리려면 반대로 한강에 고층을 지어야한다. 한강변에 45층짜리 아파트를 지으면 모든 층이 한강을 볼 수 있지만, 15층 뒤에 30층, 또 그뒤에 45층 이렇게 계단식으로 짓는다고 해서 한강이 보이는 집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줄어든다.(아래 그림 참조) 하지만 서울시는 오늘도 한강조망권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는 입바른 말을 하면서 멍청하게도 한강뷰 아파트의 수를 줄여, 더 소수의 사람들이 이 전망을독점할수 있게 해주고 있다.



건물 외벽에 하늘색으로 표시된 세대가 한강을 볼 수 있는 세대.
이처럼 강변에 저층을 지으면 한강을 볼 수 있는 세대수는 줄어든다.

그럼 왜 이런 규제가 존재하는가? 뭐 시민들이 그렇게 요구해서 그렇지. 그렇다면 시민은 왜 이런 규제를 요구하는가? 바로 시기심 때문이다. 한남 3구역 주민들은 강건너 반포 주민들이 재건축을 한다면 샘을 낸다, 또 청파동 주민들은 한남 재개발이 지연된다는 소식을 들으며 입꼬리를 씰룩 올린다. 눈치빠른 정치인들은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읽고 온갖 말도안되는 건축 규제들을 쏟아놓는다. 다른 도시에서는 낡아서 흉물이 된 건축물을 두고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개발을 독려하는데 서울에서는 입주민들이 수천억을 모아 내서 멋진 건물로 다시 짓겠다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막는다, 동료 시민들이 막는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멱살을 잡고 내가 못살지언정, 네가 잘사는 꼴은 못 보겠다는 태도가 오늘의 건축 규제를 만들었다. 그 결과 서울 시민들은 소득수준과 아주 괴리된 주거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심미적 측면 뿐 아니라 기능적 측면까지도. 오늘 밤에도 서울에선 해가 지면 벤츠를 끌고다니는 박 모 변호사가 소달구지 몰던 시절에 지은 40년 된 재건축 아파트로 돌아가고 신나게 유럽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김모씨는 택시조차도 거부하는 후암동 언덕길을 캐리어를 질질 끌고 올라간다.

오늘도 사람들은 콘크리트 더미들을 오가며 이 도시의 건축가들과 건축주를 비난한다. 하지만 동시에 못생긴 건물을 만드는 제도를 박수치며 반긴다.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아서 하나가 전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게 아니니, 서울이 하나의 괴물이라면 그 시민들 하나하나는 그 괴물을 구성하는 세포들이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랜드마크와 도시계획들이 시민단체와 지자체의 얼토당토 않은 요구에 좌초했는가. 서울시 최초의 랜드마크로 63빌딩이 들어선 것이 1985년인데 그 이후 두번째 랜드마크로 롯데타워가 들어서는데 무려 30여년이 걸렸고, 세번째 랜드마크가 될 GBC는 4년째 승인조차 나지 않고 있다. 또 지난 달 서울시 건축위원회는 반포의 한 재건축 아파트가 제출한 설계안을 보고 스카이브릿지가 위압감을 준다는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았다. 서울시의 건축이 못생긴 이유는 순전히 정치 때문이며 그 정치는 시민들이 낳았다. 서울이 누구를 닮아 못생겼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창 밖이나 공무원들의 서류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마주하는 거울 속에 있다.

스카이브릿지가 "위압적"이어서 반려된 신반포 15차 재건축 아파트의 기존 투시도.

2019. 5. 2.

How politics can destroy you

내가 빠짐없이 보는 경제학자들의 글 리스트에는 폴 크루그먼의 이름이 항상 올라가 있다. 과거 2010년 연준이 양적완화를 이어나가자 수많은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올거라며 비명을 지를 때, 그는 침착한 어조로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고 되려 디플레를 걱정해야한다고 주장한 소수 학자 중 하나였고 시간이 지나고 나자 그 판단이 정확했음이 밝혀졌다. 옳은 정책을 펼친 미국은 가장 먼저 불황에서 벗어났고 잘못된 선택을 한 나머지 세계는 아직도 저성장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 모든걸 정확하게 예측하고 진단한 이 구루는 자신의 글을 공짜로 인터넷에 올린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변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긴 뒤로. 그의 블로그에는 경제에 관련된 글보다도 정치에 관련된 글이 몇배 더 많이 올라오며 그는 자신의 유려하면서도 독한 비평을 경제분석이 아닌 공화당에 더 많이 할애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평소에 주장하는 경제정책을(재정지출 확대, 그리고 연준의 완화 스탠스 연장) 트럼프가 정확하게 시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크루그먼은 트럼프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의 본업이 민주당원이고 부업이 경제학자가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심지어 최근의 포스팅(링크)에서 그는 자신을 공격하던 사람들의 비유를 그대로 들기까지 했다. (You don’t have to be a gold bug or even an inflation hawk to see these demands as deeply irresponsible. Indeed, they sound a lot like the “macroeconomic populism” that has repeatedly led to economic disaster in Latin America, with Venezuela the latest example.) QE를 펼치던 연준과 그를 옹호하던 크루그먼의 비난하던 니얼 퍼거슨은 이러한 통화적 이징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고 남미의 많은 국가가 그와같은 전철을 밟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 대하 크루그먼은 니얼 퍼거슨이 경제학자가 아니면서 경제정책에 대해 논한다고 조롱했고,  미국 경제가 명확하게 회복기에 있고 실업률이 충분히 낮아졌을때도 인플레이션이 없다면 굳이 통화긴축에 나설 이유가 있냐고 주장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진영을 바꿔 니얼 퍼거슨과 비슷한 주장을 내놓으며 남미국가인 베네수엘라의 예시를 들며 트럼프의 연준에 대한 압력을 비난했다!

물론 그때와는 경제적 상황이 매우 다르고 크루그먼의 주장처럼 연준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정치평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경제평론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처럼 역사에 남을 석학들도 정치에 휘둘리면 총기를 잃는데, 나 같은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2019. 5. 1.

오사마와 카투사,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아직 꽃샘추위로 벌벌 떨던 그 200x년 2월 언제였나, 내 대학생 시절의 첫 공식 행사는 신입생 MT였다. 논스톱 시리즈를 보며 가졌던 캠퍼스 생활에 대한 환상은 첫날부터 산산히 부서졌다. 국가보안법으로 수배중인 한 학번 위 선배가 단상위로 나아가 "민중" "연대" "미제" "노동" "타도"와 같이 나팔바지마냥 촌스러우면서도 낭만따위는 쏙 빼낸 그 단어들로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던 바로 그 순간에. 이윽고 민중가요 강사님이 오셔서 바위처럼, 솔아솔아와 같은 노래와 함께, 요새 유치원에서도 안 가르칠 만한 유아적인 율동을 가르쳤다. 상상이 잘 안되면 우리나라 교회 청년부 예베를 상상해 보라.

이후 반 배정을 받아 처음보는 동기들, 그리고 선배들과 함께 방안에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어색하게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고, 받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한 진행요원이 와서 각 반은 개성있는 반이름과 재미있는 포즈를 정하라고 했다. 그때 말이 가장 많던 운동권 선배 하나가, "우리는 재미있게 팀 이름을 빈 라덴이라고 짓자!"라고 했다. 선배라고 해봤자 나와 서너살 차이 밖에 안 났지만 그 형은 벌써부터 탈모가 오기 시작한 탓에 훨씬 늙어보였고 우리는 아무런 반대를 못했다. 그런데 다른 형 하나가 빈라덴은 좀 그러니 딴 이름으로 하자, 욘사마와 이름이 비슷한 "오사마"는 어떠냐고 했다. 빈라덴이나 오사마나 뭐가 그리 다른지 모르겠지만 반미 운동권 학생들이 보기에도 테러리스트 이름을 재밌다고 반명으로 쓰기엔 부담스러웠는지 우리 반의 이름은 오사마가 됐다. 참고로 당시엔 미군 장갑차 하나가 여중생 둘을 차로 치고 간 사건 때문에 반미정서가 강했다.

이제 이름을 정했으니 포즈를 정해야하는데, 아까 그 선배가 주장하길, 우리 반 이름이 오사마니 그에 맞는 동작으로 정하자며 합장을 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신입생들이 뭐 발언권이 있나. 선배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그래서 우리는 인도식 가부좌를 틀고, 동남아식 합장을 하면서 사우디 사람인 오사마의 이름을 외치며 반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그 날 천명이 넘는 엠티 참가자들 사이에서 단번에 가장 유명한 조가 되었다. 단과대의 전 과가 참여하는 엠티였으니 아마 이를 기억하는게 나 하나는 아니리라.

밤이 되자 반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술자리와 담화가 시작됐다. 너는 고향이 어디니, 대학에 왜 왔니, 꿈이 뭐니 등. 동기중 아주 현실적이고 똑똑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난 돈벌고 싶어서 대학왔다고 하자, 운동권 선배들이 우우 모여들어 핀잔을 줬다. 한 선배 하나는 "너가 국립 서울대학교에 왔으면 민족을 위해 기여할 생각을 해야지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는건 이기적이고 창피한 짓"이라고, 정확하지 않지만 뭐 이런 뜻으로 그 친구에게 면박을 줬다. 그로부터 몇년 뒤 그 친구가 술자리에서 말하길, 자신은 그날 큰 상처를 받아서 이후로 반 행사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너한테 가장 심하게 면박 준 그형은 카투사 갔다가 후에 친미로 전향해서  지금 미국계 회사에 입사해서 본사 가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중이라고 알려줬다. 우리는 그 "오사마" 포즈로 찍은 단체사진을 회사에 보내면 어떻게 될까와 같은 농담을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페미니즘. 요새 시끄러운 페미니즘 이슈가 그때도 있었다. 여학우가 있는 데서 스타나 축구 애기를 하는 것은 성폭력에 해당된다며 두 학번 위 여선배가 알려줬다. 그때 한 동기가 손을 들어 "그럼 여학우들이 남자 있는 데서 연예인이나 화장품 얘기 하는 건요?"라고 묻자 그 선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것도 당연히 성폭력이지"라고 했다. 그때의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현재의 페미니스트들과 좀 달랐던 것 같다. 자의적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태도는 똑같지만 적어도 타인과 자신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곤 했으니까. 뭐 우리 반만 그랬을 수도 있고.

반미는 그 시절을 운동권과 학생회를 지배하는 정서였다. 미선이와 효순이라는 두 중학생이 미군 장갑차를 미쳐 피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가 김동성 선수를 실격시키고 메달을 딴 일이 겹쳐, 대학가에선 반미를 외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고, 운동권 선배와 동기들을 그때를 틈타 자신들의 사상을 신입생들에게 퍼뜨렸다. 하지만 그 반미는 패션에 그쳤다. 군대에 가고 취직할때가 되자 그들은 입었던 옷을 벗고 갈아입듯 태도를 바꿨다.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라고 욕하던 고학번 선배(그 선배는 그걸 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가 연봉 잘주는 금융회사에 들어가자 그들은 쪼르르 달려가서 밥 얻어먹기에 바빳고 그 무리 중 가진자들을 욕하던 한 선배는 과외한 돈으로 명품 시계와 옷을 입고다녔다. 아, 그 선배가 서울대생, 민족 운운했던 그 선배다. 그 형은 카투사로 입대하며 "적을 알려면 적의 본진에 가야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연말 모임에서 만나 각자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참 묘했다. 반미를 외치던 선배 하나는 신자유주의자(=부자)의 딸 딸과 결혼해서 강남에 아파트 두고 외제차를 끌고 다나고, 미국인 수천명을 죽인 테러리스트의 이름을 웃으며 외치던 친구는 그 어묵 일베충은 싸이코패스라며 화를 냈다. 미국과 기득권을 가장 크게 욕하던 선배/친구들이 가장 그 기득권에 가깝게 살고 있거나,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쩌면 욕심이 큰 사람일 수록 시기심도 강하고, 그 시기가 가진자들에 대한 분노가 되어 운동권으로 이끄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임종석이 전선을 시찰하며 라이방 선그라스를 쓴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미 제국주의의 선봉 맥아더 장군이나 독재자 박정희의 이미지였는데, 그게 우연은 결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