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 흑인 여자가 하얀 테이블 위에 흰 족쇄로 묶여 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참고로 사진의 제목은 Bon Appetit.
2017. 5. 21.
문화계에 난입한 홍위병들
2. 한 흑인 여자가 하얀 테이블 위에 흰 족쇄로 묶여 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참고로 사진의 제목은 Bon Appetit.
2017. 5. 6.
sns의 프로테스탄티즘
1. 성 상품화 금지
설리가 sns에 게시한 사진에 대한 기사나 섹시함을 강조한 광고의 티져 영상 아래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비판들이 있다. "여성을 상품화" 혹은 "로리 컨셉의 성적 욕구 자극"을 시도 했다는 것. sns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이와 같은 행위는 사악하고 따라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는 것 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걸그룹 보이그룹을 보며 열광한다. 여성 팬들이 엑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시각적으로 "섹시"하기 때문이다. 정종철이 머리를 염색하고 춤을 춘다고 해서, 조정치가 랩을 하며 카메라를 노려본다고 해서 여성 팬들이 열광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남성 팬들은 트와이스의 성적 매력에 돈을 쓴다. 쯔위가 노출이 없는 옷을 입고 사나가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남성들이 그들의 섹시함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부르카를 써서 얼굴까지 가리고 같은 노래와 안무를 한다면 그렇게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설리의 사진에는 종교적 근본주의 수준의 검열잣대를 들이대던 snser들은 kpop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엔 앞다투어 좋아요를 눌러댄다. (그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개념을 빻은건 설리나 광고주가 아니라 걸그룹 보이그룹을 보며 헥헥대고 상의를 반쯤 벗어제낀 다니엘 헤니가 사라는 제품을 위해 지갑을 여는 본인들의 이중잣대다.
논의를 좁혀 논란을 "로리타 이미지"로 한정해보자.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것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문제지만 그 범주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샤이니가 "누난 너무 예뻐"라는 노래로 히트를 쳤을 때 멤버 5명 중 3명은 미성년자였다. 그럼 당시 그 노래를 소비하던 성인 여성(혹은 게이)들은 모두 미성년 성범죄자에 해당한다. 이는 왜 비난하지 않는가? 더욱이 욕망 그 자체, 혹은 이를 표현하는 행위를 곧장 범죄로 다루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살인은 미성년 성범죄처럼, 혹은 그 이상의 사악한 행위이다. 그런데 고대전쟁에서의 살육이 영상의 주 소재를 이루는 영화 "300"은 국내에서만 3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을 모았고, 연쇄살인마의 끔찍한 살인과정을 표현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220만명이 자발적으로 관람했다. 성인 여성이 교복을 연상하는 옷을 입고 야릇한 표정을 지은 사진은 "미성년자의 성적 매력"을 표현했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실제로 살육장면, 혹은 살인자의 모습과 심리를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가 좋아서 보러간 저 사람들은 어떤 비난을 받아야 할까? 과연 로리타적 표현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다른 비윤리적 행위를 표현한 예술매체를 보며 일관된 기준을 적용했을까?
2. 외모지상주의
외모지상주의를 욕하는 모든 인간들은 다 위선자들이다. 그들은 피해자인 척 하지만 사실 가해자들이다. 그들이 만약 이국주가 선전하는 청바지를 사고, 김상호가 디제잉을 하는 클럽을 찾아간다면 외모 지상주의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광고주들은 미인 모델을 쓰고 그들의 외적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왜? 소비자들이 외적 아름다움에 민감하니까. 회사 면접관들도 평가점수에 지원자들의 외모를 반영한다. 왜? 심지어 지원자들도 편의점이나 까페에 가면 알바생들의 외모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니까.(자영업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외모지상주의적 행위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당신이 이쁜여자, 혹은 잘생긴 남자를 보며 헤헤거리지 않는다면 당신의 못난 외모가 차별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타인이 내 내면의 가치를 몰라준다고 비난하면서 정작 자기는 남의 외면만 보는 위선자들이다. 사실 어쩔 수 없다. 보이지도 않는 내면을 어찌 볼 것이며,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고 살아가는데 그들의 진면목을 보는데 일일히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그러니 남들을 외모지상주의로 비난하지마라. 당신도 그 중 하나니까.
3. 동물보호
강아지는 귀엽고 예쁘다. 나는 처음 보는 강아지라도 반나절을 질리지 않고 데리고 놀 수 있다. 너무 귀여우니까. 하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멍청한 박애주의를 아무데나 들이대는 것은 다르다. 현재 순종 강아지들은 대부분 인간의 눈에 예뻐 보이는 기형 개체들을 근친교배해서 낳은 결과물이다.(그래서 순종견은 유전병에 시달린다. 아는 수의사에게 물어보라) 그 뒤에도 그 개들을 거세하고 성대를 절개하며 인간들도 적응 못하는 좁은 공간에 쑤셔넣어 기르는 것은 전부 애견인들이다. 어떤 동물보호론자들은 악어가죽이나 모피코트를 입은 사람을 잔인하다고 부르는 무식을 뽐낸다. 그중 몇몇은 죽은 소의 시뻘건 살덩이를 고온에 구우는 사진을 좋다고 인터넷에 올려 욕먹기도 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동물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치약, 샴푸, 인슐린, 책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공산품에도 동물의 원료가 들어간다. 더 나아가 동물은 죽이면 안되고 식물은 죽여도 되는 법은 어디에 있는가? 정말 생명을 사랑해서 해치기 싫다면 가을에 떨어진 낙엽만 먹거나 아니면 자연사한 동물의 사체를 파먹어야 한다. 그도 싫다면 본인이 직접 광합성을 하던가. 최초의 진화 과정에서 동물세포가 식물세포와 다르게 분화한 특징은 다른 생명체의 에너지를 섭취한다는 점이다. 그런 동물중에서도 뭐든 다 먹을 수 있는 잡식성 포유류로 태어나 "생명을 사랑하니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건 첫째, 위의 내용을 모르는 멍청이거나 둘째, 죽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아직 안 죽고 살아있는 생명보호론자들은 다 멍청이다.
어떤 생명보호론자들은 "어쩔수 없는 생명소비는 인정하되, 나머지 동물들의 행복권도 인정하자"라며 타협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의미없는 허언에 불과하다. 동물들의 행복을 늘리려면 인간의 행복이 아닌 수를 줄여야 한다. 지구상에는 70억의 인구가 300억마리 이상의 가축과 공존하고 있다. 이 가축 중 절대 다수는 가금류인 닭으로 250억마리를 차지하고 나머지 50억마리 이상의 가축은 대부분 포유류이다. 그리고 인간과 이 나머지 가축의 생활 가능 반경은 거의 같다. 즉 인간이 못살 땅에서는 가축도 못산다. 가축에게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활 반경을 줄여야하는데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인간의 수를 줄여야 한다. 즉 가축을 더 행복한 환경에서 키우려면 어떻게든 인간이 더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 정책을 지지한 강력한 정치단체가 있었다. 바로 나치였다. 영화제작장에서 동물들의 촬영시간 제한, 동물학대 처벌 등 유럽에서 가장 선진화 된 동물보호법을 도입한 것은 바로 나치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들은 유대인들을 절멸시킬 게획도 함께 입안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snser들이 들이대는 프로테스탄티즘적 주장들은 일상 생활에서 통용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본인들도 그 규범에 따라 생활하고 있지 않다. (sns에 대한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생각하는 시간보다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시간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스스로 주장 안에 내재된 모순을 깨달을 시간도 없다. 그 결과 종교적 원리주의자들 마냥, 우르르 몰려다니며 마녀재판을 하고 희생자들을 사냥하러 다닌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을 신 프로테스탄트라고 일컫는 것은 적절한 은유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자화자찬)
2017. 5. 3.
문재인 지지자들과 박사모들의 놀라울 만한 유사성
나는 그들과 박사모들 사이에서 놀랄만큼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두 계층 사이의 세대차, 정치적 견해 차이, 그리고 경험의 차이를 고려하면 이 점은 단순히 놀람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시민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발점이 정유라의 입시비리라는 것을 감안하면, 2030대들이 문준용씨 의혹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소위 꼰대기질이 가장 가득한 공공기관에 지원하면서 점퍼를 입고 귀걸이를 달고 찍은 사진을 내고도 입사하는 것이 아버지의 힘 없이도 가능하다는 주장은, 다른 지원자들이 면접관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애쓴 결과물-천편일률적인 입사원서 사진들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하지만 그 지지자들에겐 이와 같은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적폐세력을 지지한다는 가치판단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고 전 노무현 대통령의 비리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직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지 않은 박근혜-최순실의 비리 처럼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금품수수 비리도 충분한 의혹과 물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보수의 정치탄압이라는 "가치판단"으로 둔갑한다. 더욱이 형 노건평씨는 봉하대군이라고 불리며 돈을 받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검찰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 실형까지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지지자들은 그 당시 우병우처럼 민정수석을 맡았던 문재인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이 자신의 후보를 신격화하며 치부를 감싸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모습은 박정희-박근혜를 대하는 박사모들의 모습과 아주 동일하다.
2016. 12. 17.
정치적 사안 총 정리
이진법과 십진법의 세계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있다/없다 밖에 구분하지 못하지만 후자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흑백세계의 인간에게 우리가 빨간색이 무엇인지 가르칠 수 없듯 지능이 낮은 이진법의 존재들에게 다면적 세상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도 힘겹다. 그러니 이번엔 그 단세포들의 세계로 내려가 yes/no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 박근혜 탄핵은 정당한가?
그렇다. 헌법에는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시킬 절차과 권리가 명시되어있다. 그 헌법에 따른 국회의 대통령 탄핵은 정당하다.
• 대통령 하야 주장은 정당한가?
아니다. 대통령을 뽑고 하야 시키는 문제는 주말드라마 주인공 교체하는 문제와는 다르다. 헌법에 엄연히 대통령을 임기도중 갈아치울 권리와 절차가 명시되어 있는데, 광장에서 여론의 힘으로 대통령을 의지를 꺾어 물러나라고 주장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한 처사다. 우리가 박근혜에게 화가 난 이유가 헌법을 무시해서라면, 우리는 더욱 더 헌법이 보장한 절차에 따라 분노를 표출해야한다.
• 그럼 시위는 잘못되었나?
아니다. 잘못된 구호를 외치더라도, 아무리 멍청한 주장이어도 시위는 정당하다. 그 권리는 헌법에 보장되어있다. 민주주의는 정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을 가늠하는 과정이며, 나는 이것이 정치에 있어 최우선 명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지지한다. 맞건 틀리건, 그들도 정치적 문제에 대해 끝없이 생각해보고 토론해보는 습관을 익히길 바라기 때문이다.
• 시위 현장에는 종북좌파들의 구호가 울려퍼진다. 시위대는 선동된 것 아닌가.
아니다. 단지 시위에 좌파들도 일부 있는 것이지 악한 의도로 종북좌파가 선량한 시위대를 선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종북좌파들이 없었다면 시위가 없었겠는가. 촛불행사 진행이나 자금이 좌파적 단체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평소 시위를 주도하던 좌파들이 마침 준비되어있었을 뿐, 그걸 빌미로 일반 대중들의 의견을 좌파에게 선동되었다고 보며 무시해선 안된다.
• 폭력과 쓰레기 없는 시위는 시민의식의 성장을 보여주나?
아니다. 물리적 폭력과 쓰레기는 민주주의와 전혀 상관없다. 파리대혁명때는 엄청난 피가 흘렀지만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왔다. 파시스트였던 나치 독일인들과 군국주의 일본인들이 아마 가장 쓰레기를 잘 치우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훌륭한 시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쓰레기가 길거리에 넘쳐도 국민들이 투표만 잘하고 평소에 정치에 관심만 가졌어도 한국정치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이게 나라냐고 분노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뉴스를 보기는 했는가. 과거에도 이런 나라였고 난 한번도 이렇지 않은 나라에서 살아본 적 없다. 본인들이 무식해서 신문도 안보고 관심끄고 살다가, 사방에서 떠드니 그제서야 알고 분노하기 시작한 것 뿐이다. sns에서 가장 정치적 포스팅을 많이 올리는 세대가 2030대인데,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투표를 안하는 세대다. 주말마다 광장으로 나가 시위할 시간에 매번 투표라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다. 삼류 국민에 삼류 정치가 따라오는 것이다. 역겨운 자위질은 그만하자.
• 표창원의 탄핵반대의원 공개는 정당한가.
아니다. 헌법에는 국민주권뿐 아니라 양심의 자유도 언급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양심의 자유를 억압받는 쪽은 박근혜 지지자들이다. 친박의원이든 박사모든, 심지어 최순실도 국민 중 하나이고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가진다. 아무리 밉더라도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내가 존중하는 헌법의 기본정신이다. 이는 통진당에게도 박사모나 정의당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에밀 졸라는 말했다. '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운다'
• 박근혜는 멍청한가.
아니다. 박근혜보고 멍청하다고 하는 인간들이 멍청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사실상의 민주 자유선거 사상 최고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이 무너진 이래 박근혜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은 대통령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 이전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이끌며 단 한차례도 선거에서 패하지 않아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바보는 결코 이런 결과를 낼 수 없다. 박근혜가 바보라면 그 바보에게 진 야당과 박근혜에게 승리를 안겨준 유권자들은 유인원인가. "그건 박근혜의 능력이 아니라 보좌진들의 힘이었다"라고 주장한다면 왜 다른 정치인들은 그런 보좌관을 못 구하는가? 아버지의 후광때문이라면, 왜 박정희의 다른 아들들, 또 다른 대통령의 디른 아들들은 정치계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 박근혜는 멍청하지 않다. 그녀가 근무태만에 빠진 것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멍청이들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나태해 진 것이고, 이제껏 국민들이 비리대통령과 비리정치인들을 지지해왔으니 본인도 비리에 둔감해진것이다. 멍청한 것은 국민이다. 박근혜가 아니다.
•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들만이 정권을 잡을 수 있나.
아니다. 그들은 결코 도덕적으로 더 타락한 것이 아니다. 아마 대한민국 평균의 도덕성이나 그들의 도덕성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약한 급우를 두들겨 패는 학생들, 그리고 그를 방관하는 학생들이 갑질하던 우병우를 욕한다. 아이들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는 민폐어른들이 최순실을 욕한다. 자기돈으로 밥사먹는게 당연한줄 모르고 부정부패법을 없애달라고 구걸하는 기자들과 공무원들이 차은택을 욕한다. 자신의 부패는 관행이고 타인의 관행은 부패라고 욕하는, 역겨운 위선이 가득하다. 부유함이 지혜로움과 동의어가 아니듯이 무능함은 선함의 동의어가 아니다.
2016. 11. 25.
당신의 지능에 관한 불편한 사실
2016. 11. 14.
트럼프, 멍청한 SNSer들을 누르다.
2016. 11. 6.
박근혜와 멍청한 대중들
최순실과 그 관련자들은 엄정한 수사를 받아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고 박근혜는 그에 따른 도덕적/법적 책임을 져야한다. 그리고 처벌은 여기에 그쳐야한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에 반대한다.
박근혜의 하야를 외치는 대중들은 현 정치시스템에서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멍청이들이거나 그녀를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잘못된 결정보다 더 나쁜건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인데, 대통령 자리가 공석이 된다는 것은 최순실을 대통령으로 앉히는 것 보다 더 나쁘다. 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교체될때도 인수위를 만들어 국정운영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준비하는 마당에 지금 대통령이 사임하면 향후 몇달간 행정적 외교적 공백은 피할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마치 TV 드라마에서 마음에 안드는 출연자를 하차시키는 문제를 대하듯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대충들은 이제껏 정치적 사안에 무관심하고 공부도 안했으며 고민도 안하다 난데없이 길거리로 나와 민주주의에 관한 아름다운 문구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가리려 한다. 드라마와 뉴스를 구별 못하는 이 멍청이들은 박대통령이 하야하여 TV에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최종결정권자가 없어진 대한민국 국정운영 시스템이 떠안아아 하는 것은 더 심각한 정치적 패닉 뿐이다.
이 바보들에게 상기시켜주자면, 이제까지 단 한번도 대통령의 측근이 비리와 권력남용 및 국정개입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군사정권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 투사인 두 김씨 대통령의 아들들은 약속이나 한듯 나란히 수백억대의 돈을 받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봉하대군이라고 불리며 동생의 임기 내내 뇌물을 받고 대통령의 특사에도 개입하다가 걸려 감옥에 갔고,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돈 받은 자신의 형을 옹호하고 힘없는 사장을 비난하여 자살시켰다. 이명박은 노무현과 정치적으로 정반대지만 그 비리는 닮아있다. 이명박의 형 이상득씨도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있었고 이명박 본인 역시 BBK 내곡동 사저 등 온갖 정치적 개인적 비리에 휘말렸다.
그러나 양 김의 아들들은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했고 친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리는 쏙 빼놓고 그를 아름다운 기억들로 포장한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가 녹는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외치며 광화문으로 몰려들던 대중은 이명박의 혐의에 대한 검찰수사가 허무맹랑하게 종결되었을땐 집에서 방바닥이나 긁으며 뒹굴다가 얼마 안가 박근혜를 찍었다. 그렇게 모든 대통령의 측근 비리에 대해 사실상의 면죄부를 줘 놓고서 어떻게 이런 일이 다시 터지지 않을것을 기대했는가.
물론 이번 사건의 경우 비리의 주인공이 무지렁이 여성이고 사이비 종교와 성적 추문이 연결되어 있어 참신한 충격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비리와 국정개입이 용납되는건 아니며,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청와대에서 굿을 하든 기도를 하든 별 차이는 없다.(샤머니즘은 미개하고 기독교는 합리적이란 말인가) 그리고 헌법이 성적 자주권을 보장하는 한 미혼인 대통령이 과거에 어떤 성적 관계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성적으로 내용만을 두고 보면 과거에 지겹도록 반복된 비리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결국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과거의 비리를 척결하는데 무관심했던 국민들이 이런 구조적 문제를 박근혜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데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에서 최순실 핑계를 대듯, 지금 국민들은 자신의 무관심과 멍청함으로 초래된 국정비리의 모든 책임을 박근혜 하나에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 아래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와같은 재발할 것이며 여당이 아니라 다른 당이 집권해도 또 비리를 저지를 것이고 실제로 그래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면 최순실, 우병우 등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이 엄정히 처벌 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측근비리/전횡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것은 거리의 시위대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목표가 박근혜의 하야에 맞춰져 혼란을 자초하면서 또다시 검찰이 권력층에게 면죄부를 남발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이번 사태는 주인공만 바꾼 채 다시 재연될 것이다.
분노는 파괴적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그 파괴의 힘이 필요한 적도 있었고 앞으로도 필요할 지 모르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대통령 측근의 전횡을 막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할 때고, 분노만으로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냉철히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