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5.

중국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운동권

모두 아시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선에서 승리한 뒤 인수위원회를 꾸릴 시간도 없이 곧장 청와대와 행정부를 이어받았다. 따라서 내각과 청와대 인사명단은 상당히 빠르게 공표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긴 리스트 중 가장 놀라움을 준 부분은 바로 비서실장에 임종석을 앉힌 것일 것이다.

임종석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 3기 의장출신으로 당시 임수경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보낸 일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속된 전력이 있는, 골수 운동권의 핵심멤버이다. 그런 인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올랐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현재 정부의 철학이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지는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서실장이 어떤 자리인지 와닿지 않는다면 참여정부 시절의 비서실장이 문재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 운동권 세대가 이끄는 현 정부는 명확하게 친중노선에 올라탔다. 이는 문 대통령이 2017년 베이징대에서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이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다,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라고 연설하며 공식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로만 본다면 이는 결코 수지타산이 맞는 일이 아니다. 미세먼지와 중국의 세련되지 못한 사드 보복으로 국내 여론이 크게 반중으로 돌아선 와중에 과도하게 친중노선을 타는 것은 국내정치에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됐고, 또 실제로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수반의 중국 혼밥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중노선을 고집했다. (외교적 측면을 보아도 마찬가지지만 주제에 벗어나는 일이라 생략)

이를 통해 현 정부의 친중 행보는 실리적인 이유보다 사상적, 철학적인 동기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현 정부가 그 어느때보다도 이데올로기에 의한 정책을 고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추정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운동권의 철학엔 중국이 자리잡았나?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계를 1980년대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전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남한을 크게 앞질러 1960년대에는 북한의 공업생산량이 남한의 약 2.5배를 넘어선 적어도 있었다. 남한의 경제성장률이 북한을 앞지른 것은 1973년인데, 이 GDP는 (쉽게 설명하자면) 누적 자산이 아닌 매해 벌어들이는 소득의 개념임을 기억하자. 1953년 종전 이후 21년간 뒤져있던 소득이 앞서기 시작했다 해도 누적자산은 아직 한참 뒤진 것 처럼, 70년대 후반~1980년대 초에는 아직 남한이 북한보다 꼭 잘산다고 보기 어려웠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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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남한의 gdp비교

 하지만 문제는 이를 남한 주민들이 몰랐다는 데에 있었다. 소수를 제외하면 현재의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생활상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 처럼 당시의 남한사람들 역시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지 못한채 그저 헐벗고 굶주린 거지들의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랬던 북한이 사실 남한과 동등하게, 어쩌면 더 잘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사람들은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꼈을까?

이와같은 정보는 주로 대학가 운동권을 통해서 확산되었다. 물론 해당 자료들은 북한 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포되었을테니 과장된 측면도 있었겠지만 남한정부가 북한실상을 왜곡하고 정보를 통제했던 것도 사실이기에 당시 이를 접한 대학생들이 배신감을 느끼며 돌아선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대가 바뀐 지금 탈북민들이 남한의 TV프로에 나와 "속았다"라며 증언하는 것을 보면 당시 그들이 느꼈을 정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후 시대가 뒤집혔다. 남한은 빠르게 발전해서 부국이 된데 비해 공산권의 몰락과 함께 북한은 경제가 붕괴해 진짜 거지나라가 됐다. 운동권들은 정부가 북한의 실상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열심히 외쳤는데, 이런 젠장, 정부의 거짓말이 사실이 되어버렸다. 1990년대 들어 수많은 운동권 핵심인사들이 전향한데에는 이와같은 시대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자한당의 김문수나 바른미래당의 하태경과 같은 현직 정치인도 있었고 그 유명한 "강철서신"을 작성한 김영환도 있었다. (이는 82년생 김지영의 작가가 페미에서 전향한 수준의 사건임)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박종철을 고문한 이유가 운동권 선배 박종운의 행적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심지어 그도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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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박종운. 하지만 한나라당 지분의 절반 이상을 민주화운동에 몸바친 김영삼과 상도동계가 가졌다는 것을 잊지말자)


북한은 물론이고 소련까지 붕괴하자 운동권의 이념도 함께 무너졌고 이처럼 대대적인 전향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향하지 않고 버틴 이들이 바로 오늘의 운동권 세력이다. 이들은 눈앞에서 자기 신념의 증거들이 무너지는데도 전향 대신 눈을 감아버리기를 택한, 가장 완고한 사람들임을 기억하자.

그런데 이 쇠심줄같은 고집을 가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나타난다. 바로 중국. 체제경쟁에서 실패하고 무너진 북한(과 소련)을 대신하여 떠오른 공산주의 국가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G2로 성장한다. 마치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따랐더니 죽어버려서 망연자실한 신도들 앞에 그가 부활해 나타난 것처럼 운동권들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메시아를 만난다. 그들은 자신이 젊은날에 선택한 이념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고집을 30년간 버리지 않았고, 그 오랜 믿음이 드디어 현실에서 증명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어떤 보상을 얻는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클 수록 그 보상을 과대평가한다. 30년의 시간과 빨갱이라는 딱지, 그리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대중의 조롱을 견딘 운동권에게는 중국의 존재를 일반 대중보다, 심지어 평균적인 1987년세대보다도 더 크게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 게다가 반미노선을 택한 이상 국제정치에서 기댈 세력이 중국말고는 없지 않은가. 비합리적으로 반미라는 전제조건을 단 그들에겐 기쁘게도 중국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샤를 드골이 그랬나, 모든 정치인들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정의로 승화시킨다고. 운동권들의 중국에 대한 애착은 그런 컴플렉스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의 컴플렉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신 합리적인 목적이 있다고 보면 극우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러니 그들의 "의도"를 확대해석해서 간첩이네, 빨갱이네 하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학시절의 추억과 고난에 대한 보상심리로, 또 30년만에 대학동기들을 만나 "거봐 내말이 맞았잖아"라고 할수 있게 해줘서 마냥 중국이 좋은 것이지, 남한을 공산화하겠다는 모종의 음모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움직인다고 보기 어렵다.(어쩌면 그들을 가장 합리적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박사모들 아닐까?)

하지만 이유와 의도가 어찌되었든 답은 정해져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외교를 맡은 그들의 중국몽은 30년째 깨지 않는 꿈의 일부고 또 그들은 앞으로도 그 꿈에서 깨어날 생각이 없는 가장 고집스런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의 외교 노선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말은 거칠게 하면서도 필요할 때 친미와 신자유주의 노선을 택했던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비슷할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그들의 고집은 세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도 더.

댓글 6개:

  1. 1년전 글인데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심한 일이 일어나는걸 목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속에 파묻힌 사람들이 빨리 사라져야 할텐데 걱정이 큽니다.
    이런 광경을 목도하면서도 모 교수가 말했던 것 처럼 수조속에서 파이프로 아바타를 주입받는 사람들은 헤어나오지를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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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늙은 개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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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병에 맞서 싸우는 의사들은 마스크 부족에 허덕이는 와중에 중국으로 마스크를 수억장 밀출하고, 소독약으로 샤워를 시킨 청와대 안에서 광대들 불러놓고 짜빠구리나 처먹고 있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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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저렇게 미친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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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형적인 '인지부조화'네요. 저 사실을 부정하면 자신의 가치관이 형성된 20대를 날려버리는 것이기에 사실을 왜곡하나봅니다.
    그런거 보면 전향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을까요?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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