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

한 번의 계엄과 열여덟 번의 탄핵

과거 박근혜의 하야나 탄핵에 반대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탄핵 절차와 새 선거 시점을 고려하면 기존의 대선 일정과 불과 7,8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자리를 비워두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작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당시 박근혜의 탄핵 사유로 제시된 비리들이 전임자들에 비해 무엇이 더 심각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링크


그리고 같은 기준으로 나는 윤석열은 탄핵되어야 할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독선적 행동으로 고립을 자초해서 정치적 뇌사상태에 빠진 정치 초보가 그 돌파구로 계엄을 선택한 어처구니없는 일은 87년 헌법 이후 최초이자 최악의 사고였고, 이런 선택을 한 그의 사고력에는 커다란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탄핵이라는 결정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계엄보다 훨씬 경미한 사유로 탄핵소추된 노무현의 탄핵에 9명 중 3명이나 찬성한 사실과, 전임자는 물론이고 후임자도 저지른 흔한 비리를 사유로 탄핵당한 박근혜의 전례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반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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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수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일부 중도층이 계엄을 비난하면서도 탄핵에 쉽사리 찬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이후에 벌어질 정치적 후폭풍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입법부를 장악해서 깽판만 쳐 온 야당 대표가 이제는 전방위적 행정 권력까지 차지하게 될 때 벌어질 일들에 대해 심지어 일부 민주당 지지층까지 우려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탄핵 이후 되려 여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일이나, 야당 대권주자들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보수 유권자들의 과표집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8년 전 탄핵 사건과 비교해서 여론의 추이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민심에는 정신 나간 대통령에 대한 혐오 못지 않게, 총 18번이나 탄핵 소추안을 올린 야당에 대한 불만도 함께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탄핵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다 모조리 실패한 한 얼뜨기가 자유 민주주의 시스템이 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 시스템을 강제로 셧다운 시켰는데 그를 탄핵시키지 않고 놔둔다면 이는 현대 정치사에 아주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일이다. 나는 결코 그를 용인할 수 없다. 각 유권자들의 가치관과 지향점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에겐 공유하는 가치가 있지 않은가. 자유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그 시스템을 공격하는 이들은 누구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드시. 설령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이 이토록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면, 중요한 순간마다 그릇된 판단을 거듭한 윤석열이야말로 그 과업을 수행하기에 매우 부적절한 인물 아닌가. 가망이 없던 부산 엑스포가 박빙이라고 믿었던 것이나, 얻을 것도 없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김태우를 사면한 뒤 내보낸 것, 별 목적 없이 대기업 총수들 보고 헤처모여를 시킨 일, 선거 앞두고 뜬금없이 공매도를 금지하고 비상식적 규모의 의대 정원을 증원한 것을 떠올려 보라. 어떤 장군이 군사작전을 이따위로 펼쳤다면 그의 군대는 벌써 전멸했을 것이다. 심지어 극우적 시각으로 보아도 그는 너무나 무능하다. 하필 그 시점에 계엄을 꺼낸 윤석열이야말로 정치적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이재명을 되살려내 걷게 해준 예수나 다름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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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왜 계엄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평생 오로지 검사로만 살아온 배경이 그의 이런 이 결정을 다소간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검사는 일반적인 직역에 비해 피드백을 잘 받지 않는 직업이다. 이는 사회생활에서 모든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데 갑에게 제대로 된 피드백을 전달할 을은 거의 없고, 또 이를 받아들여 개선할 압박을 느끼는 갑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율권을 보장해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은 이런 독불장군들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잘 모르는 사안도 잘 안다고 착각하는데 평생 그 부푼 자의식을 고쳐줄 사람도 거의 만나지 못한다. 우리 트레이더들도 정확하게 똑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단점들을 잘 알고 있다. 나부터가 이 블로그에 온갖 주제로 글을 쓰지 않는가. 하지만 적어도 트레이더들은 다른 회사들과, 또 외국의 금융기관들과 경쟁하며 실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그나마 강제로 자기 주제를 주입당한다. 하지만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 조직은 그럴 기회조차 없다. 오만한 트레이더가 심각한 오판을 내리면 대부분의 피해는 그 자신이 보지만, 오만한 검사가 심각한 오판을 내리면 대부분의 피해는 다른 누군가가 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능 인재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자신들이 현대미술의 정의와 분류까지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나.(링크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정부의 인사권을 가지게 되면 이 검사 만능주의에 대한 괴상한 믿음이 전체 조직을 장악하게 된다. 검사에게 금융감독을 맡기고, 토목과 건설을 맡기고, 공정거래를 맡기고, 통일정책을 맡기고, 첩보와 보안을 맡기고, 국민의 권익과 인권을 맡기고, 공공기관 감사를 맡기고,  방송통신도 관여하고, 국민연금에도 가고. 또 이 모든 인사검증을 한 늙은 검사와 어린 검사가 했다. 그리고 남는 자리에는 기재부 출신들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기재부 출신들이 과학기술도 하고, 환경부도 가고, 금융위도 가고, 보건복지부도 가고, 국민연금도 가고, 농업도 하고, 해수부에도 가고, 통계도 하고, 관세도 하고, 조달도 하고, 문화체육도 하고, 공공기관 감사들로도 가고, 원내대표도 하고, 심지어 친정을 감사하는 기획재정위원도 했다. 조직관리 학자들은 하버드 출신들을 가지고도 이런 식으로 조직을 구성하면 실패하는데(링크)  고작 아시아 변방의 국립대 출신들이 자기네들이 천하제일이라며 국정을 이렇게 운영했으니 그들이 추진하는 개혁과제들이 성공할 리가 있나. 쌍팔년도 서울대 문리대에서 진로를 정하듯 사시 성적과 행시 성적대로 인사를 했고, 그들은 21세기에 쌍팔년도에나 통하던 정책을 펴다 망했다. 이 정부가 추진하다 실패한 모든 개혁과제들은 전부 검사나 행시 관료들의 작품이지 않았나.

임기 후반에 들어서며 총선에서까지 참패하자 이대로 無업적 대통령으로 남을 자신의 미래를 보며 그는 초조함이 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모든 개혁이 실패할 수가 있지, 아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세상에 서울법대 나와 검사한 나보다 어떻게 저 범죄자 새끼의 지지율이 더 높을 수 있지. 거기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나, 나와 내 사람들이 국정운영을 무능하게 하고 있구나. 둘, 나는 옳은데 누군가가 우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구나. 서울대 나와 고시까지 붙은 나와 내 똘마니들이 무능할 리가 결코 없기에 자연스레 답은 2번이 된다. 이 반 국가세력들이 환율을 올리고, 주식을 떨구고, 집값도 올리고, 양극화도 벌리고, 그래서 내 지지율도 떨구는 것이다. 거기에 관료들의 나쁜 버릇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관 출신들이 공적인 자리에 가면 그 직위에 딸린 권력을 자신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모시는 날이라든지, 수행의전이라든지. 관료들의 후진 조직문화가 오래 이어지는 것은 권력을 자신의 권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행사한 인사권이나 행정명령에 여론이 반발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늘 아침으로 된장찌개를 먹는 것이 오로지 나의 권리이듯, 오로지 내 입맛대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그래서 여론을 무시한다. 유권자들이 반발할수록 대통령과 그 측근 관료들은 그들을 가상의 적인 "반국가 세력"으로 묶어 무시한다. 그들은 내가 아침에 된장찌개를 먹을 정당한 권한을 억압하는 아주 나쁜 놈들이다. 놀랍게도 관료들의 세계관은 그렇게 돌아간다.

최종적으로 그가 계엄이란 선택지까지 이르게 된 것은 특수부 출신이라는 배경도 일조했을 것이다. 주로 정치인이나 대기업 오너 등, 권력자들을 수사하라는 매우 어려운 임무를 받은 특수부는 법의 테두리를 모범생처럼 지켜가면서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선을 넘는 법을 배웠다. 수사 과정이나 절차에 대해, 혹은 그들이 적용한 법리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됐지만, 특수부가 밝혀낸 사안들이 워낙 엄중하고 심각했기 때문에, 또 그들은 절대권력의 부패를 견제할 몇 안 되는 장치였기 때문에 여론은 특수부의 탈선을 눈감아주곤 했다. 이것이 반복적으로 겪은 검사들은 결과가 정당하다면 절차의 흠결은 용서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대통령은 국회를 멈추고 자기와 관료 똘마니들이 밀어붙이려 했던 정책들을 시행하면 대단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진심으로 믿었을 것이고 그러면 국민들이 용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계엄조차 똑바로 못하는 대통령의 정책들이 성공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망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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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대단한 실수도 아니었습니다. 가볍게 야단치고 끝날 일이었죠. 근데, 그 친구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아닐 수도 있어요. 내 착오일 수도 있는 거죠. 근데, 조직이란 게 뭡니까.....오야가 누군가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실수한 일이 없어도 실수한 사람은 나와야 하는 거죠. 간단하게 끝날 일인데, 그 친구 손목 하나가 날아갔어요. 잘나가던 한 친구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끝장이 났습니다."

이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이 철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시나브로 지워졌지만 그의 첫 국정운영 방향은 이권 카르텔의 혁파로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그는 민간의 분야를 하나하나 조지기 시작한다. 교육부터 시작했다. 대통령께서 개혁을 명하셨으니 잘못한 일이 없어도 잘못한 사람은 나와야 한다. 그래서 사교육 카르텔이 등장한다. 그리고 검찰과 국세청을 동원해서 조진다. 그렇게 개혁은 완료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교육시스템과 수능이 뭐가 개선되었나. 다음은 과학기술계의 차례다. R&D 예산을 줄이자 과학계가 반발한다. 나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카르텔이다, 반국가 세력이다. 과기부와 교육부를 동원해서 R&D 카르텔을 적발해서 조진다. 다음은 은행들의 차례다. 기준금리가 올라갔다고 대출금리를 올려 돈을 버는 것은 카르텔이다, 이건 갑질이다, 소상공인 보고 종노릇을 시키는 것이다. 각하께서 노하셨다. 자, 이제 은행을 조진다. 검사와 금감원을 동원해 은행들의 팔을 꺾고 비틀며 관치금융의 진수를 보여준다. 뜬금없이 지방은행 하나를 시중은행으로 격상도 시켜준다. 이야. 각하께서 금융 카르텔도 해결하셨도다. 자, 다음은 의료 카르텔이다. 선거도 있고 하니 인상적인 숫자로 나도 표 좀 빨아보자. 하지만 반발이 강하다. 지지율이 오르기는커녕 빠지고 있다. 포퓰리즘 하나도 똑바로 못하는 우리 검사 대통령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필수의료 인력을 조지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미용시장으로 빠진다. 허.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내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적폐고 카르텔이고 반국가 세력이기 때문이다. 하. 이것들을 반드시 조져야 하는데. 계엄령 포고문 5항 전공의 처단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대든 의료인들에게 조직을 관리하는 오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나한테 반대하면 반국가 세력이라는 그 사고의 이면에는 내가 곧 국가라는 오만함이 가득 차 있다. 그러니 내 반대편에 앉은 과학기술계, 은행들, 금융시장, 교육계, 의사들의 이야기 따윈 들을 필요가 없다. 대화도 하지 않는다. 내가 곧 국가고 내 맘대로 하라고 대통령선거도 이겼는데 뭐. 선거에서 0.7%로 간신히 이긴 주제에 17세기 태양왕에 빙의한 이 오만한 대통령은 지금도 자신의 처지가 개혁을 추진하다 암살당한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와도 같다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보수층들은 윤석열 탄핵안이 기각되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저렇게 믿는 사람이 다시 대통령 자리로 돌아온다면 어떤 짓을 벌이겠는가. 그는 반성하고 얌전히 있을 사람이 결코 아니다. 만약 기각된다면 그것이 보수 종말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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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통령이 믿는 부정선거의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여러 증거 중에서 일부는 대법원에서 해명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언뜻 보면 납득되지 않는 현상들이 많다. 하지만 그 이유는 우리가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전체 사실관계를 파악하려 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수천만 표를 두고 조작하면서 걸리지 않으려면 그 계획은 매우 치밀해야 하는데, 이제까지 선관위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저런 조직력과 저런 일 처리로는 부정선거를 할 능력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음모론을 믿는 모든 유권자들을 무시해야 할까. 아니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동물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음모론 믿고, 어떤 사람들은 광우병을 믿었다.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 합리적인 사람들 중에서도 코로나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한 만 65세 뇌과학자 유 씨(경제학 전공)께서는 미국이 달에 간 적이 없고 천안함 음모론을 믿는 것까지 모두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시지 않았나(링크). 나의 음모론은 합리적 의심이고 너희의 음모론은 무지몽매한 소리이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이다. 어떤 테마주가 버블이라는 주장과, 그 테마주의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다른 주장이다. 우리가 모든 음모론을 검증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나라의 수장이, 설령 그가 미쳤을지언정, 계엄의 사유로 부정선거를 들었다면 우리는 그 주장을 완전히 불식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검증에 나서야 한다. 그 목소리를 억압할 권리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없다. 참고로 세월호 사건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은데도 약 9번에 걸쳐 진상조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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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오로지 나만 맞고 너희들은 모두 다 틀렸다는 광신적 믿음 때문이다. 계엄을 지지하는 사람도, 열여덟 번의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좌파도 우파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남자도 여자도. 우리 모두 다 그렇다. 예전에 박사모들과 문빠들이 매우 닮은 집단이라고 주장했는데(링크), 저 둘을 비난하는 다른 빠돌이/빠순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정치적 심정지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상대의 생각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계엄이 맞았을 수도 있겠지, 친북친중 세력의 공작을 막기 위해서. 어쩌면 이재명이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지. 어쨌든 우리 모두는 이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단지 그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상대는 나라를 망치는 주적이므로 나라를 지키는 것은 오로지 이것 밖에 없다는 그 편협한 생각이 모이고 쌓여 오늘 날의 비극을 낳은 것이다. 나 부터가 그러지 않았을까, 반성한다. 


2024. 12. 2.

그래, 대통령을 증원하자

그렇지 않은가? 매년 대선 후보로 10명에 가까운 후보들이 난립하지만 대통령 정원은 단 1명 뿐이다. 지대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게다가 대통령은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에 폭리를 취하고 깽판을 쳐도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의 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밀턴 프리드먼의 가르침에 따르면 대통령 정원을 늘려야 한다. 아니, 되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더 낫다는 것 아닌가.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모든 분야에 정부가 반강제적으로 정원만 늘리면 만사형통이라는 용산의 한심한 인식은 어떻고? 대통령을 증원하자는 말을 비웃기 전에 저 멍청한 관료들의 입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관치로 시장경제를 대체하겠다며 나대는 저들이야말로 스탈린주의자들이며 빨갱이들이다.



2024. 11. 10.

윤석열의 기괴한 사과와 눈먼 관료들의 정부

윤석열의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한 동료가 대통령의 장광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결국 '씨발 미안하다고 이 새끼들아' 이거네" 그는 대선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기자회견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평론가의 지적대로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형식과, 변명이 덕지덕지 붙은 사과의 내용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견 내내 보여준 저렴한 어투와 고압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불쾌감을 안겼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품격 있는 리더의 겸손한 모습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당황스러운 것은 그들이 이 회견이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임기 내내 그들의 정무감각은 처참하게 박살 나 있고 현실 인식은 기괴할 정도로 어긋나 있었으니까. 집권 후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대통령실과 여당이 17%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윤석열과 그 보좌관들이 거듭해서 이런 오판을 내리는 것이 나는 그들이 관료 출신이라는 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감각의 부재, 권위주의적인 태도, 개저씨라는 단어를 연상케 하는 후진 매너 등 관료로 오래 지낸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이번 정부에서 유독 강하게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대통령부터가 사상 최초로 관료 출신이고 원내대표도 관료, 당 대표도 관료, 심지어 당의 사무총장과 초대 비서실장까지도 모두 전직 관료로 꽉꽉 채워졌지 않은가. 군부독재가 끝난 1987년 이후 관료들이 이렇게까지 정치의 요직을 독점한 적은 없었다. 까라면 까는 사람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일 처리를 설득과 합리가 아닌 권위와 서열에 의존하는 사람들, 서류 결재 외에는 별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 그렇게 혁신이나 발전과 가장 거리가 먼 관료들로 수뇌부를 구성하고서 사회를 모조리 개혁하겠다는 대통령의 포부는 비참한 착각에 불과하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왜 제임스 뷰캐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과 같은 수많은 철학자,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관료제의 비합리와 비효율성을 비판했겠는가. 

한 언론사의 분석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2년간 공식 연설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약 1000번가량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금융시장에서 이렇게까지 심한 관치로 시장경제를 왜곡시킨 정부는 단연코 없었다. 현재의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반시장적이라고 비난했던 이전 정권 못지 않게 반시장적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국정농단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써야 한다고 일갈했는데, 국립국어원은 그보다 먼저 대통령이 이해하는 자유의 의미부터 다시 정의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부터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와 주장을 자주 인용했다. 그런데 이 경제학자는 관료조직은 시장과 달리 경쟁에 의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자원을 낭비하고 경제성장에 해가 된다고 주장했고 또한 관료주의적 이해관계에 얽혀 왜곡될 수 있는 정부의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하지만 윤석열과 그의 관료출신 부하들은 정확하게 프리드먼이 하지 말라던 짓들을 거듭했다. 그러니 나라의 경제와 한국 금융시장의 성적들이 좋을 턱이 없다. 자본과 시장은 사회주의자들을 싫어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능하고 권위적인 관료들도 혐오하니까.

과감하게 나선 기자회견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직접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임기 전반기에는 민간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간 주도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했다"라고 자평했지만 그와 그의 관료 쫄따구들은 단 한 번도 민간에게 주도권을 이양한 적이 없었다. 용산과 세종시는 공매도 금지를 포함하여 온갖 기괴한 규제들을 쏟아냈으며 각종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에 맞춰 일방적으로 기업의 오너들을 질질 끌고 다녔고, 민간 기업의 수주 성과까지 가로채 정권의 치적 홍보에 동원했다. 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간을 지배하는 이런 행태는 객관적 지표로도 드러난다. 동아일보가 한 리서치 회사에 의뢰하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30대 기업의 신규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은 약 47%로 이번 정부 들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70대 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결과는 비슷하여서 판검사와 고위 관료 출신의 비율은 41%로 전년 대비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견제/감시하지 못하고 사실상 합법적 로비나 뇌물을 전달하는 통로로 전락한 현실을 감안하면 기업이 어디에 돈을 뿌려야 득을 보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는 한 소설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면 정부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또 작은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집단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마찬가지로 권력을 쥔 고시 출신의 관료들은 지난 2년  반 동안 현실에 대한 얕은 이해만 가지고서도 경제와 시장을 제 입맛대로 뜯어고치겠다는 야만적 시도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단기적 문제를 해결하지도, 국가에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눈은 멀어 있다. 그렇기에 관료들의 정부는 실패할 것이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부패한 진보 사상가들에 이어 무능한 보수 관료들이 후퇴시킨 나라는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며 당신과 나는 계속해서 그들의 실패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안타깝게도.    

2024. 10. 21.

악법이 말아먹은 국장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문구를 상법개정에 포함하는 것을 가장 강하게 반대한 측이 재계와 법무부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문제를 놓고 벌인 좋은 토론이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여러 법조인들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법의 문구가 다른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느슨하거나 가벼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두고 대법원이 기존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쳐도 회사 법인에게 해를 끼친게 아니면 괜찮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재벌들의 국장서 돈 빼먹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법률가들은 이것이 온전히 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에 현실이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토론에서 반대 측에 선 권재열 교수는 상법체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지만, 엉망인 법을 지키자고 자본시장을 망가뜨리는 행동이 과연 정당한가. 애초에 상법과 자본시장법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자본시장이 이렇게 크게 왜곡될 이유도 없었다. 허술한 법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과 경제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법학자의 오만과 무지에 침을 뱉으라. 

정치철학은 rule of law(법의 지배)와 rule by law(법에 의한 지배)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 둘은 매우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전자는 공평무사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의미하지만 후자는 권력자가 제멋대로 법을 휘두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서양의 정치철학은 그 출발서부터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당나라 시절의 제도를 본딴 고시출신들의 법무부와 권재열 교수와 같은 사람들은 자본시장이 어떻게 되든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일단 악법도 법이니 너희도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마시라며 자본시장의 입에 사약을 밀어넣고 있는데, 자신들의 태도가 저 두 문구 중 어느 쪽에 서있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2024. 10. 19.

밸류없, 무능 그 잡채

새로 상법개정안이 공개되었다. 이딴걸 플랜이라고 들이밀며 자본시장의 거버넌스가 개선될 것이라며 주식을 사라는 정부와 경제관료들은 백치이거나 사기꾼들이다. 무능한 것일까, 부패한 것일까. 

뭐든 당장 전부 잘라라. 




2024. 10. 10.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돈 버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주가 없는 나는 작가였던 적도, 작가가 될 만큼의 재능을 가졌던 적도 없지만 늘 그들을 동경했다.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홀로 남아 손익을 정리하다, 창밖 먼 곳에서 차분히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는 그런 심정으로 그들을 선망했다. 그러던 중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랐던지. 문득 예전에 누군가 쓴 문구가 떠올랐다, "문학 만이 나에게 구원을 준다" 동경하는 이들의 위대한 성취에 왠지 모르게 울컥하여 거듭 찬사를 보낸다. 짝짝짝.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



2024. 10. 3.

왜 밸류업은 실패했는가: 고졸 6등급 과외하기


서학 개미들이 주로 미국 시장에 투자하다보니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미국 대비 성적이 저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절대평가로도 형편없는 것이다. 미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처참한 성적을 보이고 있으니까. 전 세계의 주식시장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성적이 나쁜 곳은 방글라데시, 라트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슬로바키아 이 다섯 나라뿐인데 그나마 비슷한 체급인 멕시코는 저점에서 40%가량 반등했다 하락했으니 그야말로 코스피는 세계 최악의 주식시장인 셈이다. 그 배경으로 금투세의 영향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국가들은 이미 자본이득세를 시행하고 있으며 작년에도, 또 재작년에도 코스피의 성적이 변변찮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예상 밖의 반도체 특수도 있지 않았나. 따라서 전쟁이 난 중동보다도, 심지어 경제제제를 맞은 러시아보다도, 그리고 ELS 사태를 촉발한 홍콩 지수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망하고 있다는 것. 

사실 이 프로젝트의 실패는 널리 예견된 일이었다.(링크) 이미 10년 전에 실패한 계획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밀어붙였으니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닌가. 만약 당신에게 밸류업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던 금융계 지인이 있었다면 그는 아주 멍청하거나 당신의 친구가 아니니 손절하라. 지난 대선에서 시장경제를 중시한다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기가 차게도 그와 그의 경제관료들은 지난 2년간 온갖 반시장적 정책들을 밀어붙이며 투자자들과 찌질한 기싸움을 벌였으니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관치로 망가진 밸류에이션을 관치로 고치겠다는 이들의 병든 철학이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금융사들에게 배당을 확대하지 말라며 꼬장을 부리던 정부와 규제당국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이젠 배당을 늘리라며 윽박지르고 있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더니 난데없이 제품 가격을 올린 소비재 회사를 비난하며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또 언제는 은행들 보고 대출을 늘리라고 했다가, 아니 늘리지 말라고 했다가, 아니 다시 늘리라고 했다가, 도로 늘리지 말라고 했다가, 아 다시 늘리라고 했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줄이라고 하기를 반복하지 않나. 십수 년간 멀쩡히 팔리던 ELS 상품을 난데없이 틀어막고 리스크 관리를 건전하게 해 온 은행과 보험사에게 부실 자산을 떠안으라고 강매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광적인 시장개입을 거듭하고 있다. 관치(官治)를 넘어선 광치(狂治)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업들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자신들의 공약을 철저히 배신했다.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부터 최근의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까지, 이사회가 다수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며 자본시장에 큰 악영향을 끼친 사례가 명명백백히 존재하는데도 여당과 정부는 당초 약속들을 뒤집어 이런 배임행위들을 금지하는 개정안에 반대했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어도 여전히 재벌들은 물적분할에 나설 것이며 대다수 주주들이 가지고 있던 우량주들은 허울만 좋은 지주회사로 전락하여 밑도 끝도 없이 주가가 희석되는 것을 겪을 것이다. 되려 그들이 빨갱이라고 비난하던 야당과 한겨레 언론이 더 친시장적인 상법 개정안을 지지하는(링크) 이 기현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재벌 사회주의자들과 친북 사회주의자들 간의 웅장한 대결?   

정부의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는 엉성하게 구성된 밸류업 인덱스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많은 리포트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이 지수에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투자자들을 화나게 했던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며 주머니를 털어먹으려던 불건전한 회사들을 다수 포함했다는 것이다. 지수가 발표된 날 인덱스에 속한 주식들이 주식시장 평균보다 더 하락한 데에는 어이없는 종목 구성을 보고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한 탓도 크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눈속임이고 반쯤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자인한 셈이니까.

이 프로젝트의 실패를 단순히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거머리처럼 사기업의 이윤을 빨아먹는 일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신의 (잘못된) 정책을 위해 상장된 금융사들에게 부실 자산을 떠넘기거나 손실을 강제하고 있으며 그 비용들은 모두 주주들이 진다.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단 한번도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수백 명의 낙하산들이 북한의 오물 풍선처럼 각 기업들과 협회들에 우수수 내려온다. 이 백치스러운 퇴직 관료들은 무수한 직간접적인 비용을 초래하며 그 부담은 모두 민간영역으로, 돌고 돌아 해당 섹터의 주주들 앞으로 청구된다. 그런 전관들의 거의 유일한 효용은 오로지 정부나 규제당국을 상대로 펼치는 로비에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부수적 효과를 낸다. 물론 그 비용은 모든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몫이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빈사상태로 내몰릴 정도로 피를 빠는 거머리들의 명단에는 정부와 각료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어떤 이유를 내세우든 정부가 새 주식 인덱스를 내놓은 것은 관이 무엇이 좋은 주식인지 찍어주겠다는 의도를 다분히 내포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회사가 우량한지 판단하는 것은 시장의 영역이지, 세종시에서 멍 때리는 관료들의 일이 아니다. 평생 이윤을 추구해 본 적이 없는 집단이 전 세계 자본들이 모두 모여 경쟁하는 시장을 가르치려고 나대는 것은, 마치 수능 6등급의 고졸 낙제생이 아이비리그 입시를 가르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오늘도 왜 성적이 오르지 않냐며 머리를 벅벅 긁으며 미중 갈등이 문제다, 중동전쟁이 문제다, 모 회사의 보고서가 문제다, 라며 한심한 핑계를 늘어놓지만 정작 중국보다도, 이스라엘보다도, 기술주 비중이 더 높은 대만의 주식시장보다도 더 못난 것이 바로 코스피 아닌가. 이게 다 무자격 고졸 낙제생이 오만한 태도로 금융시장을 주물럭거리다 망쳐놓은 탓이다. 

경제관료들은 괴상한 망상에 빠져 있다. 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다, 우리가 좋은 주식들을 찍어주면 주식시장이 오르지 않을까? 아야, 너 정말 에이스구나. 오늘도 이 수능 6등급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서로 이게 정답이네 너 똑똑하네 주접을 떨지만 그들 앞에 놓인 성적표는 너무나 처참하다. 세계 꼴등. 이는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다. 생뚱맞은 인덱스 하나 내놓는다고 주가가 오르는 일 따윈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으니까. 정부의 역할은 그저 자본시장의 룰을 공정하게 세우고, 자본시장의 피를 빠는 거머리들과 도둑들만 속아내면 주가는 자연스럽게 펀더멘털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싫다면 허튼짓을 벌일 시간에 그냥 배민이나 뛰고 편의점 가서 알바나 해라. 차라리 그것이 국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더 기여하는 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