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박근혜의 하야나 탄핵에 반대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탄핵 절차와 새 선거 시점을 고려하면 기존의 대선 일정과 불과 7,8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자리를 비워두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작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당시 박근혜의 탄핵 사유로 제시된 비리들이 전임자들에 비해 무엇이 더 심각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링크)
Miscellaneous ideas for my own
2025. 2. 1.
한 번의 계엄과 열여덟 번의 탄핵
2024. 12. 2.
그래, 대통령을 증원하자
2024. 11. 10.
윤석열의 기괴한 사과와 눈먼 관료들의 정부
윤석열의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한 동료가 대통령의 장광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결국 '씨발 미안하다고 이 새끼들아' 이거네" 그는 대선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기자회견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평론가의 지적대로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형식과, 변명이 덕지덕지 붙은 사과의 내용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견 내내 보여준 저렴한 어투와 고압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불쾌감을 안겼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품격 있는 리더의 겸손한 모습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당황스러운 것은 그들이 이 회견이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임기 내내 그들의 정무감각은 처참하게 박살 나 있고 현실 인식은 기괴할 정도로 어긋나 있었으니까. 집권 후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대통령실과 여당이 17%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윤석열과 그 보좌관들이 거듭해서 이런 오판을 내리는 것이 나는 그들이 관료 출신이라는 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감각의 부재, 권위주의적인 태도, 개저씨라는 단어를 연상케 하는 후진 매너 등 관료로 오래 지낸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이번 정부에서 유독 강하게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대통령부터가 사상 최초로 관료 출신이고 원내대표도 관료, 당 대표도 관료, 심지어 당의 사무총장과 초대 비서실장까지도 모두 전직 관료로 꽉꽉 채워졌지 않은가. 군부독재가 끝난 1987년 이후 관료들이 이렇게까지 정치의 요직을 독점한 적은 없었다. 까라면 까는 사람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일 처리를 설득과 합리가 아닌 권위와 서열에 의존하는 사람들, 서류 결재 외에는 별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 그렇게 혁신이나 발전과 가장 거리가 먼 관료들로 수뇌부를 구성하고서 사회를 모조리 개혁하겠다는 대통령의 포부는 비참한 착각에 불과하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왜 제임스 뷰캐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과 같은 수많은 철학자,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관료제의 비합리와 비효율성을 비판했겠는가.
한 언론사의 분석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2년간 공식 연설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약 1000번가량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금융시장에서 이렇게까지 심한 관치로 시장경제를 왜곡시킨 정부는 단연코 없었다. 현재의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반시장적이라고 비난했던 이전 정권 못지 않게 반시장적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국정농단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써야 한다고 일갈했는데, 국립국어원은 그보다 먼저 대통령이 이해하는 자유의 의미부터 다시 정의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부터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와 주장을 자주 인용했다. 그런데 이 경제학자는 관료조직은 시장과 달리 경쟁에 의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자원을 낭비하고 경제성장에 해가 된다고 주장했고 또한 관료주의적 이해관계에 얽혀 왜곡될 수 있는 정부의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하지만 윤석열과 그의 관료출신 부하들은 정확하게 프리드먼이 하지 말라던 짓들을 거듭했다. 그러니 나라의 경제와 한국 금융시장의 성적들이 좋을 턱이 없다. 자본과 시장은 사회주의자들을 싫어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능하고 권위적인 관료들도 혐오하니까.
과감하게 나선 기자회견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직접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임기 전반기에는 민간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간 주도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했다"라고 자평했지만 그와 그의 관료 쫄따구들은 단 한 번도 민간에게 주도권을 이양한 적이 없었다. 용산과 세종시는 공매도 금지를 포함하여 온갖 기괴한 규제들을 쏟아냈으며 각종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에 맞춰 일방적으로 기업의 오너들을 질질 끌고 다녔고, 민간 기업의 수주 성과까지 가로채 정권의 치적 홍보에 동원했다. 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간을 지배하는 이런 행태는 객관적 지표로도 드러난다. 동아일보가 한 리서치 회사에 의뢰하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30대 기업의 신규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은 약 47%로 이번 정부 들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70대 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결과는 비슷하여서 판검사와 고위 관료 출신의 비율은 41%로 전년 대비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견제/감시하지 못하고 사실상 합법적 로비나 뇌물을 전달하는 통로로 전락한 현실을 감안하면 기업이 어디에 돈을 뿌려야 득을 보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는 한 소설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면 정부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또 작은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집단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마찬가지로 권력을 쥔 고시 출신의 관료들은 지난 2년 반 동안 현실에 대한 얕은 이해만 가지고서도 경제와 시장을 제 입맛대로 뜯어고치겠다는 야만적 시도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단기적 문제를 해결하지도, 국가에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눈은 멀어 있다. 그렇기에 관료들의 정부는 실패할 것이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부패한 진보 사상가들에 이어 무능한 보수 관료들이 후퇴시킨 나라는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며 당신과 나는 계속해서 그들의 실패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안타깝게도.
2024. 10. 21.
악법이 말아먹은 국장
2024. 10. 19.
밸류없, 무능 그 잡채
새로 상법개정안이 공개되었다. 이딴걸 플랜이라고 들이밀며 자본시장의 거버넌스가 개선될 것이라며 주식을 사라는 정부와 경제관료들은 백치이거나 사기꾼들이다. 무능한 것일까, 부패한 것일까.
뭐든 당장 전부 잘라라.
2024. 10. 10.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돈 버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주가 없는 나는 작가였던 적도, 작가가 될 만큼의 재능을 가졌던 적도 없지만 늘 그들을 동경했다.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홀로 남아 손익을 정리하다, 창밖 먼 곳에서 차분히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는 그런 심정으로 그들을 선망했다. 그러던 중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랐던지. 문득 예전에 누군가 쓴 문구가 떠올랐다, "문학 만이 나에게 구원을 준다" 동경하는 이들의 위대한 성취에 왠지 모르게 울컥하여 거듭 찬사를 보낸다. 짝짝짝.
2024. 10. 3.
왜 밸류업은 실패했는가: 고졸 6등급 과외하기
서학 개미들이 주로 미국 시장에 투자하다보니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미국 대비 성적이 저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절대평가로도 형편없는 것이다. 미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처참한 성적을 보이고 있으니까. 전 세계의 주식시장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성적이 나쁜 곳은 방글라데시, 라트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슬로바키아 이 다섯 나라뿐인데 그나마 비슷한 체급인 멕시코는 저점에서 40%가량 반등했다 하락했으니 그야말로 코스피는 세계 최악의 주식시장인 셈이다. 그 배경으로 금투세의 영향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국가들은 이미 자본이득세를 시행하고 있으며 작년에도, 또 재작년에도 코스피의 성적이 변변찮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예상 밖의 반도체 특수도 있지 않았나. 따라서 전쟁이 난 중동보다도, 심지어 경제제제를 맞은 러시아보다도, 그리고 ELS 사태를 촉발한 홍콩 지수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망하고 있다는 것.
사실 이 프로젝트의 실패는 널리 예견된 일이었다.(링크) 이미 10년 전에 실패한 계획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밀어붙였으니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닌가. 만약 당신에게 밸류업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던 금융계 지인이 있었다면 그는 아주 멍청하거나 당신의 친구가 아니니 손절하라. 지난 대선에서 시장경제를 중시한다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기가 차게도 그와 그의 경제관료들은 지난 2년간 온갖 반시장적 정책들을 밀어붙이며 투자자들과 찌질한 기싸움을 벌였으니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관치로 망가진 밸류에이션을 관치로 고치겠다는 이들의 병든 철학이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금융사들에게 배당을 확대하지 말라며 꼬장을 부리던 정부와 규제당국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이젠 배당을 늘리라며 윽박지르고 있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더니 난데없이 제품 가격을 올린 소비재 회사를 비난하며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또 언제는 은행들 보고 대출을 늘리라고 했다가, 아니 늘리지 말라고 했다가, 아니 다시 늘리라고 했다가, 도로 늘리지 말라고 했다가, 아 다시 늘리라고 했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줄이라고 하기를 반복하지 않나. 십수 년간 멀쩡히 팔리던 ELS 상품을 난데없이 틀어막고 리스크 관리를 건전하게 해 온 은행과 보험사에게 부실 자산을 떠안으라고 강매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광적인 시장개입을 거듭하고 있다. 관치(官治)를 넘어선 광치(狂治)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업들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자신들의 공약을 철저히 배신했다.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부터 최근의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까지, 이사회가 다수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며 자본시장에 큰 악영향을 끼친 사례가 명명백백히 존재하는데도 여당과 정부는 당초 약속들을 뒤집어 이런 배임행위들을 금지하는 개정안에 반대했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어도 여전히 재벌들은 물적분할에 나설 것이며 대다수 주주들이 가지고 있던 우량주들은 허울만 좋은 지주회사로 전락하여 밑도 끝도 없이 주가가 희석되는 것을 겪을 것이다. 되려 그들이 빨갱이라고 비난하던 야당과 한겨레 언론이 더 친시장적인 상법 개정안을 지지하는(링크) 이 기현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재벌 사회주의자들과 친북 사회주의자들 간의 웅장한 대결?
정부의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는 엉성하게 구성된 밸류업 인덱스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많은 리포트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이 지수에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투자자들을 화나게 했던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며 주머니를 털어먹으려던 불건전한 회사들을 다수 포함했다는 것이다. 지수가 발표된 날 인덱스에 속한 주식들이 주식시장 평균보다 더 하락한 데에는 어이없는 종목 구성을 보고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한 탓도 크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눈속임이고 반쯤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자인한 셈이니까.
이 프로젝트의 실패를 단순히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거머리처럼 사기업의 이윤을 빨아먹는 일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신의 (잘못된) 정책을 위해 상장된 금융사들에게 부실 자산을 떠넘기거나 손실을 강제하고 있으며 그 비용들은 모두 주주들이 진다.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단 한번도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수백 명의 낙하산들이 북한의 오물 풍선처럼 각 기업들과 협회들에 우수수 내려온다. 이 백치스러운 퇴직 관료들은 무수한 직간접적인 비용을 초래하며 그 부담은 모두 민간영역으로, 돌고 돌아 해당 섹터의 주주들 앞으로 청구된다. 그런 전관들의 거의 유일한 효용은 오로지 정부나 규제당국을 상대로 펼치는 로비에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부수적 효과를 낸다. 물론 그 비용은 모든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몫이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빈사상태로 내몰릴 정도로 피를 빠는 거머리들의 명단에는 정부와 각료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어떤 이유를 내세우든 정부가 새 주식 인덱스를 내놓은 것은 관이 무엇이 좋은 주식인지 찍어주겠다는 의도를 다분히 내포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회사가 우량한지 판단하는 것은 시장의 영역이지, 세종시에서 멍 때리는 관료들의 일이 아니다. 평생 이윤을 추구해 본 적이 없는 집단이 전 세계 자본들이 모두 모여 경쟁하는 시장을 가르치려고 나대는 것은, 마치 수능 6등급의 고졸 낙제생이 아이비리그 입시를 가르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오늘도 왜 성적이 오르지 않냐며 머리를 벅벅 긁으며 미중 갈등이 문제다, 중동전쟁이 문제다, 모 회사의 보고서가 문제다, 라며 한심한 핑계를 늘어놓지만 정작 중국보다도, 이스라엘보다도, 기술주 비중이 더 높은 대만의 주식시장보다도 더 못난 것이 바로 코스피 아닌가. 이게 다 무자격 고졸 낙제생이 오만한 태도로 금융시장을 주물럭거리다 망쳐놓은 탓이다.
경제관료들은 괴상한 망상에 빠져 있다. 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다, 우리가 좋은 주식들을 찍어주면 주식시장이 오르지 않을까? 아야, 너 정말 에이스구나. 오늘도 이 수능 6등급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서로 이게 정답이네 너 똑똑하네 주접을 떨지만 그들 앞에 놓인 성적표는 너무나 처참하다. 세계 꼴등. 이는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다. 생뚱맞은 인덱스 하나 내놓는다고 주가가 오르는 일 따윈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으니까. 정부의 역할은 그저 자본시장의 룰을 공정하게 세우고, 자본시장의 피를 빠는 거머리들과 도둑들만 속아내면 주가는 자연스럽게 펀더멘털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싫다면 허튼짓을 벌일 시간에 그냥 배민이나 뛰고 편의점 가서 알바나 해라. 차라리 그것이 국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더 기여하는 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