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6.

허생전 2023 (feat.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

(생략)변 씨는 본래 원희룡 장관과 잘 아는 사이였다. 원희룡이 당시 국토부 장관이 되어 변 씨에게 주택수급 문제를 해결할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변 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원 장관은 깜짝 놀라면서 "그인 이인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라고 답했다. 밤에 원 장관은 보좌관들도 다 물리치고 변 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변 씨는 원 장관을 문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원 장관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소주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변 씨는 원 장관을 밖에 오래 서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원 장관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원 장관은 몸 둘 곳을 몰라 하며 나라에서 주택 공급 방안을 마련코자 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국토부 장관이오.”

“그렇다면 너는 대통령의 신임 받는 각료로군. 내가 인허가 절차를 막는 규제들을 선별하면, 네가 의회에 아뢰어 일괄적으로 폐지할 수 있겠느냐?”

원 장관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 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 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원 장관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타 OCED국가들과는 달리 조선은 대규모 자본과 법인이 거주용 부동산 산업이나 리츠에 진출하기가 어려워 민간 임대시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는 조정에 청하여 대형 리츠회사들이 주거용 부동산을 공급할 수 있게 허용해 줄 수 있겠느냐?"

원 장관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지만 평균 용적률이 고작 160%에 불과해 500-1500%의 용적률을 가진 다른 국제도시에 비하면 도시계획의 효율성이 턱없이 낮다. 이로 인해 직주근접이 가능한 주택의 수가 크게 모자라 핵심지의 주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시간씩 걸쳐 출퇴근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비효율이 이어진다. 서울 핵심지를 고층으로 개발하면 양질의 주택 수를 공급할 수 있는 동시에 교통량은 줄고, 또 활용할 수 있는 대지의 면적은 되려 넓어져 공원과 도로와 같은 인프라를 갖출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비합리적인 층수 규제와 용적률 제한을 과감하게 풀고 성냥갑 시멘트 아파트를 재건축하도록 더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제도와 규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정부 예산을 쓰기는커녕 인허가 과정에서 세수 수입은 되려 증가할 것이고 더욱이 이명박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남을 비롯한 핵심지의 주택공급이 크게 늘어나 상급지부터 주택 가격이 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원 장관은 힘없이 말했다.

“안 그래도 부자감세라고 욕을 먹는데 재건축까지 대거 풀어주면 토건족이라는 비난을 누가 감당하려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부자감세가 무엇이란 말이냐? 상속세율과 소득세율이 OECD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데다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은 40%가 넘어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데 무엇이 부자감세인가. 그렇게 걷은 세금을 가지고 아무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누구도 살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권 변두리의 맹지에 갑자기 수만 세대의 집을 짓겠다는 계획이 더 큰 재정의 낭비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행정부가 인허가권을 무기로 삼아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의 민간 주택 공급은 틀어막아놓고,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공기업 LH에게 사업을 맡겨 설계도 엉망인데다 철근도 숭숭 빠진 공공 주택을 건설하는 짓을 과연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진정 토건족스러운 짓 아닌가. 게다가 현재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PF 사업장은 인기가 없어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것인데 그런 엉망인 사업들을, 게다가 거주용 부동산도 아닌 PF들을 일괄적으로 구제해 주겠다는 것을 딴에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 받는 국토부 장관이라 하겠는가?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원희룡 장관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관저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곳이 없었다.




댓글 25개:

  1.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장관급은 정치인이 아니라 관료출신이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출신이 하니 민도, 민족성, 국민성 수준 따라 너무 휘둘리면서 오히려 양극화만 부추기는 경향이 강하죠

    건축/건설/토목 설계와 시공 문제는 솔직히 해당 접근성과 전문성이 높은 분야인 만큼 이쪽 전문성에 맞게 개선하는게 맞고 결과적으로 어차피 어느나라든 인플레와 건축비 폭등은 국제 표준이라 독일이나 미국식 건축/건설/토목 산업 운영체제를 갖추는게 맞고 어차피 이러지 않아도 이미 관련 건축비는 이 국가같이 뭘 해도 불어나고 자동화도 잘 안되고 신공법 적용도 다 비용부담이 많고 투자가 많이 필요해서 지금 같은 때가 돈이 많이 들어서 국토부가 개선 추진을 잘 안한다는 증거가 많지만 실제 민노총 건설노조도 많이봐주지만 대격변 하기 좋고
    뭘 해도 입이 아플정도로 긴 이야기가 나오지만 우리나라가 부동산 거품 따위 없다는 증거가 너무 많고 부동산 양극화는 어쩔수 없는 필연으로 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탈건, 탈토로 인한 전공자와 전문인력 부족 오랫동안 자동화도 안되고 외노자 대체도 잘 안되서 어느나라든 건축비 폭등에 인플레에 가계총자산과 전세제도 때문에 가계부채가 문제가 없다는 증거도 많고 일본과 건축/건설/토목/부동산 산업 운영체제가 다르다는 증거도 많고 부동산 거품은 무조건 공급 과잉으로 인해 일본, 스페인, 지금의 중국 헝다같이 망한 사례만 존재한다는 것과 주택보급율 높다고 하지만 이게 고시원까지 포함한거라 실제 30평대 이상 도시권 집 자체가 수요가 많고 귀하다는 것을 언론에서 무시하는거 보면 어떻게든 형님의 오래전 말씀대로 우리나라 괜찮은 집 1채라도 사는게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LH는 잘 해야 해체고 해당 조직을 어느나라든 없애버린 적이 없으니 그냥 민간 주도 개발을 다시 밀어주는게 합리적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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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료출신 전문가출신들이 장관달면 좌우상관없이 법대나온 정치인들이 X피아 시리즈 만들어서 지들끼리 해처먹는다 선동하고 백성들은 또 그걸 믿고 표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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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표받아서 당선된 법대출신 정치인들이 전문가출신들 싹 잘라내고 40년전 자기 대학 동아리 친구들 데려다(이놈들도 법대출신) 감투얹어주고 충량한 조선신민들은 이제 관심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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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법을 전공한 원희룡이 주택수급 문제를 잘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과연 관료출신들이 조직을 장악하는게 옳은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 예로 LH를 들 수 있죠. LH의 주요 고위 임원과 조직은 거의 내부승진으로 채워지죠, 그런 LH는 과연 유능한 조직이 되었나요?

      지난 정부에서 주택과 전혀 상관없는 운동권 정치인이 장관에 앉았던 것처럼 전직 국토부 장관 중에서는 정치인이나 교수 출신이 많았습니다. 정치인 장관들은 국민의 견제를 받습니다. 하지만 관료 출신들이 조직을 장악하게 하면 사실상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내부에서 썩어들어갑니다. 정치인 장관의 실책은 눈에 띄어 도려내기도 쉽지만 관료제가 장악한 조직의 폐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과도 같습니다.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비전문가 출신의 장관의 실책을 비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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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형님 오랜만에 귀한 글 감사합니다. 전문가들도 앞으로 공급은 더 줄어든다고 하고.. 결국 핵심지에 한채 마련이 상책인데 지방에 직장이 있으면 그게 참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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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장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집값이 매우 고평가 된 것도 사실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막힌 공급은 언제고 뚫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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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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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단비같은 글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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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모바일이라 말이 이상한데 2문단 3문단은 당위적인 사고를 지양해야함에도 불구 그 모든 비관적 견해들을 알고는 있으나 그래도 긍정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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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서울취업도 가능한 자가 매매가격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세종을 터로 잡을려 하는거냐라는 의문에는 훗날 제가 긍정하는 대로의 미래가 그려진다면 지금 세종은 너무나도 저평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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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는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수도이전을 해서는 안되고 인구가 늘지 않을 수록 인프라와 기능을 더욱 도시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문명의 도약을 가져온 모든 혁신은 도시로부터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회학자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하기도 하죠. 21세기 대한민국이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공업산업을 지향할 것이라면 몰라도 고부가가치 산업을 위해서는 우수인력을 도시에 집중하고 인프라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도시의 경쟁력은 집중으로부터 나옵니다. 우수한 인력일 수록 집중된 도시에 살고 싶어합니다. 서울을 열개로 쪼갠다면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형편없이 추락하겠죠. 물론 현재 시민들이 누리는 인프라의 수준도 현격하게 떨어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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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선생님이 보시기에 대한민국의 현저히 낮은 출산율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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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에 대해서는 차후 "저출산과 배부른 캥거루들"로 정리하겠습니다. 제목에서 유추하다시피 저는 현재의 젊은 세대가 과도하게 부모의 지원에 의존했기 때문에 부모의 소득으로부터 독립해 결혼/출산을 미루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꼰대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도 30대이고 저출산을 이끄는 바로 그 세대 중 하나입니다. 몇년 더 나이 먹고 나면 꼰대 소리 들을까봐 어서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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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출산 해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현재의 학력 인플레 현상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80년대 대학 진학률이 평균 25%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거의 7-80%라고 알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인구 대비 대졸 인력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없습니다. 평균 30% 내외가 이상적이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나 전문대 나와서 기술직으로 살아도 아이 낳고 사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위 '좆소' 기업문화도 바꿔야 겠죠. 정부의 역할은 '좋소' 기업정책 개발하고 그런 기업들에 정부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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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출산 관련해 작성하실 글이 궁금해지네요.

      늦은 사회 진출, 소득/자산 양극화 그리고 잠깐 언급하셨지만 부모-자식간 과도한 책임/의무관계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죠. 근데 그런 요인들이 우리나라만 있는 것도 아닐진대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저출산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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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두번 째줄 이인이 아니라 의인인거 같아요. 글 자주 좀 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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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에는 이인(異人)으로 되어있습니다. 고전문학이라 현대에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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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오랜만에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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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저도 주인장님과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저출산의 핵심은 한국의 부모가 아이에 대해 100프로 책임지고 육아의 결과에 대해 평가받아야 하는 유교적 가족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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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이 글을 작성하신지 대략 6개월이 지났는데요 막힌 공급이 언제 뚫릴지 기약이 없습니다. 23년 누계 인허가/착공지표도 역대급으로 낮은 수준이고요.. 26년까지 특히 수도권 공급부족은 기정 사실이 되었습니다. 금리도 인하국면인 것 같고요..

    두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1. 댓글에서 집값이 고평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근거로 말씀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통화량? PIR? 그리고 고평가 되었다고 해도 공급시차가 존재해 공급의 가격탄력성이 낮은 주택공급, 필수재라서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은 주택수요를 고려할 때 고평가 그 자체로 가격이 하락하리라고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2. 막힌 공급이 뚫릴 수 있는 이벤트가 무엇이 있을까요? 결국 도심 내 공급은 재건축/재개발 물량일텐데, 주택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사업성을 획득하거나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사업성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주지 않는 한 공급증가의 동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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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담당기관들의 권한만 축소해도 될 것입니다. 도대체 1종 2종 3종 주거지역은 어떤 근거로 정한 것이며, 각 종마다 용적률 상한은 50년이 넘도록 십계명처럼 지켜져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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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의합니다. 난개발을 막기 위한 도시계획과 자유로운 민간개발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지금의 규제수준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고평가 관련 의견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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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소득과 집값을 단순 비교한다면 명백히 고평가겠죠, 허나 규제가 고평가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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