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9.

중국 주식은 비싸지 않다.

지난 3주간 중국 주식이 폭락하자 사람들은 작년부터 이어진 상해 인덱스의 랠리는 버블 때문이었다며 주식과 시장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의 주식이 비싸지 않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중국에서 정부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DM국가들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이다.
 
아래 차트는 지난 10년간의 상하이 주식 인덱스의 forward PE와 그 평균(빨간색 선)을 표시한 것이다.1) 현재 중국의 밸류에이션은 역사적 평균보다 높긴 하지만 실제 중국 주식이 버블이었던 기간에 비하면 아직 한참 낮다. 미국이나 독일, 영국의 주식들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상하이 인덱스가 밸류에이션상 버블이라면 영국 주식은 거의 미친 광풍 수준이다.
 
Shanghai Index

S&P500

DAX(German)

FTSE100(UK)
 
 
게다가 중국 주식의 추가 하락을 점치는 사람들은 중국 정부의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정부가 금융시장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에 시장을 부양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미국과 같이 금융시장과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의 경우, 연준이 아무리 금리를 인하해도 민간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대차대조표를 줄여 신용과 통화량이 수축하여 시장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당국의 명령 하나로 시중은행들의 대차대조표를 부풀릴 수있다. 금융시장에 대한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아래 차트를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의 M1 증가율(YoY)
 
 
2008년, 리만이 파산하며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져들자 중국 정부는 M1통화량을 약 38%까지 늘리며 시장을 떠 받쳤다. 중국같이 큰 나라의 통화량이 금융위기에서 거의 30%나 늘어나는 일은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가진 중국 정부가 최근의 증시 하락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시장을 부양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시장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정부가 내놓지 않은 카드는 아직도 많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중국 주식의 추가 하락에 베팅하고 싶지 않다. 시장은 심리인지라, 패닉이 잠깐 더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시간은 Bear들의 편이 아니다. 우리는 디플레이션이라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니케이가 얼마나 강력하게 랠리를 이어갔는지, 그리고 적절한 통화정책의 수혜를 입은 미국 주식이 얼마나 오래 랠리를 지속했는지를 기억해야한다. 중국의 주식 상승세가 가팔랐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증시는 결코 버블이 아니다. 내 경험상, 진짜 버블의 끝자락에서는 아무도 버블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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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와는 별개로 단순히 PE만 보고 과거와 현재의 밸류에이션을 비교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법이다. PE의 기본 개념은 현금 할인 모형(DCF)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주식 애널리스트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이 모형에서 분자인 현금흐름(기업이익)만 분석하고 분모인 위험수익률의 분석을 등한시 하는 것이다. 기업가치가 같다면, 시장금리가 1%일 때의 기업의 PE는 금리가 5%일때 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세계 주식시장은 높은 PE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상승하는 것이다.
 
 

2015. 7. 5.

부채에 대한 오해

인간이 세상의 이치를 머리가 아닌 오감에 의지해 파악하던 원시시대에는 땅은 네모나고 해와 별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발전시킨 과학기술은 땅은 둥글며, 지구가 해 주변을 돌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반사람들은 원시적 개념에 의존해 '부채는 나쁘다'라고 믿고 있지만 이는 아주 틀린 인식이다. 부채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 중 하나이며 부채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산업혁명이 태동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발전한 선진국들은 대체적으로 부채/GDP비율이 높으며 부채가 없는 나라들은 짐바브웨, 소말리아, 조선과 같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들 뿐이다. 이는 부채가 문명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부채에 대한 오해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부채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오해의 출발점은, 부채는 미래의 부를 현재에 끌어다 쓴다는 개념에서부터 온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이는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적 측면에서는 이는 매우 잘못된 개념이다.(이후 내용은 폴 크루그먼의 글을 요약했다. 링크) 폐쇄된 시스템 아래서는 한 사람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다. 내가 은행에서 백만원을 빌린다는 것은, 누군가 은행에 백만원을 예금했다는 것과 같다. 즉 한국의 대외부채/자산이 같다면 현재 우리가 진 빚은 지금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 것이지, 우리들의 후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따라서 부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이 점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위와같은 전제에서 보면, 부채가 늘어난다는 것은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휴 자본을 가진 사람이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매커니즘이 원활하게 일어날 때 부채는 커진다. 다음의 구체적 사례를 보면 이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5세기 한양의 부자 김OO판서는 돈이 많지만 이를 쓸데가 없어 그저 곳간에 쌀을 쌓아두기만 한다. 함경도의 노비 김검동(연은분리법을 개발한 실존인물)은 납에서 은을 제련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지만 납을 대거 사들이고 제련시설을 지을 재력이 없어 이 기술을 소규모 가내수공업 용도로만 쓰고 있다. 만약 김검동이 김판서에게 투자금을 대거 빌릴 수 있었다면, 조선의 은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실제로 금융시장이 발달한 일본이 이 기술을 조선에서 배워가자, 그들은 전 세계 은 생산량의 20%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성공적 근대화의 자산이 된다) 금융 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두 사람이 만나기가 어렵고, 또 만나게 되더라도 광부는 글만 읽던 투자자에게 이게 왜 큰 돈이 될수 있는지 설명하느라 날을 새울 것이다. 그러나 부채가 자유롭게 발생하는 상황이라면 이와 같은 불편이 모두 사라진다. 만약 시장금리가 5%라고 한다면 채무자는 자기의 사업모델이 5%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경우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빌릴 것이고, 채권자는 곳간에 쌀을 쌓아두는 대신 5%의 수익을 받고자 은행에 예금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산업혁명은 이와 같은 부채의 힘으로 탄생했다.
 
따라서 "부채를 줄이자"라는 구호는 사실상 위와 같은 "효율적 자본 배분"을 그만두자라는 뜻을 의미한다. 경제의 생산요소중 하나인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한다면 마치 메시가 택시기사를 하고 마이클 잭슨이 밭을 가는 상황처럼 나라가 엉망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채를 줄이려는 주장을 매우 경계해야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부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부채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버블이나 투기와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08년 미국의 금융위기나 그리스의 문제는 모두 이 과도한 부채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이 버블을 경계하는 이유는 버블이 꺼질때의 급격한 충격 때문인데, 금융시장이 발달한 20세기 후반의 경제는 부채가 미미하던 그 이전의 시대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다. 부채가 작을때의 경기변동이 부채가 클 때보다 더 심하다면 경기변동의 원인이 부채에 있다고 하긴 어렵지 않은가. 그 증거 중 하나로 국가부채가 GDP의 200%가 넘는 일본의 국채의 파산위험은 전세계에서 가장 다.(파산위험성의 지표인 일본의 CDS 레벨도 외환보유고 3조달러에 일본보다 국가부채가 훨씬 작은 중국과 비슷하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모두 맞다고 해도, 부채의 순기능은 그들이 언급한 부작용의 단점보다 훨씬 크다.
 
오늘도 금융시장의 원시인들은 가계부채가 1천조가 넘었다며 이로인해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라는 바보같은 주장들을 반복한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1천조가 아니라 5천조가 넘어도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 그 5천조를 빌려주는 것은 우리의 아들들이 아니라 현재를 같이 살아가는 다른 한국인들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부채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왜 부채가 늘어나는가'가 아니라 '왜 가계의 부채만 늘고 기업의 부채는 줄어드는가'라는 물음이어야 한다. 부채에 대한 오해를 풀지 않으면 진짜 문제가 뭔지 파악하지 못한 채 잘못된 대책만 내놓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