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5.

부채에 대한 오해

인간이 세상의 이치를 머리가 아닌 오감에 의지해 파악하던 원시시대에는 땅은 네모나고 해와 별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발전시킨 과학기술은 땅은 둥글며, 지구가 해 주변을 돌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반사람들은 원시적 개념에 의존해 '부채는 나쁘다'라고 믿고 있지만 이는 아주 틀린 인식이다. 부채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 중 하나이며 부채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산업혁명이 태동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발전한 선진국들은 대체적으로 부채/GDP비율이 높으며 부채가 없는 나라들은 짐바브웨, 소말리아, 조선과 같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들 뿐이다. 이는 부채가 문명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부채에 대한 오해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부채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오해의 출발점은, 부채는 미래의 부를 현재에 끌어다 쓴다는 개념에서부터 온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이는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적 측면에서는 이는 매우 잘못된 개념이다.(이후 내용은 폴 크루그먼의 글을 요약했다. 링크) 폐쇄된 시스템 아래서는 한 사람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다. 내가 은행에서 백만원을 빌린다는 것은, 누군가 은행에 백만원을 예금했다는 것과 같다. 즉 한국의 대외부채/자산이 같다면 현재 우리가 진 빚은 지금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 것이지, 우리들의 후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따라서 부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이 점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위와같은 전제에서 보면, 부채가 늘어난다는 것은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휴 자본을 가진 사람이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매커니즘이 원활하게 일어날 때 부채는 커진다. 다음의 구체적 사례를 보면 이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5세기 한양의 부자 김OO판서는 돈이 많지만 이를 쓸데가 없어 그저 곳간에 쌀을 쌓아두기만 한다. 함경도의 노비 김검동(연은분리법을 개발한 실존인물)은 납에서 은을 제련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지만 납을 대거 사들이고 제련시설을 지을 재력이 없어 이 기술을 소규모 가내수공업 용도로만 쓰고 있다. 만약 김검동이 김판서에게 투자금을 대거 빌릴 수 있었다면, 조선의 은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실제로 금융시장이 발달한 일본이 이 기술을 조선에서 배워가자, 그들은 전 세계 은 생산량의 20%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성공적 근대화의 자산이 된다) 금융 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두 사람이 만나기가 어렵고, 또 만나게 되더라도 광부는 글만 읽던 투자자에게 이게 왜 큰 돈이 될수 있는지 설명하느라 날을 새울 것이다. 그러나 부채가 자유롭게 발생하는 상황이라면 이와 같은 불편이 모두 사라진다. 만약 시장금리가 5%라고 한다면 채무자는 자기의 사업모델이 5%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경우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빌릴 것이고, 채권자는 곳간에 쌀을 쌓아두는 대신 5%의 수익을 받고자 은행에 예금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산업혁명은 이와 같은 부채의 힘으로 탄생했다.
 
따라서 "부채를 줄이자"라는 구호는 사실상 위와 같은 "효율적 자본 배분"을 그만두자라는 뜻을 의미한다. 경제의 생산요소중 하나인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한다면 마치 메시가 택시기사를 하고 마이클 잭슨이 밭을 가는 상황처럼 나라가 엉망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채를 줄이려는 주장을 매우 경계해야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부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부채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버블이나 투기와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08년 미국의 금융위기나 그리스의 문제는 모두 이 과도한 부채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이 버블을 경계하는 이유는 버블이 꺼질때의 급격한 충격 때문인데, 금융시장이 발달한 20세기 후반의 경제는 부채가 미미하던 그 이전의 시대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다. 부채가 작을때의 경기변동이 부채가 클 때보다 더 심하다면 경기변동의 원인이 부채에 있다고 하긴 어렵지 않은가. 그 증거 중 하나로 국가부채가 GDP의 200%가 넘는 일본의 국채의 파산위험은 전세계에서 가장 다.(파산위험성의 지표인 일본의 CDS 레벨도 외환보유고 3조달러에 일본보다 국가부채가 훨씬 작은 중국과 비슷하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모두 맞다고 해도, 부채의 순기능은 그들이 언급한 부작용의 단점보다 훨씬 크다.
 
오늘도 금융시장의 원시인들은 가계부채가 1천조가 넘었다며 이로인해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라는 바보같은 주장들을 반복한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1천조가 아니라 5천조가 넘어도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 그 5천조를 빌려주는 것은 우리의 아들들이 아니라 현재를 같이 살아가는 다른 한국인들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부채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왜 부채가 늘어나는가'가 아니라 '왜 가계의 부채만 늘고 기업의 부채는 줄어드는가'라는 물음이어야 한다. 부채에 대한 오해를 풀지 않으면 진짜 문제가 뭔지 파악하지 못한 채 잘못된 대책만 내놓을 수 밖에 없다.

댓글 3개:

  1. 부채가 늘어나는 곧 유동성과도 관련있겠죠? 글에서 알게된 m2? 이런것들의 증가요 여튼 잘읽었습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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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바보같은 질문이었네요 ㅋㅋ 매일 매일 글을 하나씩 복습하면서 세상보는 눈을 뜨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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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읽을수록 도움이 많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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