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9.

서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왜 우리는 서울을 발전시켜야 하는가

다른 세계 주요 대도시와 비교하면 서울의 이상한 특징 하나가 두드러진다. 바로 선진 도시 중에서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도시의 평균 용적률이 매우 낮다는 것. 이런 공간구조를 가진 다른 도시들은 대개 후진국인 동남아시아나 인도, 혹은 파키스탄에 있으니 서울과는 산업구조나 그 배경이 완전히 다르다. 가장 잘 사는 도시이면서도 그 구조는 못 사는 도시들과 비슷하다니, 조금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이는 마치 삼성이나 테슬라의 본사가 구로공단 공구상가에 입점한 것이나 포르쉐를 모는 의사가 후암동 반지하에 사는 것처럼 어색하고 낯설다. 분명 서울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

이런 기형적 구조가 유지되는 이유는 사회가 도시계획을 어떻게 정할지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또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마스터플랜이 등장하고 이전의 계획은 곧장 폐기된다. 정책의 방향성이 없고 일관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서울에는 아직도 군사정권 시절에 지은 성냥갑 아파트들이 아직도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많은 지역의 개발계획이 20년 가까이 공전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어떤 도시를 만들어갈지 합의하지 못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논의의 대부분을 도시계획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비전문가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중 많은 이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발전을 억제하고 더 나아가 해체하고 싶어 한다. 박원순 시장으로 대표되는 진보 진영은 1970년대의 후진적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며 서울의 개발을 억눌러왔고, 지방에 적을 가진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은 쇠락하는 자기 지역구의 인위적 부흥을 위해 강제로 서울의 기능을 떼어 지방으로 보내고 있다. 일부 젊은 세대는 서울이 너무 과밀화되어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서울을 해체해야 한다고 믿으며 어떤 사람들은 서울만 발전하는 것은 불공평하기 때문에 서울을 억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주장들은 한데 모여 국토균형 발전이라는 슬로건으로 예쁘게 포장되었고 이제는 그 자체가 정의가 되었다. 어떤 정책을 당위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성숙한 논의는 사라지고 순환 논리의 오류만 남는다. 서울의 확장을 막아야 한다, 왜? 서울은 확장되면 안되니까. 하지만 역사적 사례들을 종합해서 보면 서울의 기능을 축소하고 해체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초래하면서도 경제성장을 막고 우리들의 생활수준을 퇴보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자신의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도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예찬했다. 실제로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발견과 진보, 그리고 문화적 성취는 도시에서 이루어졌지 않은가. 인류 문명의 태동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로부터 출발하였고 서구문명의 근간 역시 에게해 인근의 도시국가로부터 출발했다. 중세와 근대에도 거의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대도시에 거주하며 서로의 견해와 아이디어를 교류하면서 혁신과 발전을 촉진했고 이런 추세는 현대까지 이어진다. 세계의 헤게모니를 주도하는 미국의 테크 산업과 금융은 실리콘 밸리와 뉴욕으로 대표되는데 이 두 도시는 미국 전역에서도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물론 도시가 인류 발전을 주도하게 된 요인에는 이런 단순히 인구수뿐 아니라 교육시스템, 거주 인프라, 그리고 자유로운 문화적 배경 등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유무형의 인프라가 도시와 무관할까. 신과 왕의 권위에 짓눌리던 중세 유럽인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고.

이 관점에서 서울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펴보자. 한국의 1인당 GDP는 이미 3만 5천 달러에 달해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났고  한국의 여러 산업과 기업들은 이제 세계무대에서 다국적 회사들과 경쟁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구조는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벗어나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모바일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에서부터 문화 예술을 포함한 서비스 산업으로 확장되었다. 이들 산업에 가장 중요한 자원은 자본도 천연광물도 에너지도 아닌 바로 사람이다. 우리의 미래는 이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분산하고 흩뿌리는 것에 있지 않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오로지 서울만이 그 인프라를 모두 갖추고 있다. 

반대로 도시를 쪼개 분산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의 증가와 인프라의 쇠퇴를 가져온다. 도로, 철도, 문화시설, 그리고 민간 상업시설들의 비용 대비 편익은 인구가 감소할 때 지수적으로 감소한다. 인구 천만의 도시에 지하철 노선을 10개 설치하는 것과 인구 백만의 도시 10개에 지하철 노선을 각각 하나씩 설치하는 경우를 비교해 보라. 인구 천만의 도시에는 대형 공연과 전시가 수백 회씩 열리지만 인구가 반 토막으로 줄면 문화행사는 반이 아니라 1/10로 줄어든다. 더욱이 인구가 줄어들 것이 매우 확실한 상황에서 멀쩡히 기능하는 대도시의 기능을 억제하겠다고 아무런 인프라가 없는 산간 오지에 막대한 예산을 퍼붓는 것은 가장 확실하게 국가예산을 낭비하면서도 사회의 비효율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이미 우리는 지방분산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행정부를 비롯하여 국민연금, 한국전력, 도로공사, 한국거래소와 같은 공사들을 각 지방으로 이전한 결과 무엇이 나아졌는가. 십수 년간 수십 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행정은 훨씬 더 비효율적으로 변했고 재직자들의 만족도 역시 크게 떨어졌다. 세종시와 지방의 공사 본부의 고위직들은 하나같이 대면회의를 금요일 오후에 서울에서 잡으려고 실무자들을 닦달질하고 있고 그렇게 시달리던 직원들은 매주 금요일 KTX 플랫폼에서 서울을 오가느라 무의미하게 몇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렇게 막대한 비용과 비효율을 감내하여 얻은 것이라곤 시골 토호들의 늘어난 재산과 쓸데없이 늘어난 교통량뿐이다. 

몇몇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서울의 과밀을 해소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아마도 서울의 주택 공급의 부족이 출산율의 감소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 집이 모자라면 집을 더 지으면 될 일이다. 서울의 평균 용적률은 고작 1.5-1.7배로 최대 5-10배에 이르는 다른 경쟁 도시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 구체적으로 보면 싱가포르의 경우 도심의 용적률을 25베, 맨하탄과 홍콩은 15배, 런던 도심은 5.5배까지 허용한 데에 비해 서울은 주거용 건축물에  그 반의 반도 안되는 1.5-2배라는 매우 낮은 용적률을 적용하고 있다.(법적으로 3배까지 허용되지만 그렇게 허가가 난 주거건물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렇게 대지를 세분화하여 엄격하게 용도를 지정하는 제도는 일제시대였던 1930년에 처음 도입되어 현재와 같은 개념은 1970년대에 완성되었다고 알려졌다. 이후 약간의 변경은 있었지만 큰 틀은 그대로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즉 서울의 도시계획은 지난 세기의 낙후된 건축기술에 기반하여 짜였는데, 우리는 이를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규제들은 서울의 주거환경을 크게 악화시켰다.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인구당 주택 수는 꼴찌이고 노후 주택의 수나, (일반 대중들이 선호하지 않는) 연립 및 다세대 주택의 비율도, 그리고 노후 아파트의 비율도 단연코 1등이다. 현재의 규제와 정책은 마치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가장 살고 싶지 않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도시의 주거환경이 선진국의 대도시들 보다 인도나 베트남의 도시들을 닮은 이유는 우리가 인도나 베트남 만큼 못 뒤떨어졌던 시절에 만든 규제와 제도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인도나 베트남만큼 후진적인 인식을 지닌 유권자들이 있다. 그들은 기껏 돈을 써가며 홍콩이나 싱가포르, 런던과 뉴욕의 마천루들을 돌아보며 멋지다며 인스타에 올릴 인증샷을 박고 나서 다시 서울로 돌아와 마닐라의 다세대 주택만도 못한 노후주택들의 개발을 규제하는 정치인을 찍는다. 우리나라가 처한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21세기에도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제조업에 집중하겠다면 서울이라는 고밀화 된 도시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차라리 인구를 공단 주변으로 고르게 분배하고 노동자들의 수를 늘리는데 나라의 모든 역량을 투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박통 시대의 구닥다리 산업 모델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방식으로 현재의 경제규모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저출산은 분명 한국 경제에 장애가 되겠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발전을 가로막는 후진적이고 미개한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다. 세계에는 인구증가율이 극히 낮거나 마이너스로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나라와 도시들이 여럿 있지만, 자국의 도시를 해체하고 인프라를 망가뜨리면서 성장하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자원도 없고 자본도 없던 나라였던 한국은 사실상 인적자원 하나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1970년대 한국의 경제규모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콩고와 비슷했지만 현재는 이탈리아 캐나다와 비슷하고 한국의 기업들은 대만 일본 독일 등과 경쟁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택할 것인가.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을 지속하는 네덜린드나 벨기에 혹은 여타 도시국가들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인구밀도만 높고 도시의 인프라는 형편없는 후진국형 모델을 지향할 것인가.  

한때 대학가에는 대기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던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나라에 반도체나 배터리,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가 없었더라면 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서울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서울의 기능과 조직들을 해체하고 분해해서 전국에 흩뿌려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자신들이 지방으로 밀려날 차례가 되면 곧장 머리에 띠를 두르고 길거리로 뛰쳐나오곤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단순한 노동자들의 수 보다 우수한 인적 자원들을 어떻게 모으고 연결시킬지에 달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도시가, 특히 서울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기 위해선 서울의 발전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집중해야 한다.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더더욱.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해체해야 할 것은 서울이 아니라, 바로 저들의 후진적인 인식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통신기술을 발달로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한 곳에 모여있는 것처럼 교류할 수 있기에 굳이 도시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직접적으로 마주치고 교류하기를 원한다. 줌이 발달했으니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 기울이는 대신 각자 앱을 열고 마시면 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메타버스가 발달했으니 클럽이나 바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AR고글을 끼고 불금을 보내는 사람도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히키코모리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젋은이들이 친구들과 커뮤니티를 찾아서, 중장년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노인들이 편리한 인프라와 의료시설을 위해 도시를 선호하듯 현재의 과학기술은 결코 도시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댓글에 쓴 내용을 본문에 추가: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의 주 원인 중 하나는 학력과잉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균형입니다. 모두들 대학을 졸업해서 폼나는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걸고 싶어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고용의 대부분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용이 유지되는 지속일자리의 80% 이상은 제조업이 차지고 있는데 그 중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일자리입니다. 그래서 해당 산업들은 구인난을 겪지 않나요? 일자리가 없는게 아니라 구직자들의 눈높이와 현실이 안 맞는겁니다.

청년층의 실업률을 낮추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젋은층이 현실을 직시하고 공장 가서 볼트와 너트를 조이거나 좋좋소에 취직하거나, 혹은 혁신과 경쟁이 계속되어 새로운 세계적 기업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후자를 위해서는 도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공장에 가는 것보다 새로 탄생할 뉴 삼성, 뉴 네이버에 다니는게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도시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고요.

지방으로 인구를 분산한다고 전체 일자리가 늘어날 지는 심히 의문이지만(전 아니라고 봅니다)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저임금의 일자리들은 과잉학력으로 인한 불균형에 직면한 젊은세대의 목마름을 채워주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요.  

2023. 9. 26.

허생전 2023 (feat.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

(생략)변 씨는 본래 원희룡 장관과 잘 아는 사이였다. 원희룡이 당시 국토부 장관이 되어 변 씨에게 주택수급 문제를 해결할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변 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원 장관은 깜짝 놀라면서 "그인 이인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라고 답했다. 밤에 원 장관은 보좌관들도 다 물리치고 변 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변 씨는 원 장관을 문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원 장관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소주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변 씨는 원 장관을 밖에 오래 서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원 장관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원 장관은 몸 둘 곳을 몰라 하며 나라에서 주택 공급 방안을 마련코자 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국토부 장관이오.”

“그렇다면 너는 대통령의 신임 받는 각료로군. 내가 인허가 절차를 막는 규제들을 선별하면, 네가 의회에 아뢰어 일괄적으로 폐지할 수 있겠느냐?”

원 장관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 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 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원 장관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타 OCED국가들과는 달리 조선은 대규모 자본과 법인이 거주용 부동산 산업이나 리츠에 진출하기가 어려워 민간 임대시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는 조정에 청하여 대형 리츠회사들이 주거용 부동산을 공급할 수 있게 허용해 줄 수 있겠느냐?"

원 장관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지만 평균 용적률이 고작 160%에 불과해 500-1500%의 용적률을 가진 다른 국제도시에 비하면 도시계획의 효율성이 턱없이 낮다. 이로 인해 직주근접이 가능한 주택의 수가 크게 모자라 핵심지의 주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시간씩 걸쳐 출퇴근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비효율이 이어진다. 서울 핵심지를 고층으로 개발하면 양질의 주택 수를 공급할 수 있는 동시에 교통량은 줄고, 또 활용할 수 있는 대지의 면적은 되려 넓어져 공원과 도로와 같은 인프라를 갖출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비합리적인 층수 규제와 용적률 제한을 과감하게 풀고 성냥갑 시멘트 아파트를 재건축하도록 더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제도와 규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정부 예산을 쓰기는커녕 인허가 과정에서 세수 수입은 되려 증가할 것이고 더욱이 이명박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남을 비롯한 핵심지의 주택공급이 크게 늘어나 상급지부터 주택 가격이 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원 장관은 힘없이 말했다.

“안 그래도 부자감세라고 욕을 먹는데 재건축까지 대거 풀어주면 토건족이라는 비난을 누가 감당하려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부자감세가 무엇이란 말이냐? 상속세율과 소득세율이 OECD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데다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은 40%가 넘어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데 무엇이 부자감세인가. 그렇게 걷은 세금을 가지고 아무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누구도 살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권 변두리의 맹지에 갑자기 수만 세대의 집을 짓겠다는 계획이 더 큰 재정의 낭비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행정부가 인허가권을 무기로 삼아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의 민간 주택 공급은 틀어막아놓고,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공기업 LH에게 사업을 맡겨 설계도 엉망인데다 철근도 숭숭 빠진 공공 주택을 건설하는 짓을 과연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진정 토건족스러운 짓 아닌가. 게다가 현재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PF 사업장은 인기가 없어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것인데 그런 엉망인 사업들을, 게다가 거주용 부동산도 아닌 PF들을 일괄적으로 구제해 주겠다는 것을 딴에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 받는 국토부 장관이라 하겠는가?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원희룡 장관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관저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