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7.

아시아의 미래 4. 문재인의 외교, 매국의 경계에서

옛날 옛적에 신흥 강대국 A가 있었다. 그리고 그를 경계하는 패권국 B, 그리고 B의 식민지인 약소국 C가 있다. A는 대담하게도 전통적 패권국인 B와 전쟁을 벌여 크게 승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승전국인 A가 B와 맺은 휴전협정의 첫 번째 조항은 전쟁 배상도, 영토할양도 아닌 바로 C의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 저런 의로운 국가가 어디 있냐고? 이는 실제로 벌어진, 당신도 나도 잘 아는 역사이다. A는 일본, B는 청나라, 그리고 C는 조선. 청일전쟁 후 A와 B가 맺은 조약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그 1항은 다음과 같다. [청은 조선이 완전 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하며, 일본과 대등한 국가임을 인정한다] 놀랍게도 승전국인 일본은 2억 냥에 달하는 전쟁배상금이나 영토나 항구보다도 먼저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후 어떤 역사가 펼쳐졌는지 잘 알고 있다. 진짜 일본이 자신을 독립시켜준 줄 알았던 고종은 이듬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라고 선언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7년 뒤 외교권을 빼앗겼다. 그리고 2년 뒤 열강들이 평화롭게 식민지를 나눠먹는 헤이그 회의에 특사를 보내는 촌극을 벌여 강제로 퇴위당했다. 개인적으로 한반도 3천 년 역사 중 최고의 개그는 바로 이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자주나 외세로부터의 독립, 혹은 중립이라는 단어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비틀리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 역시 자주와 중립을 외치고 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자폐아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중얼거리곤 하지만 한 나라의 자주와 독립은 아브라카다브라와 같은 주문을 외운다고 이루어지지 아니다. 고종이 혼자 황제국을 선언한다고 대한제국이 진짜 제국이 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앞서 세 편의 글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내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외전략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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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바이든을 sleepy joe라고 조롱한 데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정치인생은 길지만 연로한데다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라는 점 외엔 워싱턴에서 특별하게 부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의 대중적 약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별칭이었으니까. 오바마가 시카고의 법조인이었고 트럼프가 기업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바이든은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35년의 상원 의원 재임 기간 중 약 33년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보낸 외교 전문가이고 바로 그 때문에 오바마의 부통령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이끄는 미국의 체스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외교는 매우 다르다.* 대중들은 트럼프를 대외적으로 강경파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협상가이자 비즈니스맨이다. 거친 언사와 태도는 막후에서 거래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의 기술일 뿐, 그는 여전히 북한이나 중국을 적국이 아닌 하나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했다. 반면 민주당과 바이든의 대외정책은 선악의 이분법에 가깝다. 민주냐 독재냐. 자유냐 통제냐. 폭력이냐 인권이냐 등. 따라서 그들의 외교에는 타협의 여지가 적다. 악당과 딜을 치는 정의의 용사는 없으니까. 트럼프가 겉으로는 거칠지만 뒤에서는 합의점을 찾아나갔다면 바이든 시대의 대중 외교는 정반대로 점잖은 외교적 수사로 충돌과 대립을 감추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은 명백히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3월 블링컨 장관 방문 당시 쿼드 참여 요청이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미국이 일본과 논의한 사안을 한국과 논의하지 않을 리 없다. 회담 직후 한미 공동선언을 보면 두 나라가 거의 아무런 합의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현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전에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의도적으로 미국과 엇박자를 냈고 이에 대해 미국은 백신 지원국 중 한국을 제외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등거리외교는 결코 등거리일 수 없다. 형이 옆집 아들과 치고받고 싸우는데 동생이 뒷짐지고 중립을 지킨다면 형은 동생을 어떻게 바라볼까. 더욱이 동맹국들과도 투닥거리기 일쑤였던 트럼프 시대에 중립을 지키는 것과 적과 아군을 나누기 시작한 바이든의 코앞에 대고 중립을 선언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대립의 시대에 중립을 외치는 것은 배신이나 다름없다.

배신이 뭐 어떤가. 그리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코쟁이 양키들 뒷통수쯤이야 얼마든지 후려칠 수 있는 것 아닌가. 외교의 1순위는 친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익이니까. 문제는 우리가 동맹에서 이탈하면서도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있다. 문재인은 노골적으로 친중 노선을 택했지만 한한령은 풀리지 않았고 국내 기업의 중국 사업은 계속 난항을 겪고 있으며 중국인 내국 관광객의 수 역시 회복되지 않았다. 외교를 보아도 중국은 전승절에 참가한 박근혜에게 푸틴 바로 다음의 의전을 제공한데 비해 문재인에겐 모욕에 가까울 정도로 의전을 낮추었다. 이런 태도는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문재인은 친북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그를 대하는 북한의 말과 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짜고 맵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역적 도당이라고 부르던 조선중앙방송은 문재인을 삶은 소대가리라는 참신한 언어로 지칭했고 2차 북미대화가 수포로 돌아간 2019년 여름 그들은 역대 가장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외교란 득과 실을 엄정히 계산해야 하는 것인데 문재인의 대외정책은 실과 실만 낳았다.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거리며 북한 이야기만 늘어놓던 부끄러운 모습은 덤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문재인이 사모해 마지않는 중국과 북한이 호혜적이지 않는 국가라는데에 있다. 지난 2편에서 분석했던 것처럼(링크) 호전적이데다 팽창주의를 택한 중국은 주변국들과 미래를 공유하지 않는다. 강탈하려 하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런 나라나 정치세력의 겁박이 한 번으로 끝난 적은 없었다. 로마는 경쟁자였던 카르타고에게 함선을 부수고 뒤이어 도시 내의 모든 무기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 카르타고가 이를 받아들이자 얼마 안 가 그들을 멸망시켰다.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 지역을 강제합병했는데 연합국이 이를 묵인하자 그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호전적인 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상대는 부강해지는데 비해 자국의 세력은 약해지기 마련인지라 힘의 균형은 더욱 기울고 상대가 도발할 인센티브를 강화한다. 6:4의 싸움이 버겁다고 약자가 1을 양보한다고 평화가 오겠는가. 7이 된 패권국이 남은 3을 강탈하기가 더 쉬워졌는데. 역사적으로 팽창주의적 국가들의 확장이 멎은 것은 그들의 군대가 무력으로 저지되었을 때 뿐이다.

이런 실패의 배경에는 참여정부에서 밀려나 자신들의 뜻을 펴지 못한 자주파들의 고집이 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입성한 자주파와 동맹파 간의 대립이 극심했다. 참여정부의 첫 외교부장관이 경질된 이유가 한 외교부 간부가 "영어도 못하고 미국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미 외교를 하느냐"라며 자주파들이 포진한 NSC를 비난한 것이 언론에 알려졌기 때문이니 당시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은 미국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취임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반미 좀 하면 어떠냐"라고 발언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그는 말과는 반대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위해 애썼다. 경질된 외교부장관의 후임자로 정통 외무고시 출신인 반기문을 임명했고 첫 번째 주미대사로 김영삼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한승주를 임명했다. 그가 자신을 주미대사로 임명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해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당신을 찍지도 않은 나를 왜 주미대사로 임명했는가" 라고 묻자 노무현은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임명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뒤이어 한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부시 행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영국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고 미국은 다분히 호혜적인 FTA로 그에 화답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한 운동권들의 철학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있는지 빠르게 파악했고 그들 대신 관료들을 등용했다. 반면 당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문재인은 자신의 동지들이 밀려나는 것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겨, 청와대에 돌아오자마자 한때 노무현이 내쳤던 인사들을 모두 모아 다시 경제, 부동산, 외교를 맡겼다. 특히 그는 애초부터 관료들과 동맹파가 정책결정에 참여할 여지를 봉쇄했다. 첫 외교부장관은 통역사 강경화였고 사상 최초로 4강 대사를 모두 비외교관 출신으로 임명했다. 심지어 주미대사로 노골적 반미주의자인 문정인을 고려했다가 미국 측의 거부로 철회하였으니 사실상 동맹외교는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무현의 인사와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는가.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문재인이 집권 초기에 천명한 한반도 운전자론과 베를린 선언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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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내가 진동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외교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인물이 있다. 명청 교체기의 광해군. 그들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그처럼 중립외교를 펼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광해, 남한산성, 그리고 왕이 된 남자 등.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문화계에서 광해군의 삶과 시대를 그린 작품을 쏟아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인식은 명나라 같은 미국에 붙지만 말고 뜨는 청나라 같은 중국에게도 잘 보여야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정말 명이 지는 해, 청은 뜨는 해 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청태조가 후금을 세울 당시 명의 인구는 약 1.5억 명, 조선의 인구가 1500만 명인데 비해 여진족의 인구는 50-70만 명에 불과했으며 후금의 전투병력도 고작 10-15만 명으로 이는 도요토미가 조선에 파병한 병사와 일본이 실효지배한 지역의 인구 수가 더 많았다. 오늘날 우리가 도요토미의 명나라 정벌 계획을 망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청나라의 승리를 점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실제로 명의 수도를 함락시킨 것은 누르하치가 아닌 명의 반란군이었고 그 잔여세력들을 후금이 완전히 평정하기까지 약 50여 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이 중원을 제패하고 조선을 정복할 수 있던 것은 광해군의 잘못된 대외정책에도 일부 그 책임이 있다. 역사적으로 만주를 지배한 북방세력이 한반도를 정복하지 못하면 중원을 차지할 수 없었다. 백제/신라를 평정하지 못한 고구려가 그랬고 요나라와 금나라가 그랬다. 대제국을 건설한 몽고인들도 고려를 완전히 정복하고 나서야 남송을 평정할 수 있었는데 지정학적 특성상 한반도가 후방을 노리는 이상 중원 공략에 병력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금의 지도부 역시 조선의 충성을 받아내거나 한반도를 정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조선은 이때 명과 연합하여 적극적으로 후금을 견제하나 아니면 명을 배신하고 후금과 연합해 수로로 명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병력과 식량을 공급했어야 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사르후 전투에서 패하고도 북방의 병력을 적극적으로 증강하지도 않았고 명나라와 긴밀히 협력하여 후금을 견제하지도, 그렇다고 후금과 연합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다음 황제가 될 홍타이지가 조선과 협력은 불가하니 반드시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알면서도 명의 만력제가 보낸 수만 냥의 은자로 군대를 키우는 대신 사치품과 비단을 사는데 탕진한다. 반면 명나라는 미온적인 조선의 태도를 보며 조선이 청과 연합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고*** 따라서 연합전선을 구축해 다른 중원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북방세력을 견제할 수 없었다. 광해군의 어설픈 중립은 명도 청도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만약 명이 청나라를 멸망시켰어도 결코 조선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편 것이 아니라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양측의 눈치만 보면 딱 광해군같이 행동하게 된다. 미중 사이에 껴서 갈피를 못 잡고 양측을 모두 화나게 하는 문재인의 외교도 그렇지 않은가. 흥미롭게도 광해군의 무대책 엉거주춤 외교를 세련된 중립외교로 포장한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의 학자들이었다. 한국사를 연구한 이나바 이와키치와 다카와 고조는 "광해군 시대의 만주와 조선의 관계"라는 논문에서 광해군이 명과 후금의 대립 가운데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지킨 택민주의자라고 찬양했다. 이 논문의 발간된 것은 1933년으로 만주사변이 일어난 직후, 일제가 만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인들에게 한만사관(조선인과 만주는 불가분의 관계)을 설파하던 시기이다. 거기에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는 해(중국)와 뜨는 해(일제) 사이에서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조선인들을 향한 암묵적 위협도 담겼으리라. 

그리고 흔히 매국노라는 단어는 친일파들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 매국노들과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문재인의 외교는 분명 어리석음과 매국, 그 경계에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외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의 이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이를 경제적 문제로 정의한다. 따라서 동맹국들이 점차 군비를 축소해서 미국에게 막대한 국방비를 부담하게 만드는 것 역시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 그의 시각으로 볼 때 서유럽의 나토회원국들이나 불평등 무역을 지향하는 중국이나 얌체 같기는 매한가지이다. 따라서 그는 동맹국들과도 마찰을 빚었다. 반면 바이든은 자국의 이익을 미국식 헤게모니의 확산으로 바라보는데 이것이 미국의 냉전시대의 대외정책에 더 가깝다. 

**도요토미의 중국 정벌 계획이 육군과 해군의 합동작전으로 해안선을 따라 보급을 유지하며 중원으로 육군을 진출시키는 것이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좌초되고 일본의 육군은 평양성에서 공세 종말점에 도달해 패주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이 조선에 조기에 군대를 파병하지 않은 것은 조선이 도요토미와 연합해 명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