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3.

도조 히데키와 아스트라제네카

일본제국의 희생자는 중국인이나 한국인만이 아니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총 280-310만 명의 일본군이 전사했는데 그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120-150만 명은 아사, 혹은 기아로 인한 질병으로 죽은 것으로 집계된다. 가장 많은 일본군을 죽인 것은 미국의 함포사격도, 장개석이나 모택동도 아닌 바로 일본제국의 장군들인 셈이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맞을 수 있을까.

메이지유신 이래 내전을 거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 많은 군대와 장교들이 어떻게 그렇게 타락했는지 알 수 없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 수뇌부는 세계 전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게 무능하고 부패했다. 예를 들면 제대로 된 보급계획 없이 정글로 수십만 명의 부대를 밀어 넣으면서 사령관인 무다구치 렌야는 "일본인들은 초식동물이라 길가의 풀을 먹으며 진군하면 된다"라고 주장했고, 한 장군은 가미카제 작전으로 수도 없는 젊고 경험 있는 조종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뒤 자신은 위궤양을 핑계로 군 수송기에 창녀들과 위스키들을 가득 담고 온천 휴양에 나섰다. 자국 군인들을 소모품으로 여긴 것은 나치나 스탈린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본 군부는 병사들이 소모품이란 개념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전시내각의 총리, 도조 히데키가 있었다. 관동군 장교 출신인 그는 특유의 정치 감각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총리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태평양전쟁에서 처참한 지휘능력을 보여준 최악의 상급 지휘관들은 대부분 도조 히데키의 파벌이거나 그의 손으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이 처참한 비극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몰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하나를 뽑으라면 단연 그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오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본군의 항복을 금지하고 무의미한 자살 작전을 옥이 부서진다는 은유로 미화하며 죽음을 종용한 이 괴물은 정작 자신의 목숨은 끔찍이 아꼈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천황이 아무런 조건 없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당시 군부대신이었던 아나이 고레치카는 천황의 명에 따라 항복문서에 조인한 뒤 전통적 방식으로 할복자살하였고 천황의 항복 명령을 받아든 몇몇 고급장교들도 마찬가지로 그의 뒤를 따랐지만 도조 히데키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전쟁에서 아들과 남편을 잃은 수많은 유족들과 미망인들이 그에게 죽으라며 편지를 보냈고 심지어 그를 대면한 영관급 장교 한 명도 그의 면전에 대고 죽으라고 했지만 그는 미군이 도쿄에 입성하는데도 죽기를 거부하며 꿋꿋이 살아있었다.

천황이 항복한 지 한 달 가까이가 지난 9월 11일, 맥아더 사령관은 도조 전 수상을 포함한 전범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날 아침에 그의 자택에 헌병들이 들이닥친다. 그는 전범으로 체포되면 사형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제서야 죽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도조는 자살하며 군복을 갖춰 입지도 못했고 사무라이의 방식으로 할복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총알이 빗맞아 자살에 성공하지도 못했다. 무사도를 종교처럼 떠받들던 일본군의 수장이 그마저 똑바로 못하다니. 신념처럼 공기반/소리반을 외치던 박진영이 알고 보니 음치라고 해도 JYP의 연습생들조차 당시 일본인들만큼 당황하진 않았으리라. 결국 도조 히데키는 자신이 악 받쳐 죽이라고 명령했던 미군 병사의 피를 수혈받아 살아난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여러 문서들을 보면 1944년 일본 군부는 자신이 이미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수뇌부는 병사들의 자살 작전을 강요하는 바람에 사상자의 대다수가 전쟁 후반부에 발생했다. 표면적 이유는 천황제의 유지와 태평양전쟁 이전 일본의 영토를 보존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전후 행적을 보면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들의 전범 기소 여부였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수십만 병사들을 굶겨 죽였으며 더 나아가 1억 국민들에게 천황과 자신을 위해 죽을 것을 명령한 셈이다. 이오지마의 바위섬에서 먹을 것이 없어 포로와 전사자들의 인육을 뜯어먹으며 동굴에서 연명하다 결국 미군의 화염방사기에 불타 죽은 병사들을 두고 옥처럼 부서졌다고 예찬하던 도조 히데키, 그의 마지막이 베를린을 탈출하라던 보좌관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살했던 히틀러의 최후보다 추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내로남불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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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도조 히데키의 정신을 이어받은 정부를 보고 있다. 나는 백신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래도 다수의 구성원들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는 것이 맞지 않는 것보다 우한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최초의 백신인 제너의 종두법보단 훨씬 안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과학적으로 옳건 그르건 국민들은 AZ를 불신하고 있다. 그 공포의 근원이 합리적인가를 두고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공포는 비합리적이기 마련이니까(링크). 훌륭한 정치 지도자는 어떻게 그 비합리적인 공포를 잠재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대응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문 대통령은 첫 접종이 시작되던 날 마포구 보건소에 방문해 접종 장면을 지켜보았고 선거개입으로 재판 중인 김경수 경남 도지사는 모의 접종 훈련에 참여해 빈 주사기를 구경하다 왔다. 그러고서 국민들에게 불안해하지 말고 AZ를 맞으라는데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한국에서 발병하지도 않은 허구의 광우병에도 기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실제로 발생하는 부작용과 아나필락시스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대중에 대한 모욕이자 조롱이다. 

도조 히데키가 자국의 젊은이들의 육신을 죽인 것은 식량과 보급 없이 미군의 함포사격과 폭격이 이어지는 남태평양의 정글 속으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내린 날이지만, 그들의 정신을 죽인 순간은 바로 그가 자살에 실패한 날이었다. 마지막까지 구차하게 살아남으려던 그의 비굴한 최후는 일제가 강요하던 전체주의와 무사도, 그리고 천황에 대한 믿음이 한편의 허황되고 조잡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처음 발발한 후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수도 없는 실책을 저질렀다. 국경 봉쇄에 실패했으며, 지나치게 일찍 경제활동을 재개했고, 백신이 나오기도 전에 의료진들과 싸움을 시작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방역수칙은 계속해서 엿가락처럼 변형되어 이젠 외우기조차 어렵고 정부는 K백신의 홍보에 열을 올리느라 세계 11위권의 경제대국이 백신 접종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리투아니아나 페루보다도 뒤져 있다. 코로나의 극복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역할은 태평양전쟁의 일본 군부만큼이나 무능하고 한심하고 처참했다. 그리고 청와대는 이 방대한 희극서사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너희는 최전방에 서서 AZ맞아라 나는 후방에서 화이자 맞을게, 라고 외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라. 식민지와 본토의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던 도조 히데키의 모습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하지 않는가.

세계최초로 접종을 거부한 채 남의 백신접종을 구경하는 국가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