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리스에 강박적으로 심취했던 그가 올림픽에 끼어들지 않을 리 없다. 그리스의 211회 올림픽은 서기 65년에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이 대회에 참가자로 출전하기로 마음먹은 네로는 정무를 제쳐두고 피나는 각종 예술 공연과 스포츠를 연습했지만 기대한 만큼 기량을 향상시킬 수 없자 황제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려 올림픽을 2년 미뤄 67년에 개최하도록 했다. 그 올림픽에 출전한 황제는 음악 연주를 포함한 7개의 종목에서 우승했지만, 한 역사학자는 네로의 연주와 발성, 그리고 그가 작성한 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야유를 보내거나 공연장을 떠나면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관객들은 억지로 환호를 보냈다고 기록했다. 체육 경기에서 네로의 상대 선수는 황제를 이길 시 사형당할 것이란 협박을 받았고 심지어 전차 경기에서 네로는 전차에서 굴러떨어져 중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진은 유권해석을 통해 황제에게 월계관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 번의 그리스 순회공연에서 총 1808개의 상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그는 반란군에 의해 쫓겨 자살하는 순간에도 "훌륭한 예술가인 내가 죽는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자신의 정치적 능력에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스스로의 예술성만큼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 네로는 진심으로 자신을 황제이기 이전에 예술가였다고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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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는 과연 훌륭한 예술가였을까. 동시대를 살아간 타키투스는 그의 재능이 형편없었다고 기록했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폭군 네로의 악행이 원로원과 이후 기독교인들에 의해 과장되었다는 지적과 그가 그리스의 문화예술을 후원한 공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그의 노래와 시를 접해볼 수 없는 우리가 네로의 예술가적 기질을 평가할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네로의 공연을 지켜본 동시대의 평론가와 관객들이라고 황제를 평가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붉은 망토를 두르고 황금색 투구를 쓴 로마 근위대가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허리춤에 찬 검을 매만지고 있는데. 네로는 자신을 황제보다 예술가라고 믿었지만 그의 예술성을 지탱하던 것은 바로 군대와 황제의 권력이었다.
지금 우리는 바로 이 아이러니를 마주하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는 파라다이스 재단과 서울시에서 각각 3천만 원과 14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코로나가 확산되는 가운데에서도 전시회를 열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의 권력과는 무관하게 자신은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예술인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누가 이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는 항상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들, 제1야당 대표의 아들, 국회의원의 아들, 그리고 당선인의 아들이었는데. 매우 폐쇄적이면서도 취약한 문화예술계에서 이처럼 강력한 배경을 지닌 작가를 비평할 배짱을 가진 평론가나 화랑은 존재하기 어렵다. 있다고 해도 곧 사라질 것이다. 마치 네로의 노래에 얼굴을 찡그리고 야유를 보내다 끌려나간 이름 없는 한 로마의 시민처럼. 예술가로서의 네로가 단 한번도 황제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비평받아본 적이 없듯 작가 문준용 역시 한번도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작품 활동이나 비평을 업으로 삼지 않는 나는 그저 관객에 불과하니 문준용의 예술성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미술학도들과 작가들은 내 주변에도 수도 없이 많지만 누구나 문 씨와 같은 기회를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나는 좋은 예술, 혹은 나쁜 예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잘 팔리는 작가와 안 팔리는 작가가 있을 뿐이지. 그런데 고작 만 38살의 신진작가가 판화를 250장이나 찍어내면서 장당 $600에 파는 것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국내외에서 비슷한 시세를 가진 다른 작가들의 이력이 어떤지 한번 찾아보기를 권한다. 시장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의 첫 작품을 본 것은 아직도 꽃가루가 흩날리던 2017년 5월의 봄날이었다. 새로운 계절과 함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며 우리의 마음은 공정과 정의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있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한 발을 내디딜 거라 믿었다. 사실 그랬지. 다만 그 한 걸음의 방향이 반대였을 뿐. 삼청동을 거닐던 나는 예술에서 정치를 읽어내는 것을 보며 나 자신이 편협한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했지만(링크) 그 순간 예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맞닿아있었다.
나는 율리우스 포프처럼 기술에 의존하는 예술도 훌륭한 예술이라고 믿고, 예전에 내가 박원순의 서울시가 설치한 슈즈트리를 옹호한 것(링크) 처럼 정치적 배경과 작품은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나의 불편함이 편협한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두려워 아끼는 몇몇 평론가들의 문준용 작가에 대한 평을 찾아보았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 나의 인상도 아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