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0.

음악이 말을 잊은 시대, 하지만 아이유.

가수들의 음반판매량보다 유튜브 조회수가 이슈가 되는 오늘의 음악시장에서 가사는 예전의 지위를 이어갈 수 없었다. 초단위로 교차편집된 현란한 영상에 홀린 인간의 뇌가 노래가사의 의미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니까. 그리하여 작사가들은 가사에서 언어를 빼내어 음절만을 남겼고 대중들은 그런 움직임을 열렬히 반겼다. 바야흐로 힙하지 않으면 멸종당하는 시대 아닌가. 그 무의미한 단어들은 가사의 일부를 넘어 이윽고 노래 그 자체가 된다.  뚜루뚜루. 짐살라빔. 으르렁드르렁 등, 그렇게 우리 시대의 음악은 벙어리 마냥 말을 잃은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고리타분하게 가사에 의미를 담아내는 이들이 있다. 그중 의외의 인물로 아이유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이따금 좋은 노래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비로소 가사가 들리기 시작하며 일순간 음악의 장르가 유치뽕짝으로 돌변하기도 하는데 그녀의 가사는 재기발랄하면서도 진솔한 한 편의 수필처럼 자연스럽게 읽힌다.

우리의 색은 gray and blue / 엄지손가락으로 말풍선을 띄워

우리의 네모 칸은 bloom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 
향기에 취할 것 같아 우 
오직 둘만의 비밀의 정원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라면 누구나 이 작은 기계를 쥐고 두근거렸던 적이 있으리라.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낸 뒤 그 작은 액정화면 건너에 그녀가 비치기라도 하는 양, LCD화면을 말 없이 응시하는 그 순간을 그녀는 이 네줄의 가사로 발랄하게 담아낸다. 엄지손가락으로 피워 내는 파란 장미, 그보다 더 적절한 은유가 있을까. 

말과 글에 민감한 탓인지 나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까지 클래식 연주회에 가기라도 하면 가면 핀잔과 눈총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대놓고 졸곤 한다. 악기도 결국 물건일진대, 사람의 목소리가 곁들지 않으면 도통 그 진동음과 마찰음에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마치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빠진 시시한 애프터파티에 초대받고, 클라이막스 없는 지루한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의미의 부재를 화려한 색과 안무로 채운 시대의 한 가운데서도, 서사를 지켜내는 모든 고리타분한 뮤지션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2020. 8. 1.

영화 1987, 훌륭한 영화 그리고 각색된 기억.

정치적 사건을 다룬 영화는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민감한 정치적 주제를 상업영화의 소재로 쓰는 감독이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논란에 불을 지펴 흥행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진 않을 테니까. 촛불시위 이후 등장한 남산의 부장들, 택시운전수, 자전차왕 엄복동, 말모이, 대장 김창수, 블랙머니, 한국부도의 날 등 다수의 영화들이 착실하게 그런 공식을 따랐다. 

나는 대개 보수든 진보든 그런 프로파간다적 욕망을 내포한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소재가 가진 힘에 의존하느라 영화 자체는 엉망이 된 수많은 진보영화들을 보라. 지루하리만큼 악역에만 특화된, 얼굴 찌그러진 배우를 적당히 골라 나까무라 다카시 혹은 허 대령 아니면 박 사장같은 뻔한 악역을 맡기고 고증은 개나 줘버린 상상의 권선징악 최루신파극에 애국을 적당히 버무린 그저 그런영화들과 영화 1987은 매우 다르다.  

영화는 처음부터 1987년의 주인공들의 시각에서부터 시작한다. 억압하는 자와 저항하는 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 특히나 영화 외적인 측면에서 내가 1987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6월 항쟁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의 시각에서도 사건을 주시하기 때문이다. 박처장(김윤석)은 한병용 교도관(유해진)을 고문하면서 그에게 자신의 빛바랜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묻는다. 너는 지옥이 뭔지 아느냐고. 그는 이북에서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의 부친은 굶어죽어가던 아이를 양자로 들여 가족으로 키울 뿐 아니라 학교도 보내고 결혼도 시켜줄 정도로 인덕도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박처장이 형님으로 모시던 그 아이는 공산주의 혁명이 시작되자 완장을 차고 집안으로 난입해 자신의 양아버지이자 박처장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이고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죽인다. 마루 아래서 그 장면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기억을 떠올린 박처장은 이윽고 독기와 눈물이 동시에 어린 눈으로 한 교도관을 보며 묻는다. "너래 지옥이 뭔지 알간? 내 가족이 죽어나가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고 소리도 못지르는 거, 그것이 지옥이야." (링크 나는 김윤석의 모든 연기 중 이 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그런 박처장의 과거사를 제 3자의 시각으로 다루지 않는다. 비록 그는 정권의 편에 서서 고문하는 악당이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의 비명소리와 총소리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메아리친다. 그 장면에서 이제까지 박처장을 악마로, 개새끼로 또 권력의 주구로 욕하던 우리들은 갑자기 그의 눈으로 시대를 다시금 바라보았을 것이다. 남한 사람들 여덟명 중 하나가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된 내전이 끝난지 고작 30여년이 흘렀던 1987년, 당시엔 북한 공작원이 남측에 침투해 군인이나 민간인을 살해하던 일이 한해 걸러 한해 일어나던 시기였다. 박처장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약 한병용 교도관이, 또 박종철이나 이한열 열사가 박처장과 같은 경험을 했더라면 이전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1980년 광주에 있던 이들이 평생 그 기억에서 자유로을 수 없는 것 처럼 1950년 휴전선의 잘못된 쪽에 서 있던 이들도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하나의 지옥이 또 하나의 지옥을 만드는 것, 그것이 1987년 6월 항쟁의 본질이라는 것이 바로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바 아니었을까.

영화가 개봉되던 2017년을 떠올려보자.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들어선 새로운 정부엔 전대협 임원들을 비롯한 운동권들이 포진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했다. 적폐라는 이름이 붙으면 누구든 대중의 죽창을 피할 수 없던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또 정의당을 지원하고 진보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감독이 가해자였던 박처장의 시각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려고 한 시도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이해의 첫걸음은 상대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상대를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평론가 이동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시스템을 논해야 하는 사회비판적 영화에서조차 수혜자 개인의 사악함과 피해자 개인의 불행함에만 초점을 두면서 영화를 가족영화나 액션영화처럼 만들고, 그 결과 관객들은 악한 캐릭터들을 보며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마음껏 분노를 터뜨리다가 손쉽게 카타르시스를 얻고서 극장을 나설 뿐이다." 이제까지 쏟아진 대다수의 좌파 민족영화들이 모두 그랬다. 일본은 왜 조선을 침략했을까? 나쁜놈이니까. 군사정권은 왜 독재를 했나? 나쁜놈이니까. 그들의 세계관은 마치 5살짜리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처럼 1차원적이다. 거기에는 착한놈, 혹은 나쁜놈 만이 있을 뿐이고 착한 놈은 뭘 해도 착한놈이다. 비서를 추행해도, 돈을 횡령해도 심지어 독재를 해도. 

물론 지나친 미화가 없다고 할 순 없다. 무엇보다 강동원이 왜 별 비중도 없는 까메오로 나오나 했더니 결국 그가 알고보니 이한열 열사였다니, 그 손발 오그라드는 빌드업은 이 영화의 옥의 티지만 1987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지던 당시의 열기를 생각한다면 과연 과도했던 것이 영화뿐이었을까. 성과도 없는 대통령과 전문성이라곤 하나도 없던 내각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압도적 지지를 몰아주었던 국민들은, 오늘날 이 영화가 끝난 곳과 정확하게 같은 자리에서 반독재를 외치고 있다. 보수라는 냄새만 나도 이빨을 드러내고 문재인과 여당의 인사라면 덮어놓고 환호하던 국민들에 비하면 박처장의 눈에서 1987년을 읽어낸 감독의 시도가 훨씬 더 성숙한 것 아닐까. 


*               *               *


1987년 6월 항쟁은 4.19와 함께 대한민국 민주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사건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평범한 여대생이었던 김태리가 거리로 뛰쳐나와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내달리다 버스 위로 올라가 민중을 바라보는 장면은 영화에서는 너무나 감동적이지만 현실에서는 대단히 불편하다. 왜냐하면 이 장면이야말로 운동권이 1987년 민주화운동을 독점하는 방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을 내려다보는 운동권들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것은 적폐 서울대생이고 죽은 것도 기득권인 서울대와 연대 학생이었으며 보도지침을 어기고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은 보수찌라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였다, 그리고 고 박종철 군의 시신에 물고문 흔적이 있었다고 증언한 것은 적폐인 의사였으며 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끝까지 대든 것은 바로 검새였다. 결정적으로 전두환의 호헌조치에 반대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주도한 것은 평범한 넥타이부대, 택시기사, 노점상 그런 서울의 평범한 장삼이사들이지 않았나.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그들을 조연으로 격하한다. 이와 같은 시선은 현재 여당과 그 지지자들의 시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에게 1987년의 민주화 항쟁은 오로지 운동권 대학생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은 반미 민족주의정신에 기인한 덕분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시민이 민간인 네명을 감금 폭행한 사건이나 운동권 학생들이 미국 문화원에 불을 저질러 장덕술 군이 사망하는 사건 등은 조용히 묻혔다. (공교롭게도 사망할 당시 정덕술의 나이는 박종철과 비슷했다) 그러니 1987년의 마지막은 13대 대선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의 이름을 딴 영화가 6월의 사건까지만 그려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6월 민주화 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운동권 새내기였던 87학번 김태리의 추억팔이였기에, CG로 87년의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화는 그 해 하반기의 기억을 깔끔하게 도려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1987년은 스릴러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반전으로 끝났다. 약 6개월 뒤 치뤄진 직선제 투표에서 국민들은 놀랍게도 노태우를 선택했으니까. 민주화운동의 두 거두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한치의 양보 없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민들이 열망하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김의 대립은 시민들에게 이승만 하야 후 제 2공화국의 무질서와 혼돈을 떠올렸고 결국 유권자들은 고심 끝에 민주주의와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택한 것이다.* 

당시 광화문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생들이 아닌 직장인들이었다. 졸업하면 인생이 보장되던 당시 대학생들과는 달리 이 세대는 못먹고 못배웠는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27년 전 이승만의 부정선거에 저항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그날과 다름없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다시 한번 민주화를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 틀딱이라는 조롱을 듣고(링크)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일조한 신문사, 검사, 의사들은 모조리 다 개혁당하고 있다. 동이라는 공산주의자에게 가족을 잃은 박처장이 동이와 똑같은 짓을 하던 것처럼, 박처장과 신군부에게 억압당했던 운동권 정치인들은 전두환과 똑같은 계층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는 아이러니는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자,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아래 87년의 실제풍경과 영화의 엔딩을 비교해보자. 영화 1987의 가장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마치 동전처럼 이 한 장면으로 축약될 수 있다. 실제 민주화운동의 주인공들을 내려다보는 운동권 학생, 87학번 김태리의 등을 비추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영화 개봉 당시엔 감동과 전율을 느꼈던 바로 그 장면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3년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실제 1987년 당시 시위 장면



*혹자는 이 사건을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가 당선된 것 뿐이라며 폄하한다. 그 말은 사실이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후보도 기호 4번으로 출마해 약 8%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을 잊어선 안된다. 노태우/김종필은 총 44.7%를 득표했고 김영삼/김대중은 55.0%를 얻었으니 6월 항쟁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겪고도 약 45%의 국민들이 사실상 군사정권의 후예들에게 표를 던진 셈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바로 6개월 전 민주화운동을 지지한 사람이었을텐데도. 그 45%가 복잡한 심경으로 군부세력들에게 표를 던진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당시 유권자들의 치열한 고민에 대핸 모욕이며 시대상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13대 대선 투표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