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25.

일본은행은 어떻게 잃어버린 20년을 만들었는가?

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고통스러운 침체기를 겪은 이유가 '과도한 버블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과관계를 잘못 분석한 것이며, 이번 글에서는 왜 일본이 그러한 침체를 겪었는지 분석해 보기로 한다.

일본이 과거 버블을 겪은건 사실이지만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버블이었다. 주택시장의 상승 측면에서는, 2000년대의 영국이나 스페인의 주택버블이 훨씬 더 심각했으며 주식시장을 보면 다른 주요국의 주가가 더 급박하게 뛴 적도 많다. 중국 주식가격은 90년대 이래 일본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PER을 놓고 버블을 측청한다면 450에 이르렀던 2000년대 나스닥이 훨씬 심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나라들은 잃어버린 20년을 겪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이 유독 심한 버블을 겪은 것이 아니라면, 전세계서 유일하게 일본만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이 버블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괴상하리만큼 잘못된 BOJ의 잘못된 금리정책에 있다.

White  : Nikkei255 Index
Orange: BOJ policy rate


 위 차트는 85년부터 92년까지 일본 주식시장(흰색)과 일본은행 정책금리(주황색)을 나타낸 것이다.  이전 80-86년의 일본 경제를 보면, CPI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하락하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라지자, BOJ는 금리를 인하하여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한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고개를 들자, BOJ는 아주 뒤늦게 89년에 이르러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는 금리인상이 "매우 부적절한 시기에", 게다가 "매우 부적절한 수준으로" 이루어지면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버블의 끝자락에서 가장 크기 마련이다. 그러나 버블의 마지막 시기엔 금리를 올릴 것이 아니라, 경착륙을 위해 완화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헌데 BOJ는 버블의 마지막 단계에서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는 우를 범한다. 일본 중앙은행은 89년 3월에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니케이가 고꾸라지기 시작하는 12월까지 금리를 150bps 올리며 돈줄을 죄었다. 끝없이 상승할 줄 알았던 주식시장과 자산시장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일본인들은 건전한 조정이 왔다며 환호했다. 그리고 이때 '일본은행의 왕자'로 불리던 미에노 야스시가 21대 BOJ총재로 취임하게 된다.

당시 일본의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이션)만 놓고 보면 석유파동시기 이래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일본의 버블을 잡는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42년차 정통 일은맨이었던 미에노는 '버블은 악'이라는 신념아래 자산시장에 치명타를 가하기로 결정한다. 주식시장이 반토막 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취임 후 9개월동안 금리를 200bps를 추가 인상한다. 시장은 비명을 지르고 경기는 급격히 위축된다. 이전까지 자산 인플레에 편승하지 못한 일본의 서민들은 미에노를 "의적"이라고 부르며 칭송하며, 무리하게 자산에 투자한 회사들과 금융기업들이 휘청거리는것을 "정의"라고 생각했다. 자산시장의 급격한 붕괴가 실물경제로 전이되기 전 까지는.

금융기업들의 자산가치가 빠르게 하락하자, 그들은 대출을 줄이고 채권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급격한 채권 회수로 신규대출이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투자를 멈추고 연봉을 삭감한다. 그렇게 경제는 불황으로 접어든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다운사이징에 들어간 경제들이 흔하게 겪는 단계지만, 일본의 경우는 그 강도와 폭이 너무 달랐다. 지나치게 빠르게 버블을 꺼트리는 바람에, 금융사들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패닉과 공포는 더욱 확산되었다. 은행의 여신담당직원들은 채무기업의 건전성을 따질 것 없이 무조건 채권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흑자도산이 줄을 이었다. 자산시장이 건전한 조정 이상의 폭락을 겪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이 태도를 바꾸기는 커녕 되려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자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자취를 감췄다. 비만에 이르렀던 일본경제에 대한 BOJ의 조치는 거의 처벌에 가까웠다. 식이조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굶기는게 그들의 대책이었고, 그 결과로 이제 경제는 기아에 시달리게 된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충격이 일본인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고 그 결과 "현금이 왕"이라는 디플레적인 마인드가 확산된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Orange: Japan M2 growth YoY
White  : US M2 growth YoY
Green  : UK M4 growth YoY


BOJ는 이후 금리를 인하하지만, 금리를 급격히 올렸던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산버블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언급한다. 그 결과 일본 금융사들은 다시한번 89-90년의 통화적 충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신용을 줄인다. 위에서 보이듯이, 89년 이전 일본의 통화량 증가율은 영국이나 미국같은 다른 금융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었는데(영국은 M2데이터가 없어 M4를 인용해 조금 높게 보임) 미에노 총재의 취임을 기점으로 통화량 증가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게 유지된다. 즉 '디레버리징'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시기들이 끝나고 나자  '일본 경제는 곧 일어날 것이다'라고 믿으며 투자와 확장을 재개한 기업들은 다 망하했고  '역시 현금이 왕'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기업들만이 살아남았다. 이젠 기업들과 국민들의 체질과 마인드가 디플레에 맞춰져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괴기스러울정도로 급격한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BOJ가 이와 같은 자기파괴적 결정을 내린 데에는 정치적 동기가 작용한다. 일본은행은 독립성이 약해 흔히 '대장성 일본은행국'이라는 조롱섞인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골수 일본은행 출신이었던 미에노가 총재로 등극하자, 일본은행의 독립성과 힘을 과시하기 위해 과도한 긴축정책을 실시해 나라를 디플레이션으로 몰아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본이라는 세계 2위의 경제가 침몰한 배경에는 관료조직의 밥그릇 싸움이 숨어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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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스럽게도 현재의 한국은행이 처한 현실이 이와 매우 동일하다. 한국은행은 종종 "재경부 남대문 출장소"로 불리며 정부의 결정에 크게 휘둘린다. 그리고 현재 한국은행의 수장인 이주열 총재는 정통 한은 출신으로 미에노 총재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지난 2년동안 디플레이션 현상들이 경제 데이터 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열 총재가 시대착오적인 성향을 지우지 않는데에 있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금리를 올릴 것으로 공언하며, 금리가 2.5%일 때부터 '이정도면 경제 부양하는데 충분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의 주장과는 다르게 디플레이션 압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고,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이미 디플레와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한국은행의 팔을 꺾어 금리를 세차례 인하하긴 했지만, 마지막 금통위 기자회견에서도 총재는 호키시한 스탠스를 유지했다. 어쩌면 총재는 속으로 조직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잔다르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장은 그를 시대착오적 돈키호테라며 조롱했다. 그리고 나는 미에노 전 일본은행 총재를 떠올렸다.

2015. 4. 20.

놈놈놈: 나쁜 놈, 멍청한 놈, 게으른 놈. 그들이 고환율로 나라를 망치는 방법

미안하지만 당신은 속았다. 경제지들이 환율이 내려가 큰일이라는 위협성 기사를 쏟아내고, 기업들도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망하기 직전이라며 설레발을 친다. 정부는 스스로 환율의 어느 한 방향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멋대로 국민의 부와 세금을 끌어다 열심히 고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당신 역시 '환율이 너무 내려 나라경제가 안좋아지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했을지 모른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멋지지만 당신은 바보같이 속은 것이다. 정부와 대기업들이 지지한 고환율 정책은 당신의 부를 갉아먹어왔고 그 피해는 쪼그라 든 연말정산결과보다도 더 심각하다. 단지 그들이 쉬쉬하느라 당신이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더 나아가 고환율 정책은 국가의 경제를 망치고 후퇴시키고 있다. 이런 증거들이 명명백백한데도 고환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나쁜 놈, 멍청한 놈 혹은 게으른 놈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정책을 자기의 사익을 위해 지지하거나(나쁜 놈), 몇년에 걸친 데이터와 현상에도 불구하고 고환율이 잘못된줄 모르거나(멍청한 놈) 혹은 잘못된 줄은 알지만 자기 혼자 잘못되는 것도 아니라서 나서지 않는 것이니까.(게으른 놈)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과 고환율론자들(이하 놈놈놈이라고 하자) 지금 환율이 너무 낮은것 아니냐고 주장할 것이다.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놈놈놈들 덕분에 심각한 고환율 상태에 있다. 일반적으로 적정 환율은 국제수지를 평형으로 만드는 수준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는 3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으며, 거의 900억불에 육박하는 작년 경상수지는 00년 부터 08년까지 9개년의 경상수지 흑자를 모두 합한 수준이다. 과거 환율과 비교해봐도 현재의 고환율 상태를 알 수 있다. 최근 5년간의 평균 환율을 과거 2000-2005년 수준과 비교해보면 달러-원은 약 12% 높고, 유로-원는 약 18.5%, 엔-원은 20.8% 위안-원은 22.8% 더 상승했다. IMF여파에서 간신히 벗어나던 2000년대 초 보다도 원화가치가 더 낮다는 뜻이다. 2000년대 초반에도 고환율 상태였는데, 그때보다 더 심각한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니 경상수지가 사상최대로 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면 국가 경제성장률이 최고 수준으로 오르고 국민경제는 활황이어야할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다. 내수는 죽고, 투자는 감소하고 있으며 나라는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낮은 잠재성장률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는 고환율의 산물일 뿐이다. 그럼 왜 놈놈놈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고환율이 나라 경제를 망치고 있을까?

모든 정책에는 편익과 비용이 존재한다. 코스트는 없으면서 실익만 누릴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고환율 정책이 옳으냐 그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국가경제 전체로 볼 때 편익과 비용중 어느쪽이 큰지에 달려 있다. 놈놈놈들이 대중을 기만해 온 가장 큰 속임수는 바로 이 비용을 숨기는 것이다. 그들이 숨겨온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사실상 그 편익은 매우 작다, 그리고 당신이 외국인 혹은 수출기업의 오너가 아닌 이상 그 비용은 전적으로 당신이 부담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숨겨온 사실들을 살펴보자.



첫번째 사실. 고환율은 경제성장을 끌어내린다.

놈놈놈들은 고환율로 수출이 잘되면 GDP가 성장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쌍팔년도에나 통하던 정책이지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전혀 맞지 않다. 그 이유를 찬찬히 분석해 보자. 국가의 GDP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Y=C+I+G+nx(소비+투자+정부지출+순수출)

여기서 각각의 비중을 보면 소비가 50%, 투자 30% 정부지출 15% 순 수출이 5%이다. 고환율 정책이 각 요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뜯어보자. 고환율은 GDP구성중 절반을 차지하는 소비를 침체시킨다. 고환율(원화약세)는 구매력을 악화시켜 생필품의 40%를 수입에 의존하는 가계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킨다. 즉 가계로 하여금 리터탕 1200원이어야 하는 휘발류를 1500원에 사게 만들고, 4천원에 내놓을수 있는 가정식 백반의 가격을 5천원으로 올려 가계가 다른 분야에 돈을 쓸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내수는 죽고 투자는 줄어든다. 투자 측면에서 내국인은 내수가 죽어가는 국내에 투자할 이유가 없고 외국인은 환율 방어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적대적인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게다가 내수는 침체) 국내기업인 삼성, 현대도 외국기업인 GM도 지멘스도 한반도 밖에 투자하니 한국의 투자가 살아날 길이 없다 2005년 이래 FDI가 만성적 적자인 것도 같은 이유때문이다.

정리하면 고환율은 GDP 구성요소중 80%에 달하는 소비와 투자를 죽이면서 고작 5%에 불과한 순수출이 나라경제를 되살려줄 거라고 믿는 정책인 셈이다. 마치 등수를 올리고자 하는 학생이 비중이 높은 수학과 국어 영어를 포기하면서 비중이 가장 적은 봉사활동에 올인하고 있는 꼴이다. 성적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욱 더.

과거에야 국내에 자본도 부족하고 시장도 없는데다 생산기지를 해외로 설립하기도 어러워 고환율이 국가경제를 발전시킨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비록 넷수출 금액은 GDP의 5%밖에 안되지만 수출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고, 월급받은 노동자들의 소비를 통해 간접적으로 GDP 상승에 기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비와 투자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면서, 간접적인 효과가 그 타격보다 더 크기를 기대할 수 없다. 데이터를 봐도 이 점은 여실히 들어난다. 2010년에 정점을 찍은 뒤 경상수지 흑자는 막대하게 늘어났지만 산업생산지표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왔다. 고환율이 경상수지를 늘리면서도 경제를 죽인다는 명백한 증거 중 하나이다.


두번째 사실. 고환율은 부의 잘못된 분배를 초래하고 이는 경제성장률을 낮춘다.

고환율은 간단하게 가계의 재산을 수출 대기업에게 이전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가 나서서 일인당 매달 10만원씩 걷어 수출기업들에게 무상으로 입금해주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정책을 꾸준히 시행해 온 결과 지난 10년간 기업의 이익잉여금은 연평균 11%가량 증가했지만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고작 2.2% 증가했다. 동 기간 가계부채는 500조가 증가했고 기업의 유보현금은 딱 같은 금액만큼 늘었다.(고환율은 양극화의 주범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정치적 문제를 떠나 놈놈놈들이 믿는 것과는 반대로 고환율이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점에 집중하자) 즉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계속해서 가계에게 돈을 뺏어 기업에게 퍼주는 것인데, 이미 돈이 많은 기업은 돈이 더 생겨도 소비/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반면 더욱 가난해 진 가계는 뺏긴 돈 만큼 소비를 크게 줄인다. 다시말해, 고환율은 한계소비성향이 큰 사람에게 돈을 뺏어 소비성향이 작은 사람에게 줌으로서 소비를 위축시키는 셈이다.

과거 기업의 부채가 크고 가계의 저축이 크던 80-90년대까지는 고환율 정책이 소비와 투자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역전되어 되려 기업의 부를 가계로 이전해야하는 상황인데, 놈놈놈들은 여전히 기업에 부를 몰아줘야 경제가 나아진다고 믿는다. 공정하고 아니고를 떠나 이는 아예 방향이 잘못된 정책이다. 어릴때 빈혈을 앓던 사람이, 나이들어 고혈압이 오자 '아플땐 이 약이 직빵이더라'하며 저혈압 약을 먹고 있는 것과 매우 같다.


세번째 사실. 고환율 정책은 시장경제의 질서를 해치고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시장은 생각보다는 효율적이고 똑똑하다.(대개는 시장을 바보로 아는 사람들이 바보들이다.) 그러나 변덕적인 환시개입은 시장 예측을 어럽게 하고 기업들로 하여금 효과적인 환율대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04년의 최중경라인의 붕괴와 키코사태이다. 당시 환율주권을 외치며(환율주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지는 뒤에서 후술하겠다) 1140원 선을 방어하는 것이 마치 국가적 자존심인양 목숨걸고 달겨들었고 결국 엄청난 손실을 낸뒤 물러서야 했다. 그 결과 환율은 반년도 안돼 약 10% 가량 폭락했고 정부를 믿고 환헷지를 하지 않았던 수많은 회사들이 손실을 냈다. 봉우리가 높으면 골이 깊다고, 이들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오히려 달러원 하락에 베팅하다 2008년 키코사태를 촉발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기업체들의 달러예금이 사상 최대금액을 경신했다. 사실상 달러원 롱 포지션을 크게 잡고 정부보고 대신 떠안아달라고 투정부리는 것과 같다.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또한 고환율정책은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먼델에 따르면, 한 국가는 독자적 통화정책과 금리 그리고 자본이동자유화를 동시에 시행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환율을 통화적 흐름과 어긋나게 조정하면 우리나라의 금리가 미국을 따라가거나, 혹은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막아야 한다.(우리나라는 이 셋을 다 어중간하게 하고 있다.) 즉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1) 우리나라에 특화된 통화정책을 양보하거나, 혹은 2) 금융시장을 후퇴시키는 길 뿐이다. 고환율 자체도 해롭지만 이 두가지도 해롭다.


네번째 사실. 막대한 외환보유고의 유지비용은 공짜가 아니며 이는 모두 국민들이 부담한다. 우리나라의 현재 공식적인 외환보유고는 3600억불로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1600억불이 증가했다. 여기서 두가지 비용이 발생한다. 첫 번째는 막대한 환 리스크에 노출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은행이 고금리인 원화를 발행해서 저금리인 달러채권을 사는 것이라 구조적으로 장기적 이자손실비용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비용들은 해마다 다른데, 때때로 비용이 그 해의 경상수지를 상회할정도로 커지기도 한다. 하지만 외환보유고는 원화표시 평가손실/손익을 잡지 않는다. 즉, 실제로 얼마만큼의 손실이 발생하는지 일반 국민들이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물론 외환보유고 자체는 필요하다. 다만 이를 유지하는 비용이 0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정도가 적정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데, 놈놈놈들은 막무가내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논지를 견지한다.(비용은 국민들이 보지만 이득은 자기들이 보기 때문에) 그 결과 외환보유고가너무 많아졌다. 비상시에 쓰기 위해 있는것이 외환보유고인데, 수십년에 한번 온다는 리만사태당시 우리는 외환보유고를 약 600억불 정도 사용했다. 당시 사용한 통화스왑라인이 200억불정도 되니, 약 800억불을 사용한 것이다.(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계산이 있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니 생략한다.) 그런데 현재 외환보유고가 약 3600억불이니 단순 계산해보면 리만과 같은 사태가 4번 더 와도 문제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마 실제로 당시 급박했던 시장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비록 공식 데이터로는 외환보유고에서 600억불만 쓴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닥쳐보니 2600억불도 모자르더라'라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긴급자금으로 써야할 외환보유고를 엉뚱하게 운용한 탓 때문이지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를 감안하더라도 3600억불은 너무너무 많다.

지난 국회에서 재경부의 외국환평형기금(외환보유고와는 다르다) 손실이 문제가 되자, 한 국회의원은 "외평기금 손실은 보험금의 개념" 이라는 말로 환시개입을 변호했다. 더 나아가 "이 손실은 국방비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민들이 등골이 휘도록 보험금을 내고 있다면 이는 정상일 수 없다. 누군가가 월급을 다 갖다바쳐 보험을 들었다면 이는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외환보유고 손실은 국민이 지는데, 그 혜택은 수출기업들이 본다. 즉 수출기업들이 겪어야 할 환손실을 국민에게 이전하는 셈이다. 내 월급으로 보험을 드는데, 그 수혜는 다른 친척이 본다면 이 보험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놈놈놈들은 우리에게 이런 보험사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네가지 현상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환율주권을 외치며 다른나라들이 통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고환율을 포기하면 결국 우리나라가 손해보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모두가 근린 궁핍화 정책을 지향하는데 우리도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대개 그들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국제금융에 관한 서적은 쑹홍빙의 화폐전쟁이다) 이는 바보같은 소리다. 사실 환율전쟁은 벌어진 적도 없다. 각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에 집중한 이유는 통화가치를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용경색으로 통화공급이 줄어들어 디플레의 위협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통화정책이 핵심이었지 환율을 목표로 한 적은 없다. 게다가 고환율 정책은 근린궁핍화 정책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가진 자산 대부분히 원화로 표시되어있는데, 원화를 절하시키는게 어떻게 다른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인가? 사실 이는 한국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이고, 지난 몇년동안 매우 성공적으로 그 위력을 발휘해 한국인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어 내수를 죽였다.청년실업, 저출산, 낮은경제성장률 이 모든 것이 고환율의 여파이다. 일부 사람들은 구조개혁을 해야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성은 OECD국가중 미국에 이어 2위고, 우리나라보다 생산성이 낮은 나라의 경제도 잘 돌아간다. 구조개혁이 필요한건 놈놈놈들이다.

ECB를 필두로 전세계가 금리를 인하하자, 엉터리 전문가들은 다시 환율전쟁이 불붙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럼 금리 인상을 준비하는 미국은 자살골을 넣고 있단 말인가. 이는 적시에 적절한 정책을 시행한 미국은 금리를 올릴정도로 경제회복에 성공했고, 신용이 줄어드는데도 섣불리 금리를 인상해 실기를 저지른 타 중앙은행들(한은포함)은 뒤늦게 대응에 나서고 있을 뿐이지 환율 그 자체는 언제나 곁가지 문제이다.

(여담이지만 화폐전쟁이란 책을 쓴 쑹홍빙은 금융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그가 경제학적 전문성을 갖췄는지 의심된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그는 Freddie Mac에서 IT컨설턴트로 일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그저 전산실 파견직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화폐전쟁 1 내용의 90%는 오래전부터 흔하게 돌던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을 그대로 베낀데다 독창성마저 없다. 책이 크게 유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본시장 시스템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애국심을 자극하는 '환율주권'이란 말도 멍청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환율이란 달러와 원화의 교환 비율이다. 이 비율이 우리 맘대로 움직이는것을 "주권"이라 부른다면 미국은 주권이 없어야 한단말인가. 각 통화는 중앙은행의 정책과 경제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시장에서는 그 상대적 비율만이 거래될 뿐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놈놈놈들은 잘못된 상식과 왜곡된 시각, 그리고 엉터리 분석을 바탕으로 국가경제를 꾸준히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들을 보면 구한말 친일파들이 떠오른다. 친일파 중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친일한 이가 있었으며, 어리석게도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일본에게 복종해야한다고 믿던 이도 있었고, 이도저도 아니지만 그저 세태에 순응하여 친일한 이들도 있었다. 각기 이유는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대다수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안겨주었고 우리 역사는 그들을 모두 매국노라고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놈놈놈들도 역사적 평가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미래의 경제학자들이 현재를 돌아볼 때 반드시 이 극심한 불균형에 주목할 것이고 성장둔화와 연관지어, 놈놈놈들을 평가할 것이다. 그들은 나쁘거나, 멍청하거나 아니면 게을러 나라를 망친 사람들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