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2.

두 번의 세계대전, 그리고 오늘날 우리

양차 세계대전은 정확하게 반대의 이유로 발발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은 외교의 황금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100여 년간 예외적으로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물론 크리미아 전쟁이나 보불전쟁 같은 군사적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이전의 유럽의 전쟁들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국지적인, 작은 전쟁에 불과했다. 오랜 평화를 누린 유권자들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잊었고 그래서 자국의 지도자들이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그들은 마치 축구 경기라도 시작되는 것처럼 웃는 얼굴로 열광하며 황제와 왕에게 키스를 보냈다. 축축한 참호, 피와 화약 냄새가 가득 배긴 흙 내음,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포격의 굉음으로 대변되는 이 지옥의 서막은 바로 거기서 갈려나갈 사람들의 환호로 시작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빌헬름 2세가 개전 선언을 하자 모자를 벗어 환호하는 독일인들

반대로 2차 세계대전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깊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1938년 독일은 체코 내에서 독일인 거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주데텐란트를 병합하겠다며 대규모의 군대를 체코의 접경에 배치했다. 또다시 독일과의 전면전을 벌일까 봐 전전긍긍 했던 프랑스와 영국은 무솔리니에게 부탁해 히틀러가 협상장에 나오도록 설득했고, 체코 영토의 30%와 500만의 인구를 독일에 넘기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뮌헨 협정을 체결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독일인들이 히틀러와 나치의 공세적 대외노선이 옳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는 계기를 제공했고 이로써 히틀러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강화되어 전쟁의 불씨를 키우는 꼴이 되었다. 몇몇 사학자들은 만약 연합군이 히틀러가 집권 초기에 벌였던 여러 도발에 과감하게 맞대응했더라면 그와 나치는 실각했거나 군부의 반발로 2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시대의 평화를 가져왔다며 히틀러와의 합의문을 꺼내든 체임벌린,
그리고 이로부터 불과 11달 뒤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한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그것 하나뿐일까.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결정한 각 주요국들의 왕족들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영국 국왕은 하노버 왕가의 핏줄이었던 조지 5세였는데 그는 영국에 적대적인 정책을 고수하다 전쟁을 선포한 빌헬름 2세의 사촌이었다. 또 반대편 전선에서 독일에 선전포고를 선언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그의 7촌 사촌이었으니 1차 세계대전은 다름 아닌 바로 혈연 간의 전쟁이었다.* 반면 2차 세계대전은 핏줄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전쟁을 선포하고 학살을 벌였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스탈린의 폭압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반겼지만 아리아인들은 슬라브 계열의 민족들을 진정한 동맹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나치가 벌인 만행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이 차라리 스탈린이 낫다며 돌아서게 만들었고 동유럽 각지에서 파르티잔들의 테러가 이어졌으며 그 결과 안 그래도 어려웠던 동부전선의 보급과 병력 수급에 차질을 주었다. 게다가 나치는 당장 전쟁에 투입할 물자와 병력이 모자란 순간에도 유대인을 절멸시키는데 철도와 인력을 우선 배정하였으니, 적어도 동부전선에서는 핏줄은 전장의 헤게모니를 온전히 지배했다. 

두 세계대전의 차이는 그뿐이 아니다. 전쟁 발발의 이유가 비교적 명확한 2차에 비해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불분명하다. 사라예보 사건이 그 단초를 제공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도에서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할 보스니아의 한 도시에서 세르비아인 암살자가 저무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를 저격한 일이 어떻게 유럽의 반대쪽에서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와 싸우게 만들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원인을 연구한 케임브리지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이를 설명하는데 697페이지나 할애하면서도 여전히 아리송했던지 이 책의 제목을 몽유병자들(sleep walkers)이라고 지었다. 연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마치 전 유럽이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전쟁으로 걸어들어갔다고.     

이처럼 인류가 저지른 가장 끔찍한 두 전쟁은 전혀 다른 이유로, 전혀 다른 배경으로, 또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너무 평화로워서, 혹은 너무 불안정해서 전쟁을 벌였고, 핏줄이 다르기 때문에, 혹은 같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벌였다. 지도자의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때로는 두려움이 지나쳐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통합을 위해서, 또 다른 경우에는 분열을 위해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래도 싸우고 저래도 죽이는 것이 인류인가. 마치 자신을 태우고 강을 건너는 개구리를 쏘아 자기 자신마저도 죽고 마는 전갈처럼 전쟁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튀어나오는 인류 집단의 본능적 행위와도 같다.   

그리고 오늘을 돌아보자. 당신과 나는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으며 전쟁을 겪었던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민족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 그리고 맹목적인 광신도들이 채우고 있다.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까지 역사에 무지하며 이념에 가득 차, 상대가 역사에 무지하고 이념만 따진다며 비난하고 있다. 갈등은 늘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의 이해의 폭은 점점 줄어가며 계급 간의 대립은 너무나 첨예하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몇몇 낙관주의자들은 세계가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 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을 벌일 유인동기가 약하다고 주장하지만, 20세기 초 유럽인들 역시 정확하게 같은 주장을 펴며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그리고 다시금 묻는다. 당신과 내가 죽기 전에 우리는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신한다. 다만 그 전쟁의 포성이 우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지 자신하지 못할 뿐.



*대조를 위해 생략했지만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하고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를 이끈 원동력은 민족주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