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0.

노무현의 뇌물보다 무서운 가출

2023년 8월 10일, 법원은 정진석 의원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허위사실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이는  검찰의 구형이 벌금 500만 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판결이었는데, 이러한 판결을 내린 배경에 대해 법원은 "정진석 의원의 글 내용은 악의적이거나 매우 경솔한 공격에 해당하고, 그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도 없다"라고 부연했다." 이어 "유력 정치인인 정 의원은 구체적 근거 없이 거칠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라고 밝혔다.


문제가 되었던 정진석 의원의 발언은 아래와 같다.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 싸움 끝에 권 씨는 가출하고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것이 이명박 때문이란 말인가. 


논란이 되었던 위의 발언에서 사실로 인정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권양숙 씨와 아들이 박연차로부터 금품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가 드러남
  • 그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음
  •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허위사실로 여기지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부부 싸움
  • 권 씨의 가출
  • 노 대통령이 밤에 혼자 남음

그리고 이로 인해 정진석 의원은 명예훼손으로는 아주 이례적으로 실형 6개월의 형을 받았다. 그리고 법조인이 아닌 나로서는 법원이 정진석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이 합당한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군사독재자들의 피붙이들과 다름없이 부당한 뇌물을 받은 그 가족들과, 부부 싸움과 가출을 주장한 정 의원 중에서 누가 노무현의 명예를 더 많이 실추시켰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그렸던 정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               *               *

지난 2018년 경기지사 TV 토론에서 당시 이재명 후보는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고 했느냐"라는 질문에 "그런 일이 없다"라고 답했지만 이후 그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는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20년 7월 대법원은 "돌발적 질문에 대해 자기방어적으로 답변한 것은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라는 논리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했고 이런 판결이 나오는 과정에서 김만배와 가까운 사이로 차후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활동한 권순일 대법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링크)  

게다가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우리는 몇몇 정치인들과 일부 방송인들이 자신의 정적이나 반대 진영 인사들에 대해 매우 모욕적인 루머를 퍼뜨린 사실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중에는 유력 대선후보의 아내가 술집 작부 출신이라는 주장이나 여자 정치인의 섹스 비디오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는 없었다.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니게 되고, 똑같은 허위사실도 무죄가 되던 마당에 느닷없이 정진석에게 실형이 선고되었으니, 여당이 법원이 감정적이고 편향적이라며 반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을 믿으려 한다. 그러니 법원이 이제부터라도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흐리는 거짓 주장에 단호히 대처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일관성을 엄정하게 유지하기를 바란다. 또다시 권순일이 주장한 것처럼 소극적인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그리고 뇌물보다 가출이 더 무겁다는, 그런 궤변을 듣는 괴로운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