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21.

사바하-선과 악의 경계 그리고 호와 불호의 경계.

[일부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나 영화 내 스토리 해석에 방점을 둔 글은 아닙니다.]
 
나는 대중의 평가와는 반대로 이 영화가 장재현 감독의 이전 데뷔작, 검은사제들보다 더 뛰어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불교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고 그곳은 절대악의 존재가 없는 세상이다. 이렇듯 사탄이나 악마가 없는 오컬트 스릴러의 세계는 마치 적군이 없는 전쟁영화처럼 참신하긴 해도 낯설 수 밖에 없다. 감독은 여러차례 영화 내 등장인물(해안스님-진선규 역)의 입을 빌려 관객들에게 이 점을 주지시키려 하지만, 수백 수천 편의 영화들을 통해 동서양의 각종 악마와 마물들에게 익숙해 진 스릴러 팬들은 이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복선 회수가 안됐다" 혹은 "개연성이 부족하다"라는 비난은 그 뒤에 한 가지 질문을 담고 있다. "그래서 누가 나쁜놈인데!"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에 절대악은 없었다. 혜안스님이 말했듯, 애초에 악이라고 규정지을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의 번뇌가 악일 뿐이다. 이것이 태어나면 저것이 태어나듯 손가락을 여섯개 가진 두 존재가 탄생했던 것이지, 그 둘이 애초에 각각 빛과 어둠을 담당하도록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어진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미륵이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악행을 저지르던 나찰이나 뱀으로 보이는 "그것"이 선을 이루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영화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불교식 세계관과 온전하게 일치한다.
 
감독의 지난 작품, 검은사제들은 헐리웃 영화 엑소시스트를 한국적 느낌으로 번역한 것에 불과했다면 이 사바하는 진정 한국판 오컬트적 세계관을 창작해 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번역본과 창작본. 두 영화 사이에는 그만한 차이가 있으며 영화적 완성도를 보아도 나는 두 번째 작품을 더욱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기독교식 선악구분에 익숙한 대중들은, 더욱이 지난 작품이 그 이분법적 세계관에 똑 맞았기에, 장재현 감독의 새 작품이 낯설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외모만 봐도 영웅인지 빌런인지 구분되는 DC나 마블의 세계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우리는 거기에 맞게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법칙이 결코 이진법으로 해석되지 않을진대 하물며 공포영화가 이분법에 머무를 이유 또한 없으므로, 언젠가 관객이 이 불교식 세계관이 가져다주는 공포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면 이 영화는 재평가 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사실 천사와 사탄이 깔끔하게 나뉜 세상보다, 여래가 악마가 되고 뱀이 미륵으로 바뀌는 혼돈의 세계가 더 두려운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