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9.

이태원 참사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개 좌뇌가 작동할 때 우뇌는 움츠러들고 반대로 우뇌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 좌뇌는 억제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트레이더들은 감정을 억누르도록 훈련받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뇌를 한 쪽만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듯, 이성 혹은 감정 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태원 사고의 비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순식간에 총 158명이 사망한 이 참사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우리 사회가 이 사고를 품고 받아들이는 데엔 이성과 감성, 둘 모두가 필요했다. 사고 초기 신경정신의학회가 성명서를 발표하며 서로의 감정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유였으리라. 사고 발생 후 나온 몇몇 후속 조치들이 다소 과도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코 불필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감성은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큰 사건이 터지고 나면 사람은 방어기제로 비난할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니 세월호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의 배경을 두고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나 의혹들이 제기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렇다고 그 괴담들이 합리적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또한 몇몇 언론들의 지적과는 달리 이 사고는 쉽게 예견할 수 있던 일도 아니었기에 방지하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손에 닿는 대로 희생양을 찾아 보복에 나선다면, 그것도 정치와 진영에 따라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을지 힘겨루기에만 열중한다면 이와 같은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인간의 이성이 암흑시대를 끝내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18세기 유럽에서 태어난 프란시스 고야. 하지만 이윽고 그는 이성적이라던 유럽인들이 자유와 이념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야만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자유와 평등, 박애를 외치며 혁명정신을 전파하겠다던 프랑스 군은 마드리드에 진군하며 시민군을 대량으로 학살했고 계몽주의적 성향을 지녔던 고야는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고야는 인간의 광기와 야만을 거칠고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을 여럿 남겼는데, 그 연작들 중 하나에 그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오래전 새끼를 잃은 회색 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자식을 잃은 그 암곰이 분노와 슬픔에 미쳐 숨이 멎을 때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동물들을 찢어 죽이고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들까지도 그 곰을 피해 숨고 온 숲이 공포에 떨었다는 이야기. 한낱 짐승들에게도 자식을 잃는 고통은 단장(斷腸)의 아픔이리라. 그렇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감히 이성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감성과 공감이지만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닌 이성이 필요하다. 문제는 우뇌가 작동하게 되면 이성이 마비되고, 그리고 고야가 경고했듯 이성이 잠들면 괴물은 깨어나기 마련이다. 유가족들은 사고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들이 정말로 사고의 진상을 몰라 분노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 무엇으로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 분노로부터 누군가의 자식들을,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분노로부터 유가족들을 지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회는 둘로 나뉘게 될 것이고 한 쪽은 유가족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런 조짐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홀로 방 안에서 보내야 했던 20대들의 첫 축제는 어이없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은 우연과 우연이 겹친 사고였을 뿐 누군가가 악한 의도로 저지른 사건은 아니었지 않은가. 희생자들을 잊어서는 안되고 법을 어긴 이들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우리의 슬픔과 분노는 언제고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로 3만여 명의 동료 시민들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특히나 젊은 20대들은 남은 삶을 최선을 다해 누려야 하지 않을까. 결코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축제여서는 안된다. 나에게도 언젠가 죽음이 찾아오겠지만 그 이후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즐겁고 행복하게 자신들의 남은 몫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행여나 그들이 슬픔에 못 이겨 갈 곳 잃은 분노와 무의미한 증오에 휩싸인다면 부디 다른 이들이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여주고, 또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기를.  



희생자들에게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