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7.

고 전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며.

여러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남은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가 확고한 정치 철학을 가졌다는 것과, 또 그를 현실 정치에 접목시기키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

정치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박정희를 비롯한 국가주의자들은 민주주의보다 경제성장을 선택했고 문민정부는 과거사 청산과 민주주의 이념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저 둘 중 하나를 칭송하고 다른 하나를 욕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에 맞는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한 잣대로 보면 노무현은 대중 그 자체를 선택했다. 그렇기에 때론 마키아벨리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대통령이 앞장서서 공격하기도 했고, 또 사회를 가진 자와 못 가진자로 나누어 분열시킨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어쨋든 그에게는 확고한 철학과 방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철학을 현실화하려면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해야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이다. 세상에 미국과 FTA를 맺고 미군과 함께 군대를 파병하는 좌파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랫다. 아마 그에게는 좌냐 우냐 하는 이념논쟁보다 자신의 철학을 현실정치에서 구현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뭐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인데,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FTA를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영민한 정치가는 이렇게 우선순위를 구별할 줄 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는 매우 미숙했을지언정 분명 우리 사회가 적어도 한번은 필요로 했던 정치인이었다. 보수층은 그를 싸움닭 같은 대통령이라고 기억할 지 몰라도 필요할 때 보수적 가치와 정책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대통령이 바로 그 아닌가. 지금도 노동계는 그를 신자유주의자로 분류한다.  
 
그의 방식이 세련되고 매끄러웠다고 할 순 없다. 별 경험이 없던 그 초보 운전자의 정책실수로 부동산은 폭등했고 빈부격차는 벌어지자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며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할 수도 없다. 임기 말 그의 지지율은 거의 대국민 사과방송을 하던 박근혜 수준 까지 추락했고 17대 대선에서 그를 계승한 정동영 후보는 보수진영에게 더블스코어를 넘어 거의 트리플 스코어에 가까운 격차로 패배했다. 임기 내내 실험적 마인드로 좌충우돌하는 그 운전사에게 승객들은 휴지를 던지며 야유를 보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핸들을 잡은 그의 목적지를 모르는 승객은 없었다.
 
나는 참여정부의 여러 정책에 동의하지 않았고 남상국 사장을 자살시킨 일, 그리고 친인척 비리들 때문에 그가 정의롭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노무현의 정치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지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임기 말 사람들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인터넷 밈을 유행시킬 때 조차 그는 "국민들이 살기 힘들면 대통령 욕도 좀 하고 그럴수 있는거지 뭘"이라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의 서툰 정치가 빈부격차를 벌리고 젊은이들이 서울에 집을 마련하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말 만큼은 국민들에게 위로를 주지 않았는가. (이를 립서비스와 쇼라고 한다면 다른 여의도 정치인들은 바보인가. 왜 안하나.)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정치인들이 국민 여러분이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국민보다 경제나 안보, 혹은 민족을 더 앞에 내세우던 소통방식에 지쳐있었다. 처음으로 국민과 유권자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내세운 대통령. 어쩌면 대중은 그래서 노무현에게 그렇게 열광했던것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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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6년 째 철학이 없는 청와대를 상대하고 있다. 박근혜는 운전대를 친구에게 내주고 조수석에서 졸다 쫒겨났고 문재인은 눈을 감고 운전하고 있다. 그 둘은 너무도 닮았다. 우파의 아이돌 박근혜는 수첩공주가 되어 박정희 오마주 정치를 폈고 좌파의 아이돌 문재인은 A4용지 왕자가 되어 노무현 오마주 정치를 편다. 그렇게 우리는 망자의 유령이 미래를 다스리는 나라에 살고 있다. 주사파 운동권 출신 비서실장이 라이방 선글라스를 끼고 미제국주의 맥아더와 박정희를 흉내내며, 테러방지법을 필리버스터로 막던 영웅들이 어느새 빌런이 되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에 사인하는 희극을 보고 있다. 거기엔 아무런 철학도 없고, 또 따듯함도 없다. 수시, 최저임금, 소득주도경제 등 애초에 약자를 위해 마련한 제도가 엇나가 약자의 목을 조르는데도 샴페인 좌파들은 교조적 이념에 집착한다. 마치 자신들의 목적은 노무현에게 물려받은 이념의 관철이지 국민의 삶이 아니라는 듯이. 그 와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고 소외된 이들은 더욱 소외되고 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이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아래 표를 보면 가장 힘든 계층의 사람들의 현 정권 지지율이 가장 낮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서민들을 대변한다고 자위한다.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40/50대 화이트칼라 운동권들이 빈민들의 가난까지도 훔쳐다 정치적 자산으로 쓰는 꼴이다. 정작 하는 일이라곤 사회적 자산을 젊은 20대 여성들에게 퍼부으며 열렬히 구애하는 것 뿐이면서. 마치 이태원 클럽에서 명함을 돌리는 유부남들처럼. 현 정부는 참여정부를 계승했다고 주장하지만 내 눈에 이 둘은 너무나 다르다. 만약 고 전 노무현 대통령이 이념을 위해 인민을 내팽겨 친 현 정부를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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