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30.

서민 정치인들과 진짜 서민.

  •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다주택자들을 향해 "집을 파시라"라며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지만 알고보니 본인이 2주택자임이 들어났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나머지 한 채는 은퇴용으로 쓰려고 마련한 것으로 투기목적이 아니라고 답했다.
  • 이기성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은 8채의 주택을 보유해 공직자 중 1위를 차지했다는 비난에 대해, "모두 합해도 강남의 집 한채값도 안된다"고 해명했다.
  • 중기부 장관에 내정된 홍종학 후보자는 장모에게 압구정 집과 빌딩을 상속받고, 부인이 딸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홍 후보자가 이제껏 강력하게 비판해 온 부의 대물림의 전형적 사례라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부가 죄악이요 가난이 정의가 아니니 이들이 가진 재산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도 저들의 지지자들이 당황한 까닭은 알고보니 그들이 나와 다른 계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껏 나와 출신이 비슷한 줄 알고 밀어줬는데, 그가 물고 있던 수저는 내 것과는 색이 달랐다. 아뿔싸. 내 것 같은 똥색인줄 알았더니 똥 닮은 금색이로구나, 속았다.  속은 서민 지지자들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목청을 높인다. 아니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놈의 쉐끼들. 싸늘해 진 지지자들의 여론을 마주하는 당사자들은 더욱 당황한다. 동지들 왜 이러오, 나 서민이오. 서민이 맞소. 이 자중지란을 두고 보수 일간지는 낄낄대며 조롱한다. 이 촌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흥미롭게도 저 셋은 모두 강남에 연관되어 있다. 김현미는 강남 재건축을 콕 집어 지적하며 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고 이기성은 자신의 재산목록을 다 합쳐도 강남의 아파트 하나 만 못하다며 면죄부를 얻으려 했다. 홍종학은 평생 부의 세습을 반대하다가, 장모가 압구정 아파트를 준다니 덥썩 받았다. 바로 여기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서민의 선이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바로 한남대교와 영동대교 사이의 한강, 한마디로 강남.

2016년 기준 강남구의 인구는 약 56만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수준에 불과하다. 서초구나 송파구를 포함해도 총 인구의 3%밖에 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늘상 사회 지도층들만 만나고 다니는 진보 정치인들은 강남3구를 제외한 나머지가 죄다 서민이라고 믿지만, 이 기준은 "진짜 서민"들의 눈높이와는 너무 다르다. 부의 피라미드에서 서민편 정치인들의 위치가 실제로 어딘지 그 좌표가 노출되자, 진짜 서민들은 그들이 결코 자신과 같은 층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네들이 어디있는지 보기 위해서는 서민들은 고개를 수직으로 꺾어 저 피라미드의 끝을 쳐다봐야 했고 실상 그 곳은 어깨를 맞대고 함께 욕하던 적폐 상류층(혹은 상류 적폐층)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동네서 껌좀 씹는다는 날라리가 우연히 독서실에서 자칭 학교 일진이라는 애를 만나 친해져서 담배 피고 미팅도 하고 수업도 째고 다녔는데, 알고보니 걔가 한성과학고 일진이라 나중에 연세대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그런 기분일까. 현실 세상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껌 씹던 날라리는 어금니 꽉 깨물고 그 과학고 일진을 줘패러 간다. 여론도 마찬가지다. 진짜 서민들은 자칭 서민 정치인들을 패러 간다. 아니 패지는 못하니 뒤돌아서 인터넷에 악플을 단다. 과학고 학생이나 서민 정치인들이 뭘 잘못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편인 척 하며 내 호의를 넙죽넙죽 받아 처먹은 것이 분하고 고까운 것이다. 가재는 게편이랬더니 개가 게 행사를 했다. 초록은 동색이라 했지 언제 똥색이라 했느냐.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듯 예전의 지지율은 곧 악플로 돌변했다.

애초에 이 사단은 사람들을 부자와 서민으로 양분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심지어 수능에서도 1등과 꼴등 사이에 공식 등급이 9개나 있는데 하물며 사회계층이 두개 뿐이랴. 농촌 영농인 입장에선 도시 아파트 산다고 으스대는 것들이 상류층이고, 지방도시 사는 사람은 광역시 사는 사람을 질시하며, 광역시 주민들은 수도권 사람들을 기득권층으로 본다. 소주, 석고분진, 땀냄새 등 서민 내음 풀풀 풍기는 지옥철 1호선을 타고 퇴근하는 수도권 사람들은 관악산 넘어가기 전에 내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지만 내린 이들은 또 외제차로 출퇴근 한다는 동기들을 떠올리며 짜증을 낸다. 이러한 계급 나누기는 마치 프렉탈 구조처럼 나누고 나누고 나누어도 계속 반복된다. 심지어 재벌모임에서도 급이 나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부자와 서민이라는 구도는 소규모 모임이라면 몰라도, 나라 차원에서는 존재 할 수 없는 그림이다. 게다가 애초에 "서민 정치인"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정치인이 될 정도로 잘 배우고 잘 먹고 힘있는 이를 "서민"으로 내려다 볼 사람은 평창동이나 한남동의 3층짜리 단독 주택에 살며 더 잘 배우고 더 잘먹고 더 힘센 극소수 사람들 뿐이고 그들은 대개 서민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정치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을 서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여. 자신을 서민이라고 포장하는 정치인들에게 속지 말지어다. 그들이 닳아 헤진 구두를 신고 나오든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든 그들이 당신을 모르는데 당신은 그네들을 알 정도로 유명하고 힘 있는 사람이라면 명절 때마다 구두와 가방과 최고급 한우 세트와 에르메스 넥타이를 갖다 바치려고 대기표를 뽑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빈티난다고 좋다고 지지하지 말고, 뭐 꼭 지지할거면 빈티가 알고보니 빈티지였다고 해서 빡쳐서 악플달지도 마라. 그들은 애초에 당신과 같은 리그에 있지도, 당신들의 이익을 대변하지도 않았다. 빈부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을때가 참여정부 시절 아니었던가.

댓글 1개:

  1. 오래된 글이라 보실지 모르겠지만 오늘 블로그 전체 글을 다 읽어 본 후 댓글을 남깁니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조차 잘 모르겠다고 느끼고 있었던 일들이 잘 정리되어 소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배가 같은데 ㅠ 어찌 저랑 비교도 안되는 수준 높은 인사이트를 가지실수 있었는지.. 그간의 독서량과 고민이 느껴지네요..
    뇌조직의 연결성도 우사인 볼트의 다리처럼 타고나는거라 노력만으로 닿을수 있는게 한계가 있는데 참 부럽습니다 ㅋ 고딩때 전교일등하던 애가 생각나네요 ㅋ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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