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6.

결핍



그 어떤 인간도 절대로 돈이나 물질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심리적, 감각적 보상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마세라티의 고객들은 그 빠른 속도감과 배기구의 소음을 통한 남성적 우월감이나 아름다운 여성의 시선을 갈망하고 여성들은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로부터 자기 만족을 위한 아름다움이나 애정의 충족을 기대하며, 특별히 이도 저도 소비하지 않는 이는 저축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다 주는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처를 찾고 있는 것이다.

돈은 단지 그 모든 감각적 문제들을 수량화시켜 시장으로 질질 끌고 나오는 매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 보니 가끔 인간은 미련하게도 자신이 진정 돈과 물질 그 자체를 원한다고 믿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물질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소비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그들은 대부분 남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따라 산다. 예컨대 쓸데없이 큰 배기량의 자동차나 발음하다 혀가 꼬일것 같은 이름의 시계 등) 그들은 자신이 어떤 감각을 원하는지, 어떠한 심리적 보상을 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돈을 경시하거나 돈을 숭배하거나, 혹은 그 중간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자기가 갈망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것은 탄탈로스의 지독한 갈증 뿐이다. 이들에게 가난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충분한 부와 풍요를 손에 넣고서도 허탈함과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심리적 상실감의 원인이 아직도 "돈과 물질의 부족"에 있다고 믿기를 원하며,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을 권장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어떠한 물질적 풍요의 조건 아래에서도 결여와 부족의 상태를 창조해내는 동시에, 다시 그 결핍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있는 힘껏 노력하는 역설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모순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만 이들은 자신의 모순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절실하게 결핍을 갈구할 수 밖에 없으며, 끊임없는 노동으로 인한 피로는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 여유를 앗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넓은 광야 위를 나침판이나 지도도 없이, 심지어는 목적지도 없이 그저 앞만 보며 걸어가는 난민의 무리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때때로 잠들기 전 몽롱한 상태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라며 자신조차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던지면서도.
       
 
 
 
2009.3.1작성
2011.7 .2수정
2019.10.25수정

paint by Andy Warhol
 

댓글 6개:

  1. 安分身無辱 知機心自閑 雖居人世上 却是出人間 (안분신무욕, 지기심자한 수거인 세상 각시출인간)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면 몸에 욕됨이 없을것이요,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잘 알면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나니 비록 인간 세상에 살지라도 도리어 인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이니라' - 명심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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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ttps://blog.naver.com/jhkim3378/221307418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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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잊고 있던 무언가를 깨워주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에 기대어 멍한 정신을 깨우고, 하루 중 대부분을 노동에 절어살다 보면 본연의 욕구와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할 수 없게 마취되기 쉽네요. 내가 진짜 욕망할 대상이 무엇인지 고찰할 여유가 없으니, 쉽게 타인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동일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직업, 차, 시계, 아파트,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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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여가의 사회학이 떠오르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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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know what you know,
    know what you don't know,
    know what you don't have to know,
    and realize that there is always a possibility that you don't know that you don't know.

    요즘 제가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명제들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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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http://road3.kr/?p=45955&cat=149
    페친분이 쓰신건데 두분 글이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선생님께 링크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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