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번 파생상품을 샀다가 아주 큰 손실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몇날 밤을 뒤척일 정도로 괴로웠다. 그 종목은 수 년간의 내 저축과 달콤한 희망을 삼킨 대신, 깡통으로 남은 잔고와, 꽁초가 수북히 쌓인 현관 옆 재떨이 그리고 투자 습관을 전부 뜯어고칠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내 면전에 던져놓고 홀연히 (만기되어) 사라졌다.
이게 그 종목이 나에게 무슨 원한을 품고 저지른 일인가. 그럴리가 있나. 그냥 그 자산은 원래 폭락할 자산이었고, 잘못된 것은 제 값을 찾아간 그 자산이 아니라 거기에 돈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나의 판단이었다. 스크린 속 반짝이는 그 종목코드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러냐"라고 울부짖어봤자 개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 의미 없는 뻘짓이다. 그것은 원래 그리될 것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어떻게 나에게 이러냐며 고통받지만, 이 역시 어리석은 짓이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럴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때 부터, 아니면 적어도 작년 재작년 부터 그는 그런 사람이었지 간밤에 갑자기 짠 하고 변한게 아니다.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으니까. 내 믿음을 져버렸다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원망하는 일은 실로 어리석은 짓이다. 애초에 믿음을 준 것이 잘못이고, 그건 온전히 내 잘못인데.
그렇다고 지금 뭐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와 같이 식상한, 설날에 개그맨들이 한석규나 이명박 성대모사를 하는 것 처럼 진부한 넋두리를 늘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는데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안 믿을 수 있겠는가. 다만 믿어야 할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해야 하며, 또 우리는 그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설령 그 믿음이 짓이겨지더라도 원망하지 말자. 애초에 그런 사람이 그런 짓을 했을 뿐이거늘. 마음은 쓰리지만 또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내 자신을 탓해야 한다. 밖으로 분노를 분출하고 다 잊어버리기 보단 내 안으로 삭히고 이 쓰린 감정을 하나하나 곱씹는게 이 괴물같은 세상으로부터 내일의 나를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이 글의 제목을 무엇으로 지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헤메고 있다.
선생님 같은 분도 이런 경험이 다 있으시군요..
답글삭제뭐 제가 뭐라구 안겪겠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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