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 개미들이 주로 미국 시장에 투자하다보니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미국 대비 성적이 저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절대평가로도 형편없는 것이다. 미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처참한 성적을 보이고 있으니까. 전 세계의 주식시장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성적이 나쁜 곳은 방글라데시, 라트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슬로바키아 이 다섯 나라뿐인데 그나마 비슷한 체급인 멕시코는 저점에서 40%가량 반등했다 하락했으니 그야말로 코스피는 세계 최악의 주식시장인 셈이다. 그 배경으로 금투세의 영향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국가들은 이미 자본이득세를 시행하고 있으며 작년에도, 또 재작년에도 코스피의 성적이 변변찮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예상 밖의 반도체 특수도 있지 않았나. 따라서 전쟁이 난 중동보다도, 심지어 경제제제를 맞은 러시아보다도, 그리고 ELS 사태를 촉발한 홍콩 지수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망하고 있다는 것.
사실 이 프로젝트의 실패는 널리 예견된 일이었다.(링크) 이미 10년 전에 실패한 계획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밀어붙였으니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닌가. 만약 당신에게 밸류업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던 금융계 지인이 있었다면 그는 아주 멍청하거나 당신의 친구가 아니니 손절하라. 지난 대선에서 시장경제를 중시한다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기가 차게도 그와 그의 경제관료들은 지난 2년간 온갖 반시장적 정책들을 밀어붙이며 투자자들과 찌질한 기싸움을 벌였으니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관치로 망가진 밸류에이션을 관치로 고치겠다는 이들의 병든 철학이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금융사들에게 배당을 확대하지 말라며 꼬장을 부리던 정부와 규제당국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이젠 배당을 늘리라며 윽박지르고 있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더니 난데없이 제품 가격을 올린 소비재 회사를 비난하며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또 언제는 은행들 보고 대출을 늘리라고 했다가, 아니 늘리지 말라고 했다가, 아니 다시 늘리라고 했다가, 도로 늘리지 말라고 했다가, 아 다시 늘리라고 했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줄이라고 하기를 반복하지 않나. 십수 년간 멀쩡히 팔리던 ELS 상품을 난데없이 틀어막고 리스크 관리를 건전하게 해 온 은행과 보험사에게 부실 자산을 떠안으라고 강매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광적인 시장개입을 거듭하고 있다. 관치(官治)를 넘어선 광치(狂治)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업들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자신들의 공약을 철저히 배신했다.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부터 최근의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까지, 이사회가 다수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며 자본시장에 큰 악영향을 끼친 사례가 명명백백히 존재하는데도 여당과 정부는 당초 약속들을 뒤집어 이런 배임행위들을 금지하는 개정안에 반대했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어도 여전히 재벌들은 물적분할에 나설 것이며 대다수 주주들이 가지고 있던 우량주들은 허울만 좋은 지주회사로 전락하여 밑도 끝도 없이 주가가 희석되는 것을 겪을 것이다. 되려 그들이 빨갱이라고 비난하던 야당과 한겨레 언론이 더 친시장적인 상법 개정안을 지지하는(링크) 이 기현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재벌 사회주의자들과 친북 사회주의자들 간의 웅장한 대결?
정부의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는 엉성하게 구성된 밸류업 인덱스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많은 리포트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이 지수에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투자자들을 화나게 했던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며 주머니를 털어먹으려던 불건전한 회사들을 다수 포함했다는 것이다. 지수가 발표된 날 인덱스에 속한 주식들이 주식시장 평균보다 더 하락한 데에는 어이없는 종목 구성을 보고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한 탓도 크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눈속임이고 반쯤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자인한 셈이니까.
이 프로젝트의 실패를 단순히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거머리처럼 사기업의 이윤을 빨아먹는 일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신의 (잘못된) 정책을 위해 상장된 금융사들에게 부실 자산을 떠넘기거나 손실을 강제하고 있으며 그 비용들은 모두 주주들이 진다.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단 한번도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수백 명의 낙하산들이 북한의 오물 풍선처럼 각 기업들과 협회들에 우수수 내려온다. 이 백치스러운 퇴직 관료들은 무수한 직간접적인 비용을 초래하며 그 부담은 모두 민간영역으로, 돌고 돌아 해당 섹터의 주주들 앞으로 청구된다. 그런 전관들의 거의 유일한 효용은 오로지 정부나 규제당국을 상대로 펼치는 로비에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부수적 효과를 낸다. 물론 그 비용은 모든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몫이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빈사상태로 내몰릴 정도로 피를 빠는 거머리들의 명단에는 정부와 각료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어떤 이유를 내세우든 정부가 새 주식 인덱스를 내놓은 것은 관이 무엇이 좋은 주식인지 찍어주겠다는 의도를 다분히 내포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회사가 우량한지 판단하는 것은 시장의 영역이지, 세종시에서 멍 때리는 관료들의 일이 아니다. 평생 이윤을 추구해 본 적이 없는 집단이 전 세계 자본들이 모두 모여 경쟁하는 시장을 가르치려고 나대는 것은, 마치 수능 6등급의 고졸 낙제생이 아이비리그 입시를 가르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오늘도 왜 성적이 오르지 않냐며 머리를 벅벅 긁으며 미중 갈등이 문제다, 중동전쟁이 문제다, 모 회사의 보고서가 문제다, 라며 한심한 핑계를 늘어놓지만 정작 중국보다도, 이스라엘보다도, 기술주 비중이 더 높은 대만의 주식시장보다도 더 못난 것이 바로 코스피 아닌가. 이게 다 무자격 고졸 낙제생이 오만한 태도로 금융시장을 주물럭거리다 망쳐놓은 탓이다.
경제관료들은 괴상한 망상에 빠져 있다. 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다, 우리가 좋은 주식들을 찍어주면 주식시장이 오르지 않을까? 아야, 너 정말 에이스구나. 오늘도 이 수능 6등급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서로 이게 정답이네 너 똑똑하네 주접을 떨지만 그들 앞에 놓인 성적표는 너무나 처참하다. 세계 꼴등. 이는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다. 생뚱맞은 인덱스 하나 내놓는다고 주가가 오르는 일 따윈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으니까. 정부의 역할은 그저 자본시장의 룰을 공정하게 세우고, 자본시장의 피를 빠는 거머리들과 도둑들만 속아내면 주가는 자연스럽게 펀더멘털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싫다면 허튼짓을 벌일 시간에 그냥 배민이나 뛰고 편의점 가서 알바나 해라. 차라리 그것이 국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더 기여하는 길일 테니까.
행시 출신 공무원들의 만행은 정말 눈뜨고 보기가 힘듭니다. 최근 의료사태도 고고하신 서울대경제 출신 행시 나으리들이 일으킨 사태아닙니까. 정말 이 무식하고 오만한 족속들을 걷어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지 싶습니다.
답글삭제서울대 법대 출신은 전혀 관계가 없으신가요......
삭제저는 보건행정 전문가가 아니지만 공무원들이 고정가격제를 실시해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사람들이죠.
삭제초등학교였나 중학교였나 사회 시험 마치고 다음 시험 준비하는데, 준비보다는 서로 문제를 맞췄는지 비교해보던 동급생들 생각이 문득 나네요 A : "미국 수도 뭐라고 썼냐?" B : "뉴욕!" A : "나도 뉴욕! 오예! 우리 맞췄다!!" B : "오오!"
답글삭제미국의 수도를 뉴욕이라고 쓴다면 그래도 정답자를 제외하곤 순위권 아닐까요. 한국은 꼴지입니다.
삭제선생님 늘 잘 읽고있습니다. 과거에 전세관련 해서 올려주셨던 글을 읽고 싶어서 그러는데, 기존에는 글이 연도별로 정리되어 연도를 클릭하면 그 해에 올리신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블로그 양식이 좀 바뀌었네요. 혹시나 과거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연도별 목차가 노출되게끔 수정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글삭제대단히 죄송하지만 그 요청들이 많아 해보고 싶은데 저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삭제'한때' 엘리트였던 사람들이 반쯤 놀기삼아 정치하는 보수정당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조선일보 칼럼에도 지적된 바가 있는데, 국힘 의원들이 곧잘 하는 이야기가 '나는 더 이상 여한이 없다'라고 합니다. 저런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성과를 낼까요?
답글삭제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말 앞에 따라오는 관용어구가 있지 않나요? 차라리 죽을 각오라도 있었다면 저 꼴은 피했을텐데요
답글삭제그런 각오가 있다는 의미에서 여한이 없는게 아니라, 이미 삶에서 이룰건 다 이뤘고 맡은 고위 공직은 그냥 보너스 타임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너무 많은걸 생략해서 댓글을 적었네요.
삭제선생님, 오늘도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답글삭제저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이 우상향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유권자들 중에서 집주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미래까지 저당잡아 집주인이된 유권자들이 집값을 사수하기 위해 벌이는 촌극은 웃지못할 이야기가 된지 오래구요.
비슷한 관점에서 그동안 한국 주식이 펀더멘탈 대비 디스카운트 받아온 근본적인 이유는 유권자들 중에서 주식시장 참여자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펜데믹을 기점으로 자본시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많이 커졌음을 체감합니다. (통계를 낸 것은 아니니 그냥 착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주식시장에 관심이 많고 자기 이익이 주식시장의 등락에 크게 영향을 받는 유권자가 많아지면, 대한민국 주식시장도 장기적으로 정상화되지 않을까 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이번 벨류업 프로그램도 그 신호중의 하나라고 보는데요, 벨류업 프로그램 자체가 허접쓰레기인 것과 별개로, 정치권에서 주식시장 참여자인 유권자들을 신경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지, 아니면 유권자들의 요구에 따라 점차 정상화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 고견을 여쭙습니다. 답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삭제항상 큰 가르침을 받습니다.
최초 질문드린 것과 별개로, 댓글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것을 보아하니 현재 한국 부동산이 고평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 왜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주택가격에 내재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다른 자산군에서 발견하긴 어려워서요.
삭제물론 주택가격이 프라이싱한 급격한 월세상승은 인플레이션 보다는 공급부족 때문입니다. 공급부족은 규제만 완화되면 금새 해결되는 요소라고 봅니다.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바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항상 큰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삭제선생님 저 랭킹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답글삭제요새는 무료로 데이터를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많아 그중 한 군데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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