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1.

악법이 말아먹은 국장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문구를 상법개정에 포함하는 것을 가장 강하게 반대한 측이 재계와 법무부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문제를 놓고 벌인 좋은 토론이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여러 법조인들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법의 문구가 다른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느슨하거나 가벼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두고 대법원이 기존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쳐도 회사 법인에게 해를 끼친게 아니면 괜찮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재벌들의 국장서 돈 빼먹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법률가들은 이것이 온전히 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에 현실이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토론에서 반대 측에 선 권재열 교수는 상법체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지만, 엉망인 법을 지키자고 자본시장을 망가뜨리는 행동이 과연 정당한가. 애초에 상법과 자본시장법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자본시장이 이렇게 크게 왜곡될 이유도 없었다. 허술한 법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과 경제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법학자의 오만과 무지에 침을 뱉으라. 

정치철학은 rule of law(법의 지배)와 rule by law(법에 의한 지배)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 둘은 매우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전자는 공평무사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의미하지만 후자는 권력자가 제멋대로 법을 휘두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서양의 정치철학은 그 출발서부터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당나라 시절의 제도를 본딴 고시출신들의 법무부와 권재열 교수와 같은 사람들은 자본시장이 어떻게 되든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일단 악법도 법이니 너희도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마시라며 자본시장의 입에 사약을 밀어넣고 있는데, 자신들의 태도가 저 두 문구 중 어느 쪽에 서있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댓글 4개:

  1. 저도 금융시장 종사자인데 이게 될거라고 믿는 관료들 꼬라지 보면 너무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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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권 교수는 상법체계만 언급했지만, 사실상 법인격이 부인되고 이사가 주주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구조로 인한 부작용은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새로운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 더 이상 법인격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이사 입장에서는 그 리스크를 감수하고 회사에 직을 둘 이유가 없을 것 같고 (저라면 그럴 것 같습니다), 이는 주주 입장에서도 회사 가치의 훼손을 의미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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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에 부작용이 없는 제도란 없습니다. 어떤 제도나 법조항을 예시로 들어도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은 존재합니다. 그러니 어떤 제도를 도입할지 여부는 실행으로 인한 득과 예상되는 부작용으로 인한 실을 고려하여 정해야겠죠. 그리고 심각하게 왜곡된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을 고려하면 이 경우 득실이 너무나 명확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코스피의 시가총액은 선진국/세계증시 평균 대비 500조에서 크게는 1200조 가량 할인되어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고요.

      또 법인과 계약을 한 이사회가 직접 계약관계가 아닌 주주들에게 무한책임을 지는 것은 법인격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권 교수의 주장은 현실을 벗어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금융시장의 눈으로 볼 때 그런 행위는 회사에 명백하게 해를 끼칩니다. 예를 들어 LG화학이 배터리사업부를 물적분할하게 되면 지주사 할인이 되어서 LG화학의 기업가치가 낮아집니다. 그 경우 LG화학이 차후 주식발행으로 자본을 조달하려 할 때 손해를 보게 되죠. 불필요하게 현금을 쌓아두고 경영권 방어에 쓰는 고려아연이나 회사의 장부가치를 무시한 두산의 합병 방안 등, 오너의 지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알짜회사 주식을 희석시키는 모든 행위들이 그 주주 뿐 아니라 회사의 미래 자본조달을 불리하게 만드는 해를 끼칩니다. 그러나 에버랜드 판결을 비롯한 법원의 일부 결정들을 보면 그들이 이런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 정말 무지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제가 정말 궁금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 시스템이 이론적으로 완전한가요? 민식이법 처럼 법 자체가 명백하게 기존 법체계와 충돌이 있는 사례 외에도 성인지감수성과 같이 무죄추정의 원칙과 대비되는 개념을 소개한 것, 그리고 양형기준이 서로 충돌하는것, 수십 년간 아주 크게 오른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벌금이 비례하여 오르지 않고 고정된 것, 특별법이 남발되어 기존의 법률과 충돌하는 것 등 합리적이지 못하거나 모순적인 경우도 많아 보이는데 왜 법무부가 상법을 개정하면 법률시스템이 무너질 것처럼 오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기존 법률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대다수 주주들에게 주식희석을 야기하는 일을 막을 개정안을 가져오면 되지 않나요. 다시 말하지만 현실에 법을 맞춰야지, 법 논리에 현실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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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트럼프 재선 성공 후 주토피아/조커 시리즈를 재독하니 기술과 삶은 바뀌어도 사람은 잘 안바뀌네요
    16년도 방정식이 거의 그대로 성공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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